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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치고 너무 두껍다 생각했는데 술술 읽혀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그만 사자마자 다 읽어버렸다.
나는 여행 에세이를 좋아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남이 했던 고행과 그 안에서 느끼는 감동을 글과 사진으로 따라가다 보면, 저질 체력의 내가 감당하지 못할 장소로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몽골 여행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낸 세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 역시 너무나 즐겁게 읽었다. 다만 난 이런 여행은 죽어도 못한다 생각하면서. ^^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신혼여행은 한없이 늘어지고 선베드 아래 누워서 편안히 책 읽는 맛이지, 생각하는 나로서는 순례길을 신행지로 택하다니 이 부부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싶어 호기심이 일었다. 한편으로는 평발에 걸핏하면 다리에 쥐가 나는 운동 부족인 나에게 순례길은 꿈도 꾸지 못할 여행 코스가 분명하므로 색다른 여행기를 읽어볼 수 있겠구나 싶은 기대감이 생겼다.
내가 보기엔 스물여덟에 학위도 마치고, 결국 돌아오긴 했지만 해 보고 싶었던 봉헌 생활(독신으로 신을 위해 헌신하는 삶)도 해 보고 임용고시 준비도 해 보고, 사립학교 면접도 무려 5차까지 가 봤으며, 운명같은 사랑을 만나 결혼까지 성공한 사람이 도대체 왜 삶에 혼란을 느꼈어야 했을까 싶긴 한데, 이 책은 그런 잡다한 전사를 굳이 자세히 다루진 않는다.
사람마다 자기 삶에 기대하는 바가 제각각이겠지만, 내 길이라 생각했던 길이 결국 내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느끼는 혼란과 좌절감 속에서 저자는 순례길 걷기를 택한다. 구체적인 질문도 없는 답을 찾기 위해, 그것도 이름조차 낯선 순례길 비아 프란치제나를. 이 책은 그 길 위에서 보낸 56일 동안 본인은 물론 배우자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며 모난 부분들을 다듬어나가는 성장의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고백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몸이 힘들어지면 뾰로통하게 가시 돋힌 말을 내뱉고 나서 금방 후회하는 신혼부부의 칼로 물베기식 싸움이라든가 워킹스틱으로 칼싸움 흉내를 내며 아이처럼 뛰어노는 장면 등에 대한 묘사는, 순례길하면 떠올리는 진지함이라든가 고뇌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쩌면 이게 보통 사람들의 여행 방식 아닌가 싶어 오히려 저자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도 한편으로는 순례길, 순례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하루에 20km를 넘게 걷는 고된 일정 속에서도 깨방정을 떠는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하고 발랄한 여행기를 읽는다는 느낌이 오히려 더 좋았다.
조심성 많고 모험을 싫어하며, 계획된 일이 착착 진행되는 걸 좋아하는 안정지향형 아내와, 한곳에 발붙이지 않고 이것저것 탐색하며 새롭고 신기한 것에 매혹되는 남편은 길 위에서 만나는 새롭고 신기한 경험들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안정적인 버팀목이 되어준다. 아내는 돌발 변수 앞에 좀더 침착해지기 시작하고, 남편은 안정이 주는 편안함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여행 초반부에 별 이유도 없이 토라지거나 날선 대화를 주고 받던 이들은, 여행 후반부로 갈수록 눈 앞의 위기보다 위기를 극복하고 난 후의 서로를 대견해하고 길에서 만난 인연과 도움의 손길에 감사하는 마음을 깊이 새기는 모습을 통해 읽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준다.
또한, 책 속에서 저자는 순례길에 들었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하고, 여러 영화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이나 여행 중 맞닥뜨린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며, 길에서 만난 인연이나 멋진 풍경 등을 담은 생생한 사진을 아낌 없이 보여준다. 알프스를 통과하는 여행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눈이 부실 정도의 풍광을 담은 사진과 그 과정을 통과하는 저자들의 감흥이 고스란히 글로 전달되어 책을 읽는 나조차도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여행지에서 느꼈던 설렘과 감동에 혼자서만 도취되지 않고 독자에게 최대한 잘 전달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노력이 책 곳곳에서 느껴졌다.
결국 이 신혼 부부는 90일을 목표로 떠났으나, 여행 56일을 채우고 미완의 순례길을 마무리하고 있다. 삶에 조바심을 내고 명확한 답을 얻으려던 저자는 미완의 여행을 마무리하면서도 아쉬워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종종 어떤 길을 포기하는 것은 그 길을 선택하는 것보다 어렵다(341쪽)'는 것을 깨달았고, 바닥 친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하고 불완전함도 마주하며 채워나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실 삶 자체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먼 미래를 계획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저자처럼 인생이 실패작처럼 느껴진 적도 크게 없이 무난하게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이런 고행을 스스로 도전하고 성취하는 기쁨 또한 크게 느껴보진 못했고, 굳이 그런 것들에 대한 욕구도 크게 느껴보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에는 공주놀이만으로도 벅찬 신혼여행으로 굳이 이런 고행길을 택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충분히 저자에게 설득당했다. 이런 신혼여행도 충분히 즐겁고 낭만적이며, 어쩌면 각자 혼자였다가 부부로서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시작으로 이보다 더 의미있는 여행도 없을 것 같다는 사실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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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리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다. 신혼여행은 휴양지나 관광지로 떠나, 편하게 또 여유롭게 관광하다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의미에서 순례길은 그러한 관광이 목적인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의 부부에게는 생각이 달랐나 보다. 잘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도 아닌, 비아 프란치제나 순례길이라는 일 년 순례자가 2,500명밖에 안되는 환경이 잘 갖춰지지 않은 순례길은 더욱더 힘들고 도전적인 일이었을 테다. 그럼에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이유를 찾으며 책을 읽다 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당시 우리에겐 도전적이고 힘든 일이 필요했다. 결혼 생활의 시작점에 서 있던 우리는 봉헌 생활을 바라보고 각자 길을 걷다 나와서 다시 만난 상태였다. 우리의 영혼은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지쳐 있었다.’
결혼은 누군가와 평생을 동반한다는 의미이다. 누군가와 같이 살아갈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을 테고 어려움도 봉착할 텐데, 이 부부는 그러한 경험을 미리 겪어보고자 순례길을 택한 것이었다.
2. 잠은 어떻게 자셨어요?
일 년 순례자가 2,500명밖에 안 되는 비아 프란치제나 순례길에서 숙소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테다. 실제로 이 부부에게도 어렵게 다가왔다. 길에서 텐트를 치기도 하고, 몰래 불이 꺼져있는 캠핑장에 들어가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하고, 페이스북 · 웹사이트로 성당이나 숙소를 어떻게든 구해가며, 순례길을 이어갔다. 나에게 저러한 상황이 다가왔을 때, 길에서 텐트 치고 자거나, 인터넷으로 숙소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당장 ‘네.라고 답하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 대단한 것만 같다.
숙소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여러분도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3. 예산은 얼마나 들어요?
책에서 보통 순례길을 걸을 때 하루에 둘이 합쳐서 20유로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 부부는 신혼여행이기도 하고, 빠듯하게 생활하지 말자고 둘이 합쳐서 최대 50유로를 예산으로 잡고 갔다. 50유로로 숙박, 식사를 다 해결해야 했으나, 빠듯했나 보다. 56일의 순례길 신혼여행 중 열세 번째 날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다.
‘이거 밖에 없는 거야? 리나 가방에 좀 더 있지 않아?’
이후 부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택시 타지 않기, 최대 50유로 넘지 않기, 흥정해보기’ 등의 규칙을 정했지만, 규칙을 정한 바로 다음 성당에서 지도를 발견하고 홀린 듯이 20유로를 써버렸다. 그럼에도 이렇게 예산으로 문제가 생기고, 그걸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속이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4. 완주는 성공하셨나요?
순례길을 신혼여행으로 떠난 만큼, 부부는 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며 완벽하게 순례자의 규칙들을 지키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목적지인 ‘바티칸’에 버스를 타고 들어갔기에, ‘완주’를 성공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 부부는 완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미완의 순례길에서 ‘과정의 즐거움’을 배웠다. 언젠가 다시 완주할 비아 프란치제나를 기약하며, 우리는 빈칸이 남은 순례자 여권을 종종 열어 본다.’
우리는 때론 시도한 것에 대해 모두 성공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시도한 것을 해낸 과정, 그 내용을 중시하곤 한다. 이 부부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완주’라는 말 한마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이 했다는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글을 쓰다보니, 길어졌다. 아직 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만큼 나에게 다가온 것이 많은 책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 처음 시작은 서툴고, 어렵지만 계속해서 해나가면 쉬워질 것이다.
“순례길처럼 글도 처음 한걸음은 어렵지만 그 다음은 쉬워지니까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 ‘길 위의 낭만, 순례길 신혼여행을 꿈꾸다’는 길 위의 낭만처럼 ‘책 위에 낭만’이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은 감상을 남기며,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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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도움의 손을 내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꺼이 받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특히 나에게 있어 도움받는다 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내 처지를 인정하고 자존심을 어느 정도 버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도움을 받는 것도 염치없고 무례한 일이지만, 애써 내민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낯선 천사를 만나고 셀 수 없는 도움을 받았다. 그런 도움을 받을 때면 세상에는 아직 참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우리는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나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체감하기도 했다. P.103> 도움을 청하는것도 어렵지만 그렇게 성사되어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실로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을 잘 돕고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이 도움받을 처지가 되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를 보곤 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아갈 인생의 보물을 신혼의 시작부터 깨달을 수 있었던 저자는 행운아일까? 우리들은 행운을 쫒는가, 아니면 내가 행복을 선택하는가는 이 책을 보면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아픈 다리. 경제적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자신들의 길을 걷는 부부. <내가 미안해. 너무 맞는 말이라 한참 곱씹느라 그랬어. 그러고 보니 내가 정말 자주 그러더라고. 나는 조용히 내 허물을 끄집어내 이삭에게 이야기했고, 이삭은 이 부분 은 맞고 이 부분은 그 정도는 아니고 하며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같이 노력하면 되는 거라고 정리하며 우리의 싸움은 생각보다 쉽게 끝이 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 이삭은 몬떼의 기억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언덕을 넘자 'Monter'라는 이정표가 보였고, 조금 더 걸으니 마 을이 멀리 내려다보였다. "여기는 내가 달리기할 때 왔던데야. 리나 생각도 많이 했지.” P.261> 이렇게 아프게... 자신의 허물조차 내어주고 다시시작 하는 부부는 거져 행운이 들어오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지불하고 행복을 선택해 나가는 부부로 보인다. <쩡한 대치 상황 끝에 바지와 양말까지 돌려받고 우리는 그 지하 숙소를 나왔다. 미사에서 숙소 담당 신부님을 만나 우리가 겪은 일을 간단히 말씀드렸더니 신부님은 너무 미안해하시며 다른 피해는 없는지 물어보셨다. 물론 옷을 뺏긴다는 게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우리는 문득 순례길 내내 우리에게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정도로 끝난게 다행이었다. 돌려받은 양말에서는 쉰내가 났고 바지는 찜찜했지만 이 일 때문에 하루를 망치지 않기로 했다. 작은 일로 전체를 망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건 순 례길에서 배운 교훈일지도 모르겠다. 이삭은 신부님께 답했다. "괜찮아요. 근데 바지가 그 사람한테도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하하하.”> 이렇게 작은 일로 순간을 망칠 수는 있어도 하루를 망치지 않는 순례길의 선물을 받은 이 부부가 훗날, 이 길을 자녀들과 다시 걷고 순례를 마치는 아름다운 시간을 기다리고 싶다. 내일 여름휴가 가면서 기억해야겠다. 내 선택이 아닌 어쩌지 못하는 일로 순간은 망칠지언정 하루를 망치지 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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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워낙 좋아하는 나에게 최고의 책이다. 글은 어렵지 않고 일기 처럼 술술 읽기에 최적이었다. 결혼을 깊게 바라보고 있지 않은 나에게, 결혼이라는 현실과 로망을 같이 심어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대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고, 그 안의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술술 읽히는 재밌음에 책을 받아본지 며칠도 되지 않아 다 읽을 수 있었다. 솔직한 작가님의 감정들이 반영되어 더 몰입하며 볼 수 있었고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 때 즈음 다시 여러번 찾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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