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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날이 돌아오고 집안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이제 좀 사람 사는 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뛰어다니고 소리지르는 바람에 아랫집에서 항의하러 올라 올까 걱정되긴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이니 그냥 넘어가 주는 것도 인심이라면 인심이다. 그렇게 떠들썩하고 정신 없는 게 스트레스가 되기보다는 여유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다. 어릴 때 형제들끼리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지금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가끔 얼굴이나 보는 사이가 되니 그때가 오히려 사이가 좋았었던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정이입을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가진 것보다 없는 게 많았어도 가족의 정이라는 게 꽤나 든든한 힘을 줬던 건 아닐까 싶다.
경제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돈과 행복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많이 가졀수록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30대 중후반인 내 또래가 흑백 텔레비전과 연탄, 그리고 푸세식 화장실의 끝자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 수준은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시듯,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며 부러워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이 불편하긴 했지만 훨씬 행복했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먹을 걸로 꽉 채워져 있지도, 100여개가 넘는 TV채널이 나오지도 않았지만 가족이 항상 모여 있으면 재미있었다. 지금은 식구들마다 식사 시간도 제각각이라 같이 밥 먹는 일도 드물고, TV도 각자 방에서 보고 싶은 걸 본다. 가끔은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가족은 항상 뭉쳐 있어야 하고,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이 억지스럽고 낡은 방식이라고 생각해 왔으면서도 왜 그렇게 하셨던 건지 이제는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엄마 손은 싫어 싫어>에서 볼 수 있는 시대 풍경은 나에게도 낯설다. '엄마 어렸을 적엔'이라는 전시회가 1996년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지금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우리 세대의 엄마들이 어렸던 시절의 이야기겠다. 이 작품 시리즈를 만든 인형 작가가 부부라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이승은 선생님이 인형을, 남편인 허헌선 선생님이 집과 살림살이 소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점토로 만든 줄 알았던 인형이 자세히 들여다 보니 헝겊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바느질로 이렇게 섬세한 표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실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소품들 역시 정교하다. 특히 만화책은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종이가 아닌 정말 만화로 페이지가 채워져 있는 걸로 보인다. 단순히 인형과 소품의 정교함만이 아니라 상황 연출도 뛰어나서 글로 된 설명 없이도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상황인지 그려진다. 인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생생하게 전달된다.
제목이 왜 <엄마 손은 싫어 싫어>인가 했더니, 아들 세수시켜 주는 엄마의 억센 손길이 싫다는 얘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들 눈엔 고양이 세수하는 아이들이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아무리 빡빡 문질러 씻겨도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왜 그렇게 꼬질꼬질, 꾀죄죄해 보였는지. 그래도 자기 자식 깨끗이 씻기려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아무리 사정없이 문질러도 엄마 손이 싫은 거지, 엄마가 싫은 건 아닌 모양이다.
서로 화장실 먼저 쓰겠다고 티격태격하는 아침부터 아버지가 퇴근길에 군고구마 사 들고 오신 늦은 밤까지, 내복 입고 연탄 나르는 겨울부터 우물가에서 등목하는 한여름까지 식구들이 함께 보내는 나날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봉숭아 꽃 자체를 구경한지도 오래돼서 요즘에도 손톱에 봉숭아 물 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이렇게 지금은 잊혀진 생활 모습을 통해 아이들과 엄마는 물론 할머니까지 세대를 이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소박하면서도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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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의 만화책이란 책 제목에서 어린 시절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 다름 아닌 보물섬이란 이름의, 두툼한 만화잡지를 서랍 속에 숨겨넣고 공부 하는 척 책상에 앉아 서랍을 빼고 만화를 보다가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책상 옆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연탄을 갈려고 밖에 나왔다가 아들놈 공부 잘 하고 있나 창문 너머 쳐다보셨던 엄마랑 내 눈이 딱~ 마주쳤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서랍 속에 장난감 로봇도 넣어놓고 부루마불 게임도 넣어놓고 종종 그렇게 공부하는 척 딴짓을 하곤 했었는데 딱 걸렸던 것은 하필 만화책인 보물섬을 볼 때였었으니 서랍 속의 만화책이란 제목부터가 내게 있어서 무척이나 공감이 간다고나 할까.
공감가는 부분, 아니 공감을 넘어서 뜨끔한 부분도 꽤 있다.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에게 다가가 고무줄을 끊어놓고 달아나는 소년의 모습을 보면 또래 여학생들에게 짓궂게 굴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땐 내가 왜 그랬나 부끄러워 싶어지고 키가 작은 소년이 썰매놀이를 앞두고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보여주겠노라고 다짐하는 장면에선 10살 무렵 반장 선거에 나가서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치곤 몰표를 받아 당선되었던 일이 생각나기도 한다. 정작 나란 인간은, 매운 음식을 먹질 못해 크고 싱거운 아삭이 고추만 먹으면서 작은 고추가 맵니 어쩌니 그땐 그런 말도 호기롭게 잘 했으니 추억은 참 추억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 키 크면 싱겁다...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그 시절엔 지금처럼 키 작은 사람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문화가 없었다. 아마도 그 시절엔 다들 못 먹고 못 컸던 시대라서 그랬을까, 키 작은 군인이 오랫동안 대통령 자리에 있어서였을까... 키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던 것 같다.
지금이야 어린 학생들이 학교 수업과 영어 학원, 수학 학원, 태권도 학원, 바이올린 학원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바쁘지만 나 어릴 적만 해도 코흘리개 시절의 학원이라면 주산 학원과 피아노 학원 정도가 주류를 이뤘었다. 아침엔 두부요~ 두부~ 오전엔 칼 가~뤄~ 카~알~ 구성진 목소리가 골목길에 울러퍼지고 난 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오후 시간이 되면 만화영화 주제가 소리가 동네 어디선가 들리곤 했었다. 말 몇 마리 몰고 목마 아저씨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주머니 속 동전 몇 개면 놀이동산에서나 즐길 수 있는 목마가 움직인다. (이 책 속 목마는 어릴 적 내가 탔던 것보다는 구식이다만은 아무튼) 그때 그렇게 아이들 곁으로 찾아온 목마 아저씨는 이젠 보이지 않는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나갔을까...
요즘이야 인터넷과 스마트트폰으로 개봉영화 소식을 접하곤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의 그 시대엔 신문 하단 극장 이름을 내세운 영화 광고와 동네 광고판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로 개봉영화 소식을 접하곤 했었다. 빙수 한 그릇이란 소제목 하에 나온 벽 가득 붙은 영화 포스터는 그때의 추억을 더듬게 만든다. 책 속에는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없이, 빨간 마후라 같은 영화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지만 나 어릴 적에 봤던 광고판에 붙은 영화 포스터들은 서울극장, 국도극장, 명보극장 등등 극장 이름을 내세운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람바다, 레이더스, 백 투더 퓨처, 사랑과 영혼, 마지막 황제, 취권, 황비홍, 태극권 이런 영화들이었다. 지금에야 팥빙수를 인테리어 잘 된 카페에서 먹고 망고빙수며 눈꽃빙수며 신제품도 많지만 그때 그 시절엔 시장통 안쪽 어딘가 얼음을 드르륵 드르륵 갈아서 만들어주던 팥빙수가 빙수의 정석이었더랬다. 사진 속 푸른색 수동식 빙수 기계는 딱 그때 그것이라 추억에 잠겨 사진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당시에는 학생들 상대로 고문에 가까운 체벌도 종종 시행되곤 했었는데 걸상을 들고 벌을 서있거나 책가방을 팔 위에 올리고 팔을 뻗고 있거나 등의 벌은 직접 몽둥이를 들고 때리는 수고스러움 없이도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곤 했었다. 개구쟁이 삼총사가 걸상을 들고 벌을 서고 있는데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아 단체기합으로 그런 가혹한 벌을 받으면 개인적으로 참 억울했고 그런 벌을 주는 선생이 밉곤 했었다. 교실 안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학생들 모두에게 눈을 감게 만든 뒤 그런 식의 가혹한 벌을 서게 만들어 범인이 자백하도록 만드는 교사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돈을 훔쳐간 범인이 자백을 쉽게 하지도 않거니와 고통에 못이겨 차라리 (없어진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내가 훔쳤다고 말해버릴까, 그렇게 하면 이 끔찍한 고통을 멈출 수 있을까,,, 하는 충동적인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무지막지한 체벌의 고통에 대한 기억은, 단지 책 속 못난이 인형들이 걸상을 들고 벌을 서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에 울분을 느끼게 만든다.
책 속의 내용들이, 내가 겪었던 어린 시절보다 십 년 어쩌면 이십 년 정도는 앞서 일어난 일 같지만 의외로 내가 비슷하게나마 경험해봤던 일이 많아서 놀라웠다. 스마트폰 화면을 콕콕 누르며 자라고 있는 지금의 코흘리개 어린이들은 모를, 목마와 뽑기 과자, 고무줄 놀이의 추억들이 책을 보고 있는 내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진 것이 아닌 손으로 직접 만든 인형으로 재현된 옛 교실과 시골의 모습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로 진행되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보다 정겹게 느끼도록 해준달까. 주판알을 손가락으로 올리고 내리며 일원이요 이원이요 삼원이요 ... 를 목청껏 외치던 그 시절, 부르조아 가정의 상징 같게도 느껴졌던 부르뎅 아동복 한 벌이면 어깨가 으쓱 올라가고 설탕과 소다로 맛을 낸 달고나 과자를 조심스레 바늘로 콕콕 찔러 그림대로 잘라내면 주변 아이들로부터 환호를 받던 그때의 멋과 맛을, 요즘 어린 세대는 알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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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이라고 하면 주로 농촌에서 벌어진 사업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서울 외곽이나 직할시급 거주지의 외곽이라면 농촌에 비해 딱히 나을 바도 없었다는 게 어르신들의 증언입니다. 먼 예전을 이야기할 것 없이, 지금도 인천 도심 한복판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주택가에 논밭이 버젓이 남아 있으며, 원당과 고양 신도시 사이의 주거 지구에는 힐데스하임 같은 고급 거주 단지와 거름 냄새 물씬 풍기는 농경지가 바로 코를 맞대고 있기도 하지요. 당시에 발간된 잡지 등을 살펴 보면, "수세식 변소(화장실)", "기름 보일러" 등이 중산층 가정에서 구비해야 할 우선 순위 상위의 아이템이라며 이의 설치를 독려하는 광고가 실린 코너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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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상으로 우리는 지난 20여년 간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뤄 왔습니다. 20년 전에 저의 부모님은 "아마 먼 미래에는 설날, 추석이 없어지겠거니"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요? 세시 풍속과 명절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많은 분들이 극심한 불편을 무릅쓰고 차표를 예매하고 짐짝처럼 대중교통 수단에 실려 가면서도, 두 손에는 선물보따리를 한아름 든 채 설레는 마음을 가눌 줄 모릅니다. 물질적 풍요는 우리의 마음에서 과거에 대한 애틋한 향수와 사랑을 잊게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짙은 그리움으로 간직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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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이란 영화에 대해 말들이 많다. 가족을 위한 희생과 고생 이야기가 내 취향은 아니라서 아직 보진 않았지만, '꼰대'라는 표현까지 나오도록 젊은이들의 심기를 건드릴 줄은 예상 못했다. 나 역시 '우리 땐 더 힘들었다'는 어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렸던 사람이지만 옛 추억을 담은 영화에까지 그렇게 흥분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리듯, 세대간의 갈등이 곪고 있다가 이번 계기로 터졌다고 해야 하나... '응답하라 199~' 시리즈나 무한도전의 '토토가'의 히트에는 '복고'라는 순화된 표현을 쓰면서, 윗세대의 추억에만 '추억팔이'라고 폄하하는 건 분명 어딘가 불공평해 보인다. 차라리 이런 갈등들을 신경쓰지 않고 살아도 됐던 어린 시절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
나도 꽤나 젊은 척하고 있지만 이제는 어엿한? 옛날 사람이다. 딱히 기준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 수세식이 아닌 푸세식 화장실에서 신문지를 사용하며 자랐고, 요즘은 연예인이나 나른다는 연탄을 뗐다. 집에서 막내이다 보니 연탄재 내다버리는 일을 담당하기도 했었고. 군것질거리도 대개 집에서 만들어 먹었었다. 고구마 감자 삶아 먹고, 누룽지 튀겨 설탕 뿌려 먹고, 쌀 뻥튀기 해서 먹고... '톰과 제리'에서나 봤던 치즈를 맛보려고 치즈맛 크래커를 개봉했다가 당시의 치즈는 군내가 심해서 발냄새 비슷한 향에 실망도 했었지만 지금의 허니 버터칩 만큼이나 서로 맛보겠다고 달려들던 시절이기도 하다. 누가 보면 참 좋은 시절에 살았다고 하려나?
'엄마 어렸을 적엔...' 연작 시리즈가 1996년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요즘 아이들에겐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어렸을 적 이야기가 되겠다. <엄마 손은 싫어, 싫어> 책 머릿말에 '여러분들은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 아빠는 언제나 아빠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라는 물음에 공감하게 된다. 나도 부모님의 아기 때, 아이 때 사진은 본 적이 없다. 하긴 당시에는 사진이 얼마나 귀했으면 할아버지들 양복 입고, 할머니들 쪽지고 한복입고 쭉 늘어서서 수학여행 가서 찍은 듯한 촌스러운 사진까지 액자에 고이 담아 시골집에 걸어났을까. 부모님의 학창시절 흑백사진 속 교복 입은 모습에는 어릴 때 봤던 부모님의 얼굴과 별 차이 없는 얼굴이 있었다. 아이 때 사진이 있었다고 해도 아이들의 눈에는 부모님의 어린 시절이라는 생각이 안 들 거다. 그래서 자식들이 부모 세대의 추억을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책 제목이기도 한 엄마 손이 싫은 이유는 까마귀 친구 해도 될 만큼 시커먼 아이의 얼굴을 엄마가 매서운 손길로 너무 빡빡 문질러 씻어서다. 요즘 애들 얼굴은 참 하얀데 그땐 왜 그렇게 꼬질꼬질했을까? 흙 가지고 놀아서? 땡볕에서 뛰어놀아서? 요즘이야 집안에서도 뜨신물 펑펑 나오지만, 우물과 펌프에서 길러낸 찬물에 제대로 씻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요즘에 비하면 참 부족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가족끼리 부대끼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보기 좋다. 늦게 귀가하신 아버지가 사 온 고구마 먹으러 눈 비비며 일어나는 모습, 만화책 서로 먼저 읽겠다고 심통부리는 모습... 그 표정까지 인형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미니어처로 만든 당시의 생활도구들도 정말 디테일하다. 내 어린 시절과 완전히 겹치진 않지만 살짝 공감이 가면서 그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지금의 어려움을 윗세대 탓으로 돌리는 게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 추억 만큼은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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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에 친정집에 모여 두돌된 조카가 냉장고에 붙어있는 어릴적 아기 모습인 (현재 나이 10살) 큰애사진을 보더니 아기라고 하더라구요. 아기 아니고 오빠야라고 하니 모르겠다는 식으로 아기~아기 ~ 그러면서 다니더라구요. 예전에 둘째 울 꼬맹이도 아기때 오빠모습보고 아기라고 하면서 이야기했을때가 새록새록 들더라구요. 벌써 아이들이 이렇게 컸구나라는 생각과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끔은 옛추억이 그립기도 하고 옛향수를 느끼고 싶더라구요. 이 책 표지를 보시면 알겠지만 옛추억이 물씬 풍기는 엄마인 제세대보다 우리 친정엄마 세대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엄마 손은 싫어, 싫어입니다.
가끔 친정엄마가 나 어릴적에는 어땠는데..라며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솔직히 우리 세대때도 풍요롭게 산 편이라 솔직히 잘 모른답니다. 요즘 아이들은 더 더욱 풍요롭게 살고 있어 가난하고 어려웠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잘 모르지요. 이런 시절을 인형으로 표현해 놓아서 다른 책들과는 차별성을 두었답니다. 마치 실생활을 보는 듯이 생생하면서 그 옛날 모습이 눈으로 저절로 그려지더라구요. 책 내용도 일상생활 이야기로 그 시절에 있었던 생활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답니다. 지금 우리 아이가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는 거의 볼수 없는 푸세식화장실, 연탄, 지게, 철로 만든 세수대야, 우물 등등 정말 옛추억이 물씬 느껴지는 것들이 많기도 하구요. 저 어릴적에는 직접 보고 사용해봤던 거지만 우리 아이들은 책속에서나 느낄수 밖에 없는 것들이 많이 있어 낯설면서도 호기심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더라구요. 10살, 5살 두 아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이겠지만 재미있다듯이 보았답니다. 오히려 큰 아이가 더 열심히 본 듯 하네요. 큰 아이가 엄마 근데 이때나 요즘이나 내복입고 집에 있는 모습은 똑같다는 말을 하더라구요..지금은 더욱 더 화려해지고 예쁜 내복이지만 저 어릴때나 우리아이들이나 내복만 입은 모습은 정말 똑같은것 같아요..ㅎㅎ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오르는 동시에 옛날 그 모습, 그풍경을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소중한 책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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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보자마자 궁금해 하는 쥴리양~ "왜 엄마손이 싫지??? 난 엄마 손 좋은데..." 합니다. 저는 이 제목을 보자마자 친정엄마의 거친 손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해졌네요. 왜 친정엄마만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싸한지요... 쥴리는 커서 쥴리맘이 생각나면 어떤 느낌을 가져줄까요...
조금은 촌스럽지만 귀여운 인형들과,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 덕분에 쥴리는 받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휘릭 책을 읽어내고는 좀처럼 다른 책에서는 읽지 않는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설명 페이지들까지 읽어줍니다 ㅎㅎ
쥴리맘은 70년대 생이라, 쥴리맘 어릴적은 80 년대인데...이 이야기는 60, 70년대 혹은 조금 더 이전 이야기 인듯해요. 쥴리맘의 큰언니 어릴때 즈음, 그리고 친정 엄마 이야기도 어느정도 맞을듯..한 정도...엄마 어릴적이라는 컨셉인데..모두다 엄마 어릴적엔 이랬었어 라고 공감하며 이야기 해주지 못해 조금은 아쉬웠어요.....아이는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요..
드디어 궁금해 했던 이유가 나오네요. 왜 엄마 손이 싫었을까요???
딸 부자집 귀남이네...외동 아이인 쥴리는 왜 남자아이만 굴비를 먹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되는 표정입니다. 예전엔 그랬었단다..라고 애기해주면서도 예전에만 그랬겠나..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해지고...한편으로는 쥴리가 큰 성인이 되었을때도 여전하다면 혼란스러울텐데...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한 겨울 되기전 연탄 들이는 날 이야기, 여름에 등목하는 이야기, 여름에 외가를 방문한 이야기, 봉숭아꽃물 들이는 이야기, 엄마의 재봉틀....
하나 하나 어릴 적을 생각나게 하며, 쥴리맘이 더 반가워하며 인형과 소품 하나하나 뜯어보며 눈을 뗄 수가 없었네요.
쥴리맘 어릴적에 닥종이인형을 만들어 이런 비슷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엮었던 분이 계셨던든 한데, 비슷한 느낌이 들어 더 정겨웠네요. 사진으로 실린 인형들은 이 책을 위해 별도로 제작된 것은 아니고, 이미 제작된 작품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낸것이네요. 13개의 아기자기 정겨운 에피소드들이 인형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소품들과 함께 소개되고요, 이렇게 제일 뒤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물건들에 대한 설명이 나오네요. 저 어릴때는 그래도 가끔 보았던 것들도 있는데..이제는 민속 박물관이나 골동품상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되어버렸네요. 쥴리가 엄마가 될 무렵엔, 이런 이야기들도 전통이야기 전집에 한권이 되어 소개되겠지요. 세월이 참 빠르네요.
엄마 어렸을 적엔...이라는 시리즈로 이미 여러번의 전시회와 책도 있었던데..이번에 새로이 이야기를 만들어 재구성한 모양입니다. 벌써 3권까지 나와있네요.
김해의 한 미술관에서는 지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데...가까웠으면 정말 가보고 싶어요. 가까우신 분들은 꼭 한번 다녀오심 좋을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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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보낸 70, 80년대 준이에게 이야기해주면 얼마나 공감을 할까요?
<파랑새 어린이>에서 나온 '엄마 어렸을 적엔 시리즈'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어렸을때 뭐하고 놀았는지, 그때 그시절은 어땠는지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책이 시리즈로 나왔어요. 그중에서 제가 만나본 책은 시리즈중 첫번째 이야기 '엄마 손은 싫어, 싫어'
이 책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했을 인형 제작과 글을 쓰신 이승은. 허헌선 선생님 두분 모두 대단한 재주를 가지신것 같아요^^
차례에서 보듯이 모두 13개의 짧은 이야기와 사진으로 엮어진 책이에요. 소제목만 읽어봐도 옛 추억이 떠오르네요.
올망졸망 아랫목 두꺼운 솜이불 속의 아이들을 보니 겨울인가 봐요. 아빠가 사오신 군고구마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아이들 모습이 넘 귀엽네요. 저도 어릴때 친정아빠가 사오시던 과자가 지금도 생각이 나요. 또 어릴때 외갓집에 가면 솜이불이 무거웠던 기억이 나네요.
사진속의 화장실 보이시나요? 저희 외갓집 화장실이 저랬어요. 소우리 옆 한쪽에 있던 화장실이 무서워 외갓집에 가면 화장실 가기가 제일 싫었어요.
이 책의 제목인 '엄마 손은 싫어, 싫어' 이야기네요. 왜 엄마 손을 싫다 할까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읽어보니 뭉클해집니다. 힘들게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들. 꺼끌꺼끌 거친 손으로 씻겨 주시면 아프다고 징징!! 그래도 이때 빼고는 엄마 손이 최고로 좋지요^^
엄마, 아빠 팔그네는 요즘도 흔히 볼 수 있지요. 울 준이도 어른 두명과 함께 외출하면 그냥 안가요. 꼭 가운데서 팔그네 해달라고 하지요.
부록으로 '엄마 어렸을 적 생활 도구'에서 옛날 물건들이 소개되어 있어요. 솔직히 저도 직접 보지 못한 도구도 있네요.
이처럼 옛기억 새록새록 일깨워주는 사진과 글로 잠시나마 아이와 엄마가 함께 엄마의 어릴적 이야기를 나눌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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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서 엄마어릴적에 어떠했는지 궁금해지는 때가 있었다. 가끔 어머니로부터 옛날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대를 넘어서도 서로 그때 그시절 추억에 웃으며 공감했던 부분을 바로 선물로 받은 <엄마 손은 싫어 싫어>그림책에서 볼 수 있었다. 엄마도 어릴적이 있었을까?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와 공기줍기를 하셨을까? 유난히 별이 쏟아질 듯 빛나는 여름밤 평상에 누워 무슨 소원을 말하셨을까? 한겨울에 눈이오면 눈사람을 만들고 꼬마친구들과 눈싸움을 하다가 지치면 햇살 내리쬐는 따스한 담벼락에 제비들처럼 줄줄이 앉아서 눈이 녹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등등 궁금했던 것들을 때때로 풀어놓으시던 이야기보따리를 통해 어머니께서도 추억으로 가지고 계셨음을 알 수 있었고 팔순이 지난 지금은 일기를 쓰시며 일상을 추억으로 담고 계신다.
이 책은 어린이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 모두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지금은 모든 게 풍요롭고 편리하지만 그때는 방 한 칸에 여러 식구가 함께 살고, 전기가 아까워 일찍 불을 끄고 자기도 했지요. 몽당연필도 볼펜 대에 끼워 아껴 썼고, 옷도 형제들이 물려 가며 해질 때까지 입었어요. 하지만 고무줄 하나, 종이 딱지만으로도 아이들은 신이 났고, 말타기, 술래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하며 골목마다 함께 모여 노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답니다.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는 따뜻한 인정이 있어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를 일구어 나갔답니다.(작가의 말 중에서)
늦은 밤에 아빠가 사오신 군고구마는 잠결이라도 맛있고, 둥근해가 떠오른 아침 학교에 가야하는데 뒷간의 풍경은 어찌할 수 없었던 시절 그리고 긴긴 겨울밤 바느질하고 계시는 엄마옆에서 만화책보는 행복한 시간, 눈 속에 비누거품 들어갈까봐 머리감기를 싫어했던 기억, 받아쓰기를 잘해서 동그라미를 많이 받고 자랑했던 모습, 집에서 일하시던 아저씨의 방귀소리에 큰소리로 웃으면 마음 상하실까봐 언니랑 이불속에 들어가서 박장대소를 했던 추억은 지금도 가족들이 모이면 웃음 한자락으로 자리잡고 있다.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지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도록 엄마 어렸을 적엔 이야기시를 내놓으신 작가님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인형을 만들어 추억을 선물해주시고, 인형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섬세한 손길에 마음의 글을 쓰신 바늘과 실처럼 사시는 두분의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다시 마음이 따뜻해지고 이 책을 받았을 때 행복했던 것처럼 가슴 뭉클한 시간들이 되기를 소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