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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도 제도의 작은 섬인 도미니카에서 태어난 소설가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자신과 자신의 고향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원인이 된 나라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괴롭고 증오스럽다고 말했다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자신이 고통스럽다고 한 그 언어를 이용해 써내려갔다. 또다른 흑인 작가인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식민지 출신인으로서 착취자의 나라인 프랑스의 교육을 받고 불어를 사랑하게 되어 결국 그 언어로 문학을 하려는 욕망을 품지만 끝까지 진정한 프랑스 문학으로는 평가받지 못했던 불운한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소설의 등장인물의 삶은 킨케이드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것과 굉장히 닮아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인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미국의 자본주의 대기업의 횡포로 신음하는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대한 소설로 아프리카 출신에 미국 교육을 받은 작가에 의해 영어로 쓰여진 글이다. 소설의 주인공격인 코사와의 소녀 툴라는 복수를 위해 우선 미국의 언어를 배우고 미국의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그녀는 고향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싫어도 해야하는 일들이 있어. 파괴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우리도 같은 언어를 쓰자.(p.286)" 라고 이야기한다. 세명의 흑인 작가와 그들의 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동경하는 삶 혹은 생존과 투쟁을 위해 착취자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지만 식민지인들의 삶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아서 그들의 숭고한 노력에도 (책의 제목과 달리) 아름답지만은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남의 언어를 빌려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시대와 그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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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 임볼로 음붸 지음 | 구원 옮김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내가 처음 읽어 본 아프리카 문학이다. 이 책은 아프리카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은 마을, '코사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곳은 오래전 유럽인들의 노예상으로부터 노예사냥을 당하지는 않은 표범의 후예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다. 그렇지만 유럽인의 고무를 위한 고된 노동력 착취 당해야 했고, 이후에는 미국인들의 기름을 위해 유전이 설치되었다. 코사와에 들어온 미국 기업인 펙스턴은 정부와 결탁하여, 싼값에 코사와 땅을 제공받고, 그곳에서 기름을 마음껏 가져갔다. 하지만 그들이 벌어가는 돈만큼, 코사와에는 조금씩, 어떨때에는 급작스럽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망가진 유전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폭발은 코사와의 아름다운 물과 흙, 공기를 오염시켰다. 그곳에 사는 식물과 동물은 사라졌고, 그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코사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이 원인불명의 병을 얻어 죽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의 공포는 점차 마을을 휩싸고 말았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 P.11 >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았어야 했다.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하늘이 산성비를 뿌리고 강이 푸르죽죽하게 변했을 때 우리의 땅이 곧 죽으리라 예상했어야 했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우리'이다. '우리' 중 누군가의 목소리로 코사와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우리 중의 하나인 '툴라', '봉고', '사헬', '야야', '주바'의 개인적 목소리를 통해 이 지독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다양하고 각각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다. 끝까지 '우리'중 누군가의 목소리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상실을 경험한 모두 다 일지도.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툴라'일 것이다. '툴라'는 '말라보'와 '사헬'의 딸이며, '야야'의 손녀이자, '봉고'의 조카 그리고 '주바'의 하나뿐인 누나이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상황을 정부에 전달하려던 '말라보'의 실종과 좀더 급진적인 행동으로 그들에게 코사와의 상황을 알리려던 '봉고'의 처형은 '툴라'의 마음 속에 투쟁이라는 엄청난 씨앗을 심고 말았다.
< P.189 > … 우리는 조그만 물고기들의 간청을 노래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해. 모두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말하는 사람의 입을 기쁘게 하는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우리의 이야기는 반드시 젼해져야 해.
죽음이 도사리는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합당한 처우도 해주지 않는다. 돈이라는 보상은 부수적일 뿐인데도, 그것도 주지 않는다. 원인을 제공하는 펙스턴이나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돈이다.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만다. 그리고 그 행위를 위협받으면, 군인을 동원한 학살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땅에 세워진 수많은 군부대 시설, 원전, 마을을 관통하는 고압선, 그리고 수많은 생명들이 서식하는 곳에 굳이 지어져야하는 불필요한 시설들을 생각했다. 나의 고향도 그러한 이유로 과거의 평화와 모습을 거의 잃어버렸다. 코사와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가 아니라서, 읽는 내내 슬프고 또 슬펐다.
< P. 370 > 어쩌면 우리는 코사와나 우리 나라가 어둠을 헤치고 빛으로 나오는 날을 못 보고 죽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우리는 그런 날이 올 것라고 믿으면서 계속 싸워나갈거야. 그것이 유일한 삶의 길이니까.
나는 툴라가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길 바랐다.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그녀에게 패배감과 허탈함 등을 선사했다. 결국 그녀의 생명력까지 앗아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툴라의 투쟁이 자손의 자손으로 이야기가 이어져,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가하는 폭력이자, 정부의 민간인 폭력 등을 모두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가난하다고 여겨지는 아프리카와 가장 부유하다고 여겨지는 미국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니까.
< P.399 > "돈은 이 문제에서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에요. 우리는 안전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어요."
포스트잇에 열심히 정리하고, 독서노트까지 써가며 열심히 읽은 책이다.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결국 그들이 가지고 있는 충만한 사랑과 분노, 투쟁의 일기를 읽어보면 너무나도 아름답고 슬프고 가슴이 아리기만 하다. 다시는 '코사와'와 같은 마을이 생겨나지 않기를. '코사와'의 아름다웠던 모습이, 그대로 100년이 지나도, 1000년이 지나고, 1만년이 지나도 여전하기를.
< P.475 > 코사와는 오래전에 죽었을지 모르지만 그곳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우리는 절대 잊지 않으리, 그곳에서는 우리의 영혼이 온전했으므로 결코 잊을 수 없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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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족의 창이 되었다. / p.406
뉴스를 보면 항상 마음이 평온했던 경험보다는 답답했던 경험이 많다. 아무래도 평범한 일들보다는 특별하거나 부정적인 사건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보도는 개인과 기업의 법정 싸움이다. 누가 봐도 승자가 보이는 이야기. 그러나 대부분의 악인은 승자였고, 피해자는 패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의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그게 통하지 않는 듯해서 늘 답답했다.
얼마 전 재방송으로 방영된 하나의 사건을 봤던 기억이 있다. 블랙박스에 찍힌 하나의 사고였는데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피해자이지만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보는 내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어졌다.
이 책은 임볼로 음붸의 장편 소설이다. 우리 시대의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현실적으로 와닿는 다윗과 골리앗은 이익을 편취하는 큰 기업과 힘이 부족한 국민 개인의 싸움일 테니 말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관련 내용을 보았던 게 얼마 전이다 보니 더욱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아프리카의 한 마을 코사와이다. 미국의 기업인 펙스턴이 코사와에서 석유 개발을 시작하면서 평화로웠던 코사와는 점점 변화된다. 오염된 물을 마신 아이들과 주민들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펙스턴에 맞서기 위해 나섰던 마을의 젊은 남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에 살고 있는 툴라는 그렇게 아버지를 잃었고, 삼촌 역시도 펙스턴에 저항하다 교도소 생활을 하다 처형되었다. 그렇게 친구와 가족을 잃은 툴라와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는 내내 코사와의 상황과 많은 이들의 감정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책임감과 인간성 중 그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은 분노를 느끼게 했으며, 코사와의 주민들처럼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큰 집단들에게 저항하면 할수록 오히려 목숨이 위태로워지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신에게 비는 방법밖에 없었다.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마치 안개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두 가지 이슈가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기업과 개인의 관계이다. 표면적으로는 펙스턴과 코사와의 구도처럼 보이지만 코사와를 관할하는 국가의 정부, 미국, 코사와 마을의 대표 등 다양한 이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 주민들을 대표해 저항해야 할 마을 대표는 권력에, 펙스턴은 이익에 눈이 멀었다. 그리고 미국과 코사와 마을을 관할하는 정부는 책임을 회피한다. 그 안에서 주민들은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저항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게 과연 인간들의 존엄성과 생명을 무시할 정도로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여성에 대한 관념이다. 코사와 마을은 약간 보수적인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출산과 양육을 하면서 살아가는 등 과거의 대한민국 사회를 보는 듯했다. 툴라의 어머니도 남편을 잃은 상황에서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재혼은 꿈을 꾸지도 못한다. 툴라는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주변 마을 어르신들과 남자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반면, 코사와의 마을 대표는 세 번째 부인을 둘 정도로 남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지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물론, 각 나라의 문화가 있겠지만 말이다.
소설의 배경과 인물, 문화 많은 지점들이 달랐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저자의 특이한 이력과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소재라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는 점이 툴라와 비슷한 점으로 보였으며, 나이지리아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는 점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역시도 대한민국에서 생각보다 자주 접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꽤 두꺼운 페이지 수의 작품임에도 완독하는 데 서너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다.
코사와 마을 사람들과 툴라를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개인적인 생각이 하나 더 들었다. 누구보다 소재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소설속의 세계로만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가족과 세상을 힘이 있는 누군가로 인해 뺏기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났던 작품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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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한국의 시기와 묘하게 닮아 있다. 소설 속의 가상 배경은 아프리카 시골 마을 코사와. 이 코사와에서는 미국의 석유기업 펙스턴이 석유가 풍부한 코사와의 석유를 채취하기 위해 부패한 대통령과 협약을 맺고 마음대로 들어와 석유를 채굴한다. 펙스턴이 들어오기 전 사냥을 하며 자급자족하던 코사와 마을은 펙스턴이 들어온 이후 조금씩 그리고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물이 오염되면서 물고기를 잡고 물 속에서 신나게 뛰놀던 아이들은 물 속에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사냥을 하며 사냥감으로 먹고 살던 마을사람들은 이제 시장에 가서 먹을 것을 사와야만 한다. 남자들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하고 여자들 또한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죽어간다. 아이들의 무덤이 늘어만간다. 자식을 잃은 집들의 곡소리가 늘어나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을을 깊게 짓누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대통령을 만나 호소하고자 하지만 행방불명이 된 마을사람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펙스턴 대표단을 인질로 잡지만 몸이 약한 인질이 죽게 되고 그 보복으로 군인들은 이 마을의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른다. 내게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 문장 소리마다 곡소리가 들리는 듯했던 그 느낌을 이 소설에서 다시 느낀다. 그만큼 슬프다. 우리의 물에 오염물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상상한다. 어린이들에게 소박한 것을 선물하고 싶을 뿐이다. 깨끗한 물, 깨끗한 공기. 깨끗한 음식. 아이들이 지저분한 걸 좋아하면 더럽히라고 하자. 감히 누가 아이들에게서 그 권리를 앗아간단 말인가.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31p- 소설은 분명히 말한다. 코사와 사람들의 불행은 돈이 아니었다. 그들의 터전인 자연이 망가졌기 때문이었다. 건강, 넉넉한 음식, 웃음과 햇살이 축복받은 삶의 기본 요소라고. 그 기본 요소는 자연이 자연다움의 본질을 지킬 수 있을 때 가능했다. 하지만 물이 오염되고 하늘은 시꺼먼 연기로 가득한 매연은 축복의 기본요소를 앗아가버렸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이 공동체의 위험 속에서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 임볼로 음붸는 오히려 코사와 마을이 대항하는 행위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보다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모두들 위험한 것을 알고 있다. 대통령은 펙스턴 편이다. 펙스턴은 막강한 돈과 시간이 있다. 하지만 코사와는 아무것도 없다. 이 위험 속에서 사람들은 선택해야 한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해야 하는가. 이 싸움이 한 순간에 끝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자라 성년이 되고 마을을 이끌어간다. 그 와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생겨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끝까지 저항하기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쉽지 않기에 이 투쟁의 방법 또한 많은 격론이 오간다. 공동체 생사와 달려있는 만큼 매 순간의 선택이 쉽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나는 내 선택을 생각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저항해야 하는가. 아니면 비폭력을 외치며 시간을 두더라도 평화적으로 나가야 하는가. 이 책은 읽는 이들에게 끝까지 질문하게 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그리고 이 질문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 앞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저항하겠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손 놓고 있겠느냐.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슬프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는 이미 잃어버린 자연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한다. 그리고 그 과거를 기억하는 이제 노인이 된 그들만이 홀로 그 시절을 기억하며 슬퍼한다. 우리 세계와 삶의 방식이 가뭇없이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어렸을 적 뒷동산 풀밭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그 과거의 놀이가 아이들에게서 사라져 가는 걸 알고 있다. 물장구를 치며 놀던 추억이 사라져갈 것임을 알고 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된다면 아이들에게는 뜨거운 태양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만이 남을 것이다. 내가 자연과 더불어 살던 삶의 방식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꽃과 땅 그리고 바다를 흠뻑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책 제목처럼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회상하며 그리워하고 싶지 않다. 이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소설은 매우 진지하게 묻는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이다. #연말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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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우리가얼마나아름다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한줄평: 우리 현실이 오버랩되어 더 슬프게 와닿았던 소설.
미국 석유 기업 펙스턴의 무책임한 유전 개발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마을 코사와. 환경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개발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나가지만 정부나, 기업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주민들이 석유 기업이 보낸 대표단을 인질로 잡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책이다. 대를 이어가며 벌어지는 투쟁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시점을 바꿔가며 보여주기 때문에 그 비극성이 더 와닿았던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의 초기에는 펙스턴이라는 미국 기업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에 대한 내용만 나오지만 뒤로 갈수록 코사와가 펙스턴 이전의 침략자들에게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끊임없는 침략, 약탈, 파괴... 그리고 결국은 자신들이 사는 땅마저 파괴되어 버린 비극까지.
대를 이어가며 시달린 사람들은 드디어 방식을 바꾸고자 한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미국의 방식대로' 투쟁을 하는가 하면, 무력 투쟁에 나서기도 한다. 이 방식을 두고 세대 간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되게 묘한 소설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국권이 강탈된 경험이 있고, 오염원을 배출하는 나라들이 곁에 있지만 속수무책인 지금의 우리 현실이 오버랩 되어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 작가의 다음 책도 정말 기대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예스24리뷰어클럽 #코호북스 #임볼로음붸 #구원옮김 #yes24리뷰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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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뉴욕타임스 선정 2021년 올해 최고의 책 10선에 해당한다. 미국 석유 기업 펙스턴의 무책임한 유전 개발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마을 코사와에서 벌어지는 정부와 석유기업, 그리고 마을을 지키기위해 힘쓰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마케팅 업무로 미디어회사에서 일하던 작가는 세계 금융 위기 당시 실직하게되고, 그시기 뉴욕을 걸으며 목격한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삶과 고초를 바탕으로 데뷔작 <꿈꾸는 자들을 보라>를 집필했다.
이 소설은 코사와의 환경 파괴와 이를 둘러싼 주민들의 아픔과 싸움의 의지, 행동을 담고 있다. 1980년에 시작된 마을의 난개발을 시작으로 어린아이들부터 수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당했지만, 코사와 사람들의 죽음을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코사와 사람들과 펙스턴사의 싸움 속에서 툴라와 친구들 봉고 삼촌, 툴라의 아빠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희망의 끈은 바로 펙스턴이 들어오기 이전의 아름다웠던 코사와의 자연과 그 속에서 아름답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생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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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북친님 계정을 보고 책표지에 한 번 반하고, 추천과 그 내용에 반해 읽어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읽을 기회가 주어져 바람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야기. 힘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약자의 이야기. 대기업과 정부, 그리고 약소한 마을의 대결. 경제성장과 환경의 대립.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혹은 백인과 흑인 사이의 갑과 을의 관계. 주인과 노예의 관계. 이 모든 것들의 내용이 담겨 있는 "How Beautiful We Were"
아프리카 코사와 마을에 아이들이 죽어나간다. 마을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곧 석유 기업 펙스턴의 유전 개발로 오염된 공기와 강, 토양으로 인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책에서는 표범의 후예로서 코사와 마을을 지켜나가고자 노력하는 자들과 힘있는 대기업 펙스턴과의 싸움. 그리고 정부에 대항해 우리가 이 땅에서 제대로 살 권리를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마을의 광인으로 소문난 콩가에 휩쓸려 마을 사람들은 협상하러 온 펙스턴 대표단을 납치·감금하며 제대로 된 배상과 죽음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시위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납치된 한 명이 사망하게 되면서 마을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과 결과에 맞서게 되는데...
책의 작가는 카메룬 출신으로 미국에 유학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삶과 고초였다. 비록 이 마을은 가상의 마을이지만, 분명 어딘가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으리란 생각이 든다.
무분별한 유전 개발로 인해 피해받는 약소국의 작은 마을에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지만, 정부는 자신의 권력욕을 배채우기 바쁘고 반대파에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한다.
작은 마을에서 그들에 대항하고자 하는 이들은 다 실종되고, 죽음을 맞이한다. 정부와 기업과의 협약 때문에 미국 법원에서조차 간섭할 수 없다는 처참한 판결...
희망을 잃은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와 아내의 시선,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 내 아이들의 세대에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목소리 높인 아버지들까지. 그들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힘들게 언론에 그들 마을의 이야기를 알렸지만, 복원 운동 단체의 힘을 빌려 마을의 아이들을 더 좋은 학교로 보내고 미국에 유학까지 보냈지만, 해결되는건 없었다.
희망찬 미래. 그런 것은 살아남아 뿔뿔이 흩어져 제 갈길을 떠난 자만의 것이었다. 마을을 지키고자 비폭력과 폭력을 주장한자들의 최후는 어떠했는가...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절규가 생생하다.
아이들의 이유 없는 아픔과 죽음, 기형에 대한 이야기가 문득 예전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혹시나 수잰 오설리번의 『잠자는 숲 속의 소녀들』을 안다면 그런 기분이 들 지도?
전통적인 부족국가 내에서 그들은 미신과 주술에 의지하기도 하고, 그런 것들로 그들의 전통과 의지를 굳건히 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꼭 그런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정부가 그것마저도 이용하려들고, 한 여자의 인생마저도 마을을 수호한다는 미명 아래 동의없이 자행된다면 인권이라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갖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참 여러가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인데, 기업과 정부, 환경과의 갈등.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의 의미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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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했다.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하늘이 산성비를 뿌리고 강이 푸르죽죽하게 변했을 때 우리의 땅이 곧 죽으리라 예상했어야 했다. "
임볼로 음붸 작가의 소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는 가상의 아프리카 마을 "코사와" 가 등장한다.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이 마을에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단순하지만 자연의 섭리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아이들은 걱정 없이 뛰어놀았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행복해했다. 그러나 팩스턴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정유회사가 마을 근처에서 유전을 찾아내어 시추를 하기 시작하고 잇따른 송유관 사고로 인해 그들의 삶에 먹구름이 끼더니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린다. 한때 비옥했던 땅은 헐벗게 되고 기름때와 독성 물질이 스며든 우물물을 마신 아이들은 하나 둘 앓기 시작하다 죽어버린다. 행복이 흘러넘쳤던 코사와는 이제 절망이 흘러넘치는 땅이 된다.
팩스턴 대표단은 매년 찾아와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회의를 열지만 그들의 보상 약속은 지키지 못할 뜬 소리 나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이 죽어 가지만 그 누구도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잘망적인 상황... 그러나 그 누구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광인인 콩가가 대표단의 운전사에게서 자동차 키를 빼앗아 그들을 막아서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다. 싸워야 할 때가 왔다. 일이 해결될 때까지 팩스턴 대표단을 잡아두게 되는 마을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어떤 비극이 벌어질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상황인데...
이 소설은 탐욕스러운 대기업과 부패한 정부에 맞서는 한 작은 마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석유 유출 사고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감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앞세우는 기업과 책임감 없는 정부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책임자들과 만나겠다고 떠난 사람들은 실종되어 버리고 마을의 족장인 인간은 팩스턴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나라를 빼앗겨 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겐 이 대목이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일제의 앞잡이, 즉 친일파들이 더 충실한 개 노릇을 하지 않았던가?
소설은 철저히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룬다. 아버지와 삼촌을 졸지에 잃게 되는 소녀 튤라,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와 몇몇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 코사와 마을과 팩스턴의 충돌, 이후에 벌어진 엄청난 사건 - 은 너무나 끔찍하고 충격적이고 비극적이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뒤 소녀들은 위안부로, 남정네들은 징용으로 끌려간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히 짓밟히고 죽어나간 마을 사람들을 보며 우리 조상들의 삶이 자꾸만 오버랩되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와버린 우리도 여전히 과거의 악몽에 시달린다.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는 미친 정치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진정 과거를 잊어버린 건가?
이 소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의 경우 이야기의 전개는 다소 느린 편이다. 그리고 눈앞에서 강물이 오염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감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마을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상황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기 혹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들리는 것일까? 한 신문기자에 의해서 미국 신문에 보도된 코사와 마을의 이야기로 인해 여론이 들끓게 되고 이후 복원 단체 사람들의 도움으로 상황은 조금씩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쪽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 마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자연 - 물과 땅 그리고 공기 -의 주인은 누구일까? 전통과 관습 그리고 환경을 지키며 소박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진정한 주인이 아닐까? 거대 기업 그리고 그들과 손잡은 정부.. 법을 앞세워 땅의 진정한 주인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강탈해간 자들의 뻔뻔한 낯짝에 침을 뱉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작가 임볼로 음붸는 아버지와 삼촌을 잃은 툴라와 툴라의 어머니 그리고 죽음을 겨우 빗겨난 아이들 등등 사건과 무관할 수 없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기에 이들이 겪는 비극과 아픔은 더욱더 생생하고 큰 울림을 남긴다. 이 소설이 일정 정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 미국 기업 셸과 나이지리아 마을 사이의 법적 다툼 ) 하고 있기에 더 몰입했던 것 같다. 한순간에 절망의 골짜기로 추락한 사람들, 그러나 많은 희생과 힘든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싸운다. 너무나 가슴 아팠고 비극적으로 다가왔던 소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과연 빼앗긴 "코사와" 땅에 진정한 봄이 찾아왔을까?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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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모든 것들을 위한 위로.
이 책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정해진 끝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는 인간은 어떤 이유로 살아가는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쌓는가? 어떻게 그들이 살았다는 흔적을 지구에 남기는가? 어릴 적에는 이런 물음이 무서웠다. 대답할 지혜도 없었고, 맞는 답을 생각하더라도 그 대답이 긍정적이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에 집중하기보다는 달콤한 빵과 재미있는 친구들,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잠재워줄 운동장에 더 관심이 갔다.
이 책에서 나오는 사람들 역시 죽음이나 우주를 구성하는 개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수 없었다. 다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코사와 마을을 밭에서 식량을 얻고 강에서 고기를 잡고, 산에서 사냥하며 살아갔다. 펙스턴에서 온 사람들은 기름만 조금 가져가겠다며 코사와 마을에 눌러 앉았다. 시간이 갈수록 펙스턴의 정원은 커졌다. 고장난 송유관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땅과 강을 오염시켰다. 수시로 불기둥이 올라왔다. 알 수 없는 연기가 마을을 감싸안았다. 코사와 사람들은 더 이상 강에서, 밭에서 식량을 얻지 못했다. 공기와 물, 땅,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오염되었다. 아이들이 죽어갔다. 어른들도 죽어갔다.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되자 펙스턴 사람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었지만 너무 늦게 족장 우자 베키가 그들과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사와 사람들은 펙스턴이 언젠가는 마을을 떠날 것이며 코사와가 다시 아름다워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행동한다. 말라보는 몇 명의 사람들과 마을을 떠나 정부에서 일하는 높은 사람을 만나러 갔다. 1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도한 사람들이 없어지거나 코사와에 총칼을 든 군인과 눈물을 가져왔다. 이 광경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염되는 자연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그리고 친구들이 어른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린이들의 가슴에는 ‘펙스턴’을 적으로 조각해 놓았다. 복수를 꿈꾸며 살았다.
말라보의 딸 툴라는 마을 사람들이 총살당할 때 시체 옆에서 죽은 척하며 살아남았다. 말라보의 아들 주바는 오염된 자연 속에서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다가 겨우 살아났다.
툴라와 주바의 삶은 코사와에 살던 아이들의 삶을 대표한다. 그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코사와를 예전처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이 쉽지만은 않다. 툴라는 미국으로 건너가 펙스턴과 싸울 수 있을만한 지식을 습득하고 주바는 정부에서 일하며 상황을 바꾸려 한다. 코사와에 남은 아이들, 이제 어른이 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코사와를 위한 일을 한다.
법정싸움, 지켜지지 않는 약속, 부패한 정부, 대통령 각하의 독재, 돈많은 기업과 정부의 결탁. 코사와는 그저 작은 부스러기일 뿐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코사와는 흔적이나 남길 수 있을까? 예전의 그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 코사와에 울려퍼지던 노래와 전통과 이야기들은 이제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메리카인들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유럽 강국들이 전세계를 돌며 노예들을 만들고 약탈하고, 일본이 우리 나라를 침략했던 것과 똑같은 양상이 코사와에서 벌어진다.
우리 선조들도 일제 치하에 코사와 사람들 같지 않았을까? 그저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한국인들 앞에 나타난 일본인은 곡식과 전쟁에 쓰일 만한 금속들은 모조리 탈취했다. 철도를 깔아준다했지만 실상은 한국에 있는 물건들을 일본으로 쉽게 실어나르기 위한 것이었다. 정당한 보상을 해준다며 청년들을 데리고 갔다. 대다수 청년들은 말로 설명할 수조차 없는 대우를 받으며 죽어갔다. 독립 운동을 위해 만세를 외치자 일제의 총칼에 사람들이 죽어갔다.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돈을 벌어 조국의 부흥을 위해 사용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글로 편안하게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쓸 수 있는 것은 바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행동했던 선조들 덕분이다. 이 책에서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도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나온다. 패자와 약자의 이야기는 역사에 씌여지지 않는다. 패자와 약자의 이야기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우리가 일제 치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독립’했기 때문이다. 무력 앞에 쓰러진 시체를 넘고, 한글 사용을 금지하며 한국인의 정신력을 와해시키려 했던 방해 공작에 꿋꿋이 살아남은 선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코사와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안다. 그들의 노력은 계속 쌓여 언젠가는 큰 도약을 이룰 것이다. 그것이 비록 원하던 모양의 도약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여전히 약자들의 이야기는 바람에 흩날린다. 한없이 가벼워 날아갈 뻔한 것을 임볼로 음붸 작가가 지상으로 끌고 내려왔다. 지상에 내려와 활자로 변한 약자의 이야기는 역사의 디딤돌로 차곡차곡 쌓인다. 그들이 쌓은 계단은 후손들이 단단하게 밟고 설 수 있는 도약대가 될 것이다. 아무 것도 무의미한 것은 없다. 바위에 깨지고 마는 계란일지언정, 저마다의 자국은 남길 수 있는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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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가상의 아프리카 마을인 코사와를 배경으로, 미국 석유회사의 탐욕 때문에 황폐해진 땅과 자신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주민들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참 사람이란게 정말 무서운 존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인간인데 왜 그렇게 아픔을 주는지…한편으론 화가 나다가 또 한편으론 사람으로서 그런다는게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프리카의 가상의 마을 코사와에 사는 마을 주민들이 정말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나라, 나의 정부가 우리를 펙스턴에 넘겼다는 사실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배신감으로, 더 이상 내편이 없고 도와달라고 호소할 곳이 없다는 외로움으로 왔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말이 떠올랐다. 죽은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섭다고. 그 말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 계속 떠올랐다. 귀신이 무서운게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더 무섭지. 죽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지 않는다. 이미 죽었으니깐. 그러나 산 사람은 자신의 이익,욕망,탐욕만 본다. 그래서 산사람이 무서운 것 같다. 탐욕에 눈 앞이 가려져 보이는 게 없으니깐. 중간에 코사와 마을에 광인, 콩가가 나올 때 정말 빵 터지면서 웃었다. 책을 읽다가 내 생각이나 감정들을 적곤 하는데 콩가가 앞부분에 나올 때 책에 온통 ㅋㅋㅋㅋ밖에 없었다. 그가 나올 때 이야기가 정말 재밌었던 것 같다. 그것과는 반대로 순수한 아이들이 펙스턴에 의해 오염된 공기와 물로 인해 서서히 죽어나갔다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은 물론 코사와 마을 전체 주민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자신이 살아갈 땅, 혹은 자신이 살고있던 땅이 점점 오염이 되고 그 오염이 마을 주민들을 죽이고 있다는 게 참….진짜 펙스턴은 못됐다!!!! 아프리카 카메룬 출신인 작가가 쓴 이야기라서 그런가 책 속에 나온 마을은 아프리카의 가상의 마을이지만 정말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을 실제로 그려내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더 이런 아픔의 문제에 대해 실제 사건들을 찾아보게 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