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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이디스 워튼의 후기작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국내 초역으로 출간되었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시리즈는 다른 출판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품으로 심플한 디자인에 호기심이 더해지는 시리즈다.
『반마취 상태』는 『순수의 시대』나 『이선 프롬』, 『여름』과는 다른 작품으로 미국의 상류층 가정의 화려함 뒤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지루함, 영적 체험 등을 나타낸 소설이다. 가정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과 가족을 향한 애정과 표용이 중요할 것이다. 한 사람만으로 노력으로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한 독서였다. 소설의 주인공인 노나나 폴린 그리고 리타, 맨퍼드를 보며 각자가 가진 개성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누군가의 희생으로 깨지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폴린은 상류층 부인의 전형적인 자화상이다. 다만 그 시대에는 없던 남편과의 이혼을 추진한 적극적인 인물이면서 눈가의 주름에 관한 치료와 영적인 치료법을 찾는 인물이다. 다만 이혼한 전 남편 아서 와이언트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폴린의 아들 짐과 그의 아내 리타를 보살피는 장면은 두 가족이 폴린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듯하다. 맨퍼드는 열정적인 폴린에 대한 지루함을, 자유분방한 리타를 보며 일탈을 꿈꾼다. 아버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가를 확인한 노나는 그저 불안하다.
모든 관계가 그렇지만, 관계는 각자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리타는 화려한 삶과 영화배우의 꿈을 키우고 폴린과 노나, 조지는 그녀를 붙잡으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한다. 불안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과 지루한 삶을 견디지 못한 그들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리타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붙잡을 만한 장소로 함께 떠난다.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다.
노나에게 닥친 위기는 이 가정의 위기와 같다. 총소리를 듣고 리타를 구하려 방으로 뛰어들었던 노나가 본 풍경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해본다. 밝혀진 사실과는 다른 숨겨진 진실이 폴린의 가정을 평온을 가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만 노나는 불면의 밤을 보낼 뿐이다. 표면적인 평온과는 다른 충격적인 기억이 노나를 잠 못 들게 한다.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폴린의 가족에게서 보게 된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다. 어려움을 겪은 뒤 성장하는 글이 아니다. 위기를 모면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인물들의 정체상태에 말을 아낄 뿐이다. 상처와 고통이 피상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으며, 언제라도 덧날 수 있는 불안 상태라고 봐야겠다. 위기에서 벗어난 폴린의 가정은 표면적인 평온 상태에서 얼마나 갈까. 금이 간 유리는 언제든 깨질 위기에 처한다. 불안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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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중... 1920년대의 미국. 뉴욕 상류층 가정의 한 모습을 담아내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함께 다룬다. 누가 봐도 이상적인 가정이지만, 누구나 알듯이 가까이서 보는 비극이라는 그 가정의 내밀한 모습이 비친다. 가족의 갈등과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세대 간 갈등까지.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중에 비슷한 면이 많이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보다, 그 의식주 생활 안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과 가치를 따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소설의 제목처럼, 작가는 반마취 상태로 고통을 없애면서 현실의 힘듦을 외면하고 싶은 현대인의 모습과 또한 출산의 고통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하지마 단순하지 않게도, 반마취 상태의 우리를 다양한 시선으로 지켜보고자 하는 의미도 보인다. 출산의 고통을 없애는 반마취 상태로 아름다움만을 남기고자 했지만, 그걸 위해서 감당해야 할 또 다른 고통과 후유증은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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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외부에서 볼 때의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에서 느끼는 상태다. 예를 들어 외부에서 볼 때는 행복해 보여도 내면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부에서 볼 때는 행복해 보이지 않아도 내면은 행복한 사람이 있다. 둘 중 하나의 상태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순수의 시대>, <여름> 등을 쓴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이디스 워튼이 1927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반마취상태>는 전자와 후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수작이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주인공의 가족 구성을 정확하게 이해해 두면 좋다. 주인공 폴린 맨퍼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한 번 이혼한 여자다(당시 뉴욕 상류 사회에서 이혼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안좋았는지는 <순수의 시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폴린의 첫 번째 남편 아서 와이언트는 '뉴욕 구혈통' 출신에 외모도 출중하지만 무직이고 음주와 도박으로 아내의 돈을 축내기 일쑤였다. 결국 아서가 사촌 엘리너와 몰래 만나는 걸 폴린에게 들키면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 폴린의 두 번째 남편은 폴린의 이혼을 도와준 변호사 덱스터 맨퍼드로 지독한 일 중독자다. 폴린은 아서와의 사이에서 아들 짐을, 덱스터와의 사이에서 딸 노나를 얻었다. 이혼-재혼 가정이지만, 폴린과 폴린의 전 남편과 아들 짐, 며느리 리타, 폴린의 현 남편 덱스터와 딸 노나는 마치 하나의 대가족처럼 서로를 아끼며 친하게 지낸다. 문제는 짐-리타 부부 사이가 예전 같지 않게 되면서 불거진다. 결혼 전부터 예술가 기질이 있었던 리타는 짐과의 결혼 생활에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짐과 이혼한 후 연예계에 진출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알게 된 폴린과 덱스터, 노나는 리타를 설득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짐에게서 마음이 떠난 리타는 좀처럼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 외부에서 보면 폴린과 덱스터, 노나가 리타를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짐을 위하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폴린과 덱스터, 노나에게는 각각의 속내가 따로 있다. 특히 폴린은 자신도 이혼을 했는데 같은 여성으로서 리타의 이혼을 말리는 게 말이 되나 싶다. 사실 폴린은 소설 곳곳에서 이중적,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다. 폴린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여성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산아 제한과 출산 장려처럼 서로 대립되는 주장을 동시에 옹호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순, 이중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저자가 소설의 제목인 <반마취 상태>라는 단어를 통해 일종의 힌트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에 따르면 반마취 상태는 '출산하는 여성에게 모르핀과 스코폴라민을 혼합한 진통제를 주사하여 산고를 줄일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출산 자체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게 하는 의학 기술'을 뜻하며, 실제로 1920년대 미국 뉴욕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 반마취 상태 분만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도입부의 리타의 출산 장면에서 폴린이 반마취 상태 분만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폴린으로서는 출산을 먼저 경험한 여성으로서 리타가 느낄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폴린의 캐릭터로 미루어 봤을 때 며느리 걱정을 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깨인' 시어머니임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는 '깨인' 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은 리타의 이혼을 반대하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뉴욕의 상류층 가족이지만 며느리 하나 빠진다고 휘청거리는 모습은, 역으로 이 가족이 얼마나 부실하고 허약한 토대 위에서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죽하면 가족 중에 가장 젊고 앞날이 창창한 노나가 결말에 이르러 "차라리 수도원에 들어가 생을 마무리하는 게 낫다"라고 절규했을까. 결국 돈이나 지위나 결혼, 가족 제도 같은 사회적 안전망은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드는 마취제인가 싶다. #책의날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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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마취 상태(Twilight Sleep): 1900년대 초반 미국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여성의 산고를 줄여주기 위해 마취제를 사용하던 의학적 방법을 말한다. 나와 이디스 워튼의 만남은 순수의 시대로 시작해 버너 자매, 반마취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디스 워튼의 작품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내 작품에 온전히 담아내겠다는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던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순수의 시대에서는 미국 상류사회의 끝자락을, 버너 자매에서는 당대 미국 사회의 그늘을, 반마취 상태에서는 환락의 시대, 재즈의 시대로 불리는 미국의 1920년대를 담고자 하였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먹고 사는것 자체에 많은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사회는 급격하게 발전해가는 반면, 인문학적 발전은 항상 더디게 일어난다. 작가는 “반마취 상태” 라는 상징적 표현을 통해 이때의 미국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고통과 통증을 차단하는 반마취 상태에 빠져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의, 더 나아가 그러한 사회의 분위기를 아주 잘 표현해주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물론 고통과 통증은 거의 항상 부정적인 경험을 안겨준다. 하지만 요점은 반마취 상태에서는 출산으로 표현되는 고통과 통증의 결과이자 원인인 우리의 삶 그 자체에 있다. 작중 폴린은 출산은 무조건적인 아름다움만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과 통증을 제거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정의하고 이를 제거함으로서 아름다운 출산이 가능했다 라고 말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 단어 아래에 반마취 상태의 후유증은 생각지 않는다. 아름다운 삶을 지속하기 위해 여러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여러 모순들, 아서 와이언트가 정의라고 포장하며 가족들에게 해를 가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디스 워튼말한다. 외면하는 태도로는 삶의 그 어떤 문제도 감출 수 없으며, 우리는 우리의 고통과 통증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노라고. |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뉴욕 상류층의 일상을 그린 마치 우리네 아침드라마와 같은 느낌의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속내를 감추고 사교적인 가면을 쓰는 데 능숙한 인물들이라 갈등을 극적으로 몰고가다 격정적으로 표출해 줄 만한 캐릭터가 작품 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야기가 상당히 산만하다. 특히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사건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끝까지 말해주지 않은 채 넘어가 버린다. 그래도 역시나 이디스 워튼답게 유려하고 귀티나게 글을 잘 쓴다.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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