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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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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뿌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시인의 선언이 몹시 낯설었다. 견고한 뿌리로 상징되던 시인의 마음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뿌리를 부정하고 행간의 곳곳엔 죽음과 허무가 드리워져 있는 것인가. 무슨 사연일까 생각해 보았으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뿌리를 거부하는 냉소적인 말투엔 새롭게 연대하길 원하는 욕망이, 부드러운 질감으로 서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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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뿌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시인의 선언이 몹시 낯설었다.

견고한 뿌리로 상징되던 시인의 마음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뿌리를 부정하고 행간의 곳곳엔 죽음과 허무가 드리워져 있는 것인가.

무슨 사연일까 생각해 보았으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뿌리를 거부하는 냉소적인 말투엔 새롭게 연대하길 원하는 욕망이,

부드러운 질감으로 서로를 감까안을 수 있는 아메바와 풀잎을 통해

세상과 사물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상실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 ...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中

 

 시인이 말하고 있는 말馬은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로써의 말이자,

더이상 뿌리가 아니라며 존재를 부정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남으로써 자아를 충전하는 과정이 된다.

 

#

손보다는 섬보가 좋다

인간다움이 제거된 부드러운 털이 좋다

둥글고 잘 휘어지는 등이 좋다

구불구불 헤엄치는 무정형의 등이 좋다

휩쓸고 지나가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온순한 맨발이 좋다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中

 

더이상 뻗어나갈 수 없는 경직된 뿌리와 달리

아메바는 부드럽게 서로를 껴안을 수 있고 

원하는 만큼 사랑을 갈구할 수 있다.

 

#

풀은 물결기계처럼 돌아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흔드릴ㄹ 수 없을 때까지

풀의 신경섬유는 자주 튀엉키지만

서로를 삼키지는 않는다

다른 몸도 자기 몸이었다는 듯 휘거나 휘감아들인다

가느다란 혀끝으로 다른 혀를 찾고 있다

-풀의 신경계 中

 

풀은 부드러운 운동을 통해서 풀들끼리

뒤엉키고 휘감으며 수평으로 사랑을 확대할 수 있다.

한 자리에서 견고하게 혹은 움직임 없이 서 있는 나무의 뿌리와 달리

풀은 고운 질감으로 삶의 소용돌이 안에서

서로를 만질 수 있고 감촉을 느낄 수 있다.

 

 

***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이면 본질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대신,

필연적으로 부대껴야하는 실전으로써의 삶을 겪게 되고,

엉키고 엉킨 실타래를 직접 풀어가는 행위를 반복할수록

연약했던 마음은 부드럽게 닳고, 성숙해진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자아를 지탱해주는 뿌리의 견고함이 나무에겐

모진 바람에 꺽여질 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약점이었다.

나무보다 유연한 촉감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아메바와 풀잎은

시련에 꺽일 일이 없고, 원하는만큼 옆으로 손을 뻗을 수 있다.

 

끈적한 타액으로 서로 엉킬 수 있는 아메바는 뿌리보다 능동적이고,

무엇보다도 빨리 눕고 먼저 일어날 줄 아는 김수영 시인의 풀처럼,

바람이 불수록 어느 방향으론 누워 서로 연대할 수 있는 풀잎은

어떤 시련에도 뿌리보다 강하다.

 

n******o 2022.02.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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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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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고 너무 좋은 시들이 많아서 구매하게된 시집이었습니다.수능 칠 때 말고는 시를 읽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감성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어느새 구매까지 하게되었네요. 학창 시절 저자분의 시를 보고 참 따뜻한 감성이라고 생각했는데이 시집은 마냥 그런 감성들은 아니네요. 뭔가 더 생각하게 되고 사색하게 되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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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고 너무 좋은 시들이 많아서 구매하게된 시집이었습니다.

수능 칠 때 말고는 시를 읽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감성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어느새 구매까지 하게되었네요. 학창 시절 저자분의 시를 보고 참 따뜻한 감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시집은 마냥 그런 감성들은 아니네요. 뭔가 더 생각하게 되고 사색하게 되는 그런 시집이었습니다.

책 사이즈도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좋아요.

d*******2 2019.06.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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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것의 회고를 위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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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가수 ''하현상''이 책을 추천해 주어서 사게 되었다. 나희덕 작가님은 원래 <오 분 간>, <땅끝> 등의 시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그곳이 멀지 않다>를 샀다. 표지 뒤에 써진 ''시''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시를 써 보는 사람으로서 공감 가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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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가수 ''하현상''이 책을 추천해 주어서 사게 되었다. 나희덕 작가님은 원래 <오 분 간>, <땅끝> 등의 시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그곳이 멀지 않다>를 샀다. 표지 뒤에 써진 ''시''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시를 써 보는 사람으로서 공감 가는 문장이었다.
j******9 2025.02.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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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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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시에 첫걸음을 떼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보고 이상하게 끌렸던 책이다. 지금은 이 시집을 처음으로 나희덕 시인님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시인님의 글은 단순히 이해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곱씹어 보고 끄덕이게 된다. (41p) 말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너'에게 외투를 챙겨주는 그 말이 왜 이리 시리면서도 따뜻했던 걸까. 어두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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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시에 첫걸음을 떼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보고 이상하게 끌렸던 책이다. 지금은 이 시집을 처음으로 나희덕 시인님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시인님의 글은 단순히 이해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곱씹어 보고 끄덕이게 된다.
(41p) 말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너'에게 외투를 챙겨주는 그 말이 왜 이리 시리면서도 따뜻했던 걸까. 어두우면서도 밝았던 걸까.
d*******7 2022.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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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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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의 말 : 제 마른 나무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뿌리로부터 :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 끝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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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나무의 말 : 제 마른 나무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뿌리로부터 :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 끝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뿌리로부터 멀어질수록/ 가지 끝의 이파리가 위태롭게 파닥이고/ 당신에게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뿌리로부터 달아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이이이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밀랍의 경우 : 밀랍은 더 이상 희지 않고 향기롭지 않으며 손으로 만지거나 두드릴 수 없다/ 어떤 불길이 밀랍을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밀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카시아꽃 향기, 벌들의 날갯소리, 햇살과 바람, 누구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밀랍은 밀랍일 수 있을까 우리가 아는 것은 밀랍 자체보다 밀랍이 곧 녹거나 닳아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무언가 부족한 저녁 : 여기에 앉아보고 저기에 앉아본다/ 컵에 물을 따르기도 하고 술을 따르기도 한다/ 누구와 있든 어디에 있든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저녁이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저녁이다/ 저녁에 대한 이 욕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차로에서, 시장에서, 골목길에서, 도서관에서, 동물원에서 오래오래 서 있고 싶은 저녁이다

k****6 2019.08.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