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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삶의 궤적은 어떤 연관성을 지닐까? 예술가들의 기행적인 부분은 때론 문학이라는 옷을 입고 예술로 비춰지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비극적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의 한 귀퉁이가 되어 박제된 채 기억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에서 기행과 괴짜 기질은 한편으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지기 까지 한다. 이러한 전통은 파격과 기행의 대명사인 앤디 워홀, 길버트, 조지, 요제프 보이스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이렇게 유명한 삶의 궤적으로 인해 신화로 불려지는 인물로서는 단연코 고흐가 떠오르는데 그와 쌍벽을 이루는 예술가가 있다면, 단연코 툴루즈로트레크이다.
로트레크는 어쩌다가 우리 시대에 신화가 되어 버렸다. 그의 생애는 영화를 통해 ‘불멸’이 되었고, 그의 작품은 사적,공적 공간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의 화풍은 삽화가와 광고화가들이 모방하면서 양산되었다. 그 결과 온갖 형태들로 왜곡되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종의 시각적 클리셰가 되었다. 이러한 신화화神話化는 한 작가의 내적, 외적 생애라는 별도의 고유 가치들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근친 결혼을 선호하는 귀족가문에서 선청성 장애를 안고 태어난 로트레크. 그의 삶은 고흐의 삶의 궤적과 같이 한다. 알코올 중독과 창녀들과 함께 방탕한 삶을 살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기까지 비극과 불행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문학으로서 미화되지만, 그의 예술가적인 삶은 생애처럼 뚜렷한 가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로트레트에 씌워진 신화를 거두고 예술가라는 민낯의 로트레크의 삶을 재조명하는 책이다. 고흐의 삶이 문학과 함께 흡수되며 신화로 박제되었듯이 로트레크의 삶의 궤적 또한 비운의 천재 예술가의 삶의 필수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난장이처럼 작은 키에 큰 머리, 선천성 기형을 타고 났지만 사업가 기질을 타고 났던 로트레크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회화로서 미술시장을 뚫기 힘들다는 판단하에 그래픽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의 그래픽 시도는 무척이나 시의적절한 것으로 미술사에 길이 남을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당시 로트레크의 판화는 혁신적이고 모험적이며 유럽 미술에서 회화가 갖지 못한 미래의 발전을 남겼다는 평을 받았다.
이 책은 로트레크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소개하며 예술가로서의 '로트레크'를 재조명하고 있다. 때론 예술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의 궤적들로 '예술가'로서의 가치보다는 문학적 미화와 왜곡으로 예술가 자체로서의 위대함이 반감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레이븐스본 미술 디자인 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툴루즈 로트레크가 그러한 경우라고 한다. 고흐만큼이나 비극적이었고 고흐만큼이나 기행적인 로트레크의 예술가적 가치는 로트레크가 죽고 한 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광고, 만화, 채색만화, 공상과학소설 삽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위대함을 알 수 있다. 가장 뛰어난 평을 받고 있는 그래픽 작품들의 기초가 되는 회화와 드로잉의 탄탄한 기초를 보여주는 총 169편의 도판과 사진자료들은 예술가로서의 툴루즈로트레크의 삶을 더욱 생동감있게 조명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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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툴루즈로트레크(버나드 덴버: 시공아트, 2014) 로트레크가 헤쳐 나간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도전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번화가 클리시 거리에는 풍차모양의 외관을 가진 댄스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889년에 개장한 이 건물은 흥행물로 유명한 춤 '카드리유'(나중에 프렌치캉캉이라 불림')로 인기를 얻었으며 수많은 무용수들과 스타들을 배출한 명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파리의 명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이 건물과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명의 작가 이름이 오롯이 떠오릅니다. '농축이골증'(유전적 질환)과 10대 초반에 당한 두 차례의 사고, 알콜중독 그에게 닥친 숱한 문제들은 그에게 '비운의 천재 화가'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동정받기를 싫어했으며 훌륭한 품성으로 동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예술가였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1.24 ~ 1901.9.9] (이하 로트레크).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그는 물랭루주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된 영향력 뿐만이 아니라 세기말 프랑스 파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면을 그려냈습니다. 오늘날 미술관에서는 그의 수많은 회화 작품들과 심혈을 기울여 그린 포스터와 판화들은 로트레크의 미술에의 열정과 능력의 산물입니다. 그는 치열한 습작의 일상을 살았으며 동시대 예술가들과 왕성한 교류를 하였으며 전대의 화가들을 존경하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술계의 조류속에서 자신만의 표현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성취한 '로트레크'의 이야기는 그의 삶과 더불어 무수한 소문과 신화를 양산했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로트레크'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에 관한 글을 쓴 미술비평가이자 미술사학자였던 '버나드 덴버'는 특유의 가벼운 어투와 편집기자로서의 초기 직업을 발휘하여 신화와 소문이 아닌 '인간 로트레크'의 실체를 접근하는 책을 썼습니다. '시공아트 시리즈 61번째 이야기'이기도 한 <툴르즈로트레크>(시공아트, 2014)는 편지와 평론, 일화, 회고록 등의 방대한 자료를 통해서 객관적으로 로트레크가 헤쳐 나간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도전들을 조명했으며, '로트레크의 생애와 작품'에 영향을 끼친 관계를 비롯하여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까지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라는 논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답변을 야기하기에 결론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버나드 덴버'와 같은 이들의 글이 조명하는 '작가와 작품 세계'의 글들은 분명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안겨준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로트레크'와 같이 실체가 여러가지 소문과 신화로 덧 씌워진 인물일 수록 '버나드 덴버'와 같은 이들의 글은 분명 의미가 있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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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로트레크>의 특징을 언급하자면 방대한 자료가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편지와 평론, 일화, 회고록 그리고 대표적인 그림들과 이들 그림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수많은 습작, 배경인물들과의 관계, 삶의 정황)들에 기반을 두고 쓰여진 '로트레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19세기말 프랑스 파리를 거닐며 작품을 그린 '로트레크'가 눈앞에 있는듯한 착각을 느껴봅니다. '툴루즈로트레크'라는 개인인물을 중심으로 쓰여진 책은 시공아트의 책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두권이 더 있다고 합니다. 다른 책들은 아직 보지 못해서 비교해서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시공아트 시리즈'에 주어지는 검증된 평가가 그러하듯 <툴루즈로트레크>라는 책 또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제공해주는 책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지나칠 정도로 선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로 점철되어 본래의 빛이 바래진 몇몇 작가들 속에서 '로트레크'의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점에서 '버나드 덴버'가 말하는 '로트레크'는 '신화'와 '소문'이 사라지는 순간 더욱 빛이 나는 인물일 것입니다. 단순히 가장 비싼 명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그린 작가가 아닌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유산'을 남긴 인물로서 '로트레크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나보는 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세탁부> 캔버스에 유채, 93x74.9cm 경매가 약 250억원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도 소개된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파리의 환락가 풍경화를 거칠고 역동적이게 묘사하는 것이 그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명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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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방면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문화수준의 척도가 국가의 경쟁력이고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는 것이다.음악,미술,춤꾼과 같은 예술의 삶을 살다간 예인들은 저마다 '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예술의 길이 예나 지금이나 어디 쉬운 일인가.엄한 스승을 만나 눈물이 찔금 나올 정도의 매서운 교육을 받아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연후에 빛나는 결과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또 하나 생전에는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 사후에 그 가치와 진가를 제대로 평가받아 뒤늦게 명성을 떨치는 인물도 있다.
동양의 미술이 먹과 벼루,붓의 농담에 있다면 서양의 미술은 단연 다채로운 유화에 있다고 생각한다.종교적 색채를 띤 그림부터 인물,정물,풍경 등이 있으며,사조로는 인상파,입체파,신조형주의,다다이즘,추상표현주의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그중에 19세기 프랑스 알비에서 태어나 37세에 요절(夭折)한 툴루즈로트레크(Toulouse-Lautrec)화가의 그림 인생을 살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백작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4세에 다리 골절상을 입으면서 신체부자유를 겪게 되고 18세가 되면서 그림 그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보통 서양인이라면 장신을 연상하게 되는데 툴루즈로트레크는 단신에다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남부럽지 않은 귀족가문에다 성격도 꽤 활발한 편이었던 그는 기본적인 미술교육은 샤를 삼촌에게,전문적인 내용은 프랭스토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그의 미술 인생은 보나의 영향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여진다.소년시절 그는 스케치북에 주로 말과 관련한 그림을 주로 그리게 되었는데 샤를 삼촌의 영향이 컸다.그가 시작한 그림은 드로잉으로 시작하여 풍경화,인물화 등을 빛과 대기의 감각을 살린 인상주의적 색채가 짙었다.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게 된 인상파의 사조는 모네,반 고흐 등의 그림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났던 것이다.인상파는 사실주의와 실증주의의 영향으로 탄생되었던 사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또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철학은 문학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문학가가 에밀 졸라이다.
나아가 그는 회화와 드로잉의 토대 위에 석판화와 포스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만능형의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활발한 성격이다보니 캬바레와 사창가 출입이 잦았던 만큼 물랭가(街)의 사창가 및 창녀,무용수,여점원 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많이 그렸다.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인상파 화가들의 관심 분야였던 것으로 보여진다.그 가운데 드가에게서 기술적,도상적 영감을 지속적으로 얻었다고 한다.로트레크는 창녀들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창녀들의 벌거벗은 육체.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마치 수도사가 수도원에 있는 듯 안식을 찾았다고 한다.화가로서의 그의 취향은 매우 독특하기만 할 뿐이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로트레크는 선천성 유전병으로 신체적 부자유를 겪어야만 했다.그러나 그는 이러한 문제는 괘념치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들을 다양하게 그려 나갔다.다양한 화가들과의 교류,인상주의의 그림을 묘사하기 위해 캬바레,사창가,카페 등지를 자주 들락거리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 세계를 좌절하지 않고 멋지게 그려 내고 있다.흠이 있다면 그는 알코올 중독자일 정도로 늘 술을 입에 달고 다녔을 정도라고 한다.그게 화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일찍 운명을 달리했다.로트레크의 그림 인생을 살펴 보면서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정치,사회적 혼란까지도 간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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