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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예술'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내가 감흥과 감정 없이 사는 것인지, 윤영미 서예가가 감성이 풍부하고 생각이 많은것인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두 가지가 모두 맞는 것 같다
서예가 윤영미의 글씨와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인격예술' 책을 읽게 되었다 서예에 대해 잘 모르고 그저 붓에 먹물을 묻혀 쓴 글씨라고만 생각을 하였는데, 붓으로 쓰는 글자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것이 내포되어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윤영미 작가가 말하는 '서여기인'을 알 수 있었다
'서예는 인격을 담는 예술이다'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윤영미 서예가
나도 딱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오랫동안 업으로 삼았고 그것을 나 역시 예술로 생각을 하며 일하였다 그럴때의 희열과 열정, 당당하고 단단하고 덤덤함
윤영미 작가의 일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책 초반에 '몰입'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나는 그냥 얼핏 보았을때 '올인?" 이라고 생각을 하였으나 페이지 아래쪽을 보니 [몰입]이라고 써있더라 글씨를 다시 보니 '몰입'이 맞다 한참을 웃었다 내 머리속에 뭐가 들었길래 '올인'으로 읽혔냐.. 하하
윤영미 서예가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에 그녀의 서예를 보는 재미는 엄청나다 이것은 숭고한 글씨고 나에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씨이다 왜 개인전에서 모든 작품이 완판이 되는지 알것만 같다
게다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대단한 미인이시다. 하하하
윤영미 서예가가 20대때 서예원을 차린일, 나이 50이 안되었을 때 과감하게 폐원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일 그러면서 황홀한 자유를 만끽하며 행복해 했던 그녀
붓 한자루 들고 떠돌아다니며 겪은 일 붓 한자루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 정말 너무 멋있고 쫓아다니고 싶다
먹을 갈고, 글씨를 쓰고, 단어를 고르는 것
'인격예술'은 단순히 멋진 서예작품을 보는것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인생에 대해, 인생에 대한 고찰도 엿볼 수 있다 뭔가 가슴두근거림을 당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책은 [컬처블룸]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인격예술 #윤영미 #나비클럽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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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금기를 깨는 예술가가 전하는 삶의 카타르시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무엇을 위하여 삶을 견디는가에 대해 의문으로 시작해 금기를 깨면 편안해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내 것이다 라고 말하는 저자는 자신이 왜 한글 서예가가 되었는지 들려주고 기회를 말하는 것도 예술이라고 하면서 사랑은 내 욕심을 빼는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에 대한 최고의 욕심은 서로 잊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서로를 알아보는 말 없는 대화가 황홀하다고 말하면서 당당하고 뻔뻔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내려놓는 연습의 중요함, 세상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오리혀 멋진 일이라고 합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화예술을 전공한 저자는 공모전이나 전시회에서 한자 서예를 하다가 한글 서예가로 세상에 나왔다고 합니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 라는 뜻의 '서여기인'이 좌우명이라 했는데 친정엄마가 늘 말씀하시던 내용이라 신기했습니다. 책 중간중간에 직접 쓴 한글 글씨가 나오는데 아주 멋스럽고 마음에 드는 필체여서 부러웠습니다. 인생에 곧 예술이라는데 인격예술을 논할 수 있는 그녀가 몹시 부럽습니다.
. #인격예술 #윤영미 #나비클럽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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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시작해서 한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예에 조예가 깊으신 분입니다만 한자에서 이제는 한글로 그 예술을 승화했는 모습을 보고 한글이 이렇게 필체가 호탕하고 장엄하며 그리고 그 기개가 넘칠 수 있는 글자구나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저는 보통 한글은 활자에 적합한 글자라고 생각하여 네모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범위를 조금만 더 넓혀본다면 상형문자인 한자 이상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글의 필체와는 별론으로 저는 저자의 생각 또한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지방분권은 중앙에서 시해적으로 권한을 넘겨주는 것에 불과해 크게 실효성이 없습니다. 지방을 살릴려면 서울을 해체해야하지만 결국은 서울은 서울대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해체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지방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지방자치에서 고양된 특별자치가 전제된 분권이지만 가장 중요한 예산이 없으면 이뤄낼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자의 책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서예에서부터 인생을 얻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희노애락을 느끼는 저자의 마음은 그 자체로 예술을 하고 있다는 마음을 얻게된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것을 "글씨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대중과 함께 숨쉬고자 했던 저자의 마음마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최근 튀르키예 지진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수교 65주년이 맞물려서 글씨 예술을 보여주었는데 문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서로 마음을 이을 수 있다는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 글은 컬처블롬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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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에서의 기억이더라.. p137 '삐뚤빼둘'을 읽고 위 기억이 소환되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서평 이후 내 글씨를 올렸을 때 출판사 마케터님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나비클럽 #윤영미 #한글서예 #서예 #글씨 #서예가 #인격예술 #서평 #책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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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보고 듣고 만나왔지만 서예가는 처음이다. 서예가. 그 이름부터 짙은 먹향과 함께 무게감이 느껴진다. 책을 통해 접한 글씨는 힘과 에너지를 넘어 참 아름다웠다. 서예가 이토록 감동적인 예술임을 이번에 깨달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먹냄새가 그리웠다. 그녀의 글씨만큼, 근사한 필력에 나는 계속 반했다. 책을 통해서 나는 오늘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잊고 있던 한 예술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을, 멋진 예술가 그리고 작가님을 알게 되어 나로서는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실제로 서예가님은 현재 내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 학교를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예술가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고 그들이 삶은 예술의 한 부분으로 보인다. 책을 통해 만나는 예술가들의 생각이나 일상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 거린다. 좋아하는 배우를 눈 앞에 둔 것 같은 설레임이다. 사실 나는 연예인을 이토록 좋아하거나 궁금해한 적은 없었지만,
서여기인 -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 가끔 좋은 필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 달리 보일 때가 있다. 글씨로 사람을 판단하는게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지만, 잘 쓴 글씨, 못 쓴 글씨가 아니라 그 사람만의 글씨체에 그가 가진 고유한 성격이나 본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작가님은 글씨의 곧고 바름이 아니라 글씨의 격을 말하고 싶어 하셨다. 사람의 온기부터 먼저 챙기고 글씨를 바라보노라며 글씨에서 사람됨을 알아차리는데, 그게 바로 서예이고. 그게 서예가 가진 매력이라 한다. 글씨를 쓰고 보는 게 그들의 삶이라, 글씨가 하나의 인격이라는 말에 <인격예술>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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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있거나 미술 이야기 및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현실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은 괜찮은 의미를 전한다. <인격예술> 제목이 다소 추상적인 느낌이 들며 어려운 이미지를 주지만 책의 저자는 최대한 쉽게,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가치를 통해 예술적 의미를 자세히 구현하며 우리들의 관심 또한 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단순한 글쓰기도 좋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일정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한 접근과 공감대 형성이 왜 필요한지도 함께 접하며 생각해 보게 된다.
<인격예술>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고 다르며 다양한 가치나 의미를 바라보는 나름의 기준도 존재할 것이다. 이런 차이점이나 서로 다름에 대해 우리는 어떤 형태로 마주하며 적절한 표현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저자는 미술이나 예술 등의 행위적인 부분을 통해 이런 가치에 대해 몰입하며 스스로가 보고 경험한 의미를 자세히 표현하고자 하는지도 함께 접하며 알아 보게 된다. 물론 깊이있는 내용해석이나 접근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나, 저자가 말하는 글귀가 일상적인 영역부터 삶에 대한 깊이성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원하는 형태로의 접근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며 누구나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과 결국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예술이나 미술 분야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삶이나 현실에서 더 큰 영향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체감해 볼 수 있어서 개인마다 다르지만, 서로 원하는 형태로의 사용이나 활용, 또는 공감대 형성 등도 가능하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인격예술>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문제에 적용할 것이며 또 다른 이들은 사회변화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나름의 해석이나 의미부여 등의 과정을 통해 예술과 미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할 것이다.
<인격예술> 그 어떤 접근과 방식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고 삶에 대해서도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더 큰 안목을 배우며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긍정의 의미 또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괜찮은 의미를 갖는 인문학 도서이다. 구체적으로 책의 저자는 어떤 가치와 행위적인 부분을 통해 예술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논리 등을 펼치고 있는지, 그리고 일반적으로 접할 경우 우리는 무엇을 배우거나 공감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지, 그 의미에 대해 접하며 스스로를 위한 방향으로의 사용 및 활용도 고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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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듯 자유롭지만 질서가 있다. 삐뚤빼뚤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재미있지만 엄격하다. 힘이 있지만 부드럽다. 사람들은 이전에 본 적 없는 나의 글씨를 '순원체'라고 부른다.
왜 제목이 <인격예술>일까? 여는 글 마지막 부분에 '나이가 들수록 서여기인을 더욱 절감하기에 남의 글씨를 함부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글씨만큼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서예를 깊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의 글씨를 평가해 달라고 오면 나는 글씨에서 느껴지는 성품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의 글씨를 보고 어떻게 그 사람됨을 알아냈는지 신기해한다. 서예가 그런 예술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여기서 말하는 글씨를 보고 사람됨 알아본다. 서예가 그런 예술이다. 이것이 바로 책 제목 <인격예술>이라고 말하는게 아닐까 싶다.
작가는 서예가 이기에 좋은 글이 책 속에 굉장히 많이 나온다. 좋은 글귀가 꼭 서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삶에 굉장히 가깝다. 그래서 작가의 쓴 글귀를 바라보고 있으면 굉장히 차분해졌다. 꼭 차를 마시면서 심신안정을 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여백은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여유이다. 여백은 기력이 높은 사람만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자신감이기에 나는 여백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고집스럽지 않다는 것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줏대도 없냐'는 말을 좋아한다. 그렇다. 나는 줏대가 없는 서예가이다. 줏대가 없었기 때문에 잘 견뎌 왔고, 줏대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 줏대가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정보와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 일 없이 산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 아무 일 없이 산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우리는 사람이 변하는 것으로 상처를 받는다. 옷도 바꾸고, 머리 모양도 바꾸고, 전자기기도 바꾸기를 원한다. 다른 건 변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사람이 변하는 것은 힘들어한다. 하지만 초심이 흔들려야 나도 바뀌고 세상도 바뀐다.
내가 말한 그 기분을 살짝이라도 느껴보길 바래본다. 서예는 사실 굉장히 고리타분한 예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인격예술>을 읽으면서 나의 고정관념이라는 걸 깨달았다. 작가의 글귀 하나 하나가 어찌나 나에게 와닿던지...
한글이 서예가에 의해 새롭게 창작되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 우리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언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멋진 일이다. 처음엔 쪽팔려서 시작한 게 이제는 좋아서 하는 일이 되었다."
"글씨 콘서트는 서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실용적인지, 얼마나 대중적인 예술인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글씨로 오감을 열어 주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서예를 전시장에서 접해 왔다. 전시장 벽면에 액자로 걸려 있는 서예는 평면예술이다. 나는 한글 서예 대중화를 위해 이 평면예술을 입체적인 종합예술로 만들어 보여 주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글씨 콘서트에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글씨로 오감을 열어 주고 싶은 작가의 그 마음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닫는 글에서 좋은 글귀로 마무리해본다. "혼자만의 시간에 책을 읽으며 작가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대화였다. 책을 읽는다는 건 홀로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고독해야만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외롭게 견뎠던 시간이나 마음에 맞는 누군가를 만나 편안하게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시간에 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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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잘 안 쓰지만 어렸을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몸(身)·말씨(言)·글씨(書)·판단(判)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서(書)는 글씨(필적)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도 받지 못한 데서 서에서는 준미(遵美)가 요구되었다고 한다. 이 책 『인격예술』은 어릴 때부터 붓을 갖고 놀며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한글 서예가 윤영미가 쓴 에세이다. 서예를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기술이나 기교의 행위가 아니라 인격을 담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삶과 작품을 담았다. 표제어도 그런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제도권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견딘 30년의 시간이 만든 독특한 ‘순원체’로 쓴 작품 47점과 고독한 예술가로 살아낸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가 쓰는 글씨는 어떤 금기도 없어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붓이 주는 강렬한 힘과 서예가의 감정선이 합쳐진 글씨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서예가로서 자신의 본성이나 하는 일의 본질을 깨닫고 정의 내리는 사람들만이 이르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저자의 첫 번째 에세이다. 그는 타인의 생각과 간섭을 대놓고 신경 쓰지 않으며, 말 그대로 인생의 주체가 된 예술가의 태도와 생각을 서예 작품과 함께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엿볼 순 있지만,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대놓고 찬미하는 글을 읽을 순 없다. 서예 예술가의 이야기가 손글씨를 쓰지 않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지 궁금하다.
책에 따르면 그의 삶은 글씨와 닮았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 그의 좌우명이란다. 글씨를 천직으로 여겨 쓰고 있으니 일생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저자는 서여기인을 마주하면 심장이 쫄깃해지고 몸은 경건해진다고 「서여기인」이라는 제목의 '여는 글'에서 말한다. 글씨에는 오롯이 저자 자신의 생각과 의식이 담길 터,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저자가 가장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을 쓰는 것이란 말도 한다. "먹물을 붓에 듬뿍 실어 붓끝으로 써 내려가는 희열은 그 어떤 감정보다 상위 감정이다.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 글씨를 쓸 때 나는 더 뜨겁다. 머리, 가슴, 손끝으로 내려오는 집중력으로 점을 내리찌고 획을 긋고 글자를 써 내려가니 여운이 꽤 오래가는 감정선이다. 오롯이 그때의 감정을 붓끝에 싣는다."고 설명한다. 예술에 인문까지 담아내고 있는 것이 저자가 사랑하는 글씨 예술이다. “간섭받는 것은 질색하니 간섭하기를 싫어하고,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니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부지런하지 않으니 나 또한 다른 사람의 무관심에 서운하지 않다. 간혹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적절한 거리 두기로 피곤하지 않고 삶이 부드럽다.”고 말하는 진정 자유인임을 알 수 있다. 황금률을 읽는 듯하다. 저자는 글씨의 힘을 오래 전 깨달았다. 자신의 글씨가 기존의 세상에 대한 매력적인 저항이라는 것을. 20년 서예 선생의 삶을 접고 붓 한 자루를 든 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서예의 아름다움을 강요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글씨와 놀기 위해서다. 우울한 친구들을 위한 ‘욕’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억눌린 감정의 응어리를 표출한 글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붓 끝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서예가의 감정선이 합쳐진 글씨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이야기와 퍼포먼스를 더해 ‘글씨 콘서트’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었다. 글씨콘서트가 계속되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일어서 카메라에 담아내기 바빴고, 대공연장을 진동하는 묵향은 순간 모두를 행복에 취하도록 만들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도 한자였고 첫 개인전도 한자 서예였지만, 공기처럼 호흡하는 한글로 심장을 파고드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사람들이 어떻게 한글을 쓰는 서예가가 되었냐고 물어 오면 나는 대답한다. 쪽팔려서 그렇다고. 한 번에 읽어 내지 못하는 한자를 쓴다는 것이 쪽팔리고, 읽으면서도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쪽팔리다고. 내 얘기를 붓으로 쓰고 싶은데 한자로 하자니 나도 어렵고 보는 대중도 어려울까 그렇다고. 무엇보다 한글을 쓰지 않는 서예가가 쪽팔려서 그렇다고.” 대단한 독설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는 그의 '욕설'의 의미를 알면 약과다. 그의 욕설이 시작된 연원도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스님의 암자로 보내질 현판 글씨를 하나 부탁받았던 일을 있었다. 저자는 암자의 이름을 받아 보고는 욕심 없이 써도 될 법한 무위(無爲)적인 이름이라 여겼다. 직접 보는 앞에서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씨 받으로 오시지요. 저는 그쪽 스님의 취향을 잘 모르니 글씨를 선물할 분이라도 쓰는 걸 직접 보시고 어울리는 느낌을 같이 찾아봅시다."라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저자는 준비된 화선지에 획을 긋고 문자를 만들어냈다. 거침없이 자유롭게 흐느적거리는 붓을 감당할 수 없어 붓을 받으러 온 젊은 학자에게 갖고 싶은 글귀 하나 던져 보라고 주문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 학자는 "씨팔··· 아! 씨팔이 좋아요."라고 말하며 자기 평생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이라고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점잖은 학자가 어찌 그런 욕지거리를 쓰십니까?"라고 응수하면서도 기다렸다는 듯 붓을 멈추지 않았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진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대학 서예과에 입학한 후에 고가의 큰 붓 대신 밀대 걸레 두 개를 자루에 묶어 붓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흐느적거리는 붓맛과 뜻밖의 획이 만들어지는 희열을 만끽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공부를 위해 서예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까지 입시과외를 하며 두꺼운 전공책을 사 모았다. 첫 공모전에서 수상도 했다. 그 뒤로는 상들을 거절하고 유명한 서예가가 자기 문하로 들어오라는 제안도 사양한 채 고향으로 내려갔다. 저자에 따르면 삼천포 시장 번화가에 서예원을 열었다. 10대 왕따 청소년,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 청년들, 우리 옷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부인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모여들었다. 서예원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서예원에는 사람들의 온갖 대소사와 희노애락이 모였다. 작가는 그들이 본성을 마음껏 펼치도록 도왔다. 마흔여덟 살 때, 서예원을 닫고 세상으로 나왔다. 서예에서는 보기 드문 그의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삐뚤빼뚤하지만 아름답다. "자유롭지만 묘한 질서가 있다. 힘이 있지만 부드럽다." 호평이 잇따랐다. 그의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씨였다. 사람들은 여태껏 본 적 없는 그의 글씨를 가리켜 ‘순원체’라고 했다. 그동안 서예 선생으로 살며 눌려있던 에너지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개인전 완판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국내 최초로 기획한 글씨콘서트는 대공연장 전좌석을 매진시키기도 했다. 그의 서예는 전시가 아닌 공연이며 온몸을 쓰는 퍼포먼스다. 커다란 붓으로 춤을 추듯 온몸을 사용한다. 에너지를 한껏 모아 붓과 한몸이 되어 10m짜리 거대한 천을 누빈다. 응집된 인생의 내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킨다. 윤영미의 첫 책 『인격예술』은 가두려 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같아지려 하지 않는 그의 삶과 글씨가 응축된 책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나는 먹 가는 행위를 주술처럼 즐긴다. 내가 가장 착해지는 시간이다. 먹을 갈면서 우주의 중심을 내 축에 맞추어 이동시킨다. 자신이 가장 자기다울 수 있는 시간,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고 확장되는 몰입. 이 몰입의 경지가 주는 충만함보다 더 큰 보상을 나는 아직 모른다.” 저자는 먹 가는 시간을 서예가로서 '가장 욕심스러운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벼루에 넘치도록 물을 가득 붓고 먹을 돌렸을 때 옆으로 넘치지 않을 만큼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계산한다. 반복을 좋아하지 않는 기질이지만, 유일하게 즐기는 반복이 먹을 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적당한 속도로 둥글게 팔을 돌린다. 감정의 리듬을 맞춰가며 돌리고 있는지 모른다. 멈추려 하지 않는 관성이 붙으면 팔은 무의식적으로 돌고, 머릿속은 깨끗하게 비워진다. 무아(無我)지경이 찾아온다. 무당이 신내림을 받고 뛰고 있는 모습이 겹쳐진다. 반들반들하게 먹으로 벼루를 연마하듯이 생각의 응어리를 갈고 있었다. 누군가가 부드러운 손으로 나를 만져주고 조금씩 순한 어린아이처럼 온순해진다. 벼루 바닥이 훤히 보였던 맑은 물이 점점 검어지더니 제법 먹물로서의 이름값을 하려 한다."고 먹 가는 시간을 이 에세이에 담았다. 자유로운 나를 위하여 견딘 고독에 대해 말한다. 어떤 제도권에도 속하지 않고 지름길을 포기한 채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삶을 견디며 벼린 이야기들. 수많은 반복이 원하는 경지에 이르게 했고, 스스로의 금기를 깨는 순간 편안해졌다는 것을, 고독할수록 자유로웠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내 것임을 알게 된 이야기들이다. 예술가의 내밀한 독백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가장 자신다울 수 있는 시간을 위해 견디고 벼리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인생이라는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무엇을 위하여 삶을 견디는가」, 2장 「금기를 깨면 편안해진다」, 3장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내 것이다」, 4장 「고독하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 등이다. 제목만 읽어도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간다. '예술이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이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 담긴 글에는 예술과 인간이 함께한다는 생각이 짙다. 특히 2장 '인생의 진로를 변경하는 것보다 황홀한 자유는 없다'는 글은 제목부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글은 앞서 언급한 서예원을 그만두고 혼자만의 길을 갈 때의 심경 등을 담아 냈다. "인생에 진로를 변경해 버리는 것만큼 황홀한 자유는 없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는 서예가가 된 것이고, 둘째는 40대 후반에 서예원을 폐원한 것이다.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해야만 하는 것들이 일정표에서 지워지는 자유와 계획되지 않은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강박처럼 다가오는 완벽주의 같은 어설픈 놀음을 멈추고 싶었다. 숨이 멈춰 버릴 것만 같았다. 몸이 가는 대로 살고 싶었고 마음 가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사람 속에 살지만 사람 밖에 살고 싶었던 몸,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매일 여행을 꿈꾸고 계획했다. 매일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풍경들을 상상했다."(p.73)
저저 : 윤영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화예술을 전공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도 한자였고, 세상에 먼저 발표한 전시도 한자 서예였지만 공기처럼 숨 쉴 수 있는 한글로 심장을 파고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20년 동안 서예 선생으로 살다가 오십을 앞두고 한글 서예가로 세상에 나왔다. 개인전 완판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국내 최초로 기획한 글씨콘서트는 대공연장 전좌석을 매진시켰다. 튀르키예에서 개인초대전을 열었고 중국을 돌며 글씨 버스킹을 했다. 그의 서예는 전시가 아닌 공연이며 온몸을 쓰는 퍼포먼스다. 경상국립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서 강의하고 경남교육연수원에서 교사들에게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 좌우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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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가 쓴 에세이는 어떤 글이 담겨 있을까. 첫 장부터 붓끝의 강렬한 기운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윤영미 서예가의 에세이 <인격 예술>을 거침없이 읽어나갔다. 서예가인 그녀의 삶을 붓으로 한 글자로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삶과 가치관, 그리고 그녀만의 인생철학과 서예가로서의 예술로 표현한 단 한 권의 책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한자 서예를 잘 쓰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읽어 내며 이해하는 게 아니라 해석하며 알아야 하는 한자라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한자는 자신의 언어가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일상에서 공기처럼 사용하는 한글을 쓰는 서예가가 된 그녀는 다른 서예가들과 다른 면을 보인다.글씨 자체가 본인의 종교이며 끝없는 축복을 글씨로 써 내려가는 중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윤영미 서예가. 그녀의 글씨 한자 한자가 모여 글을 이룬 이 책이 에세이를 넘어서 서예가라는 꿈을 품고 있는 사람과 현재 서예가인 사람, 그리고 인생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어울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삶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구절은 "오늘 하고 있는 것이 내가 된다."이다. 그전에는 저자와 똑같이 "아니면 말고"였다. 나는 대체적으로 단순한 사람이 아님을 나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어떤 것이 됐든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일들에 대해 굉장한 압박감과 강박감을 지니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노력하지 않아도 삶은 흘러가고 노력은 나의 몫이지만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하는 것이기에 오늘 하루에 충실하기로 생각했고, 그 결과 나의 모토가 달라졌다. 서예가인 윤영미 선생님은 오롯이 선생님을 닮은 글씨 꼴이라는 '아니면 말고'정신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하는 삶의 태도인 것 같다. 사랑의 의미를 표현하기에는 다 담을 수 없는 단어이지만,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은 내 욕심은 접고 그 사람이 오로지 행복할 수 있는 것만 고민하는 것'. 전적으로 나를 뺀 상대를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것이든 나와 다른 상대를 내 기준에서 상대의 언행을 판단하기에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사랑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서예는 평면예술이지만, 서예가로서의 인생 예술을 산 그녀는 살아있는 인격 예술 그 자체였다. 수다스러운 친구보다 어느 작가의 한 줄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책방을 '소설 같은 인생들을 한곳에 묻어 놓은 평화로운 묘지와도 같았다'로 표현한 그녀의 숨 쉬는 예술을 책으로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홀로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고독해야만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들이 그녀를 성장시켰고, 외롭게 견뎠던 시간이나 마음에 맞는 누군가를 만나 편안하게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시간에 책이 있었던 그녀처럼 나에게도 윤영미 서예가의 책이 있었다.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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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예술>은 글씨 예술인 서예가의 이야기이다. 서예라고 하면 예술의 한 분야지만 그림보다는 덜 대중적인 분야로 여겨진다. 그런 서예는 나이든 분들이나 하는 예술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예가 어떤 예술인지 더욱 궁금하게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서예의 이야기를 <인격예술>에서 읽어본다. 서예가도 화가와 비슷한 것 같았다. 서예 작품이라고 해도 글자 몇 글자 적는 것이 서예라고 생각할 정도로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미술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작품 하나를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밤샘 작업을 한다는 것이 약간은 의외였다. 30년의 서예가로 활동하면서 작업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밤새 작업을 하고 주위에서 건강을 챙길 정도로 작업에 집중하기도 한다. 서예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예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예는 스무 살에 시작했다고 한다. 서예 붓과의 인연은 온갖 인간관계와 숱한 일들을 겪게 했다. 작업을 하고 여행을 가고, 강의하고, 놀이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한다. 이런 인생의 2막이 시작되었다. 서예가 최고의 낙이며 붓을 들고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다. 밤샘 작업하다가도 갑자기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붓을 잡게 하고 팔을 당겨 가며 서예를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지인의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고 특별한 나들이를 하기도 하는 등 노는 시간도 충분히 가지려고 한다. 이런 삶이 서예를 계속하게 하고 서예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