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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둘러싼 '날 것'(보존)과 '익힌 것'(개발)의 대립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국립공원과 공유림을 둘러싸고, 개발주의자와 보존주의자의 대립은 팽팽하다. 험준한 오지와 황야, 밀림에 포장도로와 주차장, 저수지와 선착장을 놓으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야생의 가치를 사랑하는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들도 있다. 일부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들은 등산족과 트레일러너, 야영족, 서핑족, 오지탐험가들을 오히려 자연생태를 파괴하는 부류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래도 개발주의자의 입김이 드셀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적 관광과 휴양은 엄청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산업적 관광은 거대한 업종이다. 큰돈이 왔다갔다 하는 사업인 것이다. 이 사업에는 모텔 및 식당업자, 휘발유 소매업자, 석유회사, 도로 건설 계약자, 중장비 제조업체, 주 및 연방의 토목부서 그리고 막강한 자동차 산업이 관여하고 있다. 이 다양한 이익단체들은 잘 조직되어 있고, 웬만한 국가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며 의회에 대한 입김도 강하다. 관광산업은 의회를 통해서 보잘 것 없는 행정부의 한 부서인 공원관리청이 감당하기 힘든 압력을 행사한다. 이 압력은 지방정부, 주, 지역단체 등 모든 방면으로부터 가해지며 광고와 낭비를 좋아하는 국민들의 굳어진 습관이 그 압력을 뒷받침한다."(107, 108쪽)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레인저로 일했던 작가 에드워드 애비는 급진적인 자연 보존주의자다. 작가의 레인저 경험에 기반한 에세이 『사막의 고독』(라이팅하우스, 2023)은 미국 생태 문학의 고전으로, 사막의 자연과 인간의 고독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유려한 문체에 담고 있다. 이 책으로 저자는 '미국 서부의 소로'로 불린다. 아치스 공원은 지표의 4분의 3이 모래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막지대다. 오랜 풍화와 침식이 빚어놓은 기기묘묘한 바위들과 협곡들이 있고, 향나무와 절벽장미를 비롯해 저자가 '정원'이라 칭하는 다양한 야생의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황무지 사막이 가진 야생의 매력을 때론 시인/철학자의 시적인 문체로, 때론 만물박사의 지적인 문체로 전달한다. 저자에게 사막은 멋진 고독의 장소이자 마음의 안식처다. 저자는 황야가 인간의 영혼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라고 강조한다. 정말 생각하고 집중하기 위한 장소로 사막이 딱이다. 특히 도시의 번잡과 소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말이다. 사막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그 단순무식한 배경 때문에, 오히려 생명의 신비와 경이를 증폭시키는 생태학적 상상력의 성지가 된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은 이곳 사막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식물과 동물의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처럼 생명체들이 붐비지 않고 띄엄띄엄 흩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의 풀이나 관목, 나무 그리고 풀잎 하나하나까지도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생명이 없는 모래와 황량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대담하고, 용감하고, 생기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68쪽)
나는 생태주의와 환경운동을 지지한다. 하지만, 야생은 말그대로 사람의 입김이 전혀 닿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아니다. 뭐랄까, 오늘날 대다수 캠핑족처럼 깔끔한 화장실과 온수가 나오는 숙박시설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야생과 오지여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관광과 레저에 길들여진 탓이랄까. 어린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야."라고 했다. 그런데 그 우물이 이왕이면 최근까지 사람이 잘 관리하고 있는 신식 우물이었으면 싶은 게 내 속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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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esert Solitaire & Dessert Solitaire, 전후자 스펠링 차이에서 솔로 s와 중복 ss, 공히 편애도, 손절도 어려운 현대적 자화상이 그려지는 고독한 디저트와 도시 노마드인 일면 그린 노마드(Green Nomad), 공교롭게도 현대적이다 아니다라기 보다는 삶의 여정과 관련성이 높은듯한 사막과 명상, 칼로리와 달콤함의 대유가 흥미로워 조합해봤다. 서부로의 소로로 일컬어지는 그의 상상은 어쩌면 소로의 대표적 문구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천박하다면 아름다운 자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문장을 통해서도 인간 뿐만 아니라 문명주의까지 포함하여 가늠할 수 있다. 제목만 읽었을땐 도시 유목민이 그려지겠지만 정작 저자가 은유한 사막이 시사하는 바는 모래바다가 본질이 아님을 프롤로그에서 찾을 수 있다. 사막에서 고전적인 현대인의 쉼과 위로라는 뻔한 것을 찾아 헤메지 않아도 돼 더 인류적인 접근인듯 하다. 예전 어디선가 우리사회가 온통 인문학, 자기개발과 스펙관리에서 잡 장만, 저녁만찬, 이른 은퇴 등으로 옮겨간듯해도 현대인의 등골을 휘게 한다는 데서는 이견이 없는듯 하다. 어쩌면 성찰이 넘치는 숙제같은 구 감성의 사막보다 도시 정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대인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더 인류를 더 위로하는 지는 살과의 전쟁에서 혀끝에 전해지는 순간의 달콤함일까 아니면 경검한 마음의 요가, 명상 등 아날로그적 사막에서 현실 감성을 대변하는지 생각해볼이다.
본문의 관점을 통해, 사막의 고독이 문학적 성격을 규정한 생태주의(에콜리지즘 ecologism)는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더 급진적인 시각을통해 바라보는 것으로 알려저 있다.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기술적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인 만큼 보다 본질적으로 광범위하게 문제시함으로 평가가 넒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런 괌점으로 저자가 속했던 에코타지(ecotage), 어스퍼스트(earth first) 등의 환경단체를 통해서도 전자는 환경을 파괴하는 시설물들까지 적대시하는 행동까지 보이는 것으로 알려저 있고, 후자역시 급진적 성격을 띠는 환경단체로 통한다. 저자는 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과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공감은 한다. 그 중 학문적인 관점에서는 모든 형태의 체제, 권력, 지배유형 등을 거부하는 아나키즘(Anarchism), 환경을 모든 것의 최우선으로 치는 환경보호주의 엔바이얼멘털리즘(environmentalism)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1956년 여름에 시작되었다. ... 1957년부터 일기를 쓰기시작하며 ... 나는 모아브의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32km 떨어진 그곳에서 혼자 일한며 살았다. 내가 할 일은 많지않았다 ... 나는 고독한 생활속에서 야생동물, 책, 꽃, 생, 생각, 느낌 등에 대해 틈틈히 적었다. 그무렵 나는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사실과 연결되지않는 상상력이나 단순한 기억은 전혀 빋을것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의 괴팍한 본능같은 것, ... 예를 들자면 소로는 일기장이 17권이나 되었다. 그리고 에머슨도 일기를 썼다. 버지니아울프, 마크트웨인, 앙드레지드, 에드먼드윌슨, 미쉘드몽테뉴, 로보트버튼, 제임스보스웰도 마찮가지였다. 그리고 도스도예프스키와 톨스토이조차도 일기를 썼다. ... 나는 특히 긴 외로운과 관련된 감정에 대하여 많이 적었다. ... 나는 세시즌에 아치스로 ... 유타주 남동부의 관광산업 활성화에 ... 몇년동안 떠돌이로 유타에서 켈리포니아~뉴욕~플로리다~네바다, 그사이 결혼도 두번, 직장도 임시직으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스클버스 운전사로 취직했다. ... 그 사이 세권의 소설을 썼다 그중에 두권은 뉴욕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으며 편집자에게 구두수선공이나 기계공으로의 직업전환 말까지 했다. 오전, 오후 두시간씩 22명의 아이들을 기다리며 ...
분명한 것은 사회적 관계속에 우리는 늘상, 상대방의 의도나 저의를 꿰뚤어야 하고 사수의 무심한 한마디를 해석하며 제정신 찾기에 쫒기듯 살아가는 삶에서 어쩌면 저자의 서사는 아주 단순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인류가 세상을 벗어나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고 영혼을 위로하며 가슴과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제일 편하고 아름다운 곳, 인생이 선물하는 삶의 본질에대해 저자가 그리고 있는 자연생태적인 일기들이 우리 삶을 정화시키고 환경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 행간의 과제들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즉,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과 좀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케한다는 점이다. 다만 저자가 그리고자 한 제목에 삽입된 사막은 일종의 메타포로서 저자가 겪은 경이로웠던 여름의 날들을 통해 더 근본적인 자연의 다양하고 복잡한 경관을 일기형식으로 정리한 것이 사막의 고독임을 알수 있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관점에서는 ... 아무렴 어때라는 화두를 깨달았다. ... 그리고 그날밤 불현듯, 트렁크를 뒤져 예전 일기장을 꺼내서 아치스에서 보낸 완벽했던 두해 동안의 내가 한 일들을 타자기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심리치료사인 일리시아가 도와주긴 했지만 대부분 내가 타자기로 친것이다. 그리고 뉴욕이 내 출판사 에이전트에게 부쳤고 사막의고독은 한겨울 1968년1월 출판됐다. ... 뉴욕타인스에서 호평과 몇몇 매체의 혹평은 겨우면했지만 플리쳐상이나 내셔널북상을 받지도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명성과 돈이 쏱아지기를 기다렸지만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만권을 찍고는 ... 1년도 못되어 수명을 다했다.[저자 서문에서 왈~]
왜 인류에게는 불규적이라도 사막이, 평야와 바다가 필요하고 짬을 내 산과 들을 찾기 어렵다면 두발을 딛고 있는 땅에서 고개를 들어 구름과 달과 별이 말을 거는 하늘을 바라보는 잠시의 과정, 주변의 나무와 동물 등 자연을 통해서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으라 하는지 생각케한다. 또 하나는, 사막이주는 고독한 행간의 정신적 풍요을 통해 오늘 우리자신을 대입해본다. 온통 극단적인 뉴스를 통해 들어나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인 욱병과 화병으로 연결된 사건들, 엄밀하게 우리 모두에게는 욱하는 것들이 있는게 정상이고 욱병이 없다면 인간일 수 없다. 한가지 중요한것은 오늘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건들에 대하여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눈 깜짝 할 3초의 객관성을 잃고 삶을 통째로 망가트리는 많은 사람들이 피의자가 되는 돌이키고 싶은 간절한 현실, 오늘날 인류를 한차원 더 성숙케 하기위한 물리적인 가치들이 절실함엔 저자가 가지는 바라보고자하는 삶의 직접적인 여유들, 조그만 시선을 돌려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그리고 그 본질과 대면하는 객관성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언젠가는 큼지막한 성채 두꺼비가 중간크기의 유혈목 물뱀을 3/1이상 쌈키는 중인것을 발견하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께 말씀드릴려고 돌어서는데 마침 저만치의 이웃집 아저씨가 보여 어린마음에 두꺼비가 뱀을 먹어요 하니 오셔선 둘을 한꺼번에 집아가신 일이 있었다. 그 바람에, 나중에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먼저 애기하지 않은 것을 내심 탓하시는듯 말하셔서 혼나는듯 기분이었던 것을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생각해보니 술담으실려고 그러신것인지, 독이 있다고 알고있는데 그래서인지 두꺼비주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아직도 선명한 시골의 천장이없는 나무 울타리 화장실, 비만 오면 집옆 또랑에서는 산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폭포수처럼시끄러웠고 더불어 질퍽히 젖은 황토 흙바닥인 시골 #둠벙화장실 리얼리티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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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에 힘들거나 현재 겪고 있는 일로 인해 지칠때 어디 아무도 없는 깊은 곳으로 가서 혼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코로나19 초기에는 전염력이 무척 강했고 중증 또는 사망하는 경우도 많아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꺼려졌네요. 혼자 있고 싶어도 막상 살다보면 외롭고 불편한 점도 많을 것 같아서 나중에 나이가 들면 외딴 곳은 아니어도 적당히 도시와 가까우면서 적당히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작은 마을에 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소로는 외딴 호숫가에 집을 짓고 몇 년을 살았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월든'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월든은 생태주의 수필로 유명한데 동부에 소로가 있다면 서부에는 애드워드 애비가 하네요. 이번에 읽은 '사막의 고독' 은 애비가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했던 동안의 생활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처음에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온 사람들은 동부 해안 지역 위주로 정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서부 개척 시대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서쪽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기 시작했고 결국 대평양 연안까지 도달하였네요. 하지만 중부의 자연 환경은 척박하고 거칠었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곳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유타주에 있는 아치스 국립공원의 관리인이었는데 주말에 가끔 오는 관광객이나 식량 및 물자를 공급 받으러 가서 만나는 경우 외에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네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외롭고 고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광활한 국립공원을 탐험하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사람의 발이 닿지 않아서 위험한 곳이 많다보니 저자도 탐험을 하다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죽음을 눈앞에 두었으니 두려웠을 것입니다.
낮에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생명체가 없을 것 같지만 그곳에도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었네요. 뱀과 친구(?)가 되어 트레일러에 같이 거주하면서 뱀이 쥐를 잡아주기도 했고, 동물들은 낮에는 나무나 돌 아래 등 햇볕을 피해 있다가 밤이 되면 먹이를 구하러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저자가 토끼에게 돌을 던져 죽인 이야기도 나오는데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어서 약간 충격적이기는 했네요. 저자는 먼 과거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과 만났는데 과거 자연 속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다가 이제는 미국 정부가 정한 보호 구역 안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공원까지 찾아오기도 쉽지 않고 공원 내부도 자연 그대로여서 하이킹 겸 탐험을 하러 왔다가 조난을 당해서 죽은 사람도 많았네요. 아치스 국립공원은 외지고 위험하지만 이곳에도 개발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공원 입구까지 뿐만 아니라 공원 내부에도 곳곳에 아스팔트 길이 닦였고 캠핑장과 샤워실, 화장실, 그리고 콜라를 파는 자판기도 생겨납니다. 사람들은 자동차 안에 앉아서 공원을 둘러보는데 저자는 철제 상자에서 나와 두 발로 직접 흙을 밟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숲 속에서 공기의 냄새를 맡아보라고 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차 안에서 힐끗 보는 풍경이 전부가 아닌데 그만큼 저자가 자연 속에서의 삶을 사랑하는지 알 것 같네요.
국립공원에서 몇 달 일하고 나서 복잡한 도시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리워서 잠깐 뉴욕으로 일하러 가는데 가서 며칠도 지나지 않아 다시 국립공원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소로의 생활이 정적이라면 탐험과 함께 하는 애비의 생활은 무척 동적이면서 활력이 넘치네요. 책을 읽다보니 정말 자연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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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고독.. 이책은 작가가 야타주의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공원 관리자로 일하면서 일기를 쓰고.. 국립공원에서 혼자서 관리를 하고...시간을 보내면서..자연을 탐험하고...관찰하면서... 더불어..자연의 훼손이 결국 인간의 이기심에서 시작이되고..자연은 오염이되어 신비함이 사라져간다.. 우리는 기후위기등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삼림이 훼손되고 있고 동식물의 생태계는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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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사막의 고독, 애드워드 애비>
저자는 서부 사막의 유타주 모아브를 이렇게 표현한다. ‘매끄러운 바위로 이루어진 사막, 붉은 흙, 타는 듯한 절벽 그리고 외로운 하늘(p.27)’ 이 묘사 한 줄로 이 책은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소장하고 싶은 몇 안되는 책이 될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서부의 소로’라는 호칭의 생태주의 작가 애드워드 애비의 <사막의 고독>은 1956년에서 1957년 동안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파크레인저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연 에세이이다.
흔히 자연을 얘기하자면 초록초록한 녹색 이파리가 가득한 세계와 생명력 넘치는 물이 흐르는 곳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애비는 미국서부사막과 같은 적색의 세계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이야기 한다. 사막지형에서도 생명력 넘치는 협곡의 모습과 산을 능가할 정도의 형태, 오렌지빛의 석양에도 뒤지지 않는 색깔, 빗방울과 폭포가 만들어내는 음향을 찬양한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모래에 발을 묻고 사막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모닥불의 불꽃을 감상하며 자연을 느낀다. 또한 더 나아가 황야가 주는 원시적인 자연의 모습을 신성시하고 경외한다. 그에게 ‘황야에 대한 사랑은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 이상의 것’(p.277)이며, 그가 ‘찬양하고자 하는 낙원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실제로 존재하고 만질 수 있는 우리가 서있는 실재하는 세계’(p.278)인 황야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자연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문명의 균형과 조화를 애비는 말하고자 한다. 그는 6개월동안 파크레인저로 활동한 후 지금과 정 상반되는 뉴욕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균형, 그것이 비결이다. 온건한 극단주의. 양쪽 세계의 최선을 취한다. 한 번에 한 세계만을 고집했던 소로와는 달리, 나는 양쪽 세계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 햇빛과 별, 바람과 하늘, 황금빛 모래 속에서 26주를 보내고 나서, 나는 호보컨의 조개수프집 바닥에서 조개껍데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것이다.(p.417~8) 자연을 찬양한다고 해서 문명을 거부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문명은 각각이 존재할 수 없으며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애비의 <사막의 고독>은 ‘자연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자연을 다룬 문학에서 흔히 보이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나 피폐함을 다루는 것과 다른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
애비의 <사막의 고독>의 시간으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지금 이 순간, 그동안 자연과 문명의 공존을 위한 노력을 상대적으로 등한시 한 결과로 기후변화와 기후위기가 밀어닥치고 있다. 인간의 문명과 자연생태계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 정부나 기업에서는 탄소중립과 ESG 경영체계로 변화하는 뒤늦은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애비가 서부 사막을 떠나기 전 동료에게 들은 ‘내년 봄에도 모두 그대로 여기 있을’(p.426)거라는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자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사막의 고독>이 주는 조용하고 묵직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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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젊은 산림 감시원이자 공원 관리원이었던 애드워드 애비는 미국 유타주 남동부에 위치한 국립공원 아치스 준국립공원에서 근무했다. 사막의 고독은 그가 그곳에서 보냈던 삶에 대한 회고록이며, 그가 겪은 모험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그의 탐구를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애비의 책은 특정 장소를 초월하여 사막에 대한 경험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그의 세계는 사방이 탁 트인 완벽한 경관을 자랑하는 완만한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기울어지거나 뒤틀리고 물이나 바람에 의해 침식된 주전자 손잡이나 하늘을 나는 지지대와 같은 자연적인 아치의 세계다. 그의 정원은 소나무와 향나무, 선인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이웃은 캥거루쥐, 범무늬도룡뇽, 딱정벌레 등이다. 그의 세상은 황백색에서 담황색, 분홍색, 갈색, 빨간색으로 변하며, 빛과 날씨, 하늘의 분위기에 따라 색조가 달라진다. 문명에서 20마일이나 떨어진 이곳에서 그의 똑딱거리는 시계는 무의미하고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이 광활한 공간에 비해 애비의 이야기는 작지만 흥미진진하다. 트레일러를 찾아오는 뱀과의 교감,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새로운 포장도로의 깃발을 설치하는 측량 대원들, 그날 밤 조심스럽게 제거한 깃발, 현지 카우보이, 인디언, 광부들의 운명, 솔트크리크에서 야생화된 달 모양의 눈을 한 말들, 그랜드뷰 포인트에서 죽은 사람 등 그의 책 속에서는 끊임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중에서 콜로라도강 댐 건설로 곧 영원히 수몰될 “지구 최초의 낙원의 일부”를 목격하기 위해 글렌 협곡을 노를 저어 내려가는 꿈 같은 모험이 중심을 이룬다. 애비의 책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글쓰기를 넘어 협곡의 땅을 잠식하는 개발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긴급한 호소이기도 하다. 그에게 사막의 고독은 이미 사라졌거나 빠르게 사라져가는 곳에 대한 추모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애비의 재치가 그가 묘사하는 울퉁불퉁한 절벽만큼이나 날카롭기 때문이다. 때때로 신성시되고 지나치게 극화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는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다. 그는 황야를 인류의 신성한 고향이자 유일한 희망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황야는 문명을 보완하고 완성하기 위한 자유와 도피의 장소로서 필수라고 한다. 참고로 이 책의 역자는 wildness를 황야로 번역했다. 번역이 무엇이든 그 의미는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서 야생의 상태가 보존된 곳을 가리킬 것이다. 과거에는 토마스 에드워드 로런스, 거투르드 벨, 피에르 로티 등 문학적으로 사막의 옹호자들이 있었지만, 오늘날 사막은 새로운 보호자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사막을 파괴하고 고대의 지혜를 거칠게 짓밟을 때 무엇이 위태로운지 이해하는 수호자들이 필요하다. 애비가 미국 야생 보호 운동의 영감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행을 떠날 때 이 책을 가방에 넣고, 울퉁불퉁한 언덕 꼭대기에서 전망이 좋은 그늘진 곳을 찾아서 이 책을 읽어본다면, 변화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올지도 모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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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이 우리를 위축시키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 사람의 나이, 그의 죽음의 불가피성과 적합성 그리고 지상에서의 삶의 본질 등을 감안할 때, 우리 각자에게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확신 같은 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그를 잘 치워버렸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떠남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그랜드뷰와 메이즈가 있는 남서쪽 하늘에서 v자 모양의 검은 날개들이 노란 황혼을 배경으로 점점 더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세상 끝, 향나무 아래서 죽은 그 사람을 생각한다. 까마귀가 멀리 저 아래 누워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던 것처럼 그를 본다. 그리고 그 - 책 내용 中 이 책은 저자가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십여 년간 산림 감시원과 공원 레인저로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사막을 영상으로만 접해보고 실제론 한번도 본 적이 없어 이 책을 보기 전에는 황량하고 삭막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사막에서 느꼈던 생명력과 아름다움, 그리고 깊은 통찰을 옅본 기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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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 관점을 담은 책은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사막의 고독』의 소개말에 있던 ‘생태주의 고전’이라는 생소한 문구를 보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의 고독』은 저자인 에드워드 애비가 이 책을 쓰기 10년 전인 1956년에 유타 남동부에 있는 아치스 준국립공원에서 공원 관리인으로 일하며 쓴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에세이였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은 이곳 사막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식물과 동물의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처럼 생명체들이 붐비지 않고 띄엄띄엄 흩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의 풀이나 관목, 나무 그리고 풀잎 하나하나까지도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생명이 없는 모래와 황량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대담하고, 용감하고, 생기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_68쪽
저자는 사막의 고독과 아름다움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생생한 묘사 속에 담긴 저자의 메시지에서 왜 이 책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환경운동가들의 여겨지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55년 전, 저자가 이 책을 출간한 시점보다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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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3년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출간되었고 20년 만에 <사막의 고독_황야에서 보낸 침묵의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라이팅하우스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사막의 고독 (원제: Desert Solitaire)은 에드워드 애비의 자연 에세이다. 이 책을 통해 아처스에 대한 작가의 감상, 사막 보호에 대한 의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여행자의 모습, 이미 사라지는 것과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슬픔 등을 살펴볼 수 있다. 20대의 에드워드 애비는 1956년과 1957년 봄 여름 시즌(대략 4월 첫날 부터 9월 마지막 주까지)에 미국 유타 남동부에 있는 아치스 준국립공원(Arches National Monument)에서 기간제 공원 관리원(레인저)으로 일한다. 사막과 자연을 예찬하며, 국립공원 발을 반대하는 그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초고는 1956, 1957년에 쓰였지만, 한 권의 책으로 편집, 출간된 것은 1968년이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에드워드 애비의 상황도 변하고, 그가 그렇게 사랑한 아치스 준국립공원도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탔다. 국립공원 가까이 도로가 깔리고, 공원 안 여기저기에 현대식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휴일마다 관광객들이 차를 타고 떼지어 이곳에 몰려든다고 한다. 그의 독백에서, 왜 에드워드 애비가 서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로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1987년 미국 개정판 서문에서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려, 이 책이 30년에서 35년간 읽히는 불후의 책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더 이상 길어지면 고전이 되는데, 고전은 만인이 칭송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며 고전이 되는 것에 반색을 표했다. 그의 바람과 달리,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55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환경운동자의 책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바람과 달리 그의 책이 스테디셀러, 고전이 되었다. 에드워드 에비는 아치스 준국공립공원에 기간제 관리원으로 취업한다. 4월 부터 9월까지 6개월 간 공원에 있는 트레일러(임시숙소)에서 홀로 지내며 일을 한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휴무이며, 금요일에는 주말 관광객을 맞을 준비(화장실 청소, 휴지 보충하기 등)를 하고, 주말동안 관광객 관리(길 안내나 담소 나누기 등)를 하며, 그 후에는 나무에 걸린 휴지를 줍거나 공원에 차를 갖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딱지를 끊거나, 사막에서 미아가 된 사람을 찾는 일 등을 한다. 휴무날에는 시내 주점에서 술을 마시거나 사막을 여행한다. 관광객들은 사막에서 혼자 살면서 일하는 에드워드 에비에게 외롭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비는 자기 자신과 사막, 자연이 있어 외롭지 않다. 작가는 국립공원에 취직하기 전 동물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어떤 뱀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동물이 서로 천적인지 잘 알고 있다. 또한 사막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는 실종자를 수색하는 법, 공원에서 가축을 키우는 법, 십년 전 집나간 말을 추적하는 법 등을 설명한다. 백인이 가지 않은 미궁이라는 장소도 여행하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지역도 고무보트를 통해 힘겹게 여행한다. 아처스 국립공원은, 1950년 전후 핵 개발에 필요한 우라늄 광석을 찾기 위한 사람들로 조금 붐볐다고 덧붙인다. 모아브 읍내에서는 한때 5,00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과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우라늄 광석 채굴 비극 에피소드가 씁쓸하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왜 자꾸 변하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 국립공원 개발에 반대한다. 국립공원에 자동차를 타고 다녀서는 안 되고, 또한 국립공원에 도로를 더 건설해서도 안 되며, 또한 공원관리원들에게 매표소에서 티켓을 파는 일 말고 공원을 직접 관리하는 일을 시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국 지켜지지 못한다. 당장 1958년부터 아처스 국립공원 개발 바람이 불고, 에드워드 에비는 더 이상 레인저 일을 하지 않는다. 그 후 50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이제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하고 원상태로 되돌리는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에드워드 애비의 바람과 달리 이 책은 50세가 넘은 고전이 되었다. 그러나 박물관에 박제되지 않고 아직도 읽히고 있으니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 (라이팅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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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웅변가 애비가 남긴 불멸의 생태주의 고전
라이팅하우스에서 출간한 에드워드 애비의 <사막의 고독>은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레인저로 일한 저자의 에세이다. 생태주의 고전이라 하면 가장 먼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이 떠오르는데 미국에서는 동부를 대표하는 생태주의 작가가 소로라 하면,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생태주의 작가로 애비를 꼽는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인 <사막의 고독>은 그의 사후에 유명해져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라 한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말그대도 세상의 모든 다양한 아치형태의 돌이 모여있는 곳이다. 부드러운 곡선의 아치형 바위가 2,000여 개나 생성된 지역이다보니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아치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다보니 성수기에는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이런 국립공원이 지정된 직후의 모습은 어떨까? 사람이 찾기 힘들고 도로가 포장되지 않아 말을 탄 인디언이 찾았던 시절, 애비는 이곳에 레인저로 홀로 반 년 이상을 보내게 된다.
<사막의 고독>이라 인적을 드물지만, 그곳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표사가 있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사방으로 돌리면 도마뱀, 매, 말, 개미 등 하늘과 땅에 동물이 살아가고 있다. 식탁에 아무도 없이 혼자 밥을 먹는 혼자라는 인식은 때로는 외로움이 되었지만 화덕에 향나무를 태우며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인간이 손이 타기 전에 먼저 경험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고독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자연과 국립공원을 지키는 것은 그곳을 개발해야 하는지, 현상태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지 여전히 첨예한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다. 애비는 자연은 그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개발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다.
미국 서부의 그랜드서클 투어에 관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 아치스 모뉴먼트 밸리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그랜드뷰 포인트, 델리게이트 아치, 랜드스케이프 아치에 이르면 60년 전 애비가 경험한 황야와 사막은 어떠했을지 공감하고 싶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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