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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튼>이지만 사실상 '골드문트'의 성장소설. 오래 전, 오래 전 우리 나라에서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것처럼, 나르치스는 지성, 골드문트는 사랑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헤세의 작품답게(?) '인식 → 고뇌, 방황 → 깨달음, 구원'의 세단계 성장과정을 거친다. 골드문트의 경우는 나르치스를 통해 자기자신(어머니로 대변되는)을 인식하고 이성과의 사랑(나에게는 쾌락처럼 보였;;;)을 하며 방황하다 그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구원을 얻는다. p.301 모든 생명은 분열과 모순을 통해 풍요로워지고 꽃을 피우는 것이다. 도취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면 이성과 냉철함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 뒤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 않다면 관능적 욕망이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성간의 영원한 대립이 없다면 사랑이란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재미있는 점은, 나르치스가 데미안과 같은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골드문트와 대등한, 모순을 가지고 고뇌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데미안>과의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싱클레어를 바라보는 데미안이 이런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하며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헤세의 성장소설을 깊이 공감하며 좋아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역시도 내 삶의 중요한 고민에 대해 함꼐 생각하며 방향을 제시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점수를 낮게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골드문트가 뭇 여성들에게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 소설 속 여성들은 모두 남성에 대한 '사랑' 하나만 바라고, 그에 만족하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골드문트의 성장에 필요한 인물과 관계이었지만, 한낱 도구가 되어버린 여성들과의 장면이 소설의 1/2이상 차지하기 때문에, 헤세의 메세지보다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 오래 남아버렸다. 아무리 골드문트에게 깨달음, 구원을 주는 것이 '어머니'로 대변되는 여성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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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골드문트라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때면 나는 너를 진지하게 대해. 그런데 네가 늘 골드문트다운 것은 아냐. 제발 네가 순수하게 골드문트였으면 좋겠어. 너는 학자도 아니고 수도사도 아니란 말이야. 너보다 못한 재목도 얼마든지 학자나 수도사는 될 수 있어. 너는 나에 비해 학문이나 논리나 신앙이 형편없이 뒤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슴이야. 문제는 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나한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야. -72쪽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단점을 타인을 통해 아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지나친 자기비하와 좋지 못한 버릇 등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채 행해지며, 그것들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동이 된다. 살아가면서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를 봐주는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대척점에 있을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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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자아 찾기의 결정판"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를 읽고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가 그린 '지와 사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를 읽으며 헤르만 헤세의 내면으로의 여정과 자아 탐구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책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고 나니 드디어 헤르만 헤세의 자아 탐구의 긴 여정이 끝났음을 느꼈다. 이 책이야말로 헤르만 헤세의 자아 찾기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 또한 이 책은 자신의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말할 만큼 이 책은 그의 성장기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골드문트를 통해 우리는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데미안>의 '싱클레어, <싯다르타>의 싯다르타를 만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각각의 책에서 자아 찾기의 주인공이었던 한스, 싱클레어, 싯다르타가 모두 결합하여 '골드문트'라는 하나의 완전체를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를 짬뽕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동안 읽었던 세 권의 책들이 다 들어가 있는 듯한 신기한 느낌, 그런 점에서 놀랍기도 했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인 골드문트 또한 자아 찾기의 여정을 떠나는 인물이다. 그리고 '골드문트'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우선 나르치스가 사랑한 골드문트 측면에서 보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만남은 운명적이며 지와 정신을 대표하는 나르치스와 감성과 인간을 대표하는 골드문트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과연 정신과 육체, 정신의 길과 감각의 길, 관념과 예술 중에서 무엇이 우선시하는가? 과연 진정한 자아는 정신과 감각, 관념과 예술, 종교를 통한 신앙의 삶과 속세를 통한 인간의 삶 중에서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방랑을 통한 골드문트의 자아 탐구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자아는 사상가의 가르침이나, 금욕적인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삶 속에서 있음을 알게 된다. 사상가나 금욕주의자를 모방하려 애쓰지 말고, 본연의 자아를 되찾고 자아를 실현하도록 애쓰라고 말일세." (p. 419)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함도, 완벽한 존재도 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잠재적인 것이 실현되고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바뀔 때 우리 인간은 참된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네. 완전한 것, 신적인 것에 한 단계 더 가까워지는 셈이지. 그것이 곧 자아실현이라 할 수 있겠지. 자네는 이 과정을 스스로의 경험으로 터득해야 하네. -p. 420 또한 여자들이 사랑한 골드문트의 관점에서 보면, 나르치스는 방랑을 통해 많은 여성들을 만났고, 그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배고픔과 삶의 위기의 순간 속에서 골드문트는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위험과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골드문트의 삶에 있어서 여성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들의 사랑을 통해 쾌락을 알게 되고, 삶의 기쁨을 알게 되고, 사랑을 알게 되었다. 골드문트가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예술적 경험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골드문트의 어머니는 마치 자애로운 성모 마리아와 같이 그의 삶 속에 내내 함께 했다. 한때는 어머니를 잊고 지냈지만, 어민의 존재를 기억하고 나서부터는 줄곧 어머니와 같은 여성들을 만났고 그녀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머니는 골드문트의 삶 속에서, 그가 만났던 많은 여성들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성모 마리아상 속에서, 모든 곳에서 골드문트는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삶 자체였고, 사랑이요, 쾌락 자체였지. 그런가 하면 때로는 불안과 굶주림과 충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셨어. 이제는 죽음의 모습으로 오셨다네. 내 가슴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계신다네." -p. 468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p. 469 마지막으로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골드문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골드문트는 헤르만 헤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인물이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이 자신의 성장기 체험을 고스란히 담긴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골드문트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여준다. 헤르만 헤세가 그동안 자아 찾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쓰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의 분신이거나 그 자신이 닮고 싶은 인물인 골드문트를 창조해낸 것은 아닐까. 진정한 자아는 지식이나 정신 속에 있지 않고, 감각이나 삶의 경험 속에 있음을 비로소 찾은 듯 하다. 골드문트의 죽음을 보면서 과연 그는 비로소 자아 찾기의 긴 여정에서 마침내 자아를 찾은 것일까? 싯다르타처럼 득도한 것일까? 비로소 자아 찾기의 여정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완성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를 거쳐 이 책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통해 완성된 듯한 느낌이다. 헤르만 헤세의 자아 찾기의 기나긴 여정이 이 책에 이르러 끝나고 마무리된 느낌이다. 그동안 이 책들을 읽으면서 나 또한 헤르만 헤세와 함께 자아 찾기 여정을 떠나서 나의 자아 찾기도 함께 시작할 수 있어서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
| 옛날엔 “지와 사랑” 이란 제목으로 읽은 기억이 나는책. 나이를 먹고 헤르만 헤세에 푹 빠져서 그의 책을 한권한권 사 모으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다시 읽고싶어져 구입했다. 개인적으론 헤세의 소설중 가장 대중적으로 잘 읽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이성을 상징하는 나르치스와 관능, 본능을 상징하는 골드문트의 우정과 엇갈리는 인생의 길을 보며 “이성과 감성” 이란 공존하면서도 섞일 수 없는 두가지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 할 수 있는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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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랑이라고 한때 번역되기도 했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에서 나온 헤세의 웬만한 책들은 다 읽어가는데 헤세의 책들에는 항상 양립적인 요소들 간의 갈등 같은 요소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주인공을 항상 중심에 두고 그에게 큰 영향을 주는 조연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역시 그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전개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이야기는 다른 책들보다는 호흡이 긴 만큼 쉽지는 않으면서도 그만큼 느껴지는 게 많은 것 같다.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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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같은 작가는 결코 재미있게 읽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정말 좋은 책이었고 엄청 빠져서 재밌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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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두 인물의 관계를 써내려간 책이다. 나르치스는 수도원장으로서 금욕과 절제의 삶을 살아가고, 골드문트는 방랑자로서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산다. 수도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정반대의 자아를 가졌지만 서로를 동경하며 사랑에 빠지고,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인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그 자신보다 더 그를 이해하며 인생의 조력자가 되어준다. 같은 삶을 살 순 없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며 문득 서로를 떠올리고 갈망하기도 하면서 성장한다.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처럼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기에, 그들의 우정과 사랑을 더욱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나르치스는 누구인지, 나는 누군가에게 나르치스가 되어 주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그 생각의 끝엔 헤르만 헤세에게 나르치스는 누구였을지 궁금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었던 사랑이 누구였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관계를 써내려갈 수 있었던 걸까.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상반된 존재인 듯하면서도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30p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마치 해와 달, 바다와 육지가 가까워질 수 없듯이 말이야.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68p 인간의 정신이란 모든 것을 마치 이차원의 평면처럼 보고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115p 그 모든 것이 거의 잊힌 듯한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견뎌 내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무엇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뭔가 끔찍하면서도 소중한 것, 깊이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 어떤 경험, 혀끝에 남은 맛, 심장을 옥죄는 고리와 같은 것이었다. -215p 어쩌면 모든 예술의 뿌리는, 또한 어쩌면 모든 정신의 뿌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덧없이 사라져 가는 것 앞에서 몸서리를 치며, 꽃이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슬픔에 빠지는 것이다. -238p 더없이 행복한 절정의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에 사랑의 환희가 확실해졌다가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사멸할 수밖에 없듯이, 너무나 내밀한 고독과 슬픔에 잠겨 있는 순간도 다시금 인생의 밝은 측면에 새로이 몰입하고픈 욕구에 의해 느닷없이 삼켜지고 마는 것이다. -257p 죽음이 임박하면 삶의 작은 등불은 그만큼 더 밝고 절실하게 타오르는 것이다. -334p 결국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게 아닐까. 그들의 멋지고 안정된 집들, 보통 사람들의 느긋한 생활, 고향이 있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과 자신감이 부러웠던 것이 아닐까. 가정과 일터에서, 아내와 자식들, 일꾼과 이웃들 틈새에서 편안하게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346p 틀림없이 고통과 처참한 심경 역시 언젠가는 아득한 옛적의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언젠가는 지쳐서 이런 감정 역시 잊히고 말 것이다.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뇌조차도. -353p 우리 인간은 사라질 존재이고, 변화하는 존재이고, 가능성의 존재지.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함도, 완벽한 존재도 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잠재적인 것이 실현되고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바뀔 때 우리 인간은 참된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네. 완전한 것, 신적인 것에 한 단계 더 가까워지는 셈이지. 그것이 곧 자아실현이라 할 수 있겠지. -4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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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한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삶의 방향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성과 질서를 추구하는 나르치스와 자유롭고 감성적인 골드문트의 대비가 인상적이었고, 두 인물을 통해 머리로 사는 삶과 가슴으로 사는 삶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특히 골드문트가 방황과 사랑, 상실을 겪으며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읽는 동안 여러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되었고,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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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다 읽고 나면 마음에 잔잔한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수도원에서 만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서로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지만, 그 다름 속에서 오히려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나르치스와, 감각과 감정에 충실한 골드문트의 대비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두 가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골드문트의 방랑은 자유롭고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외로움과 상실도 함께 담겨 있다. 그는 사랑하고 떠나며 삶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간다. 반대로 나르치스는 한자리에 머물며 사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두 사람의 삶은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좋았던 건, 서로 다른 선택을 했음에도 끝까지 이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였다. 판단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되고, 지금의 내가 어떤 쪽에 더 가까운지 조용히 생각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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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받아서 구매해봤어요 아직 다 읽어보진 않았는데 흥미로운 소재라서 마음에 듭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버전 보다 민음사에서 나온 버전을 더 선호하는데 번역 깔끔하게 되어있어서 읽기 편해요~~ 저도 다 읽고 주변에 추천해줘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