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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세계에서 시간은 동일한 속도로 흐르지만 역사에서 시간은 그렇지 않다. 역사에서 어느 시기는 어느 시기보다 더 중요하다. 중요하다는 의미는 많은 사건, 혹은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축의 시대가 그랬고, 혁명의 시대가 그렇다. 미술에서는? 아마도 반 고흐와 고갱이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머문 9주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불과 9주였고 둘의 만남은 파국으로 치달았으나, 이 9주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고흐는 없었을 테다.
이 정도의 상식. 조차 드미트리는 몰랐다. 미술, 미술사에 젬병이니.
그래서 이택광이 쓴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는 재미있었다. 이 책은 고흐와 고갱이 아를에서 함께 보낸 9주를 다룬다. 주로 시간순으로 다루되, 필요한 경우 시간을 거스르기도 한다. 꼭 9주만을 다루는 건 아니고 고흐와 고갱 각자의 인생과 작품관 당시 미술사조 등을 함께 설명한다. 고흐, 고갱, 미술사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새로운 내용을 별로 얻어낼 수 없겠지만, 미술은 아비투스를 과시하기에 적합한 허세지, 정도로 생각하던 드미트리에게는 거의 모든 내용이 새로웠다. 아, 이렇게 무식할 수가...
이 책의 특징이라면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이택광 교수의 필력과 고갱 및 고흐의 작품이 어우러졌다는 점인데. 예컨대 아래와 같다.
고흐는 공동체를 꿈꾸었다. 고흐는 고갱을 존경했고, 고갱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본했다. 이에 비해 고갱은 형 빈센트보다는 동생 테오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고갱은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예술과 이상을 논하던 빈센트보다는 자신의 그림을 팔아 경제적 궁핍으로부터 탈출하게 해 줄 사람은 테오였다. 어쨌든 도시에서부터 벗어나 태초의 성스러움, 고상한 원시인을 꿈꾸던 고갱은 딱히 의지할 데 없고 해서 고흐의 초대에 응한다. 불행히도 둘은 너무 달랐다. 고흐의 기벽에 고갱은 점점 지쳐갔고 결국 고갱은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걸로 고갱을 붙잡으려 했다. 이 사건은 지방 신문에 보도될 정도였으나, 고흐가 왜 자신의 귀를 잘랐는지는 아직도 미술사학자들 간 의견이 분분하다.
그외 딱히 책에 관해 쓸 말은 없고. 몇 문장, 메모나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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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확실히 고갱보다 반 고흐가 훨씬 더 위대한 화가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위대하다'는 기준은 예술 자체에 대한 헌신성일 것이다. 고갱은 그림 자체보다도 명성에 더 집착한 측면이 있었다. 고갱은 오만했고, 자만심에 들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으스대기도 해서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생각도 그렇게 진취적이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런 고갱의 존재가 없었다면 아를에서 반 고흐가 그린 걸작들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확실히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아를에서 고갱과 반 고흐는 한동안 미술사에 남을 만한 우정을 과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 고흐 역시 중요한 미학적 도약을 이룩할 수 있었다. (135쪽)
자본주의의 욕망에 굴복하지 않는 삶으로 고갱은 '야만인'을 선택했다. 그는 '고귀한 야만인'으로 통했다. 배운 만큼 배운 상태에서 그는 자발적으로 자본주의 문명을 거부한 야만인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었다. 타이티로 떠난 이유도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로 자신을 확고하게 정립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치 마네처럼 고갱 또한 자신의 저항 때문에 세상에서 거부당할까봐 극도로 염려했다. 근대 예술가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고갱의 삶이었던 셈이다. 고갱의 삶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외부 없는 근대성인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근대의 예술가들은 대체로 반영웅적이고, 이런 면에서 고갱은 이런 성격을 구현하고 있는 화가의 아주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151쪽)
일본 그림은 이들에게 서양의 전통 화풍을 고수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본보기에 가까웠던 것이지, 인상파나 후기인상파 화가들이 일본 그림을 비롯한 동양 미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대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일본 그림은 자신의 예술을 옹호하기 위한 하나의 근거에 불과했다.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예술론 자체를 일본 그림에서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과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76쪽)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에서 아를의 밤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이 그림의 비밀은 바로 음악에 있다. 반 고흐는 음악과 미술을 동일하게 생각했던 화가이기도 했다. 특히 바그너에 심취한 반 고흐는 고갱과 함께 음악과 미술의 상관관계에 대해 자주 토론을 벌였다.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반 고흐의 논의는 스테판 말라르메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말라르메는 음악을 꿈에 비유하면서 색채, 주제, 인물 성격 같은 복잡한 법칙을 동시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예술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그림을 작곡과 동일시했던 드가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색채의 조합과 음조의 화합을 같은 성질의 예술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나중에 등장할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미리 예견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색을 색조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칸딘스키의 예술관은 서로 다른 예술의 기호가 절대적인 차원에서 통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모더니즘의 이상을 구현한 것이다. 절대적인 소통에 대한 갈구야말로 오직 화폐가치로 교환 가능한 것만을 소통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자본주의 근대사회에 대한 모더니즘 예술의 저항이었다고 하겠다. 자본주의 사회는 화폐가치를 중심으로 모든 가치가 똑같아진다. 예술가의 퍼포먼스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나 화폐가치를 통해 '동일한 노동'으로 간주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근대 예술가의 불만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자본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예술의 절대성을 인정해야 예술가의 존재 가치가 증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모더니즘 예술은 평준화되고 교환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주장했다. 이 절대성을 구성하는 것은 감각이었다. 시인 보들레르 못지않게 근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동시대 예술가는 바그너이다. 이 독일 작곡가의 예술이 이렇게 라인 강 너머에서 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은 종교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예술을 설정하는 파격적인 이념 때문이었다. 그래서 반 고흐는 "나는 신을 믿고, 모차르트를 믿고, 베토벤을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상대주의 같지만, 사실은 아름다움이라는 범주를 진리로 생각했기에 이런 발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181-182쪽)
고흐는 위대한지,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드미트리 집에도 이런 게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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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을 이야기 할때다다 고갱은 그림자처럼 따라온다.지나치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살짝 거부감이 들던 때도 있었다.그런데 막상 고갱과 고흐의 정확한 관계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미술문화에서 출간된 '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를 읽어 보려다 포기했으니.오롯하게 고흐와 고갱에 대한 글은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가 처음 인 셈.결국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덕분에 고흐의 그림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계기가 되여 다행이구나 싶다. 그림을 전공한 이가 아니라면,그림 하나를 보면서 그림의 역사까지 파고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다양한 책들을 통해 고흐의 그림을 만났고,나름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손꼽은 작품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뿌리에 대한 관심은 열외였던 것.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는 라이벌 구도라기 보다,오늘날 우리가 고흐의 수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게 된 근원에 고갱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책이였다.테오라는 너무도 혁혁한 지지자가 있던 탓에 고갱은 언제나 고흐를 배신한,혹은 괴팍한 인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지만,고갱이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고흐의 뮤즈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수많은 화가들이 있었을 텐데,왜 유독 '고갱'이였을까.예술적으로든,혹은 다른 면에서는 고흐는 고갱을 어느정도 흠모했던 것이 사실이고,그 동기로 인해 만들어진 작품들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그림들의 대부분이란 사실이 놀랍다.고갱이 없었다면,혹은 고흐가 초대한 아를에 그가 오지 않았다면,아를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을수도 혹은 지금과는 다른 그림의 형태로 그려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결코 과장된 가장법이 아닌듯 생각된다.밀레를 좋아해서 따라 그린 그림이라 생각했던 '씨 뿌리는 사람'이 고갱을 향한 화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설명,의자의에 놓인 촛불을 통해 고갱을 존경한 마음,조금은 아름답지 않게 보였던 음식 정물,그 대상에는 고갱이 만들어준 요리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 등등이 고흐에게 고갱은 또 하나의 유토피아였음을 알게 된다.그러나 남녀간의 사랑도 일방적인 경우라면 이별하기 쉬운법인데.성격 강한 두 예술가가 만났으니,고갱이 고흐의 그런 마음을 다 받아주기란 처음부터 불가했을 터.고갱 역시 어떤 면에서 고흐가 자신에게 유토피아가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으나,현실은 현실일 뿐이였다.
책장을 덮으면서 고갱을 통해 고흐를 보고 싶었다는 서문의 글이 새삼 더 큰 공감으로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고흐와 고갱은 후대에까지 자신들이 이렇게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 다닌다는 것을 원하지 않을수도 있겠다.그러나 책에 소개된 그림만을 놓고 본다면,영원히 그림자처럼 함께 있을수 밖에 없는 존재구나 싶다. 아를에서의 그 짧았던 기간 고흐가 쏟아낸 작품은,고갱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법한 그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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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갱, 고갱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반 고흐. 왜 반 고흐는 고갱 때문에 자신의 귀를 잘라야 했을까? 그 가슴 아픈 이야기의 스토리는 이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를 읽게 된 이유부터 설명해야겠다. 난 그림이나 예술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정작 전문서적은 별로 읽지 못했다. 읽으면서 얻는 재미가 흥미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행적인 흐름에 00파로 나눠지는 그림이나 그리는 기법 등 알고자 하면 밑도 끝도 없었다. 그저 깊게 들어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만 알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반 고흐와 고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그들의 그림까지 이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반 고흐는 생긴 것처럼 우직하고 부드럽지 못하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돈은 없어도 물감은 좋은 걸 샀으며 술과 여자에 집착했고 한번 그림 그리기 시작하면 식음을 전폐했다. 그의 성격과 생활, 작품들을 연속해서 살펴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으로 보였다. 그림에 미쳐있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해보이고 술버릇이 고약해서 기괴한 짓도 서슴치 않았으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고갱은 영국 신사 같았다. 매너있는 행동에 술도 적당히 했고 딱히 단점으로 꼽을 만한 것도 없었다.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었으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반 고흐에 비하면 평범했다. 그런데 이 둘이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 반 고흐는 기름이었고 고갱은 물이었다. 한데 모으지만 자꾸만 흩어지는....
반 고흐는 고갱을 무척 좋아했다. 반 고흐가 동생에게 부탁해서 고갱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집을 장만까지 했으니 고흐가 고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둘 다 그림을 팔지 못해 생계가 불투명했던 시절, 어느 정도 생활이 보장된 환경을 고갱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난 이 둘은 처음엔 잘 지내는 듯했다. 서로가 그린 그림을 인정하고 조언까지 했다. 하지만 성격이 다른 것처럼 그림을 이해하는 방식도 판이하게 달랐다. 고흐는 그림에 감정을 투영했고 고갱은 그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서로가 추구하는 그림의 이상향이 다르다 보니 급기야 논쟁까지 하게 됐다. 불편한 관계에 있던 찰나 반 고흐의 우울증은 심해지고 술주정을 빈번히 하게 된다. 불안감을 느낌 고갱은 고흐에게서 떠나고자 얘기 했고 그 '충격'으로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된 것이다.
고독을 참지 못하는 반 고흐는 자기 곁에 있을 친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고갱은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극단적이지만, 철저히, 서로에게 필요해 만난 계산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결국 고독하고 쓸쓸하게 그림을 그리다 자살하는 고흐.
자살 전 2개월 동안 8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는 하루 평균 한 점 꼴로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다. 반 고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쏟아내고 죽은 건지도 모른다. 고갱을 그리워하며 죽은 건지, 아니면 우울한 나머지 모든 것을 그림으로 남기고, 더 이상 미련 없이 죽은 건지 아무도 모른다.
고독하고 불쌍했던 반 고흐. 이상하게 나는 그의 삶이 뜨겁게만 느껴진다. 고집불통, 사회성도, 인기도 없었던 그였지만 단 한 가지,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흐의 그림들이 이전까지는 그저 멋지고 예뻤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아름다운 것도 다 슬프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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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계획을 세워놓은 여행이 아니라서 숙소 가까운 곳을 위주로 다녔다.경치가 좋은 올레5코스를 걷다가 바람을 피해서 다음 코스를 짠 것이.부영호텔서 하는 '반고흐 인 사이드'전. 제주여행을 가서 무슨 전시회냐 하겠지만, 각자 다른 지역서 살기에 전시회를 하는 곳에 다 보이기는 쉽지 않고, 꼭 보고 싶었던 고흐전이라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고흐의 방황,고뇌의 작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시대별로 각 파트로 나눠서 작품과 설명이 깃들여 있어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림을 알던 모르던, 고흐를 알던 모르던 좋아할 만한 구성이 매우 좋은 전시회였다.
고흐의 일대기와 작품을 같이 보고 난 후, 고흐를 좋아하던 마음이 조금은 헐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의 괴로운 방황이 묻어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거움이 그의 작품속에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그의 슬픔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에 관람 후 기념품을 사는 가족들과는 다르게 그 곳을 빨리 빠져나오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고, 그의 대한 나의 느낌이 오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접하게 됬다. 미술작품에 문외한이라 더욱 잡기 힘들었던 분야의 책을 들게한 고흐, 그리고 고갱을 알고 싶어서.
내면을 표출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겐 현실에서의 무기같은 그러나 무형인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종교건, 이상이건, 사람이건 위험의 신호를 감지하면 손에 쥘 무언가들 말이다. 아마 고흐 자신이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작가연대를 구상하고 고갱을 간절히 원하고, 아를로 거처를 옮기며 고흐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들을 움켜지려 했으나 그것들은 고흐를 나락으로 끝이 거뭇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고흐는 방법으로서 죽음을 택할 것일까? 귀를 자르고도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들을... 죽음으로써 이제 아무것도 갈구하지 않아도 되는, 스스로 빠져나갈 수 있으며, 더 이상 정신병원에 기대지도 않게하는 방법을 그것에서 찾은 것일까? 거기서 유토피아를 찾은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전시회와 같이 책을 읽으면서도 다시 그들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엔 인간으로서의 지독한 고뇌들이 그들에게 너무 가혹했음에 동정과 동질감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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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꼭 12년 전에 읽은『반 고흐, 영혼의 편지』을 다시 구입했다. 있는 책을 다시 읽으면 되겠지만 그 사이 표지가 바뀌어 그 책도 함께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12년 전에 그 책을 읽고 고흐에 흠뻑 빠져 지금껏 좋아하고 있지만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다시 읽어 볼 생각을 하지 못하던 나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나자 그 책이 다시 읽고 싶은 당김이 있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책에서는 고갱과 고흐가 아를에서 함께 지냈던 그 시간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술사에 길이 남을 법한 강렬한 만남. 아를의 노란집에서 고갱과 고흐가 함께 지내며 당시에 그렸던 그림들도 소개하고 그곳에서 고갱과 고흐에게 한껏 다가가고 있다. 고갱과 고흐가 아를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하면 고흐가 귀를 자른 이야기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가까이에서 그들의 상황을 지켜본 것 같았다. 마치 당시의 두 화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제 3자가 되어 그 모든 정황을 지켜본 듯 세밀했다. 그렇다고 고증을 뒷받침하는 글도 아니고 둘의 짧은 동거 기간 동안에 의미부여를 통해 독자에게 메시지를 심어주려는 글도 아니다. 고갱 없는 반 고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가설을 세워 그 당시의 모든 정황을 유추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빈약할 수 있는 기록에 저자 나름대로 살을 붙이고 최대한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제 3자의 입장에서 고흐과 고갱을 지켜본다는 느낌이 강했고, 편지와 당시에 그려진 그림, 그리고 여러 증언들이 드러나 있었음에도 새롭게 접근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시간을 정지해 놓고 두 사람의 내면과 외부를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것 같았다. 고갱과 고흐가 노란집에서 머물렀던 사건(미술사에서 정말 흔치 않은 일이기에)은 행복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불행과 행복이 모두 공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행이라면 고흐가 고갱을 노란집으로 불러들인 순수한 의도가 고갱에게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고, 외롭고 내면으로 불안한 고흐에겐 고갱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다만 고갱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아를로 내려와 고흐와 함께 지내게 되어 고흐만큼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짧은 만남이 고갱에게도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자극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고갱 또한 자신에게 집착하고 뜻도 화풍도 맞지 않았던 고흐와의 만남을 결코 잊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를을 떠난 뒤 고흐를 다신 만나고 싶지 않았을 정도로 강렬했으니까. 당시의 고갱과 고흐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기에 고흐가 귀를 자르고 결국엔 자신에게 총을 쏘고 죽음을 맞이한 사실을 보고 고갱을 원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좀 더 고흐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더라면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흐가 꼭 고갱 때문에 귀를 잘랐다는 정확한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당시의 고흐 같은 사람을 감당하기엔 고갱 뿐만 아니라 누구나 힘들었을 거라는 사실이 고흐를 더 안쓰럽게 했다. 늘 술에 절어있고 그림 그릴 때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며 매음굴에도 드나들며 불규칙적이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사람과 동고동락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의 이상적인 목적이 맞지도 않았지만 그런 사람과 한 곳을 보며 나아간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내 곁에 그런 고흐가 있었더라면 나라도 그곳을 떠나고 싶어졌을 것이다. 이렇듯 가설도 있고 추측도 있고 사실과 정황도 모두 드러나 있다. 그렇게 세세하게 당시의 모습을 재연한 것 같은 글을 읽고 있으면서도 뭔가 메마른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상황을 바라보며 이 글을 써내려간 저자의 안쓰러운 마음과 애정이 느껴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흐름이 인간미를 떨어뜨린 것 같다는 아이러니한 기분을 느꼈다. 지극히 감정적인 나와는 달리 중심을 잡고 써내려간 글임에도 오히려 그 중심이 조금은 서운하게 느껴졌었다. 어느 한쪽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당시의 둘을 바라보는 시선에 추측보다 저자의 감정이 더 실려 있었다면 조금 중심에서 벗어났더라도 더 가까이 다가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갱과 고흐가 함께 머문 그 시기를 되짚어보는 시선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결국 둘의 유토피아는 없었지만 각자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던 의의를 그림에 가득 실었다. 화가로써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고흐보다 타히티로 건너가 원시의 세계를 찾아내려 했던 고갱이 좀 더 뜻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고흐나 고갱이나 어느 누가 더 그럴듯한 결과물을 냈느냐고 단정 지을 순 없다. 그들의 삶과 이상향이 녹아 있는 작품을 바라보는 갤러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 의미 찾기는 당시의 그들이 염두에 두지 않았던 현재의 우리, 그리고 우리도 알 수 없는 미래의 누군가에게도 계속 이어질 작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