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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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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는 이런 평이 달렸다.  '가장 많이 팔렸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 모르긴 몰라도 10년 마다 그런 책을 선정한다면 이 다음 선정작은 '정의란 무엇일까'가 아닐까 하고 장난스레 전망해본다. 다들 유명하대서, 하버드래서, 그리고 첫 장의 사례가 재미있어서 사기는 했지만, 정작 제대로 읽은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 사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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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는 이런 평이 달렸다. 

'가장 많이 팔렸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시간의 역사정의란 무엇인가

모르긴 몰라도 10년 마다 그런 책을 선정한다면 이 다음 선정작은 '정의란 무엇일까'가 아닐까 하고 장난스레 전망해본다. 다들 유명하대서, 하버드래서, 그리고 첫 장의 사례가 재미있어서 사기는 했지만, 정작 제대로 읽은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 사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아마도 그의 정치 철학이라는 분야가 우리에게 다소 생경하고, 공리주의나 자유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의식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음'이냐 '옮음'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경제적, 심적 여유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이 책 '정의의 한계'는 존 롤스의 자유주의 이론을 비판한 책으로 이를 통해 샌델 그도 유명해졌다. 공동체주의자라고 불리는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자유주의의 대표 학자인 롤스나 칸트의 이론을 반박한다. 책의 서두에서 김선욱 교수는 공동체주의라는 것이 단순히 애국주의 정도로 이해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이 책이 그 오해를 푸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왜 샌델이 인터뷰에서 '나는 공동체주의자가 아니다. 자유주의자다.'라고 했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는 자유주의가 전제하는 인간관의 근본적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 것이지,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것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제를 알고 간다면 그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샌델이 주로 비판하는 것은 롤스의 자유주의인데, 자유주의는 쉽게 말해서 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생겨난 이론이다. 생산성의 효율적인 증가만이 구성원 전체가 최적의 행복의 상태를 가질 수 있다는 공리주의의 핵심을 비판한 것이다. 공리주의는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좋음'이 개인의 '옳음'에 우선한다고 하지만 의무론적 자유주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롤스는 정의의 개념을 도출시키기 위해 칸트의 주장인 '이성'을 통해 자유주의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이성'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무지의 베일', 즉 어떤 결과가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구성원이 내린 이성적 판단이 가장 적절하다고 했다.

 

샌델의 이론이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이 '의무론적 자유주의'의 전제이다. 위의 이론에서는 구성원들이 현실이 아닌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자체가 오류라는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주체의 상정은 의무론적 자유주의가 해결했다고 믿었던 분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샌델은 '좋음'을 강요하는 가치 공동체보다는, 자기인식의 정치적인 주체가 서로 연고를 이루고 있는 '구성적 공동체'를 강조한다. 자유주의 철학이 간과했던 인간 개개인의 특질에 집중해야만이 현실적인 주체가 등장하고 이로 인해 협동이나 갈등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인 구조를 통해서야만 삶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14.03.15.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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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이 말하는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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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은 존 롤스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나온 때가 1971년이었는데, 샌델은 10여 년 뒤 이 책을 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에 입각하여 자신의 정의론을 전개한다. 이양수 박사가 우리말로 옮긴 것은 1997년에 나온 수정판이다.샌델은 이 책에서 자유주의 정치 철학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으로 공동체주의에 대해 상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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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은 존 롤스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나온 때가 1971년이었는데, 샌델은 10여 년 뒤 이 책을 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에 입각하여 자신의 정의론을 전개한다. 이양수 박사가 우리말로 옮긴 것은 1997년에 나온 수정판이다.

샌델은 이 책에서 자유주의 정치 철학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으로 공동체주의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
. 존 롤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의론을 세우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일단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샌델이 자유주의에 대해 공격하는 것은 자유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 형태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한다
. 그렇다면 샌델이 공격하는 자유주의는 어떤 형태인가?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의무론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에 있다. 그는 의무론적 자유주의의 철학적인 가정이 문제라는 것이다. 즉 샌델은 잘못된 철학적 가정에서 비롯된 공공 철학은 결국 거짓 이론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롤스나 샌델 모두 지배적인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 공리주의의 핵심은 사회 선택 이론이며, 생산의 극대화를 찾아내는 것이다. 사회 생산성을 극대화할 때에만 국가의 부가 커지고, 개인들의 삶의 질 또한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리주의의 철학적 바탕은 최대 다수의 행복이 전체의 고통을 상회하는 것이라면 공리를 달성한다고 본다.

롤스도 사회 효용의 극대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 정의 원칙으로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최소 수혜자)의 기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소 극대화 원칙(Minimax)을 내세웠다. 물론 이 같은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는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 단기간의 성공보다는 장기적인 평등 사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롤스의 정의론을 수행할 사회 제도가 마련되어져야 한다는 것.

롤스에 의하면 사회 제도는 가진 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개인의 불운과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평등은 오로지 자유로운 존재가 자발적으로 결성한 사회 제도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그래서 롤즈는 멀리는 소크라테스에게서
, 가깝게는 칸트에게서 철학적 자양분을 흡수하고 자신의 정의론을 싹틔웠다. 그는 원초적 입장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을 창안한다. ‘원초적 입장은 자유롭고 평등한 각 개인이 사회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이 경우 각 개인이 자신의 신분이나 교육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어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때 롤스는 원초적 입장의 각 개인들은 모두 동일한 상황, 모든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무지의 베일을 도입한다. 즉 자신의 편견에서 벗어난 개인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적 선택을 하게 되면 정의의 원칙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롤스의 정의론은 유럽에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 유럽 지식인들은 절대적 평등을 모색하는 급진적 정치 철학을 견지하고 있었기에, 롤스의 정의론을 수정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부르조아 이론의 변형으로 바라봤다. 평등한 사회의 구현을 위해 현실의 불평등을 인정하자는 롤스의 입장을 형용 모순이라고 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1989년 공산권의 붕괴로 정치 철학 판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 여파로 유럽 사회 안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열린 논쟁이 일기 시작했고,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해석하려 했다. 그 결과 롤스의 자유주의 대안으로 공동체주의가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롤스의 정의론에 대해 샌델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롤스가 전제로 한
원초적 입장무지의 베일이다. 샌델은 원초적 입장의 도덕적인 관점을 충족하는 사람은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도덕적 주체와는 사뭇 다르다고 보면서, 이 같은 주체가 현실적인 인간의 도덕적 가치보다 우월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한다. 나아가 그는 롤스의 의무론적 윤리는 철저히 초월적 주체를 전제한다고 보면서, 이 같은 초월적 주체가 도덕적인 주체일 수 있는가라고 문제 제기하는 것이다.

샌델에 따르면 롤스의 정의론은 현실에 나타난 불평등을 인식하고 새로운 교정 가능성을 제시한 점은 높이 살만 하지만
,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온갖 도덕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실패했다. 시대와 장소를 떠나 언제 어디서나 작동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의는 없다. 정의의 관점은 한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안에 작동하는 불평등과 불의를 해결하는 데서 나타난다. 초월적 주체가 아닌 현실적 인간들이 모여서 해결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이 때 정의의 개념은 사회적 여건과 개인의 가치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정의는 한계를 가진다.

여기서 샌델의 문제 의식은 명확해진다
. 그는 개인 삶 자체가 자기 정체성의 터전이라는 점, 그런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려면 정치 영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개인의 삶과 정체성을 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센델은 그 대안으로 공화주의를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공화주의는 개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시민적 덕성을 함양할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며, 이러한 체제 없이는 모든 개인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고립된 자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주체의 정치적인 특성을 드러내려면 자유주의 철학이 외면했던 품성
, 자기 인식, 친애 같은 개념을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인 주체는 목적과 선택의 순환 구조 안에서 자신의 인격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타인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상호 협동, 갈등 체계가 이미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으며, 이런 공동체는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공존을 위한 기본 구조다. 그렇기에 샌델이 공동체 주의를 지향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샌델이 던지는 여러 화두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자못 의의가 크다
. 나는 이 책을 통해 오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정의는 무엇이고, 그것을 실현하려면 어떤 사회 제도가 필요한 지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4.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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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한계 - 정의란 무엇인가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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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보자.  나는 테러리스트다. (아무리 예라 하더라도 9.11 테러범이라고 가정하지는 못하겠다. - 함부로 그때의 테러범이라 가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정의'와 관련되어 있으리라.)  아무튼, 나는 테러조직의 중대한 사명을 띠고 적대조직 또는 국가에 테러를 일으켰다. 자살폭탄테러는 아니었으므로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테러를 일으킨 지역에서 나는 '악인'이다. 최대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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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 보자.

  나는 테러리스트다. (아무리 예라 하더라도 9.11 테러범이라고 가정하지는 못하겠다. - 함부로 그때의 테러범이라 가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정의'와 관련되어 있으리라.)


  아무튼, 나는 테러조직의 중대한 사명을 띠고 적대조직 또는 국가에 테러를 일으켰다. 자살폭탄테러는 아니었으므로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테러를 일으킨 지역에서 나는 '악인'이다. 최대한 몸을 감추어 위험 지역을 벗어나 동료 또는 나의 국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성공적인 임무수행으로 조직에서는 큰 환대를 받는다. 그때만큼은 영웅이자 위대한 인물, '선인'이 된다. 그렇다면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선인인가 악인인가?


   가정을 하지 않더라도 역사적인 사례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아본다면 애국열사들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희생한 애국인이요,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애국열사들이 보여준 희생적인 삶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의 뜨거운 무엇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에서 애국열사들을 평가한다면 자신들의 국가 통수를 살해한 암살범이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이쯤되면 머릿속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선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기준, 곧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 (질문이 세 개가 되어버렸다 ㅎㅎ) 


  앞 선 가정과 사례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극단적인 사례로 정의의 개념을 파악해보고자 하는 시도는 마이클 샌델의 도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미 다루어진 내용이다. 어떤 이들은 샌델의 이 책을 보고 정의의 개념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혼란만 주었다고 비판하기도하고, 결국 정의가 아무것도 아닌것과 같이 느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아무리 하버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고는 하지만 대학교 1학년, 20살 내외의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이다. 어떤 면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강의란 말이다.


  <정의의 한계>에서는 '정의'에 대한 그의 의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어렵다. 그리고 이 책은 센델의 저서 중 가장 학술적이고 가장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단어나 정의의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사례중심이 아니라 용어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에 대한 한 층 깊고도 통찰있는 시각을 전해준다. 


그영역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종족, 이웃, 도시, 마을, 대학, 운송 조합, 인민 해방 운동, 확고한 민족주의를 포함하고, 다소간 공동의 정체성과 공유된 목적을 정의할 수 있는 다양한 민속, 종교, 문화, 언어 공동체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 속성의 출현은 정확히 정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마련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118쪽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그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핵심구절이 있다. 그리고 나는 소개한 문장이 <정의의 한계>를 가장 대표적으로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정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마련되지 않았음을 뜻한다'라는 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마이클 센델이 이 책에서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고있는 롤스의 자유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롤스를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선'을 앞서는 '옳음'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선과 옳음의 구분 자체가 모호하고 헷갈릴 수도 있다. 이렇게 정리하자.(예를 드는 것이 좋겠다.) '선'은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상대적이다. 저녁을 먹으려 메뉴를 정할때 사람에 따라 한식이나 중식 일식 등 기호가 다양할 수 있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 한식이 선이 될 수도 있고 중식이 또는 일식이 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저녁을 먹을 경제적, 환경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그 사람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옳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음식의 비유를 벗어난 다른 상황에서 이와 같은 '옳음'이 항상 '선'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 센댈의 질문이다. 상황과 여건을 벗어나 항상 '옳다'라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


  롤스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올바름은 어떤 선 개념에 기댈 필요가 없이 그것 자체로, 원초적으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칸트가 현실 상황을 벗어난 관념속에 존재하는 자아를 기준으로 '의무론'을 제시했다면, 롤스는 '경험 이론의 영역 안에서' 옳음의 존재를 확증시키려 한다.


  그런데(접속사의 중복을 피할수가 없다) 경험 이론 안에서, 즉, 상황과 여건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 다른 표현으로 작은 일에도 쉽게 마음이 상하고 사소한 일에도 삶의 중대한 결정을 번복하는 인간이, 절대적인 '옳음'의 기준을 세우고 또 그에따라 살 수 있느냐는 말이다.


  세상이 불의하지 않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는 '옳은'기준을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정의는 필요가 없다. 정의라는 개념자체가 인간의 머리속에 자리잡지 못할 것이다. 소개한 인용문에서와 같이 다양한 집단, 다양한 공동체는 정의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책을 읽고 정의에 대한 학술적인 용어들을 이해하기에 앞 서 모든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s********8 2014.03.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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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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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가 국내에서도 많은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토론식으로 진행된 강의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내용이었다. 학생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소통하는 강의였다. TV에서도 강의내용을 몇일에 걸쳐 방송했던것으로 기억난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을 나도 접해보고 싶었던 차에 교수의 정의의 한계를 접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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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가 국내에서도 많은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토론식으로 진행된 강의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내용이었다. 학생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소통하는 강의였다. TV에서도 강의내용을 몇일에 걸쳐 방송했던것으로 기억난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을 나도 접해보고 싶었던 차에 교수의 정의의 한계를 접할 수 있었다.

샌델 교수의 전공이 정치 철학인 만큼 정치와 오늘날의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에서의 정의에 대한 개념과 이러한 정의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그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의견을 제시한다.

역자의 또한 샌델 교수와 대치된 각을 세우는 존 롤스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연구한 학자이기에 샌델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책에 대한 역자로서의 역활에 철저했던것 같아 한편으론 안심이되고 내용에 대해서도 사전에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기에 책장을 넘기면서도 어려운 내용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독자들이 유념해야할 관점에 대해 친절한 설명이 있어 그나마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책을 이해하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존 롤스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성이 있다.

렌델의 정의론에 대한 논증에서 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비판과 더불에 롤스가 주창한 이론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롤스 또한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서 어찌보면 랜델의 은사이기도 한것 같다. 사전에서 빌려온 존 롤스[네이버 지식백과] 존 롤스 [John Rawls] (두산백과, 두산백과)

1921년 볼티모어에서 출생하여 프린스턴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2년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였으며, 저서 《정의론(正義論)》(1971)에서 공리주의(功利主義)를 대신할 실질적인 사회정의 원리를 ‘공정(公正)으로서의 정의론’으로 체계 있게 전개하여 규범적 정의론의 복권(復權)을 가져왔다. 평등한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권리의 우선이 강조되었으며, 가장 불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된다는 ‘격차원리(隔差原理)’가 제창된 데 이 정의 원리의 내용적 특징이 있다. ‘원초상태(original position)’라는 가설적 상황에서 자유·평등한 도덕적 인격자들이 전원일치로 합의한다는 데서 이러한 정의 원리가 도출·정당화된다는 사회계약설적 구성이 채택되었으며, 이와 같은 방법론은 자율성과 정언명법(定言命法)에 관한 칸트의 사고방식을 절차적으로 해석한 ‘칸트적 구성주의’라고 불린다.

이러한 내용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책은 나에게 머리 아픈 철학적 이론에 대한 문자로 구성된 책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실 이 도서는 "정의"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에 있어 정의란 무엇일까부터 새겨보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이 생각하는 정의라는 단어에 대한 아무런 정의가 없을때는 이미 주제에 대한 의미를 주지 않기 때문에 책장을 덮었을 때도 큰 감명이나 지식의 체득에 대한 기쁨 또한 없을것이라 생각한다.

혼자만의 생활에는 나 혼자만의 생각과 결정이 삶에 대한 방식이고 체계이며 곧 법이 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련이 없는 상황에서는 자유와 만족감만이 그 삶을 지지해줄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이 옳다고 하면 그것으로 모든 일이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된다.

그러나 사람은 아니 지구상에 나 혼자만이 살고 있는것이 아니기에 모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인류적, 사상적, 군사적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넓은 범위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2명이상의 나와 동등한 사람이 모였을 때부터 모든 문제들이 발생한다. 최근에 읽어보았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도서에서 윤리라는 정의가 어떻게 실현되어 가야하고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지식을 전해주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내용과 유사하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부족사회라고 한다면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가 부족장의 의견과 관습에 따라 명시된 법률은 없다고 하더라고 관례적으로 내려온 관습을 그대로 따르려는 속성을 가지기에 부족간이 문제는 비록 비 윤리적이라 하더라도 서로의 이해와 타협속에서 쉽게 해결 가능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것이 그들 부족이 살아오면서 관습적으로 남겨진 관례속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어떤 판단이 더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투기 보다는 서로간의 화합이 더 우선시 되기 때문일것이다.

때문에 정의는 그 사회속에서의 옳고 그름의 판단과 어떤 내용이 우선적으로 적용이 되고 실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부족사회를 벗어나 국가 사회에서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속에서의 정의는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가 이 도서의 주 내용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것에서 정의 즉 옳다고 생각하는것만이 정의가 아니라는것이 샌델 교수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명확한 정의라는 정의가 존재하더라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정의를 외치지 않는다. 그들의 판단은 그들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일부 정책에 반하는 부류가 있다고 하여 그들을 구속하거나 행동을 제약할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적 약속인 법률상의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래서 이전의 역사에서부터 거슬러 올라 오늘날의 사조가된 철학자들의 의견이 이러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용이하게 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되기에 그들의 철학적 고찰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에서의 정의 또한 달라진다.     

자유주의에서의 정의는 원초적 위치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하기에 개인의 선택과 욕망이 자유주의의 정의에 앞서야 한다. 그러기에 개인의 인격이나 선택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자기의 위치에서의 위치적 변화등을 논리에 따른 정의로 억압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것이다.

공리주의의 입장에서의 정의는 모든 사람이 주어진 공공적 이치에 일치하고 동의할 때 정의라는 가치가 힘을 발휘하게 된다. 여기에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선택에 동의하고 있는 한 일부에서 이것을 반대하더라도 그 힘은 약할 수 밖에 없기에 정의라는 힘이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리주의에서의 정의보다는 자유주의에서의 정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세계적 사조가 자유주의를 추구하고 개인의 자유와 욕망에 대한 제약이 제한적으로만 적용되기 때문으로 개인의 선택권과 사회적 정의가 개인의 입장에서 먼저 확보되면 사회적 정의 또한 확립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롤스의 철학이 공리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철학이라면 렌델은 자유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유주의에는 모든 사람의 욕망과 소유, 능력에 대해 평등한 관점에서 논 할 수 없다는것이 렌델의 철학이다. 따라서 공동 사회에 있어서 차별이나 능력의 차이에 따른 보상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고 이에 대해 누구든 반론을 제시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공리주의라면 세밀한 부분까지 동등한 보상과 차별이 없는 사회적 기반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어찌보면 더욱 어려운 정치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고 능력의 발휘나 노력에 의한 욕망의 달성에 있어서도 두각을 나타내고자 노력하는 사회는 더욱 힙들것이다.

여러가지 관점에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에서의 정의는 가까운듯 하면서도 먼것처럼 느껴질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롤스가 말한 격차원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렌델은 이 도서를 통해 자유주의에서의 정의 즉 근원적 본성에 기초한 정의론을 내세우며 존 롤스가 제시했던 정의론의 한계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사회속에서 개인으로서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의는 개인적인 차별과 공적에 의해 차별화 될 수 밖에 없으며 그로인해 모두가 주장하는 정의에도 그 한계가 있으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판단과 개인적 자질이 요구되는지에 대해 롤스의 이론과 비교하며 그 차이점을 설명해준다.



l*****7 2014.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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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정의의 한계』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영향력 있는 작가이다.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 밖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지난 2013년 연세대학교에서 마이클 샌델이 직접하는 강연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인문교양서를 대표하는 저작들과 저자가 되어버린 마이클 샌델과 그의 저서들도 어느새 내 방 한 귀퉁이를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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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정의의 한계』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영향력 있는 작가이다.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 밖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지난 2013년 연세대학교에서 마이클 샌델이 직접하는 강연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인문교양서를 대표하는 저작들과 저자가 되어버린 마이클 샌델과 그의 저서들도 어느새 내 방 한 귀퉁이를 자리잡았으나, 끝까지 제대로 읽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정의의 한계』라는 책에 대해 알게 되었고, YES 24 리뷰어 클럽의 지원을 받아서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위즈덤하우스의 『느리게 읽기』에서 강조한 인내를 상기시키며 책에 밑줄도 그어보고 메모도 해가면서 이 책이 말하려는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쉽게 파악되지 않는 구조를 세워보려고 노력하였으나 결국 마지막장을 넘길 때까지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롤스가 말하는 『정의론』의 주장에 한계가 있으며, 그러한 한계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가며 그러한 그의 견해가 사람들이 일컫는 '공동체주의'가 아닌 공공 철학임을 논증하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정말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내용들과 함께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보니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정의, justice가 대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싶어져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Justice, 1. 공평성 2. 공정성, 정당성 3. 사법, 재판

 

 

 예문을 들여다보고 나서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justice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 책이 말하는 정의란 '공정성'에 제일 가까운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지닌 롤스의 정의의 한계를 찾는 일은 개인과 그의 성과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제대로 파고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능력의 결과물인 성과는 온전히 그 개인의 몫일까? 아니다. 개인의 능력에는 외부 환경과 주어진 조건들이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온전히 '개인만의' 공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거의 모든 것이 능력중심주의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능력과 그 결과물이 온전한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당할 수 없다는 이 견해가 너무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국인으로 살아오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리고 주변의 것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고등학교 때부터 남들과 경쟁하는 체제 속에서 '내' 성과를 얻기 위해 내 능력을 사용하고 그 성과물을 갖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었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현 우리 사회의 중심 화두인 분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는 굉장히 명확해진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능력이므로 공적인 사회에 마땅히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쯤 보면 정말 이것이 공동체 주의와 다른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공동체 주의와 다른 이유는 이것은 공동체 주의와 달리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다음을 가정하는 것은 합당해 보인다. 얼핏 보면 '내' 자산으로 보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공동 자산으로 좀 더 적절히 서술된다는 것이다. 타인들이 나를 만들었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금의 나로 만들기 때문에 타인들이 확인될 수 있는 한, 타인들을 '내' 성취와 보상의 공동 수혜자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어떤) 타인의 성취와 노력에 대한 참여가 참여자의 반성적 자기 이해를 끌어들인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 자신을 다양한 활동 범위를 넘어 공통적인 어떤 것을 가진 개별화된 주체로 간주하기 보다는 더 광범위한(그러나 여전히 확정적인) 주체의 구성원으로 간주하려 할는지 모른다. '타인'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가족, 공동체, 계급, 민족, 국가든 공통 정체성의 참여자로 간주하려 할는지 모른다.

p.303

 

 '타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를 '공통 정체성의 참여자'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연대와 연대를 통한 적극적인 문제해결의 자세를 방안으로 많이들 제시하고 있는데 더없이 이상적이고 혹은 피상적으로도 느껴지는 그러한 접근이 이 가정하에서는 한결 더 가까이 보였다.

 

 결론적으로, 샌델의 논지는 자유주의 공공 철학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공공 철학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공공 철학이다.

p. 424

 

 나는 롤스와 그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공공 철학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말하는 그러한 한계와 접근이 너무나 생소해서 책에서 인용된 짤막한 문구만으로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만큼 내게 다가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챕터가 끝날 때마다 번역투에서 벗어나 보다 매끄러운 문장으로 어떻게든 길을 제시하려 하는 저자의 요약문을 읽으면서 놓지 않고 무언가를 잡아채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그 결과 샌델이 말하는 공공 철학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새로운 접근을 얻었고, 주장과 논지를 전개시켜 나가는 방법을 슬쩍 엿본 것 같기도 했다. 더욱더 심화될 담론들과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하면서 아직은 혼란스러웠던 독서를 정리했다.



p****p 2014.03.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