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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10명 선정) <저자는> 저 : 루이즈 글릭 (Louise Gluck)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1943년에 태어났다. 1968년 시집 《맏이》로 등단했고, 1993년 시집 《야생 붓꽃》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2003년부터 다음 해까지 미국 계관 시인이었다. 그동안 시집 열네 권을 발표했고 에세이와 시론을 담은 책 두 권을 지었다. 2020년 노벨문학상, 2015년 국가인문학메달, 1993년 《야생 붓꽃》으로 퓰리처상, 2014년 《신실하고 고결한 밤》으로 전미도서상, 1985년 《아킬레우스의 승리》로 전미비평가상 등을 받았다. 2001년 볼링겐상, 2012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서상, 그리고 2008년 미국 시인 아카데미의 월리스 스티븐스상을 받기도 했다. 예일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책 읽고 느낀 바> 관심이 커서 응모한 시집였다. 관심이 너무 컸나봐. 시를 읽으며 '페넬로페, 가나, 이타카, 텔레마코스마리나, 오디세우스, 키르케, 오티스' 가 제목이거나 제목에 언급되는데 내용은 그래도 이해할 만했다. 약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시'라는게 워낙 압축되는 성격인지라 어려워서 접근하기가 어렵다. 길게 써 진 시도 난해하면 도대체가 뭘 말함일까 싶어서 중도포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서평단 당첨 책이니 의무 서평을 위해 일단 읽어야한다는 당위성. 그리고서 써얀다는 것.
건강검진을 위한 전초전에서부터 검진 결과로 대처해야는 현실과 그 사이에 마치지 못한 숙제는 나를 짓누르기만 했다. 죽기살기까지는 아녀도 점심 먹고서, 저녁 먹고서 걷기가 1순위가 되다보니 취침 시간도 12시에서 11시로 당겨지고, 독서할 시간이 적었다. 그럼에도 잡은 이 시집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네. 자신의 일인가 싶게 읽히다가도 남일인가 싶고. 적어도 제목이 의미하는 정도를 알아야 이해가 되는데.
시집을 어렵사리 읽어놓고는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질문을 했다. 비단 이 시집뿐만은 아니다. 시집은 읽고서 느낌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자신 식의 해석이 있고 남의 것과 비교해 보아도 정답은 없는 경우가 태반. 특히나 우리 나라 시인도 아닌, 경력이 화려한 저자의 시집을 만난 기쁨은 부담감으로만 작용했다. 시집을 읽고서 같이 첨부되었던 역자의 해설집을 읽으며 그제서야 아하! 하는 나 자신이 있었음이라.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이 시집을 읽었다면 난해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렸다. 역자의 해설서를 먼저 읽어어야 했다. 나는 어떤 경우건 책을 읽고서 역자의 의견을 읽는 편인데, 이번 경우엔 바꿨어야 했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은 '페넬로페, 가나, 이타카, 텔레마코스마리나, 오디세우스, 키르케, 오티스'에 관하여 상세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시집과 역자의 해설서를 같이 낸 출판사의 의도가 빛이 난다. 해설서의 상세 설명은 다정한 배려였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든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되는 경우가 대다수지 완전 허구는 없다고 본다. 이 시집은 어찌보면 교묘하다. 저자의 일상이 투영되었나 싶으면 사실일까 싶고(혹은 어디까지가 사실) 달리보자면 사실인 누구 얘기 같이 읽힌다. 부모님에 관해 쓴 거라 생각되는 시는 부모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구나. 그런 부모를 보는 자식의 시선도 별로 관대하지는 않네.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의 입장에서 써 진 시도 마찬가지다. 애틋하다거나 냉소적이지도 않고 덤덤하다. 심지어는 아버지는 무심하고 인기 많고 그런 걸 즐긴 듯.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무심하지만 나름으로의 삶을 살아낸다. 엄청 고독하다거나 배신의 감정으로 괴로워한다거나는 등은 아닌. 그런 이야기가 일상이라면 '오디세이아'의 등장 인물을 다 차용해서 적절하게 대입시켜 일상과 혼동을 주는데 이게 또 저자의 글력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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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왠지 멋있어 보인다. 아마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다는 느낌때문에 쉬이 가까이 가지는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번씩 읽고싶어지기도 한다. 그런 시점에 이 책을 만났다. 처음 듣는 시인이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해서 더 끌린 점도 있었고, '목초지'라는 제목이 맘에 들었다. 루이즈 글릭은 미국 계관 시인이었고,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수상자이기도 하고, 예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루룩 넘겨보니 시의 제목에 페넬로페, 오디세우스, 텔레마코스, 이타카, 사이렌, 키르케가 눈에 띄었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등장했던 그들이다. 그들의 서사는 알고 있기에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도 있었지만, 시인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썩 와닿지는 않았다. 역시 시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쩔 수 없이 옮긴이의 글을 읽었다.
신화적 장치를 가지고 옴으로써 글릭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이 시에 투영되는 걸 피하고 있지만, 많은 비평가들은 이 시집이 1977년 혼인한 존 드라노와의 관계, 결혼 생활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글릭이 시에서 만들어 내는 목소리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비평가들의 논의가 무성한데, 그 이유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독특한 화자때문이다, 하나의 화자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를 내세워서 글릭은 다양한 연극 무대를 보여 주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생은 드러나면서 동시에 숨는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루이즈 글릭은 신화 속 인물을 통해 전 인류의 보편적 실재를 보여준다는 평을 얻었다고 했다. 그렇구나. 그렇다고 해도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 나름의 감상을 할 수 밖에. 이 시집은 가족관계에서 오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걸까? 왜 그들이어야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 닥친 위험을 막으려다 정체가 탄로나 전장으로 나간 오디세우스, 20년동안 구혼자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디세우스를 기다렸던 페넬로페, 아버지 없이 엄마와 함께 살아야 했던 텔레마코스. 신화 속 가족은 각자의 번민 속에서 살아가야했다. 그 속에서 그들이 가졌던 세세한 감정들을 루이즈 글릭을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보니 부모님 두 분을 공평하게 바라볼 수 있더라고요, 두 분 다 가여워요: 두 분을 늘 가엾게 여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텔레마코스의 친절] 중에서 어렸을 적 자신에게 가졌던 연민이 자라면서 점차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해로 바껴가는 텔레마코스. 텔레마코스의 7편의 시는 부모와의 화해임과 동시에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는 성장기로도 읽혀졌다. 오디세우스에 대한 책을 읽을 때 텔레마코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지 않았었는데 그의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누구도 돼지로 둔갑시키지 않았어. 어떤 사람들은 돼지거든; 나는 그이들이 돼지처럼 보이게끔 만들었지. 바깥을 안으로 변장시키는 당신의 세상에 나는 넌더리 났어. [키르케의 힘] 악녀가 아니라 본연의 모습을 보이겠금 하는 역할로 키르케를 설정한듯해 매들린 밀러의 소설 <키르케>가 떠올랐는데, 인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인듯했다.
루이즈 글릭의 시선을 따르다보니 페넬로페의 이야기에 귀가 기울여졌다. 인내와 기다림으로 기억되는 페넬로페의 삶인데, 시에서는 고통보다는 순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랬기에 그 오랜 기다림을 견딜 수 있었고, 오디세우스와 재회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신화는 상상 속 세상이라 생각하면서도 실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신화 속 인물의 삶에 자신을 투영한 시어를 더해 들려준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이었다. 전체 시들이 신화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신화 속 사건, 인물, 그들의 삶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될듯하다. 깊이 읽는 신화 느낌? 시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 나름의 느낌을 남길 수 있었기에 재미있기도 했다. 어렵다고 느껴졌던 시들은 천천히 만나볼 생각이다. 내 기분 상태에 따라 시들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테니까. 길지만 마음에 들었던,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인정으로 읽혔던 시를 옮겨본다.
백조의 우화
세계의 지도에서 살짝 떨어진 작은 섬에, 두 마리 백조가 살았다. 백조로서는, 하루의 80퍼센트를 자상한 물속에서 자신들을 연구하면서 보냈고, 20퍼센트는 사랑하는 상대를 세심히 보살피며 보냈다. 그리하여 연인으로서 그들의 명성은 주로 나르시시즘에서 나왔고, 더 일반적인 방식으로 노닐기엔 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운명은 다른 계획이 있었으니: 십 년 후에, 백조들은 끈적끈적한 물을 스쳤는데; 지저분한 뭔가가 수컷 백조의 깃털에 달라붙어 깃털이 금세 회색으로 변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백조의 목이 유연하게 만들어진 진짜 이유가 드러났다. 평평한 호수 위에서 그렇게나 이리저리 안간힘을 써도, 그렇게나 수컷 백조는 빗나갔던 것이다! 머지않아 긴 생에서 함께, 모든 커플은 이와 비슷한 위기 상황을 만나고, 어떤 드라마는 해를 입는 것으로 끝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사랑을 시험하고 사랑의 복잡한 조건을 새롭게 표현하길 요구하기 때문. 남자와 여자는 다른 플래카드 밑에서 흐른다는 게 그렇게 드러났다: 남자가 사랑이란 자기 마음속에서 느끼는 것이라고 믿었던 반면에 여자는 사랑이란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순수에 대한 백조의 추잡한 정의를 증거 삼아 들려주는 이 이야기가, 남자의 타고난 타락을 보여 주는 소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능청과 순수에 대한 이야기다. 십 년 동안 암컷은 수컷을 연구했다; 암컷은 수컷이 잠을 잘 때 혹은 물속에 편안하게 잠겨 있을 때 노닥거렸고, 반면에 즉흥적인 수컷은 태평스레 순간순간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진창의 물 위에서 두 백조는 잠시 토닥거렸다. 희미해지는 빛 속에서, 그러다 말다툼이 천천히 추상적으로 흘러갔고, 조금 더 지나자 그들 노래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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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지'는 영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책을 읽으면서, 아니 시를 감상하면서 2% 부족함을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원문을 얼마나 잘 번역했을까였다. '시'에 표현된 여러 장치들이 원문에서는 어렴풋하게라도 알아볼 수 있으리라. 정교하게 짜여진 장치들이 번역을 거치는 순간 깨어지지 않을까? 무시되진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친다. 문장을 중간에 끊고 다음 열로 넘기는 것, 부정문을 다음 열로 넘기는 것 등이 장치이지 않을까.
내용을 살펴보자. 번째 시의 제목은 '페넬로페의 노래'다 페넬로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금발의 미녀, 그리스 최고의 현모양처로 묘사된다.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사랑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감상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중간에 '텔레마코스의 죄의식'이라는 시도 있다. 텔레마코스는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아들이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중간 중간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를 주인공으로 한 시가 있다. 루이즈 글릭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남편, 아들, 가족이야기. 그리도 또 다른 이야기.
그리스 신화 뿐 아니라 작가의 가족 이야기도 시에 담겨 있으니 염두에 두자.
그럼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루이즈 글릭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1943년에 태어났다. 1968년 시집 《맏이》로 등단했고, 1993년 시집 《야생 붓꽃》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2003년부터 다음 해까지 미국 계관 시인이었다. 그동안 시집 열네 권을 발표했고 에세이와 시론을 담은 책 두 권을 지었다. 2020년 노벨문학상, 2015년 국가인문학메달, 1993년 《야생 붓꽃》으로 퓰리처상, 2014년 《신실하고 고결한 밤》으로 전미도서상, 1985년 《아킬레우스의 승리》로 전미비평가상 등을 받았다. 2001년 볼링겐상, 2012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서상, 그리고 2008년 미국 시인 아카데미의 월리스 스티븐스상을 받기도 했다. 예일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앞서 말한대로 원작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온라인 중고서점을 통해 한 권 구입해서 읽어봐야겠다.
그러고 나서 진지하게 번역된 이 책을 읽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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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혹은 사랑해서, 때로는 우연히, 어찌할 수 없어, 간혹 운명처럼... 관계를 맺는 출발점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단순하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람과 장소와 사물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하물며 부부, 부모자식의 '가족'은 함부로 바꿀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강력하고 고단한 관계일 수도 있는 얽매임 같은 것입니다. 평생을 통해, 기쁘고 따스하고 든든할, 서로의 존재가치를 부단히 찾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시집은 우리네 옛 규방가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땅에 살았던 옛 여인들도 생활에서 기쁨과 슬픔과 울분을 노래고 글로 부르고 기록했었지요. 문화의 차이가 약간 있을 뿐, 남녀가 자식 낳고 가족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 생기는 감정들이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첫번째 시 <페넬로페의 노래>는 트로이전쟁에 나가 20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는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페넬로페의 마음을 노래했습니다. 몇 편의 시를 사이에 두고, 텔레마코스가 등장합니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아들입니다. <텔레마코스의 거리두기> <텔레마코스의 죄의식> <텔레마코스의 친절> <텔레마코스의 딜레마> <텔레마코스의 고백> <텔레마코스의 짐> 등의 시편으로 마치 신화속의 그를 만나는 듯 합니다. 그리고 키르케가 등장합니다. 신화에서 태양신 헬리오스와 페르세이스의 딸로 마법에 능하다고 알려진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아내이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키르케의 힘> <키르케의 고통> <키르케의 슬픔>은 그녀의 고백 같기도 합니다. 이 시집은 신화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목소리로, 여러 관계들을 반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주관적이게도, 때론 객관적으로도 각자의 입장과 심적 상황을 털어놓게 했습니다. 지금 우리들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잡미묘한 인간관계의 갈등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일 것 같습니다. 반면, 시대와 상황의 변화로 약간의 표현방식과 해석이 달라지고 있음도 보입니다. 이 시집은 정은귀 교수님의 <옮긴이의 말>이 별책으로 묶여져 있습니다. 그만큼 번역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는 형태로 보여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옮긴이의 말이 책의 앞쪽이나 말미에 있지 않아서, 꼭 챙겨 보게 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 시집은 관계가 선사하는 기쁨과 슬픔, 사랑과 별리, 환희와 절망 모두의 색채를 경험하고 울어본 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별책 p.20) 옮긴이의 이 인상깊은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다음 독자들을 기대해 봅니다.
* 이 글은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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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 문학상수상자이자 2015년 국가 인문 훈장을 받은 루이즈 글릭의 목초지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족관계에서 경험할수 있는 감정들을 접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의미에서 일리야스의 다른 이미지를 볼수 있었어요 시집의 내용들은 가족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그것을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이면과 그들의 감정을 자신의 이야기 하듯 표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독백같은 이야기와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의 대화하듯 이어지는 시는 감미로우면서도 편안하고 애절하면서도 먹먹해지는 느낌입니다.
조용한 시집은 아름다우면서도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시는 가족의 대화처럼 느껴지며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아름다운 선율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 하네요 외국의 정서라고 하기에는 어느 나라든 가족은 결국 가족이고 그들사이의 갈등과 연민 애정은 어디에서는 똑같다고 느껴지네요 조용한 저녁노을에 작은 메모지에 만년필로 적어내린 시처럼 고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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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지」 노벨문학상 시인 루이즈 글릭 시집
시공사(펴냄)
시인이자 수필가.... 루이즈 글릭은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020년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특별히 열 여덟 편의 시가 수록된 시집 《아베르노》를 언급했다. 아베르노 라틴어로 "지옥"을 뜻한다고 한다. 전작인 《야생 붓꽃》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시를 번역하는 일이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이 시리즈의 번역을 맡으신 역자님은 한국외대 영미 문화학과 교수이신 정은귀 교수님. 유명 시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계시면서 동시에 이성복 시인의 시처럼 한국의 좋은 시를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심장"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시를 읽을 때 내가 특히 좋아하는 단어 "심장"
내 심장은 돌로 된 벽, 당신이 부수어 버렸지.
내 심장은 곧 짓밟아 버릴 섬의 정원.
당신은 내 심장을 원치 않았어요. 당신은 내 몸을 향해 걸어왔지요... . . 마리나 p46
웨이트리스 출신 화자가 유부남과의 사랑을 언급한 시도 있다. 외국 여성 시인들의 시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재다. 만약, 이런 시를 한국에서 쓴다면 아마 돌 맞지 않을까?!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도 종종 언급되는 불륜....... 남의 사랑에 대해 내가 뭐라고 자로 재고,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몫인걸...
사랑에 빠지면서 나는 죄인이 되었어요. 그 전에 나는 웨이트리스였어요.
. . . 당신 아내가 당신을 보내 주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 행복을 바라는 게 맞지 않아요?
. . 사이렌 p44
내게 말해 보라, 아픈 심장아: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을 꾸며대고 있는 거니 네 쓰레기 뭉치와 함께 어두운 차고에서 훌쩍이면서: 그 쓰레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네 일이 아니야, 네 일은 . . . 한밤 p42
아픈 심장, 사랑 시를 좋아한다. 전작에서도 심장, 아픔이라는 단어가 종종 언급되었다. 사랑 그 자체가 주는 고통, 그 독특한 이질감을 시인은 유려하게 담아낸다. 이 시집 《목초지》는 1996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무려 27년 전 작품을 읽으며 한 번도 격세지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인류 보편적인 감정 사랑을 다루다 보니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다.
시의 화자로 오디세우스와 키르케, 페넬로페, 텔레마코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키르케나 오디세우스를 소재로 수없이 회자된 작품들을 읽어본 독자로서 루이즈 글릭은 신화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나아가 이 시대 여성들을 노래한다.
시를 느낌 그대로 읽고 싶어 역자님의 해설서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편견을 가지게 될까 봐 시인의 삶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지 않았다. 아마 리뷰를 쓰고 읽고 검색해 볼 예정^^ 루이즈 글릭의 시는 쉽게 읽힌다. 어려운 시어로 점철된 우리 현대시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신화를 재해석하고 자신의 소중한 일상의 경험을 꺼내 덧붙인, 그러면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꾸준히 창조해가는 독특한 시인이다. 2022년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 시집, 시인의 시집을 읽고 바로 반해버렸다. 영문 그대로의 느낌은 어떨까 궁금하다......아! 영시를 찾아 읽어봐야지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목초지, #루이즈글릭, #시공사, #노벨문학상, #2020노벨문학상, #영미문학, #영시, #좋은시, #정은귀번역, #루이즈글릭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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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양은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목초지 / 루이즈 글릭 (정은귀) / 시공사 / 2023. 6. 8 / 94쪽 / 13,000원
매번 시를 읽을 때마다 시에 대해 느껴지는 감정은, 마치 한 마리의 도도한 고양이처럼 마음을 주는 것 같다가도 손을 뻗어 가까워지려고 하면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이런 매력이 어쩌면 자꾸만 시집에 손이 향하게 하는 건 아닐까. 분명 루이즈 글릭의 목초지도 쉽게 술술 읽히는 시집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집에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동이 존재한다. 앞서 시를 고양이의 도도함으로 비유했다. 그렇다면 목초지에서 보여주는 도도함은 무엇일까. 바로 신화 속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외국 신화는 그리 익숙하지 않다. 기껏해야 그리스 로마신화나 삼국지 정도 될 것이다. 시집 등장하는 신화의 여성 인물들은 관심 있게 찾아보지 않았다면 인물들의 이야기는 알기 힘들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 아버지 없이 자란 텔레마코스, 사람들을 짐승으로 부렸다는 마녀이자 여신인 키르케와 같은 인물들은 그리 익숙지 않다. 또한 동물의 우화를 비유한 여러 시도 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런 시의 도도함 때문에 그냥 시집을 덮어버리고 책꽂이 구석에 꽂아 둘 것인가? 아니다. 도도한 고양이도 마음을 분명 준다. 그건 바로 이 시집에서 전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사랑의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페넬로페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사랑은 기다림이라고 외치고 있다. 아버지 없이 자란 텔레마코스는 남편이 없는 엄마를 보며 사랑은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수백 가지로 뻗어나가는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느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페넬로페를 통해 그리움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기약 없는 재회를 기다리는 한 여성의 소리 없는 투쟁은 큰 울림을 줬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고 그 기다림은 고통스럽다. 저 멀리 미국에서 온 나이 많은 시인이 보여준 사랑의 모양은 현재 한국에 있는 내가 가진 사랑의 모양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공간과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의 힘에 다시 한번 놀랐다.
p.s) ‘시는 어렵다’라는 생각이 있는, 아직 시를 읽지 않는 분들에게 한 가지 방법을 주고 싶다. 본격적으로 시에 빠지기 전에 역자의 말을 읽거나 좀 더 노력한다면 시인의 정보를 알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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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 Louise Elisabeth Gluck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 1943년에 태어났따. 2020년 노벨문학상. 2015년 국가 인문 훈장을 받았다. 시집 열네 권을 발표했고 에세이와 시론을 담은 책 두 권을 지었다. 예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초기 시부터 일관된 관심사였던 관계에 대한 탐색은 1996년 출판된 글릭의 일곱 번째 시집 <목초지>에 이르러서 한층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가족관계 안에서 경험하는 감정의 굴곡들이 다양하게 변주된다. 자기 세대의 여성들이 짊어졌던 걸쭉한 고민을 시인은 페넬로페와 키르케의 목소리를 빌려서 이야기하고, 집을 떠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존재의 이야기가 오디세우스를 통해 그려진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독특한 화자이다. 독자로서 이번 시집을 읽는 방식은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다채롭게 등장하는 화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일차적인 접근법이 될 것이다.
p.15 <조용한 저녁> QUIET EVENING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난 우리 함께 있는 이 저녁이 좋아. 여름날 이 조용한 저녁, 이 시간 하늘은 아직 환하고,
그래서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손을 잡았지 그를 말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기억에 이 평화를 각인시키려고:
평소에 잘 접하지 않던 시를 읽어보니 색달랐다. 나에겐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시의 내용도 있었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목초지 시집에 대한 내용을 옮긴이 정은귀님의 설명이 있는 책도 있어서 좀 더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시들 중에 p.66 나비와, p.89 그 소망 개인적으로 좋았다. 루이즈 글릭의 시는 뭔가 대화를 하는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한 번이 아닌 몇 번을 읽어 보는 게 좋은 시집인 것 같다.
* YES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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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시는 쉽게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시 안에서 자기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시는 어떻게 보면 주관적 감성의 확대화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잘 모르고 보면 시인들은 모두 광인같고 미친사람 같다. 하지만 시인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시에 속을 필요는 없다.
외국인의 시는 더 어렵다. 일단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면 조금씩 시 속에 섞어들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시는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봐야 한다고 믿고 있다. 즉, 유명한 시인이 a라고 시를 썼을 때 아름다운 표현이라 말하지만, 동네 자칭 시인이라는 사람이 똑같은 a라고 말하면, 그냥 웃어넘기는 경향은 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시는 모든 것을 제로에서, 시인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순전히 시와 나만의 교통으로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현재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시인들의 시는 너무 과대포장 되어 있다. 이런 시로는 감성을 흔들지라도 공모에서 우승할 수는 없다.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탄다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어떻게 시인의 사상을 해석하고 풀이하기에 문학상을 탈까? 시는 문학상의 영역을 넘어버린다. 탈상의 영역이다.
때로 저자의 시 속에서 위트도 보이고, 저자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좀 더 시를 통해 더 많이 알아가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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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 내 선택이 잘못된걸까..? 이번엔 골라도 영-잘못골랐네.." '목초지'의 첫 페이지를 열고 읽기 시작하면서 바로 든 생각입니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한 장 한 장 읽다보니 무슨 뜬구름 잡는 글이지?? 싶었습니다. "평소 시집을 잘 읽지 않는 점이 '목초지'를 이해하는데 더 어려움을 주는 걸까?"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어보고 또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다가 포기. '아 뭔말이야;; 오늘은 일단 자야겠다' 생각하고는 며칠동안 '목초지'의 존재를 잠깐 머리속에서 지웠습니다. 문득 일을 하다가 떠오르는 '페넬로페' "페넬로페?? 그리스 신화???' 며칠동안 이유모를 답답함이 해소되지 못해 잔뜩 예민해져 있다가 확!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쉬운게 '목초지'가 그 자체를 제가 이해를 못할 시집 인걸까 싶습니다. '목초지'에는 작가인 루이즈 글릭의 가족 이야기도 담겨 있는데 솔직히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작가인지라 전혀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아직도 100%이해는 커녕 50%는 이해를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리스 로마 신화 원문을 읽은지 벌써 10년이 다되어가 기억도 드문드문.. 정말 제가 쓴 글로만 봐도 답답하지 않나요? 아님 제가 답답한 사람인걸까요?ㅎㅎ '목초지'자체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며 읽게하기 위해서라면 각주를 달아 시마다의 해석본도 따로 있으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시라는게 해석이 있다면 풀이해보거나 생각하는데 있어서 재미가 덜하겠지만 루이즈 글릭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단순히 남편이나 아들 등 가족을 이용한게 아니라 그리스 로마신화도 이용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음..여기서 내가 이해한 감정들은 몇 가지일까..? 일단 루이즈 글릭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그리스 로마신화 원문을 다시 읽어보고 '목초지'를 읽어봐야겠습니다. 다시 읽었을때는 좀 더 풍부하게 시들을 맞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