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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사로 보는 민주주의 혐오의 역사'라는 부제의 책으로 수천년 동안 혐오, 경멸, 비난의 대상이 되어 얻어맞기만 해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살핀다. 그런데 우리에게 진짜 민주주의가 도래한 적 있던가. 지금 이 나라가 민주국가인가. 다수결이라는 단순한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체제가 합당한가. 인기 투표하듯 책임감 없이 행사하는 투표권이 민주 정부를 만들 수 있나. 북한을 주적이라 규정하는 여당에 탈북민이 비례대표로 선출돼 '빨갱이 소탕'을 부르짓는, 아니 그냥 짖는 상황이 민주적인가. 이 책은 민주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묻는 데서 출발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란다. 지성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역사적으로 통찰하며 더 가까이, 더 정직하게 다가가고자 한다. 흔히 쓰는 '국민'이란 개념 대신 사회나 국가 형성 이전의 존재인 '인민'이란 개념을 사용해 투표가 아닌 통치로서의 민주정?민주주의 정치체를 설명한다. 18세기는 인민이 나라의 주인인 점은 인정하면서도 인민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로 주권의 원칙으로써는 인민주권론을 긍정하였으나 통치의 준칙ㅂ으로써는 민주정(민치정)을 부정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함정 속에 미묘한 방식의 귀족정이 스며든 상황을 주식투자와 펀드투자의 차이로 설명한다. 이 책 1부 '민주정만 빼고'에서는 고대 그리스부터 계몽 사상의 시대까지를 훑는다. 약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민주정, 아테네 시민단의 전권 통치를 시작으로 로마 공화정의 역사순환론, 공화주의와 자연법을 둘러본다. 아테네 민회에서는 '인생에서 감미로운 것과 고통스러운 것을 의미를 가장 잘 알고, 그런 다음에 닥쳐올 일들을 맞으러 거리낌 없이 나아가는자들'이라 일컫던 시민단의 정권 통치가 가능했다. 이후 로마 공화정에서는 남성다움인 덕성과 애국심을 강조한 공화주의도, 정의로운 사회에서의 평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자연법 전통도 인민의 직접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치의 개념을 인민 전체가 직접 실행하는 것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인민에게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푸펜도르프도 홉스도 루소도 통치라는 건 옳은 의지를 가진 절대적 주권자가 해야 하는 것이지, 인민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글이라 평한 부분도 흥미롭다. 계몽의 시대 이후 혁명의 시대의 '민주적 전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계약론>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루소는 주권의 불가양도성을 이야기하며 대의제를 국가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장치라 본다. 모든 법은 인민의 의지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루소의 회의가 보인다. 루소는 민주정이 작동하려면 너무나 많고 어려운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다 그 조건들이 갖추어진 터에도 인간 본성 때문에 민주정을 제대로 운영하기는 어렵다고 회의했다. 민주주의는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그 생명이 끝난 것으로 간주되었고 현실 차원에서도 민주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18세기민주주의가 실제로 구현되던 곳은 대서양의 해적선 정도밖에 없었다니. . . 험한 바다 위에서 약탈로 살아남아야 했던 해적들은 선장과 선원들의 보수 차이가 크지 않았고 의사결정권이나 존엄성 차원에서도 대체로 평등 관계가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8세기 유럽 지식인들은 해적의 잔혹성을 고대 민주정의 요소로 규정하고 민주주의를 해적실 강도짓에 비유했다니 오, 아이러니~ 루소의 좌절과 달리 많은 계몽사상가들은 근대에 적합한 새로운 종류의 자유가 있다고 믿고 실현 방법을 모색했는데,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상업사회리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초기 자본주의 개념으로는 부족하단다. 구성원 대부분이 많은 시간 노동하며 삶을 보전하기에 급급했고 사치가 횡행하던 18세기에는 민주정을 '악당들의 통치, 최악의 정부 형태, 폭도들이 다스리는 정부 형태'라 몰아부친다. 그럼에도 대의 정부(군주정, 공화정)에서 공히 대의제를 활용했음을 밝히며 민중의 거리 정치가 도래한 역사적 필연을 설명한다. '혁명의 순간, 민중은 인민주권론을 전유하고 행동'한 것이다. 2부 '민주주의를 다시 보다'에서는 혁명 이후를 들여다 보겠군. 기대된다. 지성사로 보는 민주주의 역사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공화국을 개복치에 비유해 설명한 것도 신선하고 귀족정을 펀드 투자에 빗댄 것도 신박했다. 우래기들 사회탐구 과목인 생윤, 정법도 이렇게 재미있을까? 저자는 프랑스혁명 직후, 총재 정부 시기, 보나파르트 장군이 집권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민주정의 역사를 꿰뚫는다. 민주정을 주권의 조직 원리나 법을 제정하는 권력을 다루는 개념으로만 썼던 콩도르세의 주장, 민주공화국의 정치경제학에 대의민주주의 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총재 정부의 민주파,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계몽이 우선이라며 엘리트 양성에 힘쓴 19세기, 이 시기들을 거치며 민주주의는 단선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굴곡의 역사를 지나왔음을 증명한다. 18세기 지식인들이 여론의 통치를 주장했다면 19세기 지식인들은 여론에 맞선 실증주의 또는 자유주의체제를 지지한 정도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공포는 여전했던 것이다. 19 세기 사상가들 중 민주정 의 핵심 요소를 제거하려고 노력한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주권이론과 투표를 떼어놓음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19세기. 기준으로 보자면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기만적이라고. '민주주의의 무늬를 띤 투표제 위에 수립된 자유주의 정부'이기 때문이란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투표자유주의 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는 주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20세기 냉전을 거치며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 그 자체'가 되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먼저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의미가 민치정 혹은 민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바뀌고, 그후 다시 자유민주주의가 민치정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민주정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이 진행된 뒤, 이제는 민주주의가 당연히 좋은 것으로 전제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미운 오리 새끼가 당당한 백조로 성장한 것이다." 240p 다양한 민주주의가 각자의 이름을 걸고 활약하는 시대이지만 '투표로 뽑았으니 민주주의'라는 손쉬운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민주주의가 당연히 좋은 것'이라는 전제에도 의문을 던진다. 민주주의가 공포와 혐오에 대상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통치하는 엘리트 집단의 민중의 의지와 목소리를 경멸하고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민주정의 본질은 인민이 통치하는 정부 형태라는 점이다. 민주주의ㆍ민주정의 본래 의미는 민치정이기에 투표와 대의제의 정당성을 두고 있는 국가라도 결코 민주정은 아닌 것이다. 대의제를 활용하는 투표 귀족정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렇다면 더 나은 정부 형태는 무엇일까. 정답은 없다. 다만 민주주의의 역사성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보통사람의 목소리가 통치를 좌우하는 정부형태가 민주정인데 보통사람이 누구인지, 보통사람의 입장은 어떠한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자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정의 힘은 인민의 지성에서 나온다고 힘주는 저자이다. "인류의 과거사는 우리에게 엘리트의 통치도 인민의 통치만큼이나 불완전했으며 어떤 지식도 영원불멸의 진리로 입증된 적이 없다는 점을 말해준다. 돌이켜보면 인민의 무지만큼이나 엘리트의 무지도 역사의 조명 아래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오히려 통치와 정치의 불완 전성을 선제적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이 무지 위에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그러니 오히려 완벽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해도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48p 너무 무지하고 부끄러운 대통령을 참아내야 하는 국민이다 보니 책의 마지막 문단은 현실감 선명하다. 완벽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잘할 순 있지 않을까. 얼마나 더 무지하고 치욕스런 상황을 맞딱뜨리며 살아가야 할까. 이 시간도 민주정의 굴욕의 역사로 기록될까. 아니면 투표귀족정의 증거와 폐해의 예로 남게 될까. 정치와 경제는 민주적 구성의 기본이고 민주적 경제의 대원칙은 평등이라던 총재 정부 시절의 주장처럼 정치경제적 평등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작될 것인가. 민이 주인이라는 그럴 듯한 말 뒤에, 투표제라는 어설픈 제도 뒤에 민의 권리를 감춰버리는 현 민주주의에는 문제가 많다. 이 책에서 그 대안까지 다루진 않지만 일견 속 시원해지는 민주주의 역사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민주주의는 없어, 민치정, 민주정은 역사에 도래한 적 없다고. 그저 이 무지의 시간 위에 애써 사회를 이루어야만 해. 힘 빠지니? 삶이란 건 원래 그래. 실망하고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서 걷는 것. 그게 삶의 기본값이야. 그렇게 역사는 계속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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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쓰이는 민주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통해 의미를 살펴보는 책이다. 교과서적으로 배우는 민주주의의 의미가 아닌 실제 사료와 역사적 자료에 의해서 새롭게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을 기를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또한, 다수의 정치 참여가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한 많은 학자들의 경고와 조언은 현대 사회에서도 의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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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民主主義(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니. 보통은 모두가 찬양하는 체제 아닌가. 그런데 저자는 그 이면을 묻는다. 누가, 왜, 어떤 조건에서 민주주의를 부담스러워하는가. 핵심 논지는 간결하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善(선)해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라, 利害關係(이해관계)의 계산 속에서 유지된다. 권력을 가진 집단은 선거라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경제적 특권을 가진 계층은 再分配(재분배)를 경계한다. 즉, 민주주의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制度的 均衡(균형)의 산물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成立條件과 崩壞條件을 비교정치학적으로 분석한다. 선거, 헌법, 권력 분립 같은 제도가 자동으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도는 껍데기일 수 있고, 실제 작동은 정치 행위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