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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함께 있으면 좀 어색하다. 침묵하기 때문이다. 자주 먼저 말을 꺼내곤 했다. 다른 이도 말했다. 그 사람은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사람이라고. 100% 동감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랑 있다가 익숙해지니 내가 조용해졌다.
사교에선 말이 없으면 힘들다. 사귀기가 힘들다. 그런데 가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입은 하나고 귀는 둘이라고 한다. 말을 하면 그게 스트레스가 풀린단다. 그래서 그런지 경청하기가 참 힘든 미덕 중 하나인가 보다. 상담을 하러 갈 때 들어주는 게 거의 다라고 한다. 보통 침묵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침묵의 힘이 커진 게 아닐까?
바쁜 일상 속에서 침묵과 가까이 하면서 삶을 지혜롭게 살 수 있다는 일깨움을 주는 책이다. 읽으면서 그 전에 읽은 '놓아버림'(데이비드호킨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놓아버리고 침묵하면서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168쪽 집착으로부터의 완전한 놓여남.~침묵 속에서만 '놓음'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첫째다. 생각에 매달리면 감정에 휩쓸리고 집착의 덫에 갇히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175쪽 지혜로운 성찰은 마음의 공간을 정결하게 하여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해주며, 직관적인 지혜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내부로부터 솟아나오는 직관적 지혜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침묵이다. - 이 부분에서는 인도의 이야기도 나왔고 수행자들 이야기가 나왔다.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영적인 깨우침이 필요하다. 179쪽 진정한 침묵에 들게 되면 1. 내면의 소움과 불온함을 자아내는 삶의 사건이나 상황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 2. 자신이 정말로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이게 참된 영적 성장이라고 한다. 264쪽 Tot homines tot sententiae십인십색-라틴어 격언이라고 한다. 벽명의 퀘이커 교도에게 물으면 대답도 백가지. 당연히 사람들의 생각도 다른 것이다. 다른 걸 틀렸다고 하면 안되겠다. 266쪽 사느라고 바빠서 균형을 잃어버린 것들을 알맞은 거리에 두고 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 268쪽 결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침묵 속으로 들어가 무엇이 잡히는지 더듬어본다.
산책,요가, 명상이 필요한 이유다. 가끔 혼자가 되고 또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보자.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답은 무엇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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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지난날을 돌이켜볼때 삶의 이정표가 바뀌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어떤 순간이 있을 듯 하다. 책의 수많은 아름다운 문장들중 하나를 인용한다. "침묵의 위대한 미덕 중 하나는, 판단을 흐리게 하는 외피를 걷어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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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일을 할 때는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집 안이 정적에 감싸인다. 일하기에 참 좋은 정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수동적인 정적일 뿐, 내가 스스로 침묵하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동적인 침묵은 한 기억이 없다.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워서, 책으로, 음악으로, TV로, 인터넷으로 도피하기 때문이다. <침묵, 삶을 바꾸다>(2014, 그래엄 터너 지음, 박은영 옮김, 열대림 펴냄)는 '침묵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부제로 책의 주제를 드러낸다. '침묵이 말한다'는 표현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침묵함으로써 만나게 되는 자신 안의 목소리를 체험하게 된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오고 여러 매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가 침묵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싱가포르에서 군 복무를 하던 때의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쾌활하고 솔직한 기독교도'인 짐을 친구로 사귀었는데, 그에게서 "신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은 것이다. 길을 걷다가 가끔 만나는 "도를 아십니까?" 유의 가벼운 질문 같지만, 저자는 짐의 말에 따라 종이와 연필을 들고 신의 말씀을 기다리고자 했고, 거의 즉시 관념 하나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그때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것을 '내적 발화'로 삼아 침묵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침묵은 다양한 나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온다. 자연, 콥트 기독교와 트라피스트와 불교와 인도의 다양한 종교와 초월명상과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퀘이커교, 교도소, 연극과 음악, 심리 치료, 마침내 종교와 민족을 초월한 레바논의 모임인 '변화의 첫걸음'까지 세상 많은 곳에는 침묵에 관한 강한 열망과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침묵'은 '명상'과 연결되어 상당히 종교적인 개념으로 다가온다. 신에 대한 믿음에는 자기 자신을 내려놓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레바논 '변화의 첫걸음'에서 보듯 종교를 떠나서도 침묵은 위력을 발휘한다. 대화보다 큰 포용력과 평화와 성찰이라는 침묵의 힘 말이다. 침묵할 것, 자신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자신을 찾을 것, 그럼으로써 변화할 것. 우리가 침묵해야 할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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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 있어서 ‘침묵’의 의미 현대는 ‘자기PR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자기자신을 자발적으로 발가벗겨 놓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침묵’을 “불편하거나 난처하거나 당황스럽거나 불쾌하거나 얼어붙게 하는 것, 심상치 않은 분위기, 숨막히게 하는 것, 그리고 죽은 듯한 느낌 등1)”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 성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사제인 리처드 로어 신부는 이를 “뭔가 똑똑한 말을 하고, 남을 절묘하게 깔아뭉개고, 무슨 말로든 그 순간순간들을 채워야 스스로 의미 있는 사람인 것처럼 여기는 거지요.2)”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그림자가 없으면 빛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침묵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따라서 ‘침묵’을 저자의 표현처럼 ‘잠재적 악성 요소’로만 여겨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침묵’은 깨달음인가? 우리는 달마대사의 9년 면벽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또한 불교에서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침묵은 불교와 같은 종교의 것만은 아니다. 비록 묵언수행(默言修行)이나 명상 등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발견하는 것이 낯설지 않지만, 우리도 이 책의 1장 ‘침묵이라고? 사양할게!’에서 언급된 것처럼 침묵을 돈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일상을 장악한 소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근대화’라는 이름의 물질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부지불식간에 전통을 고리타분한 것, 불편한 것, 버려야 할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침묵의 의미와 가치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소리’라는 첫 번째 언어와 ‘침묵’이라는 두 번째 언어의 조화를 통해 창조되는 음악에 있어서 침묵이 가지는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음악은 경청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침묵에 의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3)”해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침묵’은 어디에서…… 저자는 코르빌리아에서 산의 어깨를 가로질러 실바플라나로 향하는 산행을 하면서 산의 침묵을 만끽하다가 돌연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모차르트 4중주곡에 의해 방해 받았던 경험을 2장 ‘산의 침묵’에서 얘기한다. 그러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거대한 수브레타 알프스의 기슭에 이르렀다. 무너져 내린 바위 조각들이 보이는 산 사면 위로 여름의 환한 구름이 정상에 걸려 있었다. 그제야 침묵이 회복되었고, 뿌리 깊은 위로가 찾아왔다. 지극히 편안하고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설사 그것이 모차르트의 곡처럼 아름다운 음악일지라도, 그런 곳에서의 침묵이 자아내는 우아함과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고통스러운 대비가, 산의 침묵에 깊이 감사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통렬히 느껴졌다.4)고 고백한다. 그뿐만 아니다. 3장 ‘사막의 신부들’에서는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 인근의 D신부와의 대화를 통해 ‘침묵’에 대해 말한다. “그의 대답은 인간적인 접촉을 거의 단절하다시피 하고 오로지 스스로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창조하고 거두어들이는 신 앞에 발가벗고 선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만큼 그의 대답에는 조금의 가식도 없었으며, 나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설득하려는 욕망이 단 한 점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 나는 그가 왜 이런 고독하고 고요하고 깊고 도저한 사막의 침묵을 삶의 동반자로 선택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그가 대답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는 남은 인생을 그녀 곁에서 보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허니문 동안에는 아내와 둘이서만 조용한 곳에서 보내고 싶어 하지요.” 자신과 그리스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5)” 이처럼 어떤 경우는 대화를 통해서, 또 어떤 경우에는 체험을 통해서 저자가 ‘침묵’에 대한 생각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 <침묵, 삶을 바꾸다>이다. 우리가 흔히 ‘침묵’을 외부의 소음을 극복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내부의 소음을 극복하는 것도 ‘침묵’이다. 그렇게 보면, ‘침묵’도 불교의 화두(話頭)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기에, ‘침묵’이 주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삶이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아무런 의미도 느낄 수 없다면 지루함과 답답함 속에 질식하게 되겠지만. 우리도 한번 ‘침묵’을 통해 시끌벅적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