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과 사상이 숨가쁘게 14권까지 왔다.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며 1인 저널룩의 야심만만한 출범을 알렸던 인물과 사상은 어느덧 3년 째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우울하다. 세상은 별로 바뀐 게 없고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도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다. 때로 예민하고 정치하며 유연하기까지 했던 강준만 교수의 필체는 이제 절박하게까지 여겨진다. 나를 망가뜨리는 싸움 - 그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리라. 싸움이 계속될수록 그가 가졌던 최소한의 믿음, 희망 따위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가 원했고 또 희망의 단초로 작용하리라 여겼던 것은 논쟁, 혹은 토론이었다. 그가 시비를 걸고 문제를 제기하는 지식인들, 언론인들이 양심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생산적인 논쟁을 걸어올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이 땅의 지성인들의 양식은 생각보다 더 썩어 있었고 소아병주의가 되어 있었고 위선과 권위로 범벅되어 있었다. 나는 한 명의 양심적인 '이기주의'가 어떻게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환호했었다. 이거야말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해도 사회 정의에 기여한다는 도덕 교과서의 진정한 표본이 아닌가. 또한 우리가 대부분 체제나, 제도에 원인을 돌리고 체념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갈 때 인물과 사상은 개인의 분노가 아직 펄펄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 분노는 공허하지 않고 바로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지났고 그의 분노에 공감했던 열렬함도 정체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이 땅의 지성들은 이렇게 비겁하고 또 졸렬한가.-- 다시 말하건데, 지역감정은 그 누구도 멍하게 만들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 그건 빈 껍데기다. 그 안에 살고 있고 그 구성원인 사람들 대다수가 지역감정으로 인해 망하기는커녕 무력감을 떨치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서 삶의 활력을 찾는 마당에 무슨 망국론이란 말인가? 자꾸 망한다고 외치면서 정작 보아야 할 것을 외면하는 짓은 이제 그만두고 지역감정 덕분에 누가 재미를 보는지 그쪽을 향해 눈을 부릅떠야 하지 않을까? --- 강준만「머리말/지역감정 예찬론」『인물과 사상⑭』(개마고원, 2000) : P31 지역감정 예찬론을 역설해야 하는 이 현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모든 사람들이 실체를 놔두고 지역감정 망국론만 공허하게 부르짖으며 뒤로 호박씨를 깐다. 지역감정 망국론은 뒤로 호박씨를 까는 행위에 대한 정당화다. 그것이 공허하면 공허할수록 또 양비론이면 양비론일수록 호박씨 까는 행위는 더욱 실속적이 된다. 그 어느 언론도, 그 어느 지식인도 이에 대해 정면으로 나서서 판결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지역감정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손호철을 타겟으로 한 비유는 보다 명쾌하다. --- 어떤 사람이 아주 좋은 일을 했다. 그 사람은 좋은 일을 한 만큼만 칭찬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손호철이 나타나서 그 사람을 공중에 띄운다. 영웅 또는 성인(聖人) 비슷하게 만들어버린다. 이제 큰일났다. 그 사람은 이제부터 영웅이나 성인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무조건 손호철로부터 욕을 먹게 돼 있다. 예전에 했던 좋은 일까지 부정당하고 폄하당할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 강준만「<조선일보>와 호남인의 정체성 분열」『인물과 사상⑭』(개마고원, 2000) : P57 이건 한국 정치 전반에 대한 인식과도 맥을 같이 한다. 한국 정치가 썩었다는 것은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인식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을 법한 유교적 이상주의로 현실 정치를 재단하다 보면 한국 정치가 매도당하는 것은 물론 정치 발전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상이 높고 대상을 신성화시키면 시킬수록 도저히 만족할 만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불신과 냉소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 지극히 현실적인 지역주의가 극단적인 담론 속에서 공허해 지고 비관적이 되고 결국은 떳떳하고 당당하게 냉소주의가 만연하는 풍토가 조성된다. 배수아처럼 거리낌없이 잘 생긴 사람이 없어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떠벌려도 별로 욕먹지 않게 된단 말이다. 최근 '뜨고' 있는 386 정치 신인들의 경우는 어떨까. 광주 술좌석에서 그들의 작태는 결코 지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가장 '띄우고'나서 이제 가장 '매도하는' 집단 중에 하나가 언론, 그것도 <조선일보>라는 사실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에서 조금 간격을 둘 것을 요한다. 이들에 대한 도덕적 단죄에 있어서 <한겨레> 역시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 일단 정치, 구태한 정치인들에 의한 정치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가정을 해 놓고 그들을 '헹가래' 치며 영웅 또는 성인 비슷하게 만들어 버린 감은 없는 것일까(헹가래란 높이 띄우면 띄울수록 떨어질 때 위험도가 증가하는 법이다.). 그래서 그 술좌석이 이처럼 크게 보도되면서 큰 난리 난 것처럼 호들갑스러운 건 아닐까(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들이 정치판을 일대 뒤집기라도 할 것처럼 언론들이 띄우는 분위기는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 그러니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자. 충족될 수 없는 기대는 환멸을 낳을 뿐이다. --- 유시민「4.13 총선이 남긴 희망과 절망」『인물과 사상⑭』(개마고원, 2000) : P131 사람들은 386 세대들의 작태에 대해 환멸한다. 충족될 수 없는 기대, 충족될 수 없는 정치. 나는 유시민의 세 가지 원칙에 의해 투표를 했다. 그러나 주위에 내가 아는 얼마 되지 않는 친구들은 별다른 환멸도 없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 물론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에겐 투표가 중요하지 않다. 그게 다 '환멸'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환멸이 무지를 면죄해준다는 말이다. 나는 386 정치 신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별 기대도 하지 않는다. 예컨대 한나라당의 원희룡. --- '한국정치의 새로운 힘'을 자처한 원희룡 후보는 김대중 정부의 '퍼주기만 하는 대북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 관련조항의 개정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냥 변호사라면 모를까, 명색이 19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출신이라는 '386후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새로운' 힘을 자임하는 그 무모한 용기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 유시민「4.13 총선이 남긴 희망과 절망」『인물과 사상⑭』(개마고원, 2000) : P129 나는 모든 지역주의 근본이 중앙 집중 정치에 있다고 갈파한한겨레>조선일보>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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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인물과 사상의 주제는 지역감정 예찬론이다. 정확하게 하지만,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예찬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강준만 선생님은 이 책 10쪽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이제부터 지역감정을 생산하거나 조장하는 5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다. 그 5적은 1) 국민의 일상적 정실주의 2) 수구기득권 세력의 분할지배주의 3) 언론의 상업주의 4) 개혁 세력의 보신주의 5) 호남 차별을 외면하는 근본주의 등이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이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크게는 조선일보와 호남인의 정체성 분열문제, 서울공화국과 지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좀 다른 문제들을 다루는데, 그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이진우 교수님에 대한 비판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방면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이 갔는데, 여기서 당대의 지식인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와 논쟁을 요청하는 "인물과 사상"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한 번 읽어보시고, 여러분들과도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이제 이진우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내가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예찬론자이기도 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말씀드리는데, 나는 이진우가 자신을 위해 저널리즘 활동은 중단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다른 책들에서 만날 수 있는 '심오한 철학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데다가 자기모순마저 범하는 말씀을 양산해내시는 모습을 보는 건 이만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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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상도 사람이다. 때문에 나는 역시 강준만 교수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지금까지 한국의 현대사가 경상도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고 전라도 사람들은 그 역사의 과정에서 배제되어 왔다는 생각, 나는 분명히 그 생각은 옳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그렇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는 비뚤어진 역사를 남겨 왔다고 생각된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벌써 임기의 절반 정도를 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항상 상반된다. 내 고향에서는 그에 대한 비판이 극을 달한다. 강준만 교수에 의하면 그것은 비방이고 근거 없는 무지의 소산임에 분명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식만을 얻어들은 것으로 평가하는 그것은 과연 그의 말대로 비방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는 조금 다르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은 최초의 생각들은 일단은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학생운동은 좌표를 잃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학의 운동권은 오로지 하나였다.
계파가 많다는 점을 반론으로 들지 말라. 분명히 운동권은 반정부단체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운동권은 둘로 갈렸다. 이제 대학내에서도 김대중 정권의 2중대라고 불리우는 운동 세력이 생겼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많은 점에서 김대중 정권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지역 감정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결론은 무엇인가? 배제된 전라도를 역사의 전면으로 드러낸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역차별을 이야기한다. 전라도를 살리기 위한 경상도 역차별이 이루어진다고. 그것이 진정한 지역 감정 철폐를 위한 정책일 수 있느냐고. 나는 역차별에 대한 논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전라도는 차별받았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역차별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은 되지 않는다는 강준만 교수의 말도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준만 교수의 논리는 무엇인가? 그것이야말로 배제의 논리가 아닌가? 강준만 교수는 말한다. 자신을 비판하고 김대중 정권을 비판하고 전라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차별을 받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이 이야기의 논점은 그것이 아닌가? 한나라당을 추종하고 조선일보를 읽는 사람은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라고....
나도 조선일보를 싫어한다. 한나라당? 나는 정치인들을 싫어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논리를 펼친다 해도 강준만 교수에 의해서 나는 논의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그와 의견을 같이하지 않는 한 나는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기득권에 안달하는 한낮 소인일 뿐일 테니까. 그것이 강준만 교수의 배제의 논리이니까...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더 이상 읽을 만한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나는 그에게 실망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가 주장해 온 것은 이런 것들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겐 돌팔매질을 했지만 스스로가 돌팔매질을 당하는 것에는 분개하는 겨우 그런 사람임에 불과했다. 이제 더 이상 강준만 교수의 이야기는 생산적인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그는 이제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할 만한 이야기만 쓰고 있으니까.... [인상깊은구절] 전북인들은 소외당하고 이유 없는 핍박 속에서 살고 있는 피해자요 약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은 경제적 약자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뭘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싫든 좋든 '조선일보'는 이 망가진 국가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천한 자본주의를 여과 없이 꿰뚫어 볼 수 있는 최적의 신문입니다. 그렇다면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서 선택해야 할 신문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러한 모순과 억압과 차별에 반항하고 저항해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수님도 느끼고 계시겠지만, 이미 탄탄하고 두꺼운 벽을 생성해가고 있는 이 한국의 천한 자본주의를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슨 사람들이 언제난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두꺼운 벽을 또는 그 두꺼운 벽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가려면 또는 살아 남으려면, 그 뚜꺼운 벽을 알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조선일보'만큼 그 벽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