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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학 강의처럼
고민이 많았다. < 한국근대문학의궤적 >을 읽고 평을 쓸지 말지. 읽는 건 얼마든지 하겠지만, 서평을 쓰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이기에. 그러다 이번 기회에 한국 근대 문학의 매력에 더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 시간 혹은 국어 시간에 신소설에 배울 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주로 외국 문학이었기도 하고. 하지만 <한국 근대문학의 궤적>을 읽으며 우리 근대와 그 시대의 문학과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이광수 : 일제강점기의 문인,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족개조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자기개조가 요청되고 인생의 도덕화와 예술화가 주장되는 지점에서, 이광수의 문학론은 1910년대와는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게 된다.
이광수하면 당연하게 친일민족행위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의 글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별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상한 척하는 글로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근대 문학의 궤적>을 읽으며 이광수에 관해 좀 깊게 알게 되었는데.. 역시 정이 가는 문인은 아니다. 살아 남기 위해 못하는 게 없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지만.. 씁쓸한 감정이 다 지워지진 않는다.
<한국 근대문학의 궤적>은 대학 교재 같으면서도 깊이 탐구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딱 좋은 도서였다.
[책속문장] p44 철도역이 식민지적 공간이었다는 점은 <고목화>와 같은 신소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p73 최남선에게 세계는 바다로 표상되었고, 바다는 세계의 백과사전이었다. 무엇보다도 바다는 여백이 남아 있는 세계의 백과사전이었다.
p91 신소설에는 다양한 뚜쟁이들이 등장한다. 주로 여성 주인공의 정조를 2할 남짓한 수수료와 교환함을써 이득을 챙기는 무리들이다. <빈상설>의 화순집, <목단화>의 의주집, <산천초목>의 신마마, <월하가인>의 또성어미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p318 1989년 북한문학 및 납.월북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졌고 북한문학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본격적으로 제출되기 시작했다.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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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고3 때, 공무원 시험 준비 할 때 고전소설들을 보면서 재미를 느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국문학과 전공 수업을 듣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당시대와 작가와 문학을 연관지어 깊이 파서 연구하는 듯한 도서였고 조금은 어렵게 다가왔다. 물론 관심이 있던 분야라서 재미도 있었지만 오래간 미뤄왔던 분야라 어렵지만 흥미를 느낀 부분이 훨씬 컸다. 국사와 근현대사를 좋아해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다만 단어들이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대신 우리말의 다양함과 잊혀져가는 우리말들을 상기하고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 읽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는데 아직은 어려워서 몇 번 더 보려고 한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근대문학 뿐만아니라 고전문학에도 관심 갖고 도전해 보려고 한다.
책 속 문장
<이광수의 문학론과 한국 근대문학의 기원들>
조선이라는 말에는 국가,민족,왕조라는 세 가지의 층위가 중첩되어 있다. 최초의 국호도 조선이고, 민족의 이름도 조선이고, 망해버린 왕조도 조선이다. 조선으라는 말에는 국가의 기원에 대한 기억과, 민족의 영원성에 대한 희구와, 망해 먹은 왕조에 대한 원망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광수가 조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배후에는 민족의 기원을 재전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로 놓여 있다. 국호나 왕조는 조선에서 대한 제국으로 바뀌거나 사라지거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조선이라는 민족의 명칭은 영원하며 불변하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비평과 주체> 김지림, 최재서, 임화의 비평 겹쳐 읽기.
-조선의 진보적인 [안텔리겐차]도 다시 한번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확신있는 단안을 내림으로써 그리고 또한 자신의 시대적,사회적 사무를 반성함으로써 병자와 같이 힘버린 문학을 걸머지고도 새 시대의 새벽에로 향하여 땀을 흘리며 거꾸러지며 다시 일어나면서도 꾸준히 걸어갈 것이다.-
-식민지 시기 동안 지식인들의 가장 첨예한 강박관념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정치적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고 문학적 행위만이 최소한의 합법적인 영역이었던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욕구는 내면화되어 보편성을 지향하는 언어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1920년대 이후의 문학비평은 훈학에 대한 논의의 장을 구성하면 동시에 정치적인 논의가 가능한 담론의 장을 중층적으로 재생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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