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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너무 몰랐다. 공감은 크기가 아닌 거리라고 한다. 그때, 그곳에서 그런 참혹한 일이 일어난 줄 전혀 몰랐다. 그것도 우리 나라 군인들에 의해.. 초등학교 3학년때 일이다. 그 후에도 날조된 역사 왜곡으로 우리는 한동안 '사태'라고 불렀다.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인과응보도,사필귀정도 없었다. 전두환의 어린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추적하여 쓴 글이다. 어렴풋이 알던 아픈 우리 현대사를 정리한다. 지겹지않게 극적효과도 주면서 잘 이끌고 나간다. 후판부에 감성덕인 글이 많아, 픽션의 전달이 희석되어 조금 아쉽다. 누군가를 증오하며 살아야하는 피해자의 고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못된 신념이, 개인의 욕망이, 너무나 큰 죄를 짓고. 제가족과 측근만 챙기고, 세상 호인처럼, 뻔뻔하게 살다가 죽으면 희생자들과 그 가족은 어떻게 해야 되나. 전두환때가 좋았다고 하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기억은 옅어지고, 삶은 팍팍해지니, 과거 뮈든 같이하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느는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기억이 퇴색되어도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도, 이태원 참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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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아은은 197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은행원과 컨설턴트, 통·번역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2013년, 잦은 이직 경향과 경쟁분위기에서 생존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상을 담아낸 장편소설 《모던 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2021년 11월 23일 세상을 떠난 전두환의 삶과 그를 끝내 단죄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근원적 모순을 분석하고 있다. 목차는 ‘프롤로그, 1부 영광(1931-1980), 2부 모순(1981-1987), 3부 몰락(1988-2021), 4부 악의 기원,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책의 내용을 보면, 1부는 전두환의 기질적인 씨앗이 싹튼 그의 성장기부터 1979년의 12·12 쿠데타, 1980년 5월의 광주를 거쳐 그가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로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2부에서는 전두환이라는 무법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기정사실화 되고, 어떤 이들에겐 아직도 ‘단군 이래의 최대 호황’이란 시절로 기억되는 그의 집권기, 1980년대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3부는 그가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이후부터 2021년 죽음을 맞이한 날까지의 여정을 고찰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4부에서는 1부에서 3부까지 전개되었던 전두환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집권할 수 있었고, 단죄받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었으며, 결국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깊은 상흔과 족쇄가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되짚고 있다. 책의 내용을 종합하면, 저자는 전두환을 광주 시민을 학살한 살인마로 규정하고,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과 비교하면서 그의 성격을 분석하고, 언행을 비판하고, 전두환이 통치하던 시대를 해석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나는 전두환의 성장 과정과 집권 중, 퇴임 후의 행적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중점을 두고 책을 읽었다. 1. 어린 시절 전두환의 어린 시절은 가난으로 뒤덮여 있었다. 고향인 합천 시골 마을에서의 삶도 가난했지만, 갑작스럽게 만주로 이사하게 되면서 더욱 가난해졌다. 낯선 만주 땅에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 가족이 땅을 갈고 흙을 고른 끝에 겨우 살 집을 마련할 무렵, 전두환의 가족들은 다시 조선 땅으로 돌아왔다. 화재로 만주 집이 전소된 데다가 그 충격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어머니가 고향 땅에 돌아가고 싶다고 읍소했기 때문이다. 고국으로 돌아온 전두환 가족은 대구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나갔고, 열 살이던 전두환은 약전골목에서 약 배달을 했다. 쌀밥은 고사하고 보리죽이나마 하루 두 번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인 나날이었다. 말년에 쓴 회고록에서 전두환은 온몸에 짚이 묻어 있어 동네 아이들에게 ‘움막집 아이’라고 놀림받았던 이 시절을 “끼니를 이을 수도 없다 보니 내 몸은 수척했고 키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라고 기술한다. 갑작스러운 만주로의 이주는 아버지에게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전두환의 아버지인 전상우(全相禹)는 가난하지만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한학자’였다. 마을에서 ‘읽고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재였던 그는 마을의 구장 일을 맡고 있었는데, 일본인 순사와 크고 작은 일로 갈등하다가 결국 잡혀갈 위기에 처했다. 급기야 출두명령서가 집으로 날아들고, 며칠 뒤 좁은 산길에서 일본인 순사와 마주친 전상우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순사)의 허리춤을 잡고 번쩍 들어 강둑으로 밀쳐버렸다. 5남매를 낳았지만 아들 둘을 잃고 딸만 셋을 키우던 전두환의 어머니 김점문(金点文)은 아들을 갖기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한 스님에게서 “앞니가 잘못 나 있어 아들을 낳아도 지니지 못한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김점문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앞니 두 개를 빼버린다. 생니를 뺀 뒤 심하게 앓은 김점문은, 남아 있는 치아마저 흔들리는 바람에 치아를 모두 잃고 ‘합죽이’가 되는 운명에 처한다.(40~42쪽) 2. 성장 과정 전두환의 성장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그가 적령기를 놓치고 열 살이 되어서야 소학교에 입학했다는 부분이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것이 전부였던 전두환은 만주에서 처음 ‘학교’에 가게 되었다. ‘호란보통소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전두환은 집안일을 돕고 농사일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어렵게 시작한 낯선 땅에서의 학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대화재와 어머니의 실명으로 1년 3개월 만에 만주 생활을 접고 조선 땅으로 돌아온 이후 전두환은 약배달을 하고, 물지게를 지고, 땔감을 해 오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열네 살이 되던 해 4월로, 그는 희도공립국민학교에 4학년 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전두환은 대구공업중학교와 대구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다. 합격자 228명 중에 226등의 성적으로 겨우 입학에 성공한 그에게 육사의 교육 과정은 벅찰 만큼 어려웠다. 제대로 된 초·중등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대학 과정의 수준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수학을 잘하는 친구에게 개인 지도를 받거나, 취침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화장실에 가서 공부하는 등 악바리처럼 노력해 정규 과정을 소화한다. 육사를 마친 뒤 그의 군인 경력은 탄탄대로였다. 졸업 뒤에는 미국 포트 브랙 기지의 심리전 학교에서 심리전 과정을 이수하고, 미 육군 보병학교의 레인저 과정과 패스파인더 과정을 이수해 특수전 전문가로 거듭난다. 한국에서 7~8명만 선발해 대표로 보내는 과정에 선발되어 미국 유학에 갔으니, 꼴찌에서 두 번째로 들어간 육군사관학교에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성장 과정은 한마디로, 상승을 위한 끈질긴 집념이 펼치는 강렬한 드라마였다.(43~45쪽) 3. 집권기의 경제 정책 19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은 김재익을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등용해 파격적인 권한을 주었다. 김재익은 1970년대에 경제기획원의 경제기획관과 기획국 국장을 지낸 ‘안정화 시책’의 핵심 입안자이자 브레인이었다. 경제수석비서관 자리를 제안받은 김재익이 “저의 정책을 추진하시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텐데 그래도 끝까지 제 말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수락 조건을 밝혔을 때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했다는 일화가 보여주듯, 전두환의 김재익에 대한 신뢰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격적인 종류였다. 이는 전두환이 사람을 기용할 때 자주 보여주었던 특성으로, 그는 한번 신임한 사람에게 통째로 일을 맡긴 뒤 끝까지 믿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김재익이 실질적 의미의 경제 사령탑이 된 이후, 대한민국 경제는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김재익이 주도하고 강경식, 김기환 같은 경제기획원 출신 인재들에 의해 뒷받침된 새로운 시책의 핵심은 ‘소수가 내리는 비합리적인 결정에서 집단지성을 통한 합리적인 결정으로의 변환’이었다. 정권이 교체됨과 함께, 뛰어난 경제 관료들의 두뇌에서 나오는 통찰력으로, 또한 그 통찰력을 알아본 리더의 전권 위임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시장 경제의 원리가 비로소 실현되었다. 안정화 시책의 대표 주자였던 김재익이 5공 정권에서 활약했던 시기는 국보위 경제과학분과위원장으로 일했던 1980년 6월부터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 희생당한 1983년 10월까지, 3년 4개월에 불과하다. 김재익이 전두환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권 초반 3년 동안 대한민국은 탄생 이후 처음으로 물가안정을 이루고, 일관된 규칙하에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장경제 체제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후에 대한민국이 갈팡질팡하면서도 큰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탄탄한 경로를 설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138~141쪽) 4. 감옥 안의 삶 전두환을 이루는 또 하나의 핵심 특성은 수감 생활의 후반부에 흘러나온다. 재판이 끝난 뒤 수감 생활에 적응해 나가면서, 그는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던, 그를 이루는 것 중 가장 강력하고 뛰어난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그것은 근면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근면함이었다. 그는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운동 시간이 돌아오면 제한된 공간에서나마 움직여 몸을 단련했고, 호실에 갇혀 있을 때는 책을 읽거나 편지를 썼다. 그가 읽었던 책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한비자》, 《조선왕조실록》, 《강대국의 흥망》, 《한국의 통일정책》 같은 정치 역사 관련 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걸리버 여행기》, 《엄지 왕자》, 《아서 왕의 모험》 같은 이야기책이었다. 그가 군인이고 정치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자의 책들을 즐겨 읽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특이한 건 《걸리버 여행기》 같은 동화적인 성격을 띤 책을 읽었다는 점인데, 그는 이 책들을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소스로 삼기 위해 읽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자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손자 손녀들이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때마다 이야기 밑천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부지런히 옛날이야기들을 읽어 내용을 기억하려 애썼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직접 만날 수 없는 손자 손녀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매일 편지를 썼다. 월요일은 손자, 화요일은 손녀, 수요일엔 자녀들…. 이런 식으로 요일을 정해놓고 번갈아 가며 썼다. 전두환은 감옥 생활이 자기에게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움막집에서 살며 의식주의 부족과 불편함에 단련이 되었고, 육사 생도 때와 군인으로서 했던 병영 생활, 미국 연수 때 혹독한 생존 훈련을 거쳤기에 감옥에서의 생활이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생의 어느 순간에도 허투루 임하지 않았다. 늘 운동으로 몸을 단련했고, 맡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냈으며, 처한 상황을 기민하게 살폈다. 그러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기회가 오면 재빨리 낚아챘다. 필요성을 느끼면 전문가를 초빙해 왕성한 학습력으로 목표한 지식을 익혔고, 항상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엄청난 생명력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하루하루를 살았다.(244~246쪽) 5. 전두환을 단죄하지 못한 이유 퇴임 후 33년 동안 전두환은 왜 무릎 꿇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는 왜 그를 무릎 꿇게 하지 못했는가? 전두환이라는 명확한 ‘악’을 단죄하는 일에, 누구도 사익(私益)을 희생하며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악을 처단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국회의원이 처단되지 못한 거대 악을 단죄하기 위해 입법을 하고, 검사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를 집요하게 추적해 법정에 넘겼다면, 그에 대해 판사가 바른 판결을 내렸다면, 전두환은 제대로 된 단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은 전두환 처벌을 제 정치적 손익에 따라 이용했고, 국회는 전두환에 대한 행정부 수반의 ‘이용 의지’에 따라 법을 만들거나 만들지 않았으며, 검사 역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불기소처분을 했다가 몇 개월 뒤 행정부 수반의 의지에 따라 다시 기소를 단행하는 촌극을 벌였다. 한국 사회의 결정권을 쥔 자리에 있는 누구도, 의지를 갖고 전두환을 단죄하려 하지 않았다. ‘선’을 지키기 위해 직(職)을 걸고 나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셈이다. 군인이 자국 국민을 학살하는 참극이 벌어지게 만든 희대의 무법자가 제대로 단죄받지 않고 남은 생을 풍요롭게 보내다 이승을 하직하는 광경은 이렇듯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소중하게 지켜가는 ‘일정 선’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358~359쪽)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고, 자신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국민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의 육신이 떠난 지금, 그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가 한국사의 정확한 자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존재했던 한 인물의 행적을 우리 사회 발전의 불쏘시개로 삼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시간이다. |
| 작가는 전두환이라는 한인간에 대해서 너무 철저하게 파내려간듯하다..전두환과 관련된 그수많은 연관 도서들...자료들을 철저히 분석하고..당시 시대적상황에 빗대어 전두환을 관찰한다..이책을 쓰기 위해 너무나 철저하게 분석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그렇게 만들어진 이책에 대해..작가에게 뜨거운박수를 보내고 싶다. |
| 한국 정치사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두환과 신군부의 모습을 좇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사과 없이 뻔뻔한 태도를 보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전두환과 함께 있었던 신군부는 여전히 세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모습을 보면 1970~80년대 역사에 대한 정리와 반성이 더더욱 필요함을 느낄 정도다. 최근 젊은 층에서 이들을 추앙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책의 가치는 빛이 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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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억원정도로 추정할 뿐... 그것도 전두환의 온 가족이 모두 악인인 것 또한 며느리조차 친일매국노가 여전히 돈과 권력을 잡고 있는 한국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리라. 전두환의 손자 한 명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져서 너무 위대해보일 정도다. 그나저나 예스24는 영화 '서울의 봄' 마케팅으로 전두환 관련 서적을 사용하는데.. 조국 작가의 디케의 눈물을 왜 올해의 천도서에서 제외했는지 그야말로 예스24 뻔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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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작가님을 정말 존경하고 좋아했는데 안타까운 사고로 돌아가셔서 아직도 너무 슬프고 황망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말 자료조사를 꼼꼼하게 하시고 쓰신 글이라는게 느껴졌고 그 덕에 전두환에 대해 미처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됐네요. |
| 계엄의 잔혹을 겪었던 만큼.가담자 주동자 내란우두머리는사면대상에서 반드시 졔외되어 단죄되어야한다는 법률적 단서조항이 명문화되어야 하며 부하뇌동 동조한자 연금혜택 수여대상자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야 함이 법치와 국격이 있는 참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일 것이다.계엄의 잔혹을 겪었던 만큼.가담자 주동자 내란우두머리는사면대상에서 반드시 졔외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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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반란을 주도 해 육 군대장 을강제 연행하면 서 정권을 장 악한 한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권 력에 빠지면 인간들의 모습이 어 떻게 변하는지를 전두환이라는 인물을통해 알 수 있었고 그 인문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볼수 있어서 너무 좋았 다 앞으로 논 쟁거리에 있 는 역사적 인물을 재평가 하고 비판을 통해 그시대 를 조명하는 그런 도서가 많이 나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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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전두환을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전두환의 대사가 있다.
자신이 한 일을 부정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전두환. 그는 왜 끝까지 자신의 악행을 부인하는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는 그 점에 의문을 갖는다. 왜 그는 무릎 꿇지 않았는가. 왜 그는 자기가 한 일을 끝까지 부정하는가. 인간이라면 조금이라도 있을 일말의 죄책감이 왜 그에게는 작동하지 않았는가. 그 사실을 알기 위해 정아은 소설가는 전두환의 회고록, <전두환의 육성기록> 등을 비롯해 그 당시 활동했던 많은 이들의 기록들을 추적하며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한다.
전두환이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에 정아은 작가는 중요한 키워드를 제공한다. 그 중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정통성'이다. 정통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통성'의 뜻을 살펴보면 " 그 사회의 정치체제, 정치권력, 전통 등을 올바르다고 인정하는 일반적 관념" 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치, 대통령의 정통성은 무엇인가? 바로 국가의 체제에 맞게 국민들의 손에 선출된 사람이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보았다시피 전두환의 시작은 12.12. 쿠테타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을 행한 사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그가 파괴한 정통성은 끝내 그를 그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업적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에 그는 자신의 죄과를 인정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전두환에게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는' 가벼움'이다.
누군가는 '가벼움'이란 단어가 전두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아은 작가는 전두환의 특질이야말로 '가벼움'이라고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렇다면 전두환은 어떤 가벼움을 장착했는가? 정아은 작가는 '광주'를 예로 든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면 그 죽인 사람의 자녀, 혹은 부모들을 찾아가지 못한다. 그들의 원한이 무섭고 복수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한 일이 부메랑이 될까 무서워한다. 하지만 전두환은 어떤가. 전두환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때 한 지역을 차단한 채 죽이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사태 이후 광주를 4,5차례 방문해 '광주 시민들을 아낀다고 말하며 광주를 돕겠다고 말한다. 정상인 사람들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정아은 작가는 '가벼움'을 붙인다.
미자믹으로 정아은 작가는 전두환이 집권할 수 있었던 키워드로 '선을 지키지 않았던 시대 인물들'을 꼽는다. 먼저 정아은 작가는 자신의 권력 유지의 목적을 위해 전두환을 사면한 김대중 전대통령과 김영삼의 야당합당 역시 선을 지키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그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일방적인 사면은 국민들의 민심에 역행하는 조치였다. 김영삼 또한 대통령에 대한 욕심으로 여당과 합당함으로 정권교체가 물거품이 되게 했으며 전두환을 심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두 전 대통령이 선을 지키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소신있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 수경관 이태신, 참모총장 정상호,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등까지 선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전두환의 만행을 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 전두환의 꾀에 속아 잔치집 초대에 응하고 끝내 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당해야 했던 그들이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최규하 대통령, 국방장관, 참모총장 및 조직 군인들, 전직 대통령 등 모두가 선을 지키지 않았기에 전두환은 끝내 단죄받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 당시에는 영화에서 보다시피 이미 군인 조직이 하나회에 장악된 상황이었다. 조직의 상하조직이 안 된 상황. 그리고 정아은 작가도 알다시피 그는 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실세였으며 정보라인을 이미 장악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권한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두환을 제압하고 조직을 잘 관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두환의 특질을 '가벼움'이라고 단정짓기에는 과연 이걸로 충분한가라는 강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전두환 시대를 정통성의 결여에 중점을 두며 그가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펼쳤던 그의 정책등을 자세하게 파헤친다. 가령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여주었던 88올림픽, 해외여행 자유화 등이 어떤 배경으로 시작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아우러 그가 눈을 돌리기 위해 펼쳤던 감각적 자유가 어떻게 역사적인 1987년을 만들어내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 호황'의 전성기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아주며 우리가 전두환을 바로 알아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자세하게 말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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