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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 Logics ? 論理 ? 매 시즌마다 '논술고사'나 '대입준비'라는 명분으로 출간되는 서적들을 보면 매우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도대체 "논리적 사고력"이란 플랫카드는 어째서 매번 써먹어도 흥행몰이를 하는 만병통치 특효약이냐는 것이다.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책이 과거에 한번 히트했다면 분명 다시는 그런 아류작들이 '히트'할 리가 없다. 후천성 논리 결핍증이라는 한국인의 질병을 치유할 백신이 나왔으면, 두번 다시 환자는 나오지 말아야할 것이 아닌 것은 그렇다 치고 그런 백신제조회사(?)들이 눈먼 돈을 벌어들이지는 말아야할 것이 아닌가 ? 약 십년 전에 "논리야 놀자" "논리야 고마워" 등이 히트쳤을 때는 전국은 '논리광풍'이 여름태풍보다 거세게 불었다. 그런데, 달력을 열번은 바꾼 현재의 출판시장을 보자. 여전히 논리라는 플랫카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비록 위험하긴 하지만, 한국인의 논리력은 크게 늘지 않은 것 같기도하다. 매일 나오는 논리서적이라는 것이 결국 출판시장의 스타자리를 노리는 "기지촌 지식인"들이 해외서적을 몰래 베끼거나 논리학 원론을 대중 수준의 눈깔사탕으로 저질가공한 수준이니까. 하기야 이 정도의 "불량식품"도 허기진 속을 채우긴 좋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논리적 사고력"을 다룬 책들은 한국인의 특징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별 기여를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서구인은 합리적인데에 반하여 한국인은 정서적이라는 말은 편견 같이 들리겠지만, 실제로 영어와 한국어를 비교하면 전자는 주어와 술어, 그리고 육하원칙이 확실히 잡혀있는 언어로서 정말 논리적이다. 하지만 한국어는 애매모호해도 대강 말이 통한다. 영어로 대변되는 구미권, 즉 유럽과 미국은 수백년의 역사동안 정치/경제/문화 면에서 합리적인 칼날을 정말 예리하게 다듬었지만, 지난 세기에 급격히 서구문물을 받아들였고 온갖 고난을 겪으며 초고속 개발과정을 거친 한국은 기본적인 '척도'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 진정한 '논리서'라면 우선 한국인이 선입관 및 편견에 상당히 취약하며, 감정과 정서에 치우친 사고를 하기 좋아한다는 것부터 규명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논리이론이나 오류나 소개해버리면서 그걸 익히라 강요해버린다면 ? 그건 환웅이 쑥과 마늘을 먹이지 않고 암콤을 아내로 맞이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 아무 것도 아는게 없는 아이한테 칼을 주는 것과 진배없지 않은가 ? 한국인의 ‘논리적 허’를 가장 잘 찌른 인물이 이 책의 지은이인 가리야 다케히코이다. 그는 미국에서의 배움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준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때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편견에 사로잡혀 뻔한 결론에 이르는지를 섬뜩하게 규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들을 위해, 저자 자신이 장기간 유학동안 체득한 ‘논리적 사고법’을 간명하게 정리해놓았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다음과 같은 실천적 기법들이다. 독서 중의 관점 바꾸기, 단계적 질문을 통한 읽고 쓰기, 지속적인 의문을 통해 숨겨진 전제를 파악하고 무의식 속 ‘스테레오타입' 깨닫기 등은 실천하기 쉬우면서도 위력적인 저자만의 기술이지만, 특히 감명깊은 것은 ‘나 홀로 디베이트debate’이다.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서로 입장이 다양하면서도 상충하는 주체들이 대결하기 마련인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대해서 한가지 입장에서 단순하게 바라보는 대신,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해보는 일인극 배우처럼 그 주체들의 입장에 서보면서 주장하고 토론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논쟁하는 유례없는 기법이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하더라도 논리나 논술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처럼 이 책을 접한 뒤 다년간 정독으로서 소개된 내용을 내 것으로 마스터한 후에는 뻔한 해석으로 점철된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색다른 시각의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저자인 가리야 다케히코씨가 가르쳐준 대로 독서 중 나 홀로 디베이트를 통해 논점을 다양화시키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사고를 전개시키는 입체적인 읽기가 가능해짐으로써, 해당 서적의 내용 뿐만 아니라 저자의 사고 과정까지 비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만 따라하더라도 언쟁이나 논쟁에서 일부러 억지를 피우거나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상대방에게 패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갇혀있던 편견이 얼마나 답답한 것인가 생각하면 지금도 막 전생에 갱도에서 압사당한 광부가 된 양 가슴이 콱 막혀온다. 저자 가리야 다케히코가 한국인과 비교적 환경이 비슷한 일본인이기 때문에 본서가 그만큼 핵심을 정확히 찌르지 않았나 생각해보는데‥ 이것도 육하원칙으로 차근차근 따져보고 나 스스로의 생각을 여러 문장으로 분할해보면서 편견과 선입관이 없나 검증해보아야 명확해지겠지 ? 경쟁자에게 읽히고 싶지 않은 서적, 그리고 나만의 "내공"을 다지는 비서(秘書)라고 자부했는데 우습게도 몇년 지나지 않아 번역도 괜찮고 디자인도 깔끔한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절판돼버렸다. 신화 속의 괴물이 죽은 뒤, 평화가 찾아온 세상에 들짐승이 편히 뛰어노닐었다는 이야기마냥, 이 책의 절판 이후 별 같잖은 논리서적들이 서점을 메웠으니‥.일본 사람들조차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한국에서 자기 책이 절판된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양 가리야 다케히코씨는 일본 교육문제와 논리적 사고에 대한 명저를 계속 펴내고 있다. (* 비교해보니 확실히 우리나라 번역본 디자인이 낫다.) 이 책의 절판으로 인해 한국인의 논리지수는 추락해버렸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 향후 몇년 간은 재판될 가능성도 없는 본서‥ 글쎄,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사고력을 키운다면 배아픈 일이긴하지만 :) 중앙 M&B에 전화해서 재고량을 확인해서라도 꼭 구하길 권한다. 혹 일본어에 능하다면 원서를 구해도 좋겠다. |
| 가리야 다케히코의 '잠자리 눈으로 생각하기, 글쓰기, 말하기'는 인간이 언어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어떠한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 우리가 다양한 시각을 갖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사고(思考)수준에 머무는 주된 이유가 'stereo type'화 된 언어생활에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언어생활이란 말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것을 포함한 언어를 사용하는 총체적 활동을 뜻한다. 다케히코는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관습화된 개념을 확실한 의미파악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을 때 우리의 사고영역이 그 실체화된 개념의 우물 속에 갇혀버린다고 말한다. 가령, 우리가 '세계화'라는 개념을 우리 사회 이곳 저곳에서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로서 접해왔기 때문에 그 참 의미를 통찰하지 않은 채 '세계화'를 받아들인다고 하자. 지구본을 떠올리게 하는 이 단어의 가슴 벅찬 이미지는 지난 십 수년 간 정치적 목적 또는 돈벌이의 목적으로 부단히 사용되고 또 사용되었다. 쌀시장 개방도 '세계화'를 위해서고 토익시험을 보는 것도 이 땅의 '세계화'를 앞당기기 위해서였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세계화'란 명목으로 근사하게 코팅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가 ‘세계화’를 그냥 바람직한 변화 정도로 생각하고 넘겨버린다면 이 단어를 사용한 언어도단의 논리가 있더라도 제대로 비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이 ‘세계화’라는 거대단어 앞에서 멈추어버리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생각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체화된 개념의 우물’은 우리를 만물의 영장이 아닌, 그 안에 갇힌 개구리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다케히코는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우리가 조금 더 다양한 시각(이른바 복안적 사고)을 갖고 현상을 대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stereo type의 타파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저자 나름대로의 생각기법을 제안한다. 그 중에서 내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혼자 토론하기’이다. 말 그대로 찬반이 갈리는 특정한 논제를 가지고 혼자서 찬성측과 반대측의 입장을 번갈아 취하면서 머리 속으로 토론하는 것이다. 편협한 관점을 넓힐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논리의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어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다케히코가 알려주고 있는 사고전개와 논리구성의 방법들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용적이어서 두리뭉실 독서예찬서인 공병호의 ‘실용독서 핵심만 골라읽기’와 비교되는 점이 많았다. 지식을 대하는 다케히코의 태도도 내가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해서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사안에 대해 더 이상 생각이 전개되지 않거나 말 문이 막힐 때 “그 이슈에 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아서”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다케히코는 결코 주어진 정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라고 얘기한다. 단순히 책을 독파해서 정보를 우리 뇌에 저장시켜 놓는 것은 절대로 ‘지식’이 아니며 정보들간의 관계를 파악하여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지식의 본질임을 그는 강조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책에서 얻는 정보의 양을 강조하는 공병호의 ‘실용독서…’는 지식의 습득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정보수집’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모로 보았을 때 가리야 다케히코의 ‘잠자리 눈으로 생각하기, 글쓰기, 말하기’는 유익한 책이다. 그리고 더 없이 실용적인 책이다. 당장 내일 신문사설을 읽으며 저자가 가르쳐준 사고전개기술을 적용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괜찮은 책을 단지 한 주의 테마북으로 치부하고 주마간산 넘어간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를 포함한 피오비인들 한 명 한 명이 책에서 깨달은 바를 실천해서 실속 있는 교양인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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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잠자리 눈으로 생각하기, 글 쓰기, 말하기, 주제: 상식에 얽매인 시각과 사고 방식은, 자라갈 수 없다. 일본에서 "베스트 티처스"인 저자는 대학교육이 바뀌어야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이 책을 섰는데, 우리가 사회에서 흔히 접하는 틀에 박힌 (스테레오 타입적인) 시각에서 구애받지 않고, 사물을 다면적으로 파악하는 면을 해설하고 있다. 잠자리 눈처럼, 한가지 시점에만 얽매이지 않고 복수의 시점에서 자유롭게 구사하고 상대화된 사고법을 하는 것을 복안사고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흑백논리에 익숙해 있다. 늘 들어왔던 동화도 흥부는 착하고 놀부는 나쁘고 콩쥐는 착하고 팥쥐는 나쁘고, 우리는 이런 교육을 받았다. 팥쥐 엄마가 그 집에 들어와서, 남의 자식을 키워야 하는 애로점, 그 갈등~ 이런 부분에서 생각해 보는 관점은 키우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도 동기점검 보다는 남들의 평가와 결과에 신경을 섰다. 깊이 사고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또 생각하는 것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이고, 감성적으로 결정을 하였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교회의 교사로서, 교회 안에서 지체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관행, 형식, 습관, 전통, 남의 시선에 의하여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을 유난히 통제를 많이 하는 나는, 친정 어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엄하고, 통제하고, 반듯하길 요구하는 친정 어머님의 그 교육이, 나에게 알게 모르게 각인되어 아이들을 통제시키고 있다.
저자는 복안 사고는 매우 성실한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을 한다. 정보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힘, 논리의 맥을 짚어 내는 힘,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의 논리를 든든하게 세워 나가는 힘, 이런 기본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 즉 지적 복안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부분에 얼마나 만족하고, 정보에 약하고 안주하고, 밀어 놓았던 부분에 많은 도전을 주고 좋은 안내를 해 주는 책이다. 아이들의 사고를 막고, 기존의 틀에 맞추어 정답을 요구하는 나의 모습에 깨달음을 주었다. 정확히 표현하고, 잘 듣고, 표면만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보아야 할지,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문제인가를 보는 문제의식과 그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보는 관점은 우리 기존의 상식을 깰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복안 사고는 할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저자가 지적하듯이, 자기의 생각은 간단치 않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려 해도 그 시각에서 벗어나는 점은 우리에게 숙제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지적 복안 사고법은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점검하고자 한다. [인상깊은구절] 자기 머리로 생각한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자기 나름대로생각하려 해도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얽매어 좀처럼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그럴 때야 말로 메타 시각에 서는 것이 유효해지는 것입니다 |
| 아래 리뷰(NESM)를 읽고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아래 리뷰대로 정말, 한국인의 논리력 수위를 조절할만한 책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생각하는 독서를 위해 소개하는 4가지 방법중에 하나인 '서평을 읽기&쓰기'를 실행하기로 했다. 우선, 이 책은 아래의 리뷰처럼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책의 제목처럼, 상식적인 사고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 방법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들을 이야기 한다. 즉, 논리적인 사고를 키우는데 중점을 둔 책이 아니라,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나온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오해하지 않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방법을 다룬 책이다. 다음, 내가 공감한 부분은, 이 책의 '비판적으로 쓴다' 챕터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대화를 하거나, 토론을 할때 자신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선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적 공론들이나 철학적 관념들은 다양한 분야의 관점에서 보아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예로 들어 보자. 이것은 기업이나 국가적 관점에서 보았을때, 장기적으로 국가의 힘을 약화시키는 무척 위험한 현상이다(물론, 모든 기업이 그리고 모든 국가 관계 부처들이 그렇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3의 수험생을 두고 있는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똑같이 대학 들어가서, 반론의 여지도 있겠지만, 공학계열의 학생들은 인문계 학생들에 비해 훨씬 많은 공부량으로 고생을 해야한다. 더구나, 남자의 경우 여자도 별로 없는 학과에서 똑같은 남자들과 피터지게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여자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밤새워 프로그램 완성도 못하고 나오는데, 인문쪽 아이들이 잔디밭 위에서 여자아이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우리를 미치게 한다. 이렇게 고생을 해서 사회에 나왔으니, 자 이제 우리를 인정해 주겠지 하지만 결국 사회의 머리를 차지하는 것은 대다수의 인문계열 전공자들이다. 더더구나 사회에 나와서도 공학계열은 남자들하고만 일해야 한다..허거걱..너무 주관적인 의견들을 내놓았지만, 결론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사안을 보는 시야가 바뀔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부분을 살짝(?) 짚어주고 있다. 나머지, '왜'라는 질문을 통해 인과관계를 생각한다거나, 개념 차원에서 사고를 발전시키라는 방법등은 논리학 원론을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쉽고, 친절하게 되어있지만, 어느정도 논리적인 사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고교생을 위한 생각의 과정' 정도의 가르침밖에 주지 못할 것이다. 책의 마지막 chapter '복안 사고를 익힌다'는 메타 시각(문제에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서 해당 문제자체를 변형해 보는 것이라 함)에 대해 말해주는데, 나는 '일탈자는 만들어진다'는 라벨링론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의 이론은 신선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범죄자는 왜 생겨나는가?" 그는 사회가 그것을 일탈로 규정했기 때문이라 하지만, 나는 그가 아니라고 한 인간 행위의 성질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범죄라는 것이 사회규칙에서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행위이다. 그러니까, 내가 밥을 먹는 행위와, 내가 부녀자를 강간^^;하는 행위가 다르고 후자가 범죄가 되는 것은 '사회가 그것을 일탈로 규정했기 때문이다'가 핵심이 아니라, 인간 본성이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회가 그것을 일탈로 규정했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단언하건데, 부녀자 강간을 인간 본성이 문제 삼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회에서 일탈로 규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이 책에서 계속 부르짖는 '스테레오 타입적인 시각을 버려라' 라는 말은 내게 잠깐씩 오해를 사게 했다. 이 책에서 스테레오 타입이라 함은 '사회에서 흔히 접한는 틀에 박힌 시각'이란 뜻인데, 사회에서 쓰이는 스테레오라는 뜻이 입체음향 재생 방식이라는 원뜻에서 유추되어 "다양한" 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테레오 타입 좋은 거잖아?"라는 생각을 잠깐 잠깐씩 하게 되었다. 저자가 만든 단어인지, 일본에서 쓰이는 단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차라리 모노타입이라고 함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았을까 하며, 이 서평을 끝맺는다. 참, 아래 리뷰 쓰신 분(NESM)의 다른 리뷰들도 읽어봤는데, 아주 똑똑하신 분 같다. 그런데, 님의 리뷰쓰기 스타일 중 어떤 것의 비유적 표현법을 사용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하셨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이유는 아실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