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수록 타성에 젖는 속도가 빨라진다. 더불어 그런 타성은 사람과 사물의 소중함까지 잊게 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소설들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를 둘러싼 그 익숙한 사람과 사물들에 대한 뒤돌아봄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등단 초기작부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설들이 골고루 실린 이 단편집은 1990년에 나온 책이다. 어느새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어 버렸고, 표지의 작가 사진이 무척 젊어보이는 무려 12년 전에 이 세상에 나온 단편집이지만 감성과 문체는 결코 지금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11편의 소설들은 존재론적 고뇌와 실패한 사랑, 현실의 절망스러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을 얘기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은 절대로 철퍼덕 주저앉아버리지 않는다. 재기의 몸짓이나 희망의 의지를 불태우지는 않아도 그들은 패배자로서 삶에 그냥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이 단편집의 여러 편은 우리 민속과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 서역, 돈황이나 누란과 관련된 삽화가 많은 편이다. 그곳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연계성이 현재 주인공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그것은 결국 인류의 근원적 뿌리까지 더듬어 보게도 한다. 작가가 우리 땅의 현재뿐만 아니라 서역의 과거까지 들추어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건 눈 앞의 삶에만 급급해 사는 현대인의 일상이 얼마나 편협한지 보여주고 개인과 역사가 어떻게 하나되어 있는지를 말하려 한 게 아닐까 싶다. 작가의 해박한 우리의 전통 문화의 식견은 동물과 식물을 다루는 삽화에서도 드러난다. 어찌보면 그 모든 것들이 백과사전적인 단순한 지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걸 이용한 절묘함이 바로 소설의 상징과 구도에 기가 막히게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만 폄하할 수는 없다고 본다. 11편의 소설 모두 좋았으나 그 중에서도 <산역>, <높새의 집>,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새의 초상-팔색조>, <미혹의 길-산화가>이 인상 깊었다. 특히 <새의 초상>의 다음 구절은 그야말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녀의 섬에서의 행동은 결코 일상의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로잡힌 몸으로서의 새로이 자유롭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나는 일상의 그녀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내가 그녀를 찾아 헤맨 것은 그녀를 내 박제로 하려던 데 지나지 않았다. - <새의 초상> 중에서 - 기억에 대한 고집, 소설은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장르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또한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를 재조명해 보려고 했다. 때때로 치졸하고 염치없는 누추한 기억일지라도 그로인해 우리는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