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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집을 읽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말이다. 소설처럼 재미가 있는 게 아니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평론집을 읽으면 왠지 학창시절의 참고서를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동안 많은 소설책과 시집, 동화책 등을 그리고 인문서 등을 읽어왔지만 평론집만큼은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나도 모르게 안미영씨(氏)의 평론집인 『소설, 의혹과 통찰의 수사학』을 손에 넣게 되었다. 책 안을 둘러보니 내가 읽은 책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읽어보지 못한 소설들이 더 많았다. 그 동안 생각해보니 일본작가의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계열의 소설만을 편중되어 독서를 했다는 것에 생각이 다다르게 되었다. 나의 본격적인 독서는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책이 아닌 사운드 북(Sound Book)이라 해서 mp3에 담아서 들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있었다. 그것을 다운받아서 읽은 처음 작품이 바로 《오늘의 거짓말》이었다.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을 귀로 들으면서 아, 그 때 당시에는 그랬지. 속으로 그런 공감의 댓글을 달면서 계속 들었다. 듣고 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정이현’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상당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실제로 만났더라면 사인 한 장 정도는 받았을 것 같다. 내 성격상 사인을 받는다는 건 크나큰 용기를 내야 할 터. 다른 작가들 위에 두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다가 작년에 책으로, 종이에 인쇄된 텍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이미 아는 작품이지만 또 읽고 싶어서 읽었다. 특히, “3. 위장된 진정성과 평화로운 일상성”에서 소개한 작품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그 작품을 읽으면서 정말 작가는 소설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가 소설을 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사람을 아는 것만큼 축복받을 일이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이현의 데뷔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 라는 작품은 읽어보지 못해서인지 안미영 평론가의 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점은 안타깝다. 천명관 소설가의 「전원교향곡」도 읽어보지 못했다. 천명관 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고, 그의 작품도 읽어봤다. 천명관 작가의 작품 중에서 『나의 삼촌 브루스 리』,『고령화 가족』 읽어봤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아직…. 그렇지만 「전원교향곡」에 대한 설명글은 이해가 속속 되었다. 아마도 전에 들은 기억이 나서인지 싶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들은 기억이 있다. 제목만 들으면 왠지 목가적이고 서정적이고 소설 속의 인물들이 행복이 가득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정작 그런 소설이 아니다. “천명관의 「전원교향곡」은 1920년대 자연발생기카프문학의 적대감을 재현해 내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농촌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 후기자본주의 현실의 척박한 구조에 대한 것이다.” - 나중에 꼭 「전원교향곡」 작품을 읽으면서 이 글을 다시 새겨볼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충 들은 내용으로는 농촌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생각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나중에 실제로 작품을 읽으면서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이리라.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작품 또한 아직까지도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벌써 읽어버린 느낌이 든다. 이것도 나름 ‘스포일러’일까? 영화로도 나온 이 작품은 지금은 벼르고 벼르는 작품인데 과연 어떤 작품이기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일까? 늘 궁금했었다. 글을 읽고서 과연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그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꼭 소설로 읽으면서 이 글들을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외에도 2부에서는 “초라한 육체와 반(反)성장 서사”에서 「고령화 가족」에 대한 글도 보인다. 이미 읽은 작품이긴 하지만 또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요즘 드는 생각은 고령화 가족에 이어서 부패된 사회의 일면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부패했기에 이 사회를 버려야 할지 아니면 한 가닥 희망이라도 품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소설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