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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과 남성 모든 사람이 성차별적 역할 패턴, 지배,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사실"(314)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며칠 전 아침 뉴스에서 저출산에 대한 해결책으로 동남아시아 여성의 가사도우미 도입방안을 논의중이라고 했던가, 뭐 그런 내용을 스쳐들었다. 이것이 어떻게 저출산에 대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그 연결고리가 궁금해서 뉴스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이런 성차별, 인종차별, 노동차별이 되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이런데 노예제가 있던 시대를 살아야 했던 흑인여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라는 소설은 시간여행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현시대의 여성이 과거 노예제시대로 가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것은 특별하다고 할 것이 없지만 문제는 현시대에 독립적이고 유능한 여성이어도 노예제 시대로 돌아갔을 때는 혼자 돌아다닐수조차 없는 흑인여성노예일뿐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시각의 전환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역시 은연중에, 시간여행이라는 공상과학소설속에서도 '흑인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를 생각해본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선입견으로 가진 내가 좀 많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노예해방을 위해 흑인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차별에 대한 반대운동은 잠시 뒤로 미뤄야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었던 것이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선뜻 확신에 찬 대답을 하기 힘들다. 이 논리는 정치와 연관되어 진보와 혁신을 논하기 전에 중도주의자들과 협력하여 권력과 주도권을 잡은 후 소수의 권리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맞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현실성을 따진다면 더욱 할말이 없어진다. 노예해방을 위해 - 이 말에서 '노예'는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여성의 투표권을 얻기 위한 운동에서 '여성'은 백인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예해방을 부르짖던 흑인남성들은 해방 이후 백인남성들과 같은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흑인여성을 바라보게 된다. 심지어 여성해방운동을 하는 흑인여성조차 여성성을 강조하며 남성의 주도권하에 있는 것을 당연시한다.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다르지만 노예시대에 흑인여성은 흑인남성과 똑같은 노동을 해야했으며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남성에게 종속되기를 거부하면 여성스럽지 못하고 드세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는동안 수많은 밑줄긋기를 하며 다시 읽어보게 되는 내용이 많았다. 벨 훅스는 다시 페미니즘의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과 남성 모든 사람이 성차별적 역할 패턴, 지배,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하려고 한다"(314)고 말하고 있는데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성구별을 하지 못하고 다시 성차별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에서 말하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때까지 백번이라도 필사를 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쓸모없는 소맘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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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가 아닙니까?
벨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다. 1952년생이니 2차 대전 이후 미국 사회, 가난한 흑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인종과 성적차별, 계층적 차별까지 경험했던 훅스의 생애사적 기억은 그의 이론과 활동의 자양분이 됐다. 벨훅스, 그의 외가 증조할머니의 이름, 벨 블레어 훅스에서 따온 것으로 꽤 상징적이다. 노예제 역사에서 시작, 해방 후에도 겪어야 했던 자본주의 시장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역사를 겪은 흑인 여성의 삶이기에.
이 책은 42년 전, 1981년에 쓴 것이다. 19살 때 초고를 그리고 10년 후, 박사학위를 받고 출간했다고, 당대 미국 페미니즘의 인종차별과 흑인해방운동의 성차별을 모두 비판하면서 흑인 여성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페미니즘과 사회정의의 방향을 찾는다. 현실을 넘어서는 연대와 해방의 정치학을 언어화하려는 노력으로, 당대 앤젤라 데이비스의 <여성, 인종, 계급>과 나란히 흑인 여성 페미니즘 사상과 실천을 미국 여성학 중심으로 부상시켰다.
<난 여자가 아닙니까?>, 19세기의 흑인여성인권운동가이자 작가인 소저너 트루스가 1851년 오하이오 여성권집회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에서 따온 제목, 난 여자가 아닙니까, 이 한 문장에 압축된 모든 것들... 훅스는 여기서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들이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 이런 현실에 대해 기존 페미니즘과 흑인 해방운동 모두 적절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한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노예제 아래에서 노동력착취와 성적 폭력으로(영화 “뿌리”의 주인공 킨타쿤테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꽤 오래전에 우리나라 TV에서도 방영된 드라마 작품, 원작은 알렉스 헤일리 소설“뿌리”다. 그의 딸 키지가 열여섯 나이에 다른 사람에게 노예로 팔려 가는….), 고통받아 온 여성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도 저임금노동자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거칠한 강인한 가모장으로 정형화됐다. 현대 자본주의, 가부장제, 인종주의에 대한 훅스의 비판은 철저하지만, 이런 억압과 차별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과 저항 가능성에 대해서는 따뜻한 희망적인 눈길로 보고있다.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을 기준으로 설정된 규범적 여성성에서 제외됐고, 이러한 배제는 해방이나 강인한 여성이 아닌, 묵묵히 참아내는 능력으로 인식되면서 변혁의 힘이나 해방의 상상력은 제한된다. 그래, 그렇다면, 40여 년이 지난 지금, 훅스가 그렇게 강하게 비판했던 것들이, 어떤 모습을 변했을까, 아쉽게도 한 치의 변화도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외형적 변화, 이는 본질의 변화가 아닌 주변 환경과 사회 여건이 바뀜에 따라 보이는 현상일 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난 여자가 아닙니까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과 여성됨의 의미와 기준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우리 사회 속에서 난 여자가 아닙니까라는 말은 어떻게 들릴까, 여성은 누구이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여성은 무엇이며, 페미니즘에서 여성은 무엇일까, 같은 여성지만, 백인, 중산층이라는 의미와 그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김보명의 해제 첫머리에 나오는 이 책 313쪽의 인용문의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단순히 남성 우월주의를 끝내려는 투쟁도 아니고, 모든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게 해주는 운동도 아니다.”
모든 불평등, 즉, 성별, 인종, 계급, 지배, 피지배, 이데올로기, 서구문화의 여러 결에 스며들어있는 이런 것들을 근절하겠다는 결심이다. 미국 사회를 재조직해 제국주의, 경제적 팽창, 물질적 욕망보다 사람의 성장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억압적인 요소의 근절과 사람이 무엇보다 우선인 사회를 만들 결심. 이것이 바로 훅스가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다.
이 울림이 우리 사회에서 공명하기를, 여전히 우리 사회에 여기저기 깊숙이 그리고 아주 음습하게 자리하는 성별, 인종, 계급, 지배와 피지배의 이데올로기가 스멀스멀 머리를 쳐들고 나타나는 지금, 바로, 여기서. 훅스의 책이 왜 42년 만에 우리를 찾아왔는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비평입니다>
태그#난여자가아닙니까#벨훅스#노지양#김보명해제#동녘#성X인종X계급의미국사#페미니즘#책콩카페#책콩서평단#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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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입문서로 유명한 #모두의페미니즘 의 저자, 벨 훅스의 첫 번째 저서. 독자들이 자신의 이름보다 메시지에 집중하길 바랐다는 훅스에겐 미안하지만 미국 인종 차별의 심각성은 이젠 놀랍지도 않다. 고작 19세에 이렇게 폭넓은 사유를 하고, 글로 써내기까지 한 훅스가 신기할 뿐. 제목은 훅스가 아니라 19세기 중반 인디애나주에서 열린 노예제 반대 집회에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백인 여성과 백인 남성 앞에서 맨 가슴을 내놓아야 했던 흑인 노예 출신의 여성 권리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가 한 말이었다.(첨부사진 참고) 소저너 트루스처럼 흑인 인권뿐 아니라 여성 인권을 위해서도 싸운 흑인 여성은 여럿 있지만 함께한 백인 여성 학자들조차 그들의 기여는 무시했다고 한다. 성차별은 안 되고 인종차별은 되냐? 이러면 '페미'소리 들어도 할 말 없지… 그런데 그들을 비판하기 전에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나의 언행은 일치하고 있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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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가 아닙니까?> 벨훅스, 노지양, 동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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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페미니스트 의식 고취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인종,계급, 젠더 차이의 현실을 맞닥뜨리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여자의 자리가 어디인가에 관한 성차별적인 규정을 언제나 반대해왔기 때문에 여성해방운동 내에서의 여자의 자리와 정체성도 의문을 제기했으나, 그 운동 안에서 나 자신을 위한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젊은 흑인 여성의 경험은 인정받지 못했다. 내 목소리나 나와 같은 여성의 목소리는 경청되지 않았다. 이 운동을 통해 나 자신과,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10-) 주인들은 노예가 마음에 둘지 않는 행동을 하나라도 하면 바로 옷을 벗겨 매질를 했다. 이를테면 노예가 빵을 제대로 굽지 못했다면 , 남 주인이 집에 왔을 때 여주인이 고자질을 한다.그러면 그 여자 노예는 바로 창고 같은 감옥에 갖히고 옷이 벗겨진 채 매질당한다. 여자가, 아니 인간이 이런 방식으로 노출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75-) 오늘날 백인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은 긍정적인 과정이자 독립을 쟁취해 나가기 위한 단계로 비춰지지만 노동자가 된 흑인 여성은 자신이 흑인 남성들의 일을 빼앗고 그들을 무력하게 했다고 느끼게 된다. 많은 흑인 여성 대학생 들은 흑인 남성의 자신감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직업적 야망을 억눌러야 한다고 믿는다. (-143-) 무슬림이 아닌 다수의 흑인 남성은 흑인 여성을 함부로 해도 되는 소유물 정도로 취급하고 동지로서는 백인 여성를 선호하기도 했다.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됨을 이상화한 근본적 이유는 성차별적 여성 증오의 흑인 여성됨 비하다. 여성 이상화나 여성 비하 모두 여성의 대상화일 뿐이다. 이상화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상징, 장식이 된다. 그 여성은 근본적인 인간적 개성과 기질을 부정당한다. 비하당하는 여성은 다른 종류의 대상이 된다. (-189-) 유색인 여성은 백인 여성이 기피하는공정에서 발견되곤 했다. 그들은 이전에는 소년들이 했던 창틀 닦기를 했는데 이는 계속 서서 팔을 뻗어야 하는 일이다. 남자들이 하던 모피 염색도 했다. 이는 계속 서서 몸을 움직이고 무거운 브러시를 들고 역한 냄새를 참아야 하며 부상이 잦아 모두 기피하는 작업이었다. 매트릭스 공장에서는 남자들 대신 '곤포'작업을 했다. 보통 둘씩 짝을 지어서 다섯 개의 매트릭스를 압축, 결속하는 일이다.이 여자들은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리거나 70킬로그램 정도 되는 물건들을 들어 올려야 했다. (-223-) 벨 훅스의 「 난 여자가 아닙니까? : 성?인종?계급의 미국사」 은 여성해방 운동,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고 있다.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해방운동은 흑인여성해방운동이다. 백인여성들보다 못한 사회적 지위, 흑인남성들조차 흑인 여성을 계급, 성차별하고 있었으며, 흑인남성이 백인 여성을 선호하는 이유다. 흑인 여성은 여성도 아니고, 인간으로서의 생물학적인 가치도 누리지 못한다. 나체 상태로,태형,매질를 당해야 했으며, 수치심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꼈다.그들에게 흑인여성해방운도은 단순히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삶에서 생존을 위한 도구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기 위한 방편이며, 흑인여성으로서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누리기 위함이다. 흑인 남성도 하지 않은 일, 백인여성도 하지 않는 힘든 일, 더러운 일,하찮은 일은 오롯히 흑인 여성에게 맡겨진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은 경계 서 있는 존재였다.문제는 흑인 남성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전략적으로 성공하려면, 흑인 여성이 자신의 지위를 충분히 누려서는 안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들이 욕구를 억제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했다,.그래서, 흑인 여성의 인권을 버렸다. 이 책은 흑인 요성에게 처한 성차별,계급에 대한 인식을 우선하고 있었다.그들은 특혜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한 만큼 그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기를 원했다. 자유와 평등, 인권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밑바닥에 놓여진 상황을 극복하고다 한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며, 성, 인종 계급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울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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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나라라고 여겨지는 나라 미국. 뉴욕DC 앞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자유의 횃불을 들고 미국으로 입국하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횃불은 백인들에게만 적용되었나봅니다. 초기 식민지 미국을 지배했던 영국인과 영국계 미국인, 프랑스계 미국인 등 대부분 그 지역을 지배했던 것은 백인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예들에게는 자유라는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할 수 있는 가축 이상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은 더욱 철저하게 인간성을 파괴받고 있었습니다. 노예에게 순종을 강요하기 위해서 노예선에서부터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했으며 미국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착취를 강요받았습니다. 그 악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나봅니다. 노예 해방 이후에도 백인남성은 흑인여성을 성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했으며 자유롭게 맺은 형식적계약관계에서도 실체를 파헤쳐보면 착취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미국사회에서는 인종차별이 존재합니다. 저 또한 미국에 있을 때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인종차별을 어떻게 청산하느냐도 그들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고 결국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게 되어있습니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이 글은 컬처블롬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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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을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받는 차별에는 둔감하지는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서양 백인들로부터 여전히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무의식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닌지?
미국에서 흑인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닐것임에 분명합니다. 미국사회의 경우 1970년대까지 일부 주에서는 노예제도가 합법이었고 여성의 참정권이 주어진 역사 역시 그리 길지도않습니다. 특히 인종주의에 대한 차별에 흑인들이 나서면서 한편으로는 성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 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렸음을 이 책에서도 알수 있는데요. 미국의 페미니즘등의 역사를 저자는 살펴보면서 백인여성과 흑인남성에 속하지 못했던 흑인여성의 경우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이중적인 차별을 당했으며 또한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노동자 출신의 경우 계층적, 계급적인 차별까지 당해왔음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한때 흑인이라면 당연히 흑인남성만을 의미했다고 하며 여성의 경우 백인여성들에 의해 자신들 백인여성으로만 한정한채 흑인여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동지의식을 갖지 못했으며 여전히 그런 시선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잔인한 노예제아래에서는 노동력 착취와 성폭력으로 고통받았고 또 흑인남성 위주의 가부장제도에서는 희생을 강해당해던 흑인 여성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경험하게 되었던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인지하면서 흑인 여성 페미니즘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질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진정한 성평등, 인종평등, 계급평등에 대해 이 책을 통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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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가 아닙니까?' 이 책은 빨간 표지, 훅들어오는 제목과 같이 매우.. 강렬하고 불편한 내용이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여성의 참혹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져있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노예로 매우 고통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흑인 여성으로서의 역사는 정말 동물만도 못하였다. 이정도일줄은 정말 몰랐다.
이 책의 저자 bell hooks는 이 책을 19세부터 쓰기 시작하였고 책으로 출판된것은 그녀의 나이 20대 후반이었다. 이 책은 '최근 20년간 출간된 여성 작가의 책 중 가장 영향력 있는 20권'에 선정이 되었고 미국도서상,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 미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에 선정 되었다.
첫 장 <성차별과 흑인 여성 노예의 경험>은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가 없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그럴 수 있는가. 아프리카에서 미국대륙으로 흑인 여성과 남성을 납치하여 데리고 오는 배 안에서의 성폭행, 고문, 가학행위들.. 살아서 땅을 밟아도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던 그들
와플 끝을 조금 태웠다고 백인 주인으로부터 수차례 채찍질을 당하고 상처에 뜨거운 촛농 떨어뜨림을 당하였으며 발가벗겨진채 매일 매질을 당하고 성폭행을 당하였던 흑인 여성들..
너무나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백인들의 행위는 상상 이상이다. 그 시대에 왜 우리의 신은 그들을 지키지 않았을까
흑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인종 차별..
그러나 흑인 여성들은 인종차별 뿐만 아니라 성차별의 대상이 되어야했다
백인들이 투표권을 흑인 남성에게 주었을 때 백인 여성, 흑인 여성 모두 제외되었다 흑인 남성들조처 흑인 여성을 차별하였으며, 백인 여성 역시 흑인 여성을 차별하였다
흑인의 인종 차별, 흑인 여성의 성차별은 미국사회내에서 너무나 뿌리 깊고 흑인여성 조차 세뇌당해 스스로를 도덕적이지 못하고 가치 없는 인간으로 여겨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흑인들을 조정하기 쉽게 하기위해 백인들이 조작한 것들이며 이제 미국 사회 모두는 주문에서 깨어나 존엄한 인간으로서 흑인 여성을 대해야한다
고통스러운 역사와 현실을 낱낱이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였던 벨 훅스는 2021년 향년 69세의 나이로 하늘로 떠났다.
책 제목이 '난 여자가 아닙니까?" 이지만 부제를 정한다고 한다면 '난 사람이 아닙니까?' 라고 해도 좋을것 같다
이 책은 미국내 인종차별,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글로벌한 시대에 전 세계가 같이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나가야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컬처블룸]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난여자가아닙니까? #벨훅스 #동녁 #컬처블룸 #컬처블륨리뷰단(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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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이지만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해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의 일부이기도 하다.
미국이란 나라만 하더라도 다양한 인종구성이 갖는 사회로 이뤄진 나라인 만큼 그들의 역사를 올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흑인 노예의 역사가 대표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차별이란 것의 기준은 여전히 유효함을 느끼게 한다.
페미니즘 비평가, 사회운동가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자신의 출신이 노동자 계급이란 점, 여기에 흑인 여성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경험한 일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17세기에 시작된 흑인 노예무역의 역사를 시작으로 19세기 남북전쟁, 여성참정권과 짐크로스 법, 이어 20세기 세계대전과 흑인 민권운동,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역사 한가운데 차지한 흑인들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 가운데서도 흑인 여성들이 겪은 인종차별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과 함께 들려준다.
이미 노예무역으로 인한 고향을 등지고 아메리카 땅에 뿌리를 내린 그들의 첫 역사는 같은 흑인들이라도 흑인 여성들의 겪었던 수난과 고난은 말할 것도 없고, 이후 성별 간의 억압적인 차별 또한 여성들의 이중적인 어려움을 더욱 높였다.
흑인남성이 백인보다 인종의 계층상 아래였지만 성별 층위로 볼 때는 동등했고 참정권도 백인 여성들보다 먼저 이뤄졌다는 점에서 흑인 여성들은 남성 흑인 가부장제에 의한 억압, 백인 여성들에게도 같은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겪은 점, 발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출신의 경우엔 이러한 계급적, 계층적 차별을 더 많이 겪어온 사실들을 보인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도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들의 체류가 많아지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 모습 속엔 인종차별이 없는가?
타국에서 경험한 외국인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는 사실 앞에서 우린 과연 이들의 행동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쓴 이 책은 젠더, 인종, 계급으로 인한 차별과 억압을 흑인 여성의 시각으로 다룬 미국사를 중심으로 다룬 내용이지만 결국 공동으로 살아가는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한다.
책 제목은 1851년 오하이오주 애크런 집회에서 흑인 노예출신이었던 소저너 트루스가 신사의 에스코트를 받는 숙녀에게 왜 참정권이 필요한지를 묻는 이들에게 되물은 " 난 여자가 아닙니까?"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인종차별, 여성혐오주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시대를 겪으면서 흑인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억압을 받은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이끌어나간 글이 인상적인 책, 비단 흑인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모든 여성들에게도 평등의 사회로 가기 위해선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책이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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