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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유학자 이토 진사이는 도쿠가와 막부의 관학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던 주자학을 비판하면서, 주자의 주석을 배제하고 직접 『논어』, 『맹자』의 본문을 해독해서 성인의 원뜻을 구하자고 주장한 고의학(古義學)의 창시자다. 진사이는 『논어』를 '최상지극우주제일의 책'이라 극찬하고, 인을 사랑이라고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57세가 되던 해인 1683년에 『논어고의』·『맹자고의』·『중용발휘』·『어맹자의』등 일련의 저작을 완성했다. 장원철이 번역한『논어고의』(소명출판, 2013)는 '일본명가사서주석전서(日本名家四書註釋全書)'에 수록된 이토 진사이의『논어고의』(關儀一郎편집, 1925년 간행)를 저본으로 하여 완역한 것이다. 이토 진사이는 도의 형이상학적 공리공담을 철저히 부인했다. 공자의 도는 사람이 일상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도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또한 불가 이론에서 파생한 이기체용(理氣體用)의 설과 노장사상에서 나온 무욕(無欲)과 허정(虛靜)의 설 역시 거부했다. 진사이는 『어맹자의』상권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체로 체용의 설은 본래 근세에 일어난 것으로 성인의 책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당나라 청량국사 징관(澄觀)의 『화엄경소』에서 '체와 용은 근원이 하나로 현(顯)과 미(微) 사이에 구별이 없다'고 하였는데, 정이천(程伊川)이 이 두 구절을 인용하여 『역전서』에 써놓음으로써 유자들은 지극히 진귀하고 지극히 보배스러운 말로 간주하면서 그 설이 본래 선학(禪學)으로부터 온 것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 무릇 부처는 적멸(寂滅)로써 자신의 진체(真諦)를 삼았지만 (세상과 관련된) 사람의 일을 모두 없앨 수 없었기에 진체를 말하고 가체(假諦)를 말하면서 스스로 체용의 설을 내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음일양(一陰一陽)이 천도의 전체이고 인의(仁義)가 상행(相行)하는 것이 인도의 전체이니, 이것을 벗어나서는 이른바 체도 없고 또한 이른바 용도 없음을 결코 알지는 못하였다. 체용으로써 성인의 학문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이와 같다. 만약 체용을 세운다면 이는 이(理)가 체가 되고 사(事)는 용이 되며, 체는 근본이고 용은 말단이며, 체는 무겁고 용은 가볍게 된다. 『근사록』의 '도체존양(道體存養)'을 논한 여러 권질이 모두 학문의 근본이 되고, 『논어』·『맹자』 등의 책이 도리어 긴요치 않은 책이 되고 말며, '주정무욕(主靜無欲)' 등의 설이 홀로 그 체가 되고, '효제충신(孝悌忠信)'은 언제나 그 용이 되니, 그 도를 해치는 것이 특히 심하다고 하겠다. "(82쪽) 이토 진사이는 일원기(一元氣)에 입각한 기적 세계관에 입각해 주자학적 사유의 근본적 문제점으로 추상적 논리인 이(理)에 대한 편협한 집착을 지적한다. 도나 인이 인간의 본연지성으로서 절대적 선이라고 보는 주자학적 사유를 배제하면서 오히려 도나 인을 인간이 일상생활 속에서 가지게 되는 갈등 해결의 방법으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서, 진사이는 주자학의 결정적 폐단으로 공맹의 원래의 뜻에 내포되었던 인륜일용(人倫日用)의 실용적 측면과 왕도의 경세제민(經世濟民)적 측면을 망각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울러 그러한 인식이 인간관계 및 사회형성, 정치면에 있어서 잔인각박(殘忍刻薄)한 엄숙주의의 폐단을 초래하게 하였다고 비판한다. 이는 실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덕은 인·의·예·지를 총체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충(忠)·신(信)·경(敬)·서(恕)는 인의예지의 도덕에 도달하려고 추구하는 수양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시·서·예를 벗어나지 않았고 문, 행, 충, 신 이 네 가지로 가르쳤다. 공자의 학문은 충신으로 근본을 삼는다. 주자학의 '지경'이나 양명학의 '치양지'는 공자의 학문과 다른 것이다. 이토 진사이가 보기에 주자학은 초월적인 이(理)를 강조하여 인간의 자연스런 관계 형성과 내면의 욕망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현실과 괴리된 주자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맹의 말을 직접 보고 가르침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토 진사이는『논어고의』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또 말한다. 공자·맹자의 도를 배우려는 이는 당연히 『논어』·『맹자』의 공통점을 알고 또한 상이점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공자·맹자의 본래의 취지에 있어서 자연히 분명해질 것이다. 생각건대 천하에서 소중한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도(道)와 교(教)가 그것이다. 도란 무엇인가? 인의(仁義)가 그것이다. 교란 무엇인가? 학문(學問)이 그것이다. 『논어』는 오직 교를 말하고 도는 그 가운데에 존재한다. 『맹자』는 오직 도를 말하고 교는 그 가운데에 존재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다. 도는 우주에 충만하고 고금을 관철(貫徹)하며 존재하지 않는 장소는 없고 언제라도 그렇지 않은 때가 없다. 최고의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도가 인간 스스로 선으로 향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인은 이 때문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분명히 밝히고 인의(仁義)를 주장하고 『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악경(樂經)』을 가르쳐 사람들로 하여금 성인이나 현인이 되도록 해주고 만세에 걸쳐 태평성대를 만들어 주었던 것은 모두 이 교(教)의 공적이다. 그래서 공자는 오로지 교(教)만을 이야기했고 도는 저절로 그 가운데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맹자의 시대가 되자 성인으로부터 멀어지고 도는 인멸되어 이단이 벌떼처럼 일어나 각자 자기의 도를 주장하였는데 이를 통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맹자는 이 때문에 인의(仁義)라는 두 덕목을 분명히 내걸고서 후세에 이것을 가르쳐 주었다. 마치 밤낮이 교대하고 추위와 더위가 교체되듯이 치우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며 해와 별처럼 빛나면서 사람들이 미혹되는 바를 없게 하였다. 『맹자』 전 7편에서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말하면서 그 언어는 모순된 듯하지만 어느 하나도 인의(仁義)를 본지로 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맹자』의 '존심양성(存心養性)'·'(도덕적 바탕의) 확충(擴充)'·'(인에 몸을 두고서 의에 따라 행동하는) 거인유의(居仁由義)' 등의 설은 모두 교(教)로써 말한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오로지 도를 말했는데 교는 그 가운데에 있었다.『논어』·『맹자』의 두 책의 말은 다른 점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상보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이것이 그 공통점이다. 이것이 두 책의 요점이며 학문의 목적이다. 만일 이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결국 공자·맹자의 가르침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는 이는 잘 살펴야 할 것이다. "(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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