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시라는 장르는 아무리 곱씹어 읽어도 한눈에 이해가 잘 안 되는 외계어로 느껴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다이어리에 베껴 써서 넣어준 연애시 이상의 묵직한 시가 등장하면 긴장하게 되고, 내가 따로 구입해서 읽은 적도 거의 없다. 책의 띠지에는 "시를 잊은 그대들에게 시 읽기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면 더없겠다."라고 쓰여있다. 이런 나에게도 시 읽기에 대한 영감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호영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내려갔다. 책은 시 번역가의 인터뷰 산문이라고 되어 있지만, 번역 자체가 문학 쪽에서는 변방의 업인데다가 그 중에서도 가장 소외되어 있을 법한 시 번역을 하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어서 결국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인터뷰집 하면 그 인물에 집중하게 되고 인터뷰어는 뒤로 물러선 느낌을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읽은 대부분의 인터뷰집이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 책은 읽고 나니 인터뷰이들 개개인의 모습에 집중하기 보다 그들의 삶과 일에 대한 가치관 등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인터뷰어로서의 은유 작가가 오롯이 드러나는 느낌이 새로웠다. 언니가 번역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번역된 책을 읽을 때 좀더 내 취향과 내 선호도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은 지독히도 안 읽히고, 어떤 책은 너무 어색한 번역투가 느껴지기도 했으며, 어떤 책은 너무 우리 입말로 변형된 느낌이 들어서 원작의 느낌이 제대로 잘 반영된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즈음 언니에게 어떤 방식으로 번역을 하려고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자기 생각에는 원작에 기본적으로 충실하되, 우리 글처럼 잘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함께 살 때 언니는 작업 중에 늘 나에게 맞춤법이나 문법적인 내용을 확인했고, 내가 준 어문규정집이나 국어 문법책을 수시로 뒤적였다. 책 속의 역자들도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조금씩 다르면서도 결국은 비슷한 느낌이다. 출발어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을 도착어의 특징을 고려하여 최대한 가깝게 전달하려는 그들의 고민과 그 안에서 생겨난 그들만의 방식이 인터뷰 과정에서 충분히 공감되도록 전달된다. 심한 직역도 허용하는 박술의 방식이 언뜻 보면 호영의 방식과 대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터뷰 전체의 내용을 보면 '이 언어로 쓰일 수 없는 외향'을 가진 요철을 아름답게 구성한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번역을 통해 답지를 만들고 싶지 않은 소제나 이미지와 리듬을 살리는 번역을 하고 싶은 승미의 방식과도 유사하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원문을 읽었을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가져올 수 없다'는 점도 그들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시의 아름다움을, 출발어로 쓰인 그 텍스트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구글 번역기가 날로 발전하고 있어서 번역가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가장 먼저 퇴출될 지도 모른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실제로 우리 언니도 우스개처럼 내 직업은 정말 불안하다고 말했지만 문학의 이런 미묘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인공지능이 고스란히 살려내는 날이 정말 올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날은 어쩌면 생각보다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다 읽진 않고 절반 읽고 리뷰를 씁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세요. 언어를 고르고 쓰는 번역가들의 귀한 이야기를 은유작가님의 따스한 시선을 통해 들을 수 있어요. 번역가라는 직업이 나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시를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한다면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이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책을 다 읽은 후 함께 얘기해보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