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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는 이용순 작가님의 책이에요. 이 책은 사진가인 저자의 손에 카메라 대신 펜이 들려 있었던 2년 반이라는 시간의 기록이에요. 은행원 조 씨와의 인연이 끔찍한 악연이 되었던 사연을 보면서 기막히고 억울한 심정이 이런 거구나 느꼈어요. 서로 안면을 튼 정도의 친분에서 호의로 도와준 일이 그를 공범으로 만들었고,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하네요.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치고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지만 정말 누명을 쓴 거라면 몇 배로 더 가슴에 한이 맺힐 것 같아요. 무죄라고 주장한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 그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미일 거예요. 한순간에 죄수가 되어버린 저자는 감옥에서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들이 한 권의 책이 되었네요. "사진은 분명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가슴으로부터 토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 요즘의 나는 종종 시를 쓴다. 나는 결단코 나의 시가 언젠가는, 누구에게는 사진으로 환원되어 보이기를 바란다. 나는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시는 사진이다. 그러므로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나는 사진가다." (29-30p)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 갇혀 지낸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네요. 바깥 세상에서 바라본 그들은 죄수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여져 일말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아요. 근데 저자의 사연을 알고 그가 겪은 고립감과 고통을 접하게 되니 '지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네요. 시카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던 그의 인생이 이토록 비참하게 바닥을 치다니, 남의 인생인데도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본인은 오죽했을까 싶네요. 형이 확정될 무렵 어느 친구가 보낸 편지에 "Thoughts are free" 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수용 생활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생각은 자유가 아니라 고통을 동반하므로 "Thoughts are not free" (91p) 였다는 거예요. 가고 싶은 곳을 상상하고,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요. 그때의 아프고 힘든 경험 때문일까요. 그가 세상에 나와 찍은 사진들, 책 속에는 비 오는 날 바다를 찍은 사진이 인상적이에요. <비 오는 날>이라는 제목이 없었다면 비가 온다는 걸 전혀 몰랐을,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이 보여요. '비'는 저자의 마음이겠지요. 잘 보이지 않아도 쏟아지는 슬픔들, 결국 바닷물이 되어버릴 그 빗방울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테죠. 잠시 우산으로 비를 막을 순 있겠지만 내리는 비를 어찌 막을 수 있겠어요. 왠지 가슴 한 켠이 저릿해져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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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콜롬비아 칼리지 시카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23년 5월 개인전 〈비 오는 날〉을 포함해 서울과 미국에서 9번의 개인전을 했고 1995년 사진예술사가 주최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제목이 카메라 없는 사진가일까 의문이 들었다. 교도소 생활이라는 글을 읽고 이해가 되었다.
저자는 알고 지내던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해준 것이 빌미가 되어 범죄를 뒤집어쓰고 2년 반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힘들었던 초기의 몇 개월이 지나고 독서를 하게 되었고, 소설을 읽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보다 철학서들을 탐독하였다. 그곳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시의 형식으로 카메라를 대신해 생각을 표현해왔고 계절이 열 번쯤 바뀌고 일상으로 복귀할 때, 노트가 무려 17권에 달했다.
항소심의 선고가 있던 날 곧바로 출력을 신청했고 ‘소지’라 부르는 사동 도우미가 되었다. 천백 원의 노동 대가를 받는 노역 사동이었다.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지만 적어도 몸을 가눌 수 있었고 호흡의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생활은 언제나 고독하지만 독서의 양이 부쩍 늘어났다. 혼자 머물 수 있는 장소가 화장실인데 고독함이 머무는 장소는 아니란다. 사진 작가였던 그에게 카메라가 사라지고 펜과 노트만 남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내 사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멀리 본다는 것이, 세상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 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오직 한 곳 희망의 장소는 샤워장이었다. 하루에 단 한 번만 사용이 가능한 그 장소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가며 몸을 씻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고통을 피하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하나도 머릿속에 머물지 못하고 그냥 시선만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구치소를 단골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13년이나 옥살이를 했다는 남자는 다양하게 구매력을 보이다가 양손을 묶이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경찰서에서의 행동들과 이곳에서의 당당함이 다른 형태의 형벌을 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긴 여행이었다.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생의 행로가 모두 여행인 것을 왜 전에는 모르고 있었는지.p77
사동 도우미들이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 방에서 음식 등 물품을 받는 것을 범치기라고 한다. 저자는 한 번도 범치기를 해 본적은 없다. 대부분 생활은 두 평의 공간에 갇혀 살아가야 하니 죽은 멸치처럼 잠을 자야 한다. 이제 어항 속의 붕어와 같아진 것이다. 먹고 자며 또 싸우고 웃고 해야 한다. 0.2평의 화장실에서 그릇을 씻고 목욕을 해야 한다. 낮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TV 시청인데 법무부의 보라미 방송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한다. 광고는 삭제하고 보여주는데도 시청료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행복이란 단어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어려운 철학적 용어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삶들의 일상적 단어인 듯 보인다. 의정부 6중 6방 5평의 공간에 앉아 11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한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에게 묻는다. 행복하냐고. 그리고 떠난 사람에게도 묻는다. 그래서 행복해졌냐고.
새벽 5시 55분, 아직은 어둠이 남아있는 시간에 우리는 하루를 시작한다. 정해진 순서에 의해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을 받아 머리를 감는 것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방에 온 순서대로 7명이 모두 씻고 나오면 습관처럼 두유에 빨대를 꽂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p100
교도소이건 구치소이건 모든 요리는 끓는 물로 인해서만 가능하였다. 라면을 익혀서 고추장, 소시지, 닭, 김 등을 넣어 비빈 비빔국수가 제법 수준급이라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머물렀다. 저자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유일한 취미가 커피였다. 스틱으로 된 커피를 마셔야만 했는데 어느 날 최고급 인스턴트 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부정한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커피를 매일 맛보는 행운아가 되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뛰지 않는다. 교도관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기에 타인에 의해 길들여 녹차 잎을 따는 원숭이를 닮았다고 표현한다.
이 책은 시와 산문으로 되어 있고 20여 점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곳의 낯선 시간과 공간을 인간의 내면을 잘 묘사하였다. 사람에게 상처받았으나 결국에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사람이라 말하는 저자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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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없는사진가 #이용순지음 #파람북 어떻게 하다가 사진가였던 그는 카메라가 없이 글을 쓰게 되었을까에서 시작된 읽기였다. 그는 지인이었던 사람의 트랩에 걸려 부탁을 들어주다가 공범이 되어버린 사연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본업인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됨으로써 현재 자신에게 있는 건 카메라가 아니라 종이와 펜이었다. 복역을 하며 피부로 느꼈던 경험들을 종이에 옮기게 되면서부터 사진의 정의를 다시 쓰게 되었다. 구치소에서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으며 구치소도 여러사람을 맞닥뜨리는데 초범부터 갱생이 안되는 악질 살인자까지 그들이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이나 느낀점을 써내려갔다. 구치소내에서의 생활을 상세히 알려주는 <새로 온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로 나쁜짓을 하여 구치소에 왔지만 인생의 아까운 시간이라 생각말고 사고하는 시간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시는 이곳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 저자의 사진은 여백이 주는 비움과 공허함을 보여준다. 바다나 사람이 등지고 있거나 두세명이 있을때에는 좀 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피사체의 얼굴은 안보이는 신비로운 느낌이랄까? 여백을 주며 촥 가라앉는듯한 느낌의 작품이 좋았다. 글이 차분하고 조용하다. 적막한 사막한가운데서 모랫바람을 맞으며 쓰고 있는 듯한 느낌. 인간이나 사물을 볼때도 조금은 더 세심하고 집중하며 관찰하는 듯 하다. 교도소라는 곳에서 수감하면서 느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공감이 안가는 부분도 있었다. 티비선택권이라던지, 동물과의 대우와 비등한 수감자의 대우라던지, 음식이라던지.. 정말 가벼운 범죄나 초범일 경우에는 이런말을 할 수 있겠다 싶지만 상습범이나 세상을 떠들썩할정도의 중범죄이상인 사람에게 인권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범죄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하고 말이다. P.204 자신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는 음주로 인한 사고 가해자에게서 많이 보인다. 현재 내 옆에도 자신이 잘못을 했고 뻔히 잘못이 드러남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뻔뻔한 경우를 봤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뭐가 잘못되고 맞는것인지를 전혀 모르는 경우였다. 기억을 못하는것일까 안하는것일까. 불미스러운일로 서로 껄끄러웠던 사이인데도 그새 그 일들을 까먹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에서도 놀라기도 했다. 일단 잘못을 일러줘도 그게 잘못된 행동인지도 모른다는 것. 공감능력이 전혀없고, 남의 얘기는 들을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극도로 주변사람이 그를 싫어하지만 그는 왜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지 전혀 모른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도 없지만 그게 왜 잘못된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저 남탓 환경탓만 하기만 할 뿐. 나는 탓하는 사람이 되지말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지말자고 그 사람을 매번 대면할때마다 속으로 외친다. 그리고 그에게 동요되지 말자고 휘둘리지 말자고. 책의 시작과 끝에 눈이 언급된다. 세번의 겨울을 그곳에서 지내면서 세상과 철저히 분리되었으며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이 그를 지나쳤다. 마주친 재소자를 보며 부디 다시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보았다. 지나온 여정을 회상하며 그곳에서 느꼈던 처연함과 세상에 대한 그리운 조각들을 느꼈다. 세상에 진즉에 나온 저자이지만 멋진 사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작가로 뻗어나가길 바란다. #여백있는사진이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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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그가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니 자신을 대신해 법원에서 일처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큰 액수의 공탁금을 대신 찾아와서 가지고 있다가 자신이 알려주는 사람에게 현금으로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부탁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그러나 눈에 무언가 씌우거나 아니면 철석 같이 믿는 존재라면 달라지기도 한다. 나는 그가 해외에 있는 동안 그의 부탁대로 공탁금을 찾아서 내 구좌에 보관하다가 나중에 현금으로 그가 일러준 사람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랗게 그의 트랩에 걸려든 것이었다. (-7-)
저는 여러분에게 비누와 치약과 칫솔로 구성된 이른바 신입 세트를 나누어 주며 첫 조우을 합니다. 그리고 신입 방 안내와 주의 사항들을 이야기하고 수인과 방 번호를 가슴에 붙입니다. 이 의식으로 인하여 이제 여러분은 자랑스럽지 않은 성동구치소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67-)
내가 그 교도관에게 요즘은 비리가 없냐고 물었더니 비리가 없다기보다 비리의 대가가 높아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건에 마약 물을 적셔 들어오다 발각된 청주교도소의 재판 결과가 어제 보도되었다. 덕분에 수건도 반입 금지 품목이 되었으니 이제 그 수건은 또 어떻게 구해야 하나. 그러나 어찌 그것만 비리라 할 수 있겠는가. 5억짜리 황제 노역을 판결한 대담한 범죄도 있는데. 내가 처음 일했던 노역 사동에서 하루 5만원 짜리 노동으로 살아가는 불쌍한 노역수들을 많이 생각나게 한 그 사건이. (-135-)
다시 떠남을 준비한다. 옷을 정리해서 의류 가방에 넣고 책 몇 권. 노트 한 무더기 그리고 담요와 잡동사니 조금. 2년 반을 살아가고 버릴 것 버리고 나니 여기서 파는 작은 의류 가방 세개가 내 짐의 전부다.오래전부터 사용하던 노트와 옷가지들이 가방에 담길 때마다 나는 또 다시 징역에서의 인연을 하나둘씩 정리해왔다. 그래도 여기서는 이만큼의 정리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다.성동에서는 30분 전에 통보받고 후다닥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왔었는데 어쩌면 시간이 이만큼 지나서거나 외부 통근에 대한 우대거나 개방교도소로 가는 것에 대한 배려였는지도 보르겠다. (-209-)
새해가 시작되는 오늘도 역시 특식이 있는 날이다. 메뉴는 미리 공지했던 것처럼 저녁 식사로 제공되는 쌀밥과 불고기라고 했다. 참고로 여기서는 밖에서 아는 것처럼 콩밥을 먹지 않는다. 단 한 번도 그게 나온 적은 없었다. 밥은 정부 비축미인 2년 정도 묵은 쌀에 보리르 섞은 것인데 쌀밥이란 거기서 순 쌀밥은 아주 가끔 맛볼 수 있는 좋은 음식이다. 의정부에서 특식으로 돼지 불고기 대신 호주산 쇠고기로 만든 불고기가 나온 적이 있다. 조리장의 솜씨가 더해져 만족스러웠다. 그게 여기서 특식으로 나온다니 반가웠다. (-245-)
저자 이용순, 사업으로 인연이 된 사람과 어떤이유로 인해 범죄자가 되었다. 그 사람이 보관해 달라는 돈을 이유없이 보관하다가 어떤 범죄의 공범으로 몰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재판 끝에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였고, 성동구치소에서,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책 『카메라 없는 사진가』은 저자의 교도소 이야기 , 교도소 비하인드였다. 단기 수용수와 장기 수용수는 처우가 다르다. 하루 24시간 감시되었고, 단체생활을 해야 한다. 화장실에서 생리를 해결하는 것조차도, 하반신이 가려진 채 해결해야 했다. 가운데 교도관이 있고,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교도소의 구조다.수형수는 개인사생활은 전무한 상태에서, 자해나 무기 소지, 술을 먹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차단된다. 다치면 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낫기까지 오래 걸린다.
하지만 욕구는 존재한다. 술을 마시지 못해서, 요구르트를 발효시켜서, 술을 만든다.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들은 술을 만들었고,발효시켜 술을 대신하였다. 수건반입금지가 된 이유는 수건에 마약을 녹여서 반입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의성은 교도소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그들만의 천외한 스킬이 있었다. 의벙부 교도소에는 살인미수범도 있었고, 실제로 사람을 살인하는 이들도 있었다. 허막하게 생긴 범죄자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여느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리고 주범에 2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잡히고 만다.
이 책은 교도소 공간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고,그 공간에서 텔레비전이 유일한 유희거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는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 기록하였고,그 기록을 책으로 남겼다. 자신의 치부, 다른 사람들의 치부까지 읽혀졌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그냥 생긴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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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없는사진가 #이용순 #파람북 카메라 없는 사진가. 굉장히 역설적인 제목이어서 어떤 사연을 가졌을까, 어떤 내용을 품고 있을까 궁금하여 읽게 되었다. 단순 카메라 없는 사진이라는 게 나는 시적 표현일 줄 알았다. 그러나 책머리 부분을 읽고 놀람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님은 사진을 전공했고, 개인전까지 한 사진가이다. 그러나 억울하게 잘못된 일과 엮여서 교도소에 다녀왔다고 한다. 교도소에서 적응은 힘들었지만, 책도 읽고 도우미도 자처하여 활동하고, 글과 시를 많이 썼다고 한다. 결국 교도소에서 썼던 내용이 출판사와 여러 사람들 덕분에 현재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것이고, 그 경험을 내가 현재 읽게 된 것이다.
#유치창의 기억 교도소를 소재로 한 드라마인 슬기로운 감방 생활이 나의 교도소에 대한 이미지 전부다. 그렇기에 감히 내가 교도소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지우고 싶었던 순간, 기억을 세상에 나오게 한 작가님의 정신력과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 방 번호부터 특정 방에 어떤 유형의 재소자들이 갇혀있는지 너무나 자세하게 나와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 분노와 억울함을 어떻게 잠재웠는지도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다.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수십 개의 글을 작성한 작가님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인간승리가 아닐까.
#마무리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감옥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아서 꼭 해야 할 일을 마음속에 두고 버텼다고 한다. 작가님의 삶의 의지를 만들어준 동기를 추측하자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사진가로써 모름지기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기록해야 하는데, 아직 작가님이 못 가 본 곳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도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철학과 생각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투사체를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고, 조명을 얼마나 줄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교도소에서 글쓰기를 통해 카메라 없는 사진가로 활동한 것이다. 오랜만에 묵직하지만 잔잔한 책을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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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카메라 없는 사진가』는 표제어 자체로만 보아도 '슬픔'과 '고통'을 내포하고 있다. 마치 '붓 없는 화가', '펜 없는 문필가'를 연상케 한다. 이 글의 저자 이용순은 사진가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의 콜롬비아 칼리지와 뉴욕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정통 포토그래퍼이며, 미국과 서울에서 8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중견 작가이다. 또 최근의 아홉 번째 개인전에선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내면의 풍경과 문학적 서정의 순간들을 포착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왜 '카메라 없는 사진가'가 되었을까.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이 책이 출간된 과정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느 날 카메라가 들려있어야 마땅할 사진가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알고 지내던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해준 것이 빌미가 되었다. 범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 일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 어리숙한 예술가는 2년여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 낯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며, 영상에 대한 감각을 문자의 형식으로 풀어낸 또 다른 창작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나는 그곳(교도소)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때로는 시의 형식으로 카메라를 대신해 내 생각을 표현해왔다. 그 노트가 무려 17권에 달했다. 다행이었다. 글과 사진은 정말 많은 것에서 비슷했다. 서툰 내 생각이 온전하게 글로 들어와 박혔는지는 내가 판단하기에는 많이 부끄럽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의 이 행위를 두고, 어느 사진가가 카메라가 없을 때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노라고 이야기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p.9)
사진가 이용순이 사진이 아닌 글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해냈다. 극한의 환경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극복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스스로 훌륭하게 이겨낸 자신을 오히려 사진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글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깊은 울림을 준다. 사실 사진과 문학은 엄격히 다른 분야의 예술이다. 그러나 저자의 글로 쓴 사진은 예술이 무엇을 표현하든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작가 정신, 공감은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에 흐르는 것들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시켜 준다. 사진가가 글로써 자신의 예술을 어찌 다 표현해낼 수 있으랴. 사진 예술의 독창성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 저자는 두 가지 예술의 공통점을 뽑아내 서로 다른 분야에 스며 있는 예술 감각은 같다는 점을 인식시켜준다. 이 책에 수록된 시와 산문도 예사롭지는 않다. 탄탄한 문장력과 문학적 안목이 눈길을 잡아끌 정도로 문학적 감성이 풍부해 보인다. 시 작품의 수준 또한 저자가 사진가가 맞나 싶을 정도다. 책에는 짙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내면의 심층에 다가가는 깊은 시선이 돋보이는 저자의 아름다운 사진 작품 20여 점을 수록되었다. 책의 전반에 흐르는 일상과 주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관찰, 따뜻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예리한 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매우 독특하고도 매혹적인 책이 됐다. 사진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고독하지만 평온함을 준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교도소 안의 생활을 표현한 부분을 읽을 때면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을까. 모든 것을 감수하고 교도소에서의 생활에도 적응하면서 저자의 마음속에서 숨어 있던 예술 감각과 예술혼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것이라도 있어야 살아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독자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독자의 심정도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저자를 만난 일도 없을 일반 독자들은 교도소 생활을 견딘 것만으로도 위로 격려가 된다. 그러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풀리겠는가? 저자는 자신의 사진 20장을 곳곳에 배치해 답답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듯이 평온함을 보여준다. 또 어쩌면 분노할 독자들을 위해 평온하고 일상적인 풍경도 보여준다. 물론 여러 장의 「비 오는 날」 중에는 비는 보이지 않는데 우산을 받쳐든 사람들이 바닷가를 배회하는 듯한 모습에서 '모순된 행동'을 표현하는 듯하다. 또 「하얀 아침」에서는 자욱한 안개로 흐릿한 시야로 자신의 교도소 생활을 떠올리게도 한다. 「자화상」은 그야말로 고독한 모습의 한 사람만 텅빈 바닷가에 서 있다. 철저하게 고립된 자아의 표출인 것 같다. 몇 장의 같은 제목 「사막에서」에는 사람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덩그러니 사막의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이 또한 철저한 고독과 함께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다. 예술가에게 획일적 질서의 강요는 치명적일 것이다. 더욱이 통제와 감시 속의 예술가는 뭍에 오른 물고기나 다를 바 없을 터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예술가들이 일제에 항거했는지를 되돌아보면 예술가와 통제, 감시, 획일적 질서는 전혀 맞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가 교도소에서 보냈을 인고의 시간은 수백 배 더 길게 느껴졌으르리라. 또 사진 예술가인 저자에게 더 견디기 힘든 건 창작 도구(카메라)의 상실이었을 것이란 추측은 쉽게 이해된다. 자, 이제 어찌할 것인가. 머릿속에 들끓은 이미지들의 아우성을 어떻게 끄집어내 형상화할 것인가. 저자가 주저 없이 펜을 든 이유다.
그가 교도소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종일 떠들어대는 TV 소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힘들었던 초기의 몇 개월이 지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 일을 〈책 머리에〉 적었다. 이에 따르면 첫째는 독서였다. 사람은 정말로 적응하는 존재 같았다. 그 소음 속에서 마침내 책의 글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오래전 글을 쓰던 기억을 더듬어 주섬주섬 자신의 생각을 노트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보다는 그동안 읽지 못했던 철학서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원해서 교도소 안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가다. 표현의 욕구가 강한, 카메라가 없는 사진가다. 이 상황을 어찌할 것이낙. 어떻게 사진을 찍을 것이가. 어떻게 이 눈에 보이는 생소한 그러나 충만하게 내 가슴을 적셔오는 이 오브제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혼란스러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이내 사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될 것이다. 첫째, 사진이 카메라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의 개념을 좀 더 현대에 맞게 풀어낸다면 아무래도 그 의미의 폭이 넓어져야만 한다. 둘째, 종이에 프린트된 것만이 사진이라고 하지 말자. 지금은 영상의 시대다. 영상의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으며 사진도 그 영상의 중심 언어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 역시 문제는 없다. (중략) 사진은 분명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가슴으로부터 토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로 인해서 사진은 거짓이 아닌 참으로써 내적 경험을 토대로 한다. 내적 경험은 감정으로서의 경험이며 이는 생각 혹은 사고에 의존하다. 또 이는 외적 경험에 대한 주관적 판단일 수도 있다. (중략) 요즘의 나는 종종 시를 쓴다. 나는 결단코 나의 시가 언젠가는, 누구에게는 사진으로 환원되어 보이기를 바란다. 나는 사진가이기 때문이다.”(p.28~30) - 「시는 사진이다」 중에서
저자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조리개로 들어오는 광원을 계산하며 셔터를 누르는 대신, 용수철 없는 재소자용 플라스틱 펜에 마음의 빛을 비추며 써 내려간 것들이었다. 계절이 열 번쯤 바뀌고 그가 일상에 복귀할 때, 그의 손에는 이 책의 초고가 될 열일곱 권의 노트가 들려있었다. 이곳에 담긴 글에는 역시나 ‘사진가다움’이 선명히 드러난다. 사진이란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한 지점을 포착하여 물성을 부여하는 것. 그래서 사진을 흔히 기록의 동의어처럼 취급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진은 그곳에 콘텍스트가 부여된 기억(memory)에 가깝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진은 역사를 담고, 어떤 사진은 인물의 개성을 담고, 어떤 사진은 정치를, 어떤 사진은 철학이나 과학을 담고, 어떤 사진은 거짓말도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저자는 그렇게 포착한 사물, 인물, 사건을 감방이라는 암실에서 종이와 펜으로 인화한다. 교도소 운동장의 맨드라미, 창살 바깥 산과 구름들, 동료 재소자들의 얼굴, 죄수들끼리 몰래 만든 요리의 메뉴들, 사동 안에서 소문으로 떠도는 사건들까지. 특히 저자가 즐겨 다루는 방식은 시(poem)다. 마치 오브제를 놓고 장면을 구성하듯, 때로는 연작사진을 이어 사건을 구성하듯 기억을 사로잡는다. 저자에 따르면 출소 후, 교도소의 노트에 등장하는 테마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책은 사진이 출품되는 전시회에 맞추어 출간된 것인데, 해당 작품들은 책에도 대부분 수록되었다. 동일한 모티브가 글과 사진으로 어떻게 텍스트화되고 이미지화되는지를 비교하는 것도 독자의 흥미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저자가 교도소에서 기억을 글로 남기기로 결심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삶’이다. 자신이 끌어안아야 할 삶이며 타인의 삶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너무 익숙하고 당당하게 수감생활을 시작하는 살인범, 억울하다고 푸념만 늘어놓고 ‘고문관’ 노릇만 하는 목사님, 은박지와 건전지로 불을 붙이고, 수건과 옷에서 실을 뽑아서 십자가 기념품을 만드는 예술가들, 누가 벌금의 대납 대신 초코파이 15박스를 넣어준 노역수, 아무도 보지 않는 TV 화면 옆에서 각자의 일거리에 몰두하는 재소자들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 바로 삶이다. 진부함과 반전이 늘 공존하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 그곳에는 당연히 온갖 비열함과 야비함 곁의 명예로움과 인간다움이 존재한다. 재소자들은 미국의 주가 몇 개인가 하는 따위의, 언뜻 사소한 사실을 놓고 수십만 원 내기를 건다. 심판은 교도관들이다. 미국 유학파인 저자는 내기에 자주 이겨 (교도소 기준으로) 엄청난 돈을 딴 적도 있다. 하지만 사실 누구도 돈을 건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곳의 시간이 다 허비는 아닙니다. 여기에도 분명 유익함이 머무는 곳이라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을 얘기한다면 저는 생각하는 시간이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거창하게 철학이 아니어도 부디 사고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밥 먹고 잠자며 달력에는 엑스표 해가며 자신을 죽여 가는 시간이 아니라 꿈을 꾸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 꿈은 곧 여러분의 미래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p.71) - 「세상에서 가장 큰 죄」 중에서
저자 : 이용순
경기 광주 출생. 콜롬비아 칼리지 시카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23년 5월 개인전 〈비 오는 날〉을 포함해 서울과 미국에서 9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1995년 사진예술사가 주최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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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 lalilu 우리는 고통 없는 인생을 살기 원하지만 고통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저자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게 되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저자는 카메라를 소유할 수 없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듯이 글을 써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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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란 늘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고, 눈은 아름답다거나 혹은 감성적이거나 혹은 자신의 개성을 담은 독특함을 담거나 어떤 단어를 붙여도 괜찮을 자신만의 시야로 표현할 대상을 찾느라 바쁠 것입니다. 그러나 책의 제목은 이와 상반되는 ‘카메라 없는 사진가’라고 지어져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2년 6개월의 시간을 너무나도 낯선 공간에서 힘든 감정으로 보내면서도 사진가의 눈으로 그곳에서만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을 담은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용순 작가님 작가님은 콜롬비아 칼리지 시카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사진가입니다. 9번의 사진 개인전을 했고, 올해의 작가상을 받기도 했고, 한때 경기대학교와 수원대학교에서 대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진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던 작가님은 알고 지내던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해 준 것을 빌미로 카메라가 들려있어야 할 손에 수갑이 채워지게 됩니다. 범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죠. 오로지 사진만 알고 지내고 세상 물정 모르던 예술가의 삶을 살다가, 하루 아침에 교도소라는 곳에서의 수감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보냈던 하루하루의 기록을 사진이 아닌 글로 담아 이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카메라 없는 사진가 "여름 장마철에 드러난 햇살을 통해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이 표현의 양식은 사진과 시가 동일하다. 그래서 시는 사진이다. 그러므로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나는 사진가다.“
저의 취미가 사진이라서 그런지 사진 작가님들의 일상생활 속 주변을 바라보는 능력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능력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사진 작가님들의 에세이를 자주 읽는데, 이 책도 그러한 이유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교도소에서의 모습과 느낌을 담은 글이 담겨져 있어서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책을 읽다 보니 작가님의 시각을 담는 도구가 사진이 글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사진가의 시각으로 그곳에서의 생활을 담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억울하게 갇힌 곳에서 때로는 힘든 감정을 쏟아내고, 때로는 담담하게 풀어쓰기도 한 그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며 책을 읽다보면 저의 감정도 그에 따라 울컥하기도, 씁쓸하기도 하며 미묘하게 바뀝니다.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아직도 21년 전의 11월에 갇혀서 산다. 그 지독한 슬픔의 시절에는 카메라를 들고 산과 우울한 바닷가를 찾아갔지만, 지금은 의정부교도소에서 공장을 간다. 만일 21년 전에 나이 든 내가 아침 추위를 맞으며 줄을 맞춰 공장으로 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나의 슬픔은 또 얼마나 배가 되었을까.“ P. 95
책을 읽기 전 페이지를 후루룩 넘기면서 먼저 사진을 훑어보며 멋진 풍경이라고 감탄합니다.그런데 본문을 읽음과 동시에 사진을 함께 보니 감정이 참 미묘합니다. 사진 속의 인물이 슬퍼 보이기도 하고, 자유로움이 담겨있는 듯한 사진을 보면서 문득 이러한 자유로움을 그리워하며 그토록 사진을 찍고 싶었을까 하는 저만의 생각도 해봅니다. 천천히 책을 끝까지 읽고 덮은 후 알 수 없는 감정이 몰아쳤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그의 슬픔과 고통을 그곳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들과 함께 버리고 싶다는 작가님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들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영혼은 더 자유로워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말처럼 앞으로 멋진 사진을 마음껏 담아내는 자유로운 영혼의 사진가가 되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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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으로 알려져 구조는 단순하다. 작가는 성동구치소에서 주로 노역동, 징벌동 그리고 신입동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사동)도우미로 일했다. 주 임무는 청소와 수용자의 식사 배식을 담당하며, 많은 잔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의정부와 천안 교도소에서도 마찬가지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교도소 세계에 대한 소개를 읽을수록 은밀한 세상을 엿보는 듯한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시킨다. 때로는 당연시 여겨지거나 무심코 지나친 풍경에서 사진작가다운 관찰력으로 콕 집어 확인시켜 준다. 각각의 순간마다 독자는 '이런 곳에서도 삶은 지속되고 예술은 피어나는구나!'라며 감탄하며 배워간다. 어떤 장소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관찰의 대상이다. 아무리 비루하거나 기대 이하의 상황이라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점은 교도소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만 사용하는 은어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 대충 감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좀 더 친절하고 분명하게 그려주었다면 좋았을 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는 일반인이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글과 사진은 정말 많은 것에서 비슷했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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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은이) 파람북 2023-05-19 사진가가 카메라가 없습니다. 제목에서 왜?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바로 서문에서 설명해줍니다. 카메라가 있어야 하는 직업의 사진작가인데 감옥에 가게 됩니다. (나찌 치하에서 숨어 살면서 피아노를 칠 수 없는 피아니스트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2년 반이라는 세월을 지내면서 적은 슬픔의 기억들이 노트로 17권이 있다고 합니다. 남의 돈을 받아줘서 자기 통장에 넣은 일이 불법의 증거가 되어 공범으로 몰려 구형을 받았습니다. 사실 재판에 대한 억울함을 많이 토로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부분은 담담하게 넘어갑니다. 읽는 내내 뭐랄까 곤란함이 느껴집니다. 곤困은 나무가 갇혀있고 사방이 막혀있는 모양이죠. 윰직이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고,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잔잔한 감동들이 치고 올라옵니다. 2평 남짓한 감옥에서 감동이, 깨달음이, 놀라움이 있어봐야 어쩌겠습니까만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배우는 가르침을 찾을 수 있구나 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생각합니다. 슬픈 남의 삶을 읽으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사치스러움도 생깁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선진국이 아닌, 지식수준이 높은 나라가 아닌, 우리의 시각에서는 그저 평범하거나 혹은 가난하고 지식수준이 낮은 그런 나라들이다. 역으로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는 그 반대의 경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부자가 되는것도 지식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이제는 슬퍼해야 할까 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지향은 늘 같은 모양새다. 먼저 돈을 추구하고 그러면 그 돈으로 인해 행복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아직도 21년 전의 11월에 갇혀서 산다. 그 지독한 슬픔의 시절에는 카메라를 들고 산과 우울한 바닷가를 찾아갔지만, 지금은 의정부교도소에서 공장을 간다. 만일 21년 전에 나이든 내가 아침 추위를 맞으며 줄을 맞춰 공장으로 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나의 슬픔은 또 얼마나 배가 되었을까. 95p. 저도 가끔 20년전, 30년전을 회상하는데 이렇게 처참한 느낌은 감옥에서만 체험할 수 있겠습니다. 글도 감동인데 중간중간 들어있는 사진들이 묘한 느낌을 줍니다. 아. 이게 자유로구나, 삶이 살아나서 진행되고 있구나하는 생명력이 보입니다. 갇혀있으면서 저런 느낌을 얼마나 찍고 싶었을까 하는 기분이 같이 듭니다. 출판사 소개글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났다는 표현을 봤는데 딱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파람북 #이용순 #카메라없는사진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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