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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 소설이 얼마나 있을까? 또 속속 빠져드는 이야기는 얼마나 있을까? 노파에서 금복, 그리고 춘희로 이어지는 전개는 헤어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빠져들게 만든다.
배경은 1930년대 ~ 1970년대 추정된다. 그런 과도기 시기에 나올 수 있는 누군가의 일대기처럼 보이지만, 몽환적이고, 설화적이고 성공 일대기처럼 보이는 이야기라서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내용이 흐름도 빨라 멈출 수도 없지만, 하나하나 놓치기 싫은 이야기의 연속이며, 읽다 보면 내가 이야기 안에 주인공이거나 주인공을 곁에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영화를 본 듯한 표현이 이 소설에 또 다른 재미다. 단어 문장을 읽다 보면 책 속에 생선 비린내를 읽고 있는 동안 비린내가 내 콧속을 찌르는 듯하고, 봄바람이 분다고 하면 등 뒤에 누군가의 힘에 의해 밀어지는 듯한 바람의 느낌도 알 수 있다.
책 속의 글자와 문장이 곧 나의 경험이 된다. 이야기 속 한가운데에 내가 있는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것이 이야기꾼 천명관의 이야기 법칙인 거 같다.
노파와 애꾸눈 금복과 춘희 생선 장수, 걱정, 칼자국, 문 씨, 쌍둥이 자매, 점보, 약장수, 수련…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도 하나하나 경중을 가릴 수 없는 내용들이다. 반전도 있고, 순애보도 있고, 사필귀정이 내용도 있어 인생 이야기로 가득하다. 작가는 정말 이야기 꾼이 되고 있었는지 갑자기 “독자 여러분 ~~” 하면서 직접 설명하는 형식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존에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형식을 깨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이것도 천명관의 이야기 법칙인 것 같다. 각 등장인물의 이름도 흥미롭다. 걱정! 금복의 남자 '걱정' ! 이름대로 금복에게 걱정만 쌓이게 한다. 노파는 늘 사건의 파장을 발사한다. 박색 한 인물로 돈만 모으는 인생을 살다 죽음을 맞이하지만, 노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사건마다 이야기에 등장해 어두운 파장을 일으킨다. 금복은 돈 복은 많은 인물이다. 사업수단도 좋아, 건어물, 다방, 벽돌 공장, 극장이 모두 성공하지만. 이름에 대한 아이러니인지 그녀가 가진 건 곧 사라질 물질에 관한 복뿐이다. 춘희는 이름처럼 봄날의 기쁨처럼 순수하게 지냈으면 했지만, 금복 딸 춘희는 따스한 봄날처럼 살지는 못했다. 뜨거운 여름날의 지친 노동자 삶 같으며,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는 여정뿐이다. 그녀의 인생 봄날은 요원하다.
무엇보다 금복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금복은 특별함이 있다. 생선 장수를 만날 때도, 걱정을 만날 때도 칼자국을 만날 때도 금복에는 특별함이 있다. 금복은 생선 장수와 걱정 그리고 칼자국과의 갈등과 어려움 속에 악을 쳐내는 글을 읽으면 같이 악에 받쳐 가슴이 무거워지고 금복의 현명함을 읽을 때는 내가 멀리서 뿌듯한 게 금복을 쳐다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작가는 본능처럼 끌리는 금복의 특별함을 아낌없이 이야기한다. 금복의 사랑과 남자에 대한 아낌없는 끌림 이야기는 읽는 내내 파도처럼 폭풍처럼 몰려왔다가 잔잔하게 물러가기를 반복하다. "id"는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를 담당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즉각적으로 얻고자 하는 충동과 욕구를 제어합니다."ego"는 "id"의 욕구를 제어하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선택하는 부분입니다.
금복의 행동은 정제되지 않는다. 성욕에 대한 내용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금복은 원초적이다. 금복은 수완이 좋고 똑똑해 보이지만, 소설 속 캐릭터는 이드(id)처럼 가장 본능적 욕구인 생존 본능을 위해 공격 본능과 성적 본능에 충실한 인물이다. 배고픔, 목마름, 성욕은 전혀 정제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말 못 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춘희가 오히려 자아(ego)로 출발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비록 완성은 못했지만, 처음에는 홀로 존재하였지만, 주변과 상호 작용하고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기의 정체성, 인식, 판단, 결정으로 사회화로 가는 과정이 이야기된다. 생존 본능에 충실한 이드(id)인 금복이 부러운 건 현대 사회를 살면서 억눌린 본능을 대변해 주고, 간접경험을 느낄 수 있어 충격과 공감이 있었고, 무던하게 살아가는 춘희라는 인물은 답답했지만, 결국 자아(ego)의 영역 속에 사는 현재의 평범한 사회인을 말하는 거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금복과 춘희를 보면 누가 더 우생 한 존재인지 판단할 수는 없다. 고래는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다. 읽는 즐거움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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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을 처음 알게 된 건 '뜨거운피' 영화를 보고 알게되었다. 소설가 천명관 영화감독 데뷔라는 글과 함께 떠오르는 어딘가 낯선 이름이었다. 소설 '고래'의 평가가 너무 좋아 기억에 남았기에 떠오른 것이었다. 미루고 미루오다 드디어 '고래'를 읽게 되었다. 도입부부터 넘쳐나는 필력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재미에 또 정신을 못 차리고 한참을 계속 읽게되는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여러분에게도 추천하오니 부디 읽기 바란다. #책의날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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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 장르의 책을 종종 읽고는 한다. 최근에는 파친코라는 책을 통해 일제시대와 우리나라 근현대의 배경을 통해 세대를 넘어서는 인물들을 조명하며 우리의 현대사를 보기도 하였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분위기보다는 어둡거나 아픈 우리내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경우 읽어나갈때 지치거나 힘에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 특유의 탁월한 필력으로 인해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어나간다. 특히 작품속에서 '그것은 00의 법칙이었다.'라는 문장이 난무하는데, 그 빈칸에 들어가는 단어를 보는 묘미까지 더한 재미있는 책이었다. 주인공의 처절한 삶을 통해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며 인간이란 무엇이고 그 인간이 모여 이루는 사회는 무엇이며 인간이 목표로 삼는 그 성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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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 장르의 책을 종종 읽고는 한다. 최근에는 파친코라는 책을 통해 일제시대와 우리나라 근현대의 배경을 통해 세대를 넘어서는 인물들을 조명하며 우리의 현대사를 보기도 하였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분위기보다는 어둡거나 아픈 우리내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경우 읽어나갈때 지치거나 힘에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 특유의 탁월한 필력으로 인해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어나간다. 특히 작품속에서 '그것은 00의 법칙이었다.'라는 문장이 난무하는데, 그 빈칸에 들어가는 단어를 보는 묘미까지 더한 재미있는 책이었다. 주인공의 처절한 삶을 통해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며 인간이란 무엇이고 그 인간이 모여 이루는 사회는 무엇이며 인간이 목표로 삼는 그 성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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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지만 <고래>는 천명관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읽히지 않았을까? 옛날 옛적에 ~ 이러면서 어릴 때 동네 어르신들이 들려주던 이야기처럼 몰두하게 되는 책이다. 금복과 그의 딸 춘희가 핵심적 인물들이고 춘희의 고독한 벽돌만들기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초반에 등장하는 박색의 노파는 불멸의 인간인 듯 끝없이 등장하며, 세 여인(그 중 한 명인 금복은 성전환 수술없이도 막판에 남자가 된다)의 파란만장한 삶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 계속 찾게 되는 마력의 소설이다. 기존의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자유로움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쏟아내며 독자를 다른 공간으로 끌고 들어간다.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진짜 내가 고통을 겪는 듯 찡그리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벽돌공 춘희의 고독은 우주의 크기처럼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 떠올랐다. 2023년 부커상 최종 후보로 선정된 이 작품에 경의를 표하며, 천명관 작가의 또다른 걸작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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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고래가 재미있다는. 그래서 꼭 읽어보라는 여러 권유들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 첫 페이지를 들여다보았을 땐 생각보자 매력적인 끌림은 솔직히 없었다. 이전 시대의 하층 여성 노동자를 끊임없이 고난과 역경에 처하게 하고 흘러가는 삶의 묘사가 그리 호감이진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천명관이란 작가가 끌어당기는 필력의 힘에 이끌려 그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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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소리꾼이 옆에서 북을 치고 틈틈히 추임새를 넣으면서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가도 눈물도 찔끔나게 했다가도 아랫도리가 살짝 젖게도 하는 이냥반이 "신명나게 놀아보세~~~~~" "얼씨구나 좋다 지와자 좋다 ~~~~" 하는 마당놀이 한판에 빠져들었다. 주변에는 나말고도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고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으로 입을 다물었다 소근거렸다 하면서 정중앙의 무대를 바라보았다....... 과학책보다도 많은 법칙이 나오는 소설책이 손꼽자면 이책말고 또 있으랴 쥐락 펴락 읽는사람을 꼴 좋게 만드니 나 참 밤 새고 읽고 나서 눈 뻘개져 출근해도 이런 마당놀이라면 내 늘 동참하외리다 이것은 천명관의 밤새 읽고 다음날 눈빨개 법칙이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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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3. 천명관 <고래> [9/10] 시대의 입담꾼 천명관의 <고래>를 접하고 첫 느낌은 재밌는 무성영화 한 편을 변사의 해설을 통해 만나본 느낌이었다. 천부적인 입담꾼이라는 천명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고래>라는 제목이 주는 진부함 때문이었는지 쉽게 손이가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단연코 대한민국에서 이만큼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갈 수 있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강렬한 인상이었다. 한 많은 인생, 박색으로 고생만 하다 평생에 걸쳐 모은 돈을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죽은 국밥집 노파로 시작되는 이 저주스러운 이야기는 타고난 사업가였던 금복의 일생을 거쳐 훗날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는 호칭으로 세상에 알려진 금복의 딸 벙어리 춘희의 일생까지 천명관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그려냈다. 분량은 많은 편에 속하지만 엄마 금복과 딸 춘희의 일생을 이야기하고 주변 인물과 배경, 사건 등을 묘사한 책이니 리뷰에서 줄거리를 크게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고래>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작가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읽으면 느낀 내 시점에서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보태고 싶다. ‘고래’라는 제목은 금복이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평대에 지은 고래를 닮은 영화관에서 따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고래를 닮은 영화관’은 그녀 금복이 평대에 오기 전 작은 어촌 마을에서 처음 보았던 고래를 연상하여 지은 것이다. 그런데 이 고래를 닮은 영화관과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상징성이란 사실 굉장히 허망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실제하지만 실제하지 않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영화라는 매체를 처음 접한 금복의 심경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박색 노파의 저주받은 재물을 얻어 기반을 마련하였지만 수완있는 사업가였던 금복이 평생을 벌어 모은 돈으로 영화관을 지었다는 것과 결국은 고래를 닮은 그 영화관에서 생의 마지막을 거치는 장면은 우리가 인생사에서 느끼는 허망함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또한 십대였던 벙어리 춘희가 결국은 방화범으로 몰려 영화관에서 엄마 금복을 잃음은 물론 자신의 젊음마저도 몇 평짜리 감옥에서 수십 년을 보내야 했음은 위에 언급한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들의 물거품처럼 사라질 꿈과 부질없는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래>는 소설 전반에 이어지는 구성과 장치가 모두 파격적이었고 플롯은 새로우나 안정적이었으며 작가의 입담 속에 표현되는 그 모든 묘사가 독자의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데 때로는 울게 했고 때로는 웃게 했으며 때로는 속상하고 분통터지게 하는 그의 필력에 읽는 내내 도저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어떠한 한국 문학과도 구분되어진다. <고래>는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천명관 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거듭나기에 충분했다.
한 편의 드라마이기도 코미디이기도 했던 <고래> 안에 남겨진 희로애락은 가볍게 표현되었으나 내가 본 중 가장 무거운 신파극의 가식적이고 과장된 연기 속에서 삶의 사유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통찰력 있는 작품이었다. |
| 우리나라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 주인공인 금복이 물질에 대한 욕망과 남성에 대한 편력, 그리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으로 더 큰 삶에서 살고 싶다는 의미를 고래로 표현 한 듯하다. 일반적인 소설이랑 조금 다르지만 한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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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 구절 반복되는 ‘그것은 법칙이었다’ 때문에 나 짜증 났자나요. 일종의 힙합 가사처럼 반복되는 어구를 부러 사용해 통일감을 주고 싶으셨나요. ㅠㅠ 작가가 법칙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들어 중간 중간 자꼬만 몰입이 깨졌자나요. 작가가 법칙에 꽂힌건지 내가 법칙에 꽂힌건지 이젠 알수가 없게 되었자나요.. 내가 꽂혀서 법칙이 거슬린건지 널부러진 법칙에 내가 꽂힐수 밖에 없었던 건지.. 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