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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은 문학동네가 기획한 '디 에센셜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단편소설, 시와 산문을 담고 있다. 정성스럽게 선별하여 수록한 작품들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여러 면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수록된 모든 글들을 아우르는 감상을 적는 것이 맞겠지만 읽는이의 능력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수록된 글 중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에 대한 감상만 적어본다.
희랍어를 배우는, 말을 잃은 여자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마음의 상실과 육체적 상실로 인한 고통의 시간과 회복 과정이 그려진다. 글자를 읽고 쓰고 말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의 의미를 여자의 길고 무거운 침묵 속에서 깨닫는다. 시력을 잃는 것이 침묵의 하나임을 남자를 통해 알게 된다. 언어의 침묵은 여자가 세상을 대하는 고통의 침묵이고, 시력 상실은 세상이 남자에게 던지는 시련의 침묵이다. 서로 다른 침묵은 희랍어와 모국어를 매개로 만난다. 만남의 시간 속에 서서히 침묵 속의 응어리를 깨뜨려간다.
그들이 겪고 지나가는 순간들을 바라보려면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 한다. 풍경과 소리, 펜 끝의 촉감, 작은 새의 몸짓, 손바닥에 쓰여지는 글자, 눈물과 피, 숨결, 몸 속 깊은 곳의 몰아침을 받아들이기 위해 온몸의 감각을 깨워야 한다. 끝없이 가라앉는 느낌도 겪어야 하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함도 만나야 한다. 글자와 언어를 내뱉는 것의 무게를 감당해야하고 끊임없이 던져지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어느 순간은 매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기도 하고 무겁게 짓누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희미하지만 희망의 기운을 느낀다. 몸으로 맞서며 느끼는 감각의 신비로움을 받아들인다.
각 장을 채우는 단어들 중 몇 개에 눈길을 준다. '어리석음, 걷는다, 아름다움, 모른다'가 그것이다. 남자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한다. 쉽게 긍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게 하는, 가식없는 고백이다. 간절한 호소다.
여자는 계속 걷는다. 마음을 기댈 곳 없는 고독의 걷기다. 말로 다할 수 없기에 온몸으로 전하는 생존을 위한 애씀이다. 상실의 아픔을 담은 방황의 걷기를 거쳐 존재를 의식하는 깨어남의 걷기로 변화할 수 있는 실마리로 읽힌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으로 읽는다. 서서히 회복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으로 읽는다. 살아있어야, 깨어있어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고통과 소멸과 죽음을 말하면서도 선하고 견고한 아름다움을 말한다. 많은 것을 잃는 중에도 결코 잃고싶지 않은 기억 속의 아름다움, 강렬한 것이고 생생한 힘이라 한다.
여자는 자신이 한 행동을 남자가 모른다고 표현한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위해 한 행동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잃어버린, 잃고 있는 것들을 대하는 여자와 남자의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몸부림을 본다. 손목의 상처를 감춘 흑자주색 밴드, 희미한 형체를 알아보려 애쓰는 찡그림에서 살고자 하는 간절함을 본다. 끝없는 질문과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 어리석음과 모름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다. 걸으며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근원이기도 하다.
조금씩 소멸해가는 감각들은 진정으로 느껴야할 것들까지 소멸시킬 수 있다. 자칫 바닥을 모를 구덩이로 밀어넣을 수 있다. 무엇이 이 상황을 견디게 할 수 있을까? 내면 깊이 있는 진실한 마음이 던져주는 소리, 관계에 대한 갈망이 상실과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아닐까. 여자와 남자의 만남에서 그 소리를 듣고 천천히 형성되는 관계를 지켜본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들이 위로와 치유의 싹으로 변화하는 것을 본다. 암흑의 상태에 스며드는 한줄기 빛을 본다.
그들은 서로의 아픈 곳을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며 서로를 지탱해주는 지지대가 될 수 있을까? 섣부르게 답을 할 수는 없다. 여자의 손끝에서 마음을 느끼는 남자와 힘겹게 입술을 떼어 소리를 내려는 여자에게서 조심스럽지만 새로운 걸음을 볼 뿐이다. '빛도 소리도 없는 어둠속에서 내부로부터 산산히 부서지는 무언가를 느낀다'는 남자의 소리를 들을 뿐이다. 스스로 힘들게 첫 음절을 토해내는 여자의 모습을 손에 힘을 주며 바라볼 뿐이다. 큰 기대보다 옅은 미소로 조용히. 여자가 자신의 의지로 언어를 찾기로 하고 선택한 언어 희랍어, 그 시간을 마치며 한결 부드러워진 숨결들을 느낀다.
이미지 캡션
함께 수록된 산문에서 이 소설에 반영된 소재를 만나는 재미는 여러 글들이 모은 이 책이 주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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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소설은 거의 다 구입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10년전부터 주의깊에 읽고있는 그녀의 소설은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을 찌르고 있습니다. 인간이 겪을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슬픔, 괴로움, 그리고 어쩔수 없는 폭력 등이 내밀하게 서술되고 있는 소설은 서사로 읽히기 보다는 철학적으로 읽혀집니다. |
![]() ![]() 저의 최애 작가님, 한강 작가님! 시작은 채식주의자, 무척 충격적이었고 신선했다. 작가님의 책을 한 권씩 찾아 읽게 되었다. 소년은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무척 힘들었던 책이었지만 두고 두고 권하고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구매한 디 에센셜 한강 : 장편, 단편, 산문, 시로 구성된 이 책은 선물 같다. 다채롭고 다양한 문학을 접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잔잔하고 따스함이 느껴지고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작가님의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다음 책을 또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한강 작가님의 첫 입문 작품으로 이 책을 권하고도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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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은 한국에서 특별한 해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관심을 두고 지켜본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 즈음에 투표를 하게 되는데 이번 명단에서 우리나라 한강 작가의 이름이 보이길래 간절한 마음으로 투표했었다. 그리고 노벨문학상 발표 소식에 우리나라 문학계와 문학 독자들은 축제를 경험하였다. 마치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다가오는구나. 내가 살아있을 적에 동시대의 작가가 수상했다는 건 분명 감동할 만한 일이다. 내가 읽은 한강 작가의 책 외에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디 에센셜 한강』을 골랐다. 장편 『희랍어 시간』과 단편 두 편, 시와 산문이 수록되어있어 한강의 작품 세계가 망라되어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사어에 가까운 희랍어를 배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희랍어 시간』은 언어가 가진 역할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말을 잃은 여자가 희랍어를 배우고, 눈을 잃어가는 남자가 희랍어 강사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대화 혹은 쓰임 때문이라고 여겼다. 학문적으로 좀 더 깊이 있게 파고드는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말을 잃은 여자가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못할 텐데도 여자는 희랍어 강의에 꼬박꼬박 나온다.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여자를 지켜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희랍어 강의가 이루어지는 아카데미 외에 각자가 가진 기억들은 모두 고통이다. ![]()
여자는 아이의 양육권을 잃고 홀로 지낸다. 말을 잃은 여자는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어 아이를 되찾아올 경제적 상황마저 좋지 않다. 그녀가 희랍어를 배우는 건 낯선 언어 때문에 잃었던 말을 되찾았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희랍어를 배우는 작업은 언어를 되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필름 조각을 통해 해를 바라보는 아이의 행동을 배웠던 남자는 독일에서의 기억과 잃어가는 시력으로 고통스럽다.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195페이지, 『희랍어 시간』 중에서)
침묵은 언어를 향한다. 언어가 침묵을 향해 나아간다. 침묵은 또 하나의 소통일 수도 있다. 손바닥에 써 내려간 글자들이 춤을 추지만, 그 춤은 희망으로 향하는 것만 같다. 말을 잃은 여자가 언어를 향해 달려가고, 눈을 잃은 남자는 언어를 통해 침묵으로 향한다. 그들에게 있어 침묵은 어떤 간절함이다. 말을 하겠다는 것.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 가끔 눈이 부옇게 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꿈을 꾼다. 답답한 상황에서 꿈을 꾸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다만 답답함을 대변하지 않았나 싶다. 꿈을 꾸고 난 아침, 내가 눈을 뜨고 있다는 것.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
언어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기록도 언어가 있기에 가능했다. 언어를 통해 빛에 가까워지는 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2024년 또 하나의 아픈 역사가 재개되었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인가. 한 사람의 잘못된 시각이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촛불의 역사도 언어에 의해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게 된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파악하기에 좋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엄선하여 선택한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시, 산문이 수록되어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한 소녀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추구하는 세계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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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고 쓰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 <디 에센셜 한강>을 읽고 "(독자)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강' 둔치를 서성일때마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한 구절인지 내안의 목소리인지 모를 외침이 들려오곤 했다. 한강 작가의 몇몇 소설들을 간헐적으로 펼쳤다덮기를 거듭하다가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마치 신호탄이 터진 것마냥 이제는 이 강을 건너가봐야겠다는 마음이 격하게 일었다. 당시 '시적인 산문'이라는 세계인의 찬탄처럼 지금은 산문과 운문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가며 현실과 환상 사이를 넘나드는 작가 특유의 서사와 묘사를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지만, 그땐 어떤 책부터 골라 읽으면 좋을지 미처 알지 못했다. 평소 작가의 생각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글이 산문이고, 거기에 담긴 것들이 고스란히 뻗어나간 이야기가 곧 소설과 시라 믿어왔기에 많은 책들 중에서 <디 에센셜 한강>을 집어 디딤돌로 놓고 한강을 건너가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장편소설 한 편, 단편소설 두 편, 시 다섯 편, 산문 여덟 편으로 채워진 책에 대하여 감히 이렇게 한 줄 평을 해본다. "인간이 따로 또 같이 모여 사는 세상은 어찌하여 이토록 아름답고도 잔인한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작가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 당연하게도 작가가 시작의 문을 열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독자가 뒤따라 혹은 둘이서 나란히 책길을 걸으며 작가의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어느새 문고리가 독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 독자(讀子)이자 독자(獨自)로서 책문을 닫으며 내가 발견한 것들을, 그러니까 산문 속 씨앗이 영글어 소설이나 시라는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한 것들을 나누려 한다.
어릴 적부터 교사인 아버지가 새벽마다 작가로서의 루틴을 고수해온 모습을 회상하며 쓴 글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아버지에 대하여 언제가는, 구체적으로는 머리카락이 희끗해질 무렵에 글로 쓰기리라 다짐한 저자에게 그날이 온 것이다. 화자가 친구의 외삼촌이자 고교 시절 사랑했던 '당신'의 안부를 물으면서 시작하는 단편소설 「파란 돌」에서도 이 같은 장면을 찾을 수 있다. 조금만 다쳐도 피가 멈추지 않는 병과 한평생을 반려하다 죽은 당신의 나이와 같은, 서른일곱 살이 된 주인공의 가르마 오른쪽에도 흰머리가 제법 났다고 묘사된다.
시에서 '늦은 저녁'이 그저 어느날의 한때일수도 있겠으나, 인생의 황혼기 또는 삶의 끝자락으로 상상해본다. 흰 밥에서 피어나는 김은 망자를 위로하기 위해 차린 제사상 위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온갖 고통의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가기 마련인지라 마음을 추스리고 산 입에 다시 밥을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의 남은 생을 살아가야지, 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가짐으로 읽힌다. 앞서의 소설 「파란 돌」에서 '당신'이 꿈에서 개울가를 걷다가 파란 조약돌 하나를 주우려고 손을 뻗으며 불현듯 깨달은 것과도 이어진다. 그 파란 돌을 주우려면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이다.
여태까지 읽어본 한강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찾아내려는 개개인의 노력과 의지'이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역사라는 거대한 시공간 안에서 이것을 그려낸 작품이라면, 「희랍어 시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인정사정을 들여다보는 가운데서 깨닫게 되는 경우이다. 희랍어 강사인 '그'와 수강생인 '그녀'는 각각 빛과 말을 잃은 존재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과거에 낯익은 모국어가 아닌 낯선 외국어로 '빛'을 발견한 경험이 있다. 그는 십대에 이국땅에서 독일어로 정체성을 재구축했고, 그녀는 모국에서 불어로 잃었던 말을 되찾았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산소와 물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울 테지만,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 말과 빛의 상실은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히랍어 중에서 '수난을 겪다'와 '배워 깨닫다'라는 뜻을 가진 두 동사의 모양이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이 두 가지 행위가 비슷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각기 다른 소중한 무엇이 사라져서 견디기 힘든 생활을 하지만, 이런 질곡의 세월이 그와 그녀가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의 다른 이름은 아니었을까. 또한 고대 희랍어에는 능동태와 수동태 외에도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나타내는 '중간태'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재귀(再歸)'라는 단어가 '본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뜻하므로 우리 몸과 마음에 비추어본다면 '회복'의 의미로 볼 수 있으리라. '그'라는 세계와 '그녀'라는 세계의 존재를 인식하고 두 세계를 연결하는 언어가 희랍어라고 한다면, 비록 먼 길을 돌아왔지만 재귀 본능이 두 사람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인 서로의 곁으로 불러들였기에 둘의 불확실한 사랑을 중간태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는 글로서 아니, 온몸으로 타자에게 표현하고 알려주는 사람 같다. 글 쓰기든 그림 그리기든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각자의 삶으로부터 구원/버림 받을 수 있다고.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에서 어린 시절, 술래잡기를 하다가 이마를 다쳐 봉합 수술을 받은 언니가 걱정과 두려움에 빠진 동생에게 이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아. 진짜 금방 낫는대. 시간만 지나면 낫는데. 누구나 다 낫는데." 그렇지만 함께 어른의 세계에 다다르기까지 둘의 오해와 애증은 점점 깊어만 가고, 끝내 언니는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지만 대체로 흉터가 남을지언정 아물어 통증은 사라지고 고통의 시간도 일단락되기 마련이다. 살아생전 삶으로부터 줄곧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한 언니에게 어떤 면에서는 죽음이 삶의 구원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스스로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으나 짧든 길든 시간만 지나면 낫는다는 사실이 거짓이 아님을 생의 끝에서 보여줬으니 말이다. 책의 뒷표지에서 연필을 움켜쥐고 글을 써내려가는 저자를 볼 수 있는데, 그렇게 그는 계속 쓰고 사유하면서 삶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불어 삶이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에게 던진 숙제, 그것을 완전히 풀지 못하더라도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이 어쩌면 삶이 진정으로 기대하고 품고 있는 답이 아닐까 싶다. 그 길을 걷거나 그 강을 건너는 데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독자들과 한강 작가가 함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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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느 10월의 저녁과 다름 없는 10일 목요일, 무심코 들어온 인터넷서점에서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수상축하메시지를 쓰고 나서 한 순간 도파민이 분출되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을 누구와 나눌 수 있을 지 그 밤에 생각했습니다. 책을 주문하고도 일주일 후에 받았지만, 기다림이 길다고 생각하거나 올 책을 하루종일 기다리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읽은 후였지만, 책 띠지에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문자를 볼 수 있는 것은 독자에게는 또 다른 기쁨이기에 책을 만드는 사람부터 그것을 포장하고 배송한 모든 이들에게 이 기쁨이 삶의 한 순간에 닿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저자의 글과 책의 폰트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딱 그 자세로, 그 글자체로, 그 내용으로 있는 책. 몇 년 새 한림원이 대단하게 보였지만, 올해 특히 그들의 시선에 찬탄한 까닭은, 동아시아의 젊은 여성 작가를 선정하며 말한 이유가 정확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서가에 그 자리에 있어 매일 눈에 익기도 하지만 새로운 글로 눈에 들어올 때 다양한 느낌을 줍니다. 한 권 분량의 문학상 수상작들 사이에 있을 때나 몇 년만에 새로 출간한 책 소식을 듣고 글을 보았을 때. 책에 들어있는 글자수와 나중에는 기억에서 휘발되어버릴 글자들의 무게,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 전만 못할 때 '이 작가에게 어떤 일이 있었나 보다' '건강이 좋지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그의 안녕을 빌게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다음 이야기에서 그 힘이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전의 힘을 다 써버리고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전 힘을 응축시키면서 다른 힘을 조금씩조금씩 만들어 이 문장들을 썼을 것 같은 시간들. 사유와 관찰이 그 시간들 속에서 응축되어 혼화된 것 같은. 유연하여 휘어지는데 가녀리지는 않은. 탄성력이 좋거나 굵은 선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희랍어 시간>을 읽으며 이래서 작가님의 글을 '좋아했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만난 건 <소년이 온다>가 먼저였을 것 같은데 <희랍어 시간>의 처음 몇 장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상실을 지닌 두 사람이 남녀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치 한국이 아니라 어느 작은 나라의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마지막 몇 장은 이 긴 이야기가 마치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거꾸로 본 듯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모든 것의 이름이 있기 전의 오로지 '있다'만으로 충분했던 어떤 존재로. 소설은 듣는 것이고 시는 보는 것이라 생각한 관념선을 지우며. 동시에 최인호 선생님에 관한 글이 무척 좋았습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는 선생님의 글이 슬프다고, 무척이나 암울하다고 하는데 그 긴 이야기 끝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이 헛된 기대나 무모한 긍정이 아니라 바로 아름다운 것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강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네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p.322)."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때가 머릿속에서 현재처럼 재현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사자일 수도 있고 옆에 있거나 전혀 상관없이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일 수도. 그래서, 수십 년 전 그 때의 그 사람들이 기억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그렇다고 엄청나게 거창하고 드러나는 일은 아닌.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그런 과거가 현실이라면, 그리고 현실 어딘가에서 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면 분명 이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로 재현된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동시에 심사위원들이 선정하면서 많이 고심했다고 하는 김유정 문학상에서의 <작별>은 <흰>과 함께 선생님이 존재와 소멸을 상실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우리 둘이 있다는 아름다움으로 가득채웠음을 보았습니다. 시간과 공간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어떤 것도 그것을 훼손하거나 마모시킬 수 없는 것임을, 그런 것이 이 세상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눈이 부셨습니다. 한국에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있는지, 그들이 꺼내는 문장들과 문체들이 세상을 다 담고도 남을 만큼 얼마나 다양한지 어쩌면 문학상이라는 기회를 통해서 이방인들이 알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기자들이 알리지 못하는 현재와 과거, 개인과 사회의 불균형한 추를 작가들이 어떤 노력으로 조금 더 괜찮은 현재로 만들어가려고 하는지도. 노벨상 후보 작가들 중 누가 낫다고 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들의 원형을 찾아 모은다면 선생님의 세계일 것입니다.지금 시대에 문학이란, 소설이란, 글이란, 무엇인가. ..... 선생님의 글들을 통해 길을 만들어 봅니다. 선생님의 다음 글 역시 힘이 떨어지지 않으며 어떤 문장이라도 독자의 머릿속에서 파도가 밀려왔다 지나간 모래사장 위 글자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인생을 살아본 누군가의 말과 존재 덕분에. 춘향이라고 부르다가 그렇게 부르시지 않은 선배님이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이미 지난 세기에(^^) 알려주셨기 때문에, 그 시간이면 책상에서 글을 쓰시고 계실 아버지 덕분에, 중학생 딸에게 종이 피아노에 대한 아쉬움을 한이 되게 하려 하지 않은 어머니 덕분에. 선생님의 시 <저녁의 소묘4> 표현으로 인사드립니다.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은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인 시적 소설, 소설과 하나인 작가. 그래서, 선생님의 언어와 존재는 반짝입니다. 항상 평안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날 보내세요! # 보르헤스 # 최인호 # 한강 # 한승원 # 디 에센셜 #희랍어 시간 # 시와 산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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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리뷰 소년이 온다는 이미 읽었었고 노벨문학상 수상하신 이후로 작가님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서 처음 선택한 책이 이 책이었습니다. 작가님의 소설 외에도 산문이랑 시를 볼 수 있어서 그게 정말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작가님 산문이 정말정말 마음에 들어서 산문집을 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희랍어시간도 섬세하고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그 감성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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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그의 이름이 스웨덴 한림원에서 울려 퍼질지 알지 못했다. 다만 한강이라는 작가가 맨부커상 등을 받아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일찍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한국은 여간 시끄럽지 않다. 대통령은 위헌적인 계엄으로 탄핵당하였지만, 헌재는 아직도 결과를 통보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제 그녀를 포함한 문인 414명 '尹 탄핵 인용' 성명 문학가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그녀는 말한다. 과거가 현재를 구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우리가 미래를 구해야 한다고. #한강 #탄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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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님의 책 중에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두권을 읽었는데 디 에센셜에는 단편과 시. 수필을 함께 읽을 수 있게 엮어놓은 책이라고 해서 구매해보았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다시한번 축하드리고싶어요 한강 보유국이라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 |
|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의 작품으로 1부는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2부는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 파란들이 수록되어 있고, 3부는 시로 어느덧 늦은저녁 나는 등 5편, 4부는 산문으로 종이 피아노 등 8편이 수록되어 있어서 한번에 읽는 것보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조금씩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