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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장 자크 루소.
그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단순히 루소의 사상과 철학을 쉽게 풀어쓰는 정도의 책이겠거니 생각하고 집어 들었던 이 책은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유익하고 알차게 구성이 되어있었다.
특히 루소의 사상을 뭉뚱그려 이야기하지 않고, 교육, 정치, 법, 경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
읽기에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좋았던 것 같다.
이렇듯 분야를 가리지 않고 참 다양하게 활약을 했던 그 같지만,
책을 다 읽고난 후, 그의 사상과 철학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고 '삶'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쩐지 거창하기만 하고 피부에는 잘 와닿지 않는 다른 사상가들의 말과 달리,
루소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와닿는 느낌인건
그가 인간의 귀중함과 삶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대학 시절 우연히 루소에 관한 논문을 읽고 루소라는 인물에 빠지게 되었다는 저자 김의기처럼
나도 이 책을 계기로 루소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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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이전에 비해 빠르게 성장했고, 삶은 더욱 편리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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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의 이름과 몇몇 저서만 알 뿐,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프랑스혁명에도 영향을 끼친 건 알았지만 그의 <사회계약론>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책은 장 자크 루소의 사상과 철학을 각각 인간, 정치, 법, 교육, 경제 등등의 카테고리로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7장이었다. 루소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맞딱드린 문제에 대해 대안을 찾는 부분이었다. 부의 불평등, 일자리 부족, 노령화 사회, 극빈층 증가 등등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결국 통제되지 않은 자본주의체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통제되지 않은 자본주의는 체제의 특성상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무려 200년 전에 이야기한 루소의 혜안이란... 물론 이러한 주장으로 루소를 공산주의자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자는 루소가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를 보완하고자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어렵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글이 술술 잘 읽혔다. 쉽게 글을 쓰는 저자의 능력이 탁월한 듯 싶다. 루소의 글도 흥미로웠지만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문제를 풀어낸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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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 장자크 루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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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하면 그저 자연주의 철학자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루소는 실로 참 대단한 인물이란 걸 새삼 알게되었다. -자유와 평등, 다시 시대의 광장에 서다- [나는 루소를 읽는다] 아~ 정말 재미있게 잘 읽은 책이다. 루소의 책을 다 사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250년 전의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장자크 루소의 통찰력은 현시대에도 전혀 뒤떨어짐이 없이 날카로웠다.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루소의 자유.평등 이념은 아직 이 세상엔 적용되지 못한 것 같다. 어찌 세월이 흐를수록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기만 한다. 떳떳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표방하지만 그 속의 부조리는 가히 감당하기 힘들기만 하다. 지금 세계는 소주의 권력층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부는 1%에 집중되어 있고 모두들 그 1%의 특권층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자녀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돈이 최고가 되어버린 황금만능주의 속에서 돈은 곧 행복이란 잘못된 사고가 만연한 세상이 되어 버려 도대체 어느 길로 내 아이를 인도해야 옳은지 헷갈리기만 하다. 세상을 무시한 채 나만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기엔 이미 자본주의에 구속되어 버려 것도 쉽지 않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서 난 인간답게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흐미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은 변하지 않을거란 걸 안다. 그저 나 자신의 변화만 있을 뿐이겠지만 그것도 확신하기는 어렵다. 저자가 재조명한 루소의 사상은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자연상태에서 서서히 사회상태로 진행되면서 인간의 퇴보가 시작되었다는 루소는 이기심을 타락한 정신으로 보았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루소의 사상을 요약하자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글로 표현하지를 못하겠다.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추구한 사상가 루소를 재조명한 이 책을 통해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잘못된 방향과 그 해결책들도 함께 알 수 있어서 속시원함이 느껴졌다. 물론 바뀌지 않을 세상속에서 계속 살아가겠지만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지금 나의 자유의지대로 민주주의란 이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의미있는 독서의 시간을 가진 것 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안겨준 책이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 하지만 군주는 백성에게 그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사랑 대신 명령하는 즐거움으로 그들을 지배한다- 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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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루소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의 사상에 대해서 배웠고, 그가 쓴 책 속 구절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홉스와 칸트의 사상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삼십대초반인 나에게.. 루소의 사상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가 옳은 쪽이었는지, 그 반대였는지도....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한 순간조차도 읽은. 배운 기억이 나지 않은 채로 나는 이 책의 첫장을 넘겼다. 책 제목처럼 나는 루소를 읽게 되었다. 아니, 그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책의 저자 김의기 씨는 열렬한 루소의 팬이었다. 학창시절 루소의 정치사상을 분석한 책을 읽고 루소에 입문한 그는 2011년 제네바 WTO 사무국에서 근무하고 있을때, 대학생 모의 UN대회에서 일등을 차지한 몇명의 학생들이 WTO를 방문했을때 대학생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아니... 미처 그들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루소의 사상에 대해서. 그의 삶과. 저자 김의기 씨가 생각하는 루소에 대해서. 또한, 현대사회의 정치, 사회문제와 얽혀서. 그만의 열렬한 루소사상에 대해서 풀어내었다.
읽기에 앞서서, 이 책을 읽기가 조금은 어렵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루소의 사상이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 내가 잘 읽어 내려갈 수 있을까. 혹여 어렵게 풀어낸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나의 우려였다. 얼마나 쉽고 재미나게 읽어 내려갔던가! 나를 저자와 마찬가지로 루소의 추종자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사실 루소의 사상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와 저술한 책의 문장들이 나의 마음에 더 와닿았다. 그가 다섯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렸다는 사실. 국가가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기 위해서, 돈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을 그런식으로 내버려두었다는것은, 도의적으로는 돌멩이를 던질 일이었지만, 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글과 사상이 그런 잘못들을 덮어 버린다고 생각했다. 루소는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알려 달라는 시농소 공작부인의 부탁으로 <에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 '에밀'은 그가 가르치는 학생의 이름이었다.
한 아이를 성인이 되기까지 가르치면서 자신의 다섯아이들은 어떻게 고아원에 보내버릴수가 있었을까? 라고 책을 읽는 내내 내면의 양심이 소리쳤지만, 사람들은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유!자유! 그리고 평등! 만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그의 사상은 지금 대비해도 어색하지 않았고, 특히 교육에 대해 쓴 글인 <에밀>은 나도 꼭 읽어보고 싶었다. 나중에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말이다.
낭만주의 문학의 창시자라는 또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루소. 그의 책들을 오늘부터라도 한권씩 구매해서 꼭 읽어보리라. 다짐하였다. 루소의 책 내용이 구절구절 많이 삽입되어 있어서 너무 좋았고. 아쉬웠던 점은 좀 더 많은 장수로 이루어졌더라면 좋았을걸 싶었다. 집중력이 깊어질 때쯤 이 책이 끝나 있어서 아쉽긴 했지만, 루소의 다른 책을 읽어보라는. 그의 추종자가 되어 보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 같아서. 아쉬움을 남기며 책을 덮었다. 또 다시 루소를 읽을 날을 기다리며...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추가족어로 새로운 축복을 줄 필요가 없고, 그것을 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축복을 달라고 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굳이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p.102)
살아 있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만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기관을, 감각을, 기능을,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가장 잘 사는 사람은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누구보다 많이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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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을 실천에 옮긴 루소. 그의 대표작 사회계약론, 에밀은 고전으로 분류되어 크나큰 반향을 사후에도 미치고 있다. 사상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여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고 혼란과 변화, 그리고 진화에 이르게 이끄는 역동성이 넘친다. 프랑스혁명에 끼친 영향력에 루소는 결코 비중이 작지 않다. 그만큼 사상의 탄생과 그 생명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물론 지난 일의 경우, 쉽고 재미있지만 그 소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던 사람들은 결코 달갑지 않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사회 변혁은 미래의 세대에게는 변화로움과 다채로움에 흥미로운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시름하거나 고민하고 있다. 세상이 변해도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다. 루소가 오늘날까지 우리 머리와 가슴에 살아있는 이유는 그의 위대함보다는 어려운 시대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 구현을 위해 용기있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그의 무덤 앞에서 자신과 루소 둘 중 하나만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어도 세상은 보다 조용했을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 만큼 루소는 실천의 대가였다. 과오도 적지 않다. 본인의 트라우마인 친부로부터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한을 풀고자 에밀을 집필했지만, 본인의 다섯 자녀는 당대 고아원이나 마찬가지였던 수도원에서 길러졌다. 트라우마는 그의 자녀에게 다시 전달되었고, 루소는 인간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과 당대 폐쇄적인 기득권층으로부터 인격적, 사상적 폭격을 당했다. 응당 감수해야하는 과정이었다. 이 책은 그런 루소를 학창시절 만나 40년간 매료된 저자의 결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간략하며 읽기 쉽게 기술된 점은 루소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하는 책으로서 매우 유용하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은 함께 봉합하고 개선해야할 인류의 과제다. 누구도 자기를 팔 만큼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은 부의 양극화를 치유해야할 근본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보듬어야한다. 기회의 불평등, 경제의 양극화, 인간소외는 반드시 제기하여 짚고 넘어가야하는 문제다. 이는 인간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과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루소의 개혁의지는 완료가 아닌 진행으로 다가온다. 250년이 지나, 350년이 흘러도 아마 비슷한 문제가 우리 주변에 놓일텐데, 그 때도 루소가 방향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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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쟈크 루소의 수 많은 저작 중에 교육론인 <에밀> 한 편만을 고작 읽어보았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남들처럼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 하면서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그저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속에서 소외되지(낙오되지) 않음을 존재라고 여기는 듯이 지내던 시절이었다. '아빠가 되는 순간' 비로소 '아빠'라는 양식을 통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나서게 되었던 것 같다. "250여년 전의 교육론이 현재에 얼마나 유의미하게 다가 올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의구심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두터웠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는 그의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견해에 깊은 감명을 받아 흥분해 있었음을 떠올려 본다.
저자 김의기님 역시 대학시절 장 쟈크 루소를 처음 접하고는 그의 사상에 흠뻑빠져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 후 40여년을 장 쟈크 루소의 저서와 관련 문서를 탐독하였다고 한다. 똑같이 마음의 울림이 있었지만 누구는 울림에 반응하고, 누구는 울림을 흘려보낸다. 나와의 다른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밀려드는 존재의 왜소함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하지만 또다시 망각하고 있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왜소함으로나마 나에게 감각되어짐은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으리라.
이 책은 장 쟈크 루소의 사상을 인간론과 정치이론, 교육론을 바탕으로 경제론으로 접근시킨다. 저자 본인이 밝히고 있듯이 '루소의 자본주의 보완론을 연구하고,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찾자'는 목적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장 쟈크 루소인가? 그 이유는 수 많은 사상가들 중에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꿈꾸는 사상가이면서, 치밀하고 치열한 사유들이 우리 현실에 가장 근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역설처럼 들리고, 때로는 자기모순처럼 보여지는 루소의 언어들이 불화와 결별하고, 어색함이 사라질때 우리의 삶도 진정한 행복으로 한 걸읆 전진해 있음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장 쟈크 루소의 수 많은 명저들을 저자 개인의 단편적 시각으로 일부분만 보여진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는 저자의 문제가 아닌 독자인 나의 문제일 뿐이다. 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루소 직접 읽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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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빛내고,영향을 끼친 철학가의 이념과 사상은 독자적인 지적 이론도 있고,문어발과 같이 비슷한 이념계통이 파생되어 여러 분파를 이루는 철학사상도 있다.철학사상이 이렇게 독보적이면서도 다양한 이념과 사상이 때로는 현대사회,현대인의 삶과 사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철학가의 이념과 사상이 현대인의 삶에 커다란 울림과 공명을 안겨 주어도 부조리하고 부패한 사회가 일시에 변화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부패하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널리 알리고 소통하면서 새롭게 바꿔야겠다는 믿음과 기대를 갖을 수가 있다.
현대 한국사회는 주지하다시피 사회구성원의 소득분포가 피라미드형을 띠고 있다.소수의 부자계층과 다수의 서민 및 빈곤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다.정확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10% 안팎의 부자들이 대다수인 90%의 사회구성원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하고 있다고 본다.부자는 부를 어떻게 취했든 지금의 부를 대대손손 누리고 싶어할 터이기에 부의 분배,누진세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촉각을 드리울 것이다.부의 형성과정은 그렇다치고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는 계층들은 그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소득만 보장될 뿐 여유와 여가를 느낄 정도의 일자리는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물론 예외는 있다.대부분 현장직이고 기술경험을 요하는 직업군이기에 위험요소가 뒤따른다.이러한 현대사회의 소득분포와 일자리 시장상황이 열악한 가운데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의 사상과 작품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 커다란 공감을 얻게 한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루소는 이성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게 된다.대표적인 작품이 <사회계약론>으로서 프랑스 혁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자유,평등,박애정신이 바로 그것이다.특히 자유와 평등은 바늘과 실과 같은 불가분의 성격으로 규정짓고 있다.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나라에서 자유와 평등은 헌법에 나와 있는 국민주권의 대표적인 문구이지만 실상 사회의 현상을 들여다보면 자유와 평등은 높은 신분,경제적 상승에 따라 맛볼 수 있는 결과적 열매일 뿐 태생적으로 불우한 환경과 낮은 신분을 갖은 계층은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루소가 <자유계약론>에서 말하는 일반의지는 개개인의 자유의사의 상호계약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사회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공적주체로서의 시민의 의지를 일컫는다.즉 시민에 의해 제정된 각종 법규범까지를 아우르고 있다.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후일 러시아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작품 전개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후회와 자성의 의미에서 교육 비전을 담고 있는 <에밀>을 내놓게 된다.그 역시 다섯이나 되는 자녀를 수도원으로 보내고 교육과 양육은 아버지로부터의 되물림처럼 제대로 교육과 양육을 하지 못한다.그는 스위스에서 태어났지만 사상과 작품의 탄생은 프랑스에서 빛을 보았다.그는 계몽사상가로서 당대에는 홉스와 로크 등과 약간의 차이를 두면서 계몽적이고 이성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간다.그리고 몇 년간 북부 이탈리아,프랑스를 방황을 하고 쓴 <고백론>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와 근친상간이라는 정신적 충격을 맛보게 된다.루소는 66세에 사망하기 직전 <고독한 산책자의 사념>에 밝혔듯이 사회혁명 뿐만 아니라 인간혁명의 실현까지 추구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통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정치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최고의 국민,가장 덕성스럽고,계몽되고,지혜로운 국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제제는 어떤 것인가?" 였다. -P76
어느 선거,어느 후보든 경제 살리기,민생을 위하여 등을 외치고 있다.경제적인 문제는 단 한 사람의 힘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더욱이 대의민주정치 사회에서 각당의 이해관계,의견조율이 뒤따르면 정치가들이 어떠한 목적으로 정치적 힘을 사용하고 발휘하느냐에 따라 경제 살리기와 민생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250년여 년 전에 쓰여진 <사회계약론>을 통해 시민이 주체가 되고 민생을 위한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가 있다.인간과 사회제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영역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고,정치를 하는 정치가는 힘과 권력을 시민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마땅하는 것을 주문해마지 않는다.
사회계약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고민하고 풀어야 할 사안이 많다.자본주의 체제가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낳고 있다.이에 루소는 <불평등 사회의 기원>을 내놓고 있다.평등이 계약조건이면서 이를 수행했을지라도 평등은 계속 도전과 위협을 받게 된다.단적인 예로 농업이 돈벌이가 안 되는 이유를 인간의 생활에서 가장 불가결한 물품을 생산하기 때문으로 밝히고 있다.농산물의 가격이 싸야만 가난한 사람이 연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값이 저렴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람의 일은 그 유용성에 반비례하여 가치가 결정된다.사람에게 있어 가장 필요 불가결한 일이 가장 값싸게 취급된다. -P163
산업화,도시화,탈산업화로 이어지는 현대사회는 육체노동보다는 정신노동을 많이 하고 있다.국가와 기업이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맞춰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장 유연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루소의 주사상인 <사회계약론>과 <사회 불평등의 기원> 등을 통해 그가 나타내려고 했던 이성적이고 계몽적인 주의.사상을 토대로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부의 분배,일자리 창출,자유와 평등의 문제 등을 다양한 각도로 고찰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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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헌법교과서에서 죽어 있던 루소를 다시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헌법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홉스, 로크, 루소의 사상을 피상적이나마 접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시험공부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적다보니 대학원에서 헌법이나 법철학 등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깊이 있게 접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도 피상적으로 루소의 사상을 접해본 사람으로서 금번에 루소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상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혼동의 21세기, 루소의 사상의 전부라는 자유와 평등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는 즘에 만난 루소 전문가가 전하는 루소의 이야기.
자유와 평등. 참 멋진 말이다. 자유를 강조하면 평등이 희생당하고, 평등이 강조되면 자유가 희생당하는 구조가
아닌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세상.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이지만 사실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이 멋진 균형을
유지하면서 실천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14 대한민국. 과연 자유와 평등 그 하나라도 온전하게 실천되고 있는가??
자유를 생각해보자. 물론 영화 "변호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기관이 하나가 되어 특정권력의 유지를
위해 가장 강력한 국가권력기구인 수사권력을 이용하여 국민의 신체를 고문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물론 아닐수도 있을 여지는 있다. 지나갔다고 믿자).
하지만 우리는 고도화된 정보통신 사회에서 부지불식간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는 사회에서
자유롭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인터넷사이트에 가입하면서, 차량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면서,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차량을
운전하여 이동하면서 모든 것을 노출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루소가 가정한 자연상태의 인간의 삶과
극단적으로 배치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례로 범죄혐의가 있는 피의자의 경우이지만, 수사시관은 피의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만으로 피의자가 가입되어
있는 인터넷사이트를 모두 알아낼 수 있고, 그 사이트에 어느 정도 횟수로 방문하고 있는지도 손쉽게 알아 낼 수 있다.
우리는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경제적으로 평등하지 못한 사회구조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여러가지 기본권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물론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이름을 빌려 합헌적인 방법으로 기본권들이 침해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살펴는 보자..
헌법이 부여한 직업선택의 자유 및 공무담임권.
자의던타의던 가장 선호받는 공직인 판사, 검사의 직업을 꿈꾸는 학생이 있을 것이다.
학생은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본인이 꿈꾸는 직업을 가지지 못할 가능성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등록금이 매우 비싼 대학교에서 학부 4년 및 대학원 3년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물론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하면 되지만 그것은 예외일뿐이다).
학생은 헌법이 부여한 직업선택의 자유와 공무담임권을 물론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모의 사회적지위와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평등하지 않는 사회구조에서 이 학생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공무담임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대학에서 7년
동안 학비를 부담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학생이 부유한 부모를 둔 서울 강남에서 거주하는 학생이 다수일까,
농부 및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 학생이 다수일까).
특정공직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특정계층의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면 사회의변화는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고 계층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특정공직이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고 가능성에 관하여 얘기하는 것임).
헌법 제14조에서 거주이전도 보장하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강남에서 누구나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허울뿐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뭐 하나하나 열거하다 보면 수천가지, 수만가지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개인의 사유재산 및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부의 불평등이 가져 오는 사회적 폐단을 줄여
자유와 평등이 구현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시간이 허락하면 더욱 많은 글을 쓰고 싶다.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자면 루소의 교육방법론을 하루빨리 대한민국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찬성이다.
줄세우기 교육이 아닌 누구에서나 기회가 주어지는 저렴한 대학교육. 하지만 진정으로 학문을 사랑하고 공부를 할 사람이 아니
면 대학졸업이 불가능한 구조.
대한민국의 국립대학에서 50만명을 수용하고, 국립대학간 이동이 자유롭고, 국립대학 입학생 50만명 중 10% 정도만 졸업이 가능
한 구조를 만들면 중, 고등학교 교육이 어떻게 진행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