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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란 소설집을 좋아한다. 중증 환자 남편과 함께 요양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가끔 며칠씩 밖에 나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알콜중독자, 모든 일에 티격태격하다 이혼 결심까지 하고 떠난 속초 여행에서 음식과 술 궁합을 여실히 보여준 부부, 우연한 계기로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다 돌아와 술 마시며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사를 털어놓는 시이모님, 갑자기 사라진 애인의 누나와 술 마시다 애인이 자신이 원하던 카메라를 사가지고 오다가 그 카메라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 예술인 숙소에서 황혼 무렵에 공포와 환희를 느끼며 위스키를 마시는 실명 직전의 소설가, 14년 만에 만나 밤새 술을 마셨지만 여전히 서로의 속을 알지 못하는 여고 동창생들, 서로가 이유도 모른 채 헤어져 현재까지 상대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남녀. 술 없이 소설 쓰지 못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술로 인해 이야기가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책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분명히 작가는 술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풀어낸 술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것이 이 책 「오늘 뭐 먹지?」를 읽게 된 계기다.
술꾼이 딱 그렇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음식 뒤에 ‘안주’ 자만 붙으면 못 먹을 게 없다. 내 입맛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였다. 어릴 때 입이 짧았던 나는 술을 마시며 입맛을 무럭무럭 키워왔는데,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돼지비계나 막창이 극강의 안주로 거듭나는 데는 차고 쌉쌀한 소주 한잔이면 충분했다. p.009
어려서부터 편식이 심했던 작가는 육고기에 대한 편식이 심했다. 소불고기와 통닭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작가가 순대를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술 덕분이다. 순대를 먹고 나니 순대국도 쉬워졌다. 삭힌 홍어도 가능해졌다고 한다. 나 또한 편식이 심했다. 순대, 닭발, 곱창, 막창, 반건조 생선구이 등을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술 덕분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술자리 안주 중에 순대가 있었는데 “숙녀가 어떻게 순대를 먹어요?” 라고 발끈했다가 선배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그날 나는 술에 취해 순대를 먹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별명이 ‘순대’가 되었다. 아직도 먹지 못하는 게 있다면 회나 물에 빠진 고기가 들어있는 국밥 들이다. 이들 음식은 술과 함께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쉽게 입 속으로 집어넣을 수가 없다. 작가와 나는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비슷하다. 작가가 김밥을 아름다운 음식이라고 칭했을 때는 환호했다. 뭐니뭐니 해도 단무지, 달걀, 시금치, 당근, 우엉 등이 들어간 고전적인 스타일의 정통 김밥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작가가 말한 내용물 중에 햄까지 포함시켜 약간 진밥으로 조금은 엉성하게 말아놓은 김밥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집에서 만든 김밥을 좋아한다. 작가는 김밥을 통으로 먹는 게 좋단다. 통김밥을 들고 소주 한 잔. 그렇게는 안 먹어 봤는데...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 그밖에도 새우젓과 명란달걀찜, 조개젓과 버섯죽, 땡초전, 해장으로 먹는 물냉면, 난도질한 땡초와 멸치를 넣고 물, 호박, 마늘, 된장 넣고 자작하게 끓인 깡장과 함께 싸먹는 호박잎쌈, 오지지 무침, 시래기 나물, 가죽 나물, 냄비 국수, 가을 무 넣고 조린 갈치 조림, 감자탕 국물, 꼬막 조림, 어묵 국물 등등. 이 모든 것이 작가에겐 안주가 된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음식들이다. 자기 입맛과 속에 맞으면 최애 음식이 되는 거다. 그런 작가도 남 신경 쓸 때가 있다. 독자를 만났을 때다. 이 책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너무 재밌어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이곳에 짧게 소개해 보겠다.
졌다, 간짜장에게
오래전부터 단골로 가는 중국집이 있다. 원래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아 어딜 가도 짬뽕을 시키는 내가 그 집에만 가면 간짜장을 시켜 먹는다. 그 집은 팔보채도 맛있다. 그래서 작은언니와 나, 애인 이렇게 셋이 가면 팔보채 중짜를 시키고 간짜장 이 인분을 세 그릇으로 나눠달라고 해서 먹으면 딱 맞는다. (중략) 언니와 카운터의 여자 매니저가 계산을 할 동안 나는 뒤편에서 냅킨으로 짜장이 묻은 입을 쓱쓱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언니가 나를 돌아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선아, 네 독자시래.” 나는 입을 닦던 동작을 멈추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며칠 감지 않은 머리에 화장은커녕 세수도 안 한 얼굴에 허름한 차림에 슬리퍼에, 안 봐도 내 꽃이 머릿속에 쫙 스캔되었다. p.241~243
이 작가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단골집 메니저가 오래전부터 자신의 팬이었음을 알고 난 후 경악을 한다. 자신의 팬이었다니 좋아할 법도 한데 감동보다는 부끄럽고 당황하여 눈물이 났단다. 오래전부터 안 좋은 꼴로 오로지 간짜장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와서 팔보채의 전복 개수가 모자란다고 따지고 간짜장이 빨리 안 나와서 닦달한 적도 있고 술 먹고 크게 떠든 적도 많았단다. 요즘말로 진상을 떨 대로 다 떤 거다.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해주고 난 후부터 번민이 생긴다. 간짜장은 먹고 싶은데 그 집으로 가도 될는지... 그러나 그 집 간짜장은 결코 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간다는 작가. 그렇지만 덜 추하게 먹으려고 애쓴단다. 권여선이라는 작가는 나의 기대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슬프면 슬프니까, 기쁘면 기쁘니까 술을 마셔야 한다. 맛있는 술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은 필수다. 나는 “오늘 뭐 먹지?”가 당연히 “오늘 안주 뭐 먹지?”로 바뀌는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오늘은 무엇으로 술을 한잔 할까 기대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거다. 이런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고래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 |
|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각종 상을 수상한 이력의 소설가 권여선이 펼쳐내는 음식 이야기라니, 책을 받고는 읽기도 전에 군침이 도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했다. 출판사도 밝혔듯, 사실상의 안주 산문집 ㅎㅎ 마시지 못하는 술이 당기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