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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나이를 먹고 나니 더는 내려놓을 것도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려놓을 게 있는 걸 보면 인생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얼마나 내려놓아야 실망도 절망도 아쉬움도 없는 것일까? 아직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삶이란 녀석이 뭐든 기대하게 만드는 것일까?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근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떤 날은 번뇌로 몸부림치면서도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닐까? 이렇게 살고 있다. 누군가는 어느 포인트에서 괜찮은 거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 포인트는 내가 정하는 거니까,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그냥. 내 삶이, 내 하루가 이렇게 평범해서 좋다. 자주 화가 나고 자주 짜증 나고 또 자주 울화가 치밀지만 그래도 가끔 행복한 내가, 내 삶이 좋다.
제목이 그냥 좋아서 구입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맞다. 힘들지 않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지. 돈이 많고 적음를 떠나 모두 힘들다고 말한다. 힘든 포인트 역시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나는 내 인생이 힘든가? 이렇게 묻는다면 힘들다고 대답하겠다. 힘들어도 그냥 산다. 그냥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 이런 나와 어울리는 책이다. 온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내일이 오늘보다 나쁠지도 모르지만 사는 동안에는 그냥 살게 될 것 같다.
영웅도, 국가도 시간 앞에 무력하다. 세월은 모든 것을 녹이든 거대한 용광로처럼 우리의 삶을 조금씩 녹여 이름 없는 대지에 부어버린다. (42) 그래서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했던가? 결국엔 죽는다는 것. 그래서 조금 더 오늘 나답게 한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죽기 전까지는 나로 살고 싶으니까. 우리가 사소한 일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 고통받기 때문이며 (63) 맞다. 행복도 결국 사소한 것에서부터 온다는 것. 웃다 보면 행복해지겠지. 인생은 불행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68) 행복을 포기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쇼펜하우어. 포기했는데 행복이 오면 그 행복은 더 즐거울까 생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선한 삶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81) 생각하며 살기 위해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사색에 잠기는 것이겠지. 음식을 절제하면 몸이 건강해지듯 사람과의 만남을 자제하면 영혼이 건강해진다. (83) 무분별하게 만나지 말자. 만나는 자체로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을 만나자. 사람이 나이가 들어 젊은 시절보다 더욱 욕심을 내는 것은 시간을 상실했다는, 생명이라는 원금이 얼마 안 남았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103) 나는 생명이라는 원금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냥. 오늘도 그냥 산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이기주의를 배웠다. (125)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은 욕심내지 않는 거라고 하는데. 진짜 쉽지 않네. ^^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며 독립된 세계이며, 유일한 표상이 된다. (245) 우리 집에는 각기 다른 4개의 우주가 존재한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다독인다. 독립하는 그 순간까지.
나이를 먹나 보다. 산책하면서 생각을 즐긴다.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괜찮은 사람으로 나이 먹을지, 어떻게 하면 후회의 가지 수가 적어질지. 아직도 험난한 내 인생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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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내몰리기 쉬운 요즘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힐링’을 받기 위해 다양한 스팟이나 책, 음악 등을 찾는다. 특히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 주는 책은 시중에 상당히 많지만 나로서는 그닥 와닿지 않았다. 내가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이유도 이에 있다. 괜찮아, 많이 힘들었지, 다 잘 될 거야. 이런 말들이 궁극적으로 내가 현재의 문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라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자주 절망하고 가끔 행복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차라리 행복을 좇기보단 불행하지 않으려 노력하라고 말한다. 물론 달콤하고 긍정적인 말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현실주의자, 더 나아가 염세주의자에 가까운 독자들게는 이런 식의 언어가 더 가슴에 와닿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진심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끝으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만큼 지루한 것이 또 있을까 번민 없는 인생은 없다. 번민은 욕심에서 태어난다. 다행히 우리는 욕심보다 강한 무기가 있다.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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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23년도 47번째 책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리뷰입니다. 쇼펜하우어의 고찰을 매우 손쉽게 정리해주었으며, 내용이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문구를 적어보았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에 남겨두었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클릭!) 리뷰를 읽으시는 분 모두 다(多)독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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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이처럼 매력적인 학문이었나??? 여느 책처럼 주저리주저리 내 생각을 글로 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미미한 존재인지를... 그러한 내가 살아가며 겪게되는 수많은 갈등과 번뇌는 얼마나 먼지같이 작고 무의미한것인가... 그 수많은 무의미한것들을 손에서 놓치 못한채 집착하며 욕망에 휘둘린채 살았는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한자한자 곱씹는다. 이책 정말 좋다. 너무 좋다. 다행히도 아직 완독전이다. 아직 읽어야할곳이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니.. 다시금 쇼펜하우어의 비관론에 빠져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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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힘들까, 다른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거 같아고이고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사람이 많을거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선택으로 대부분의 인생의 방향 등이 결정되지만 그럼에도 힘겨워하고 불행해 한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힘겨워 하는 꼴이라고 할까. 오늘은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의 책들을 번역하고 다시 엮어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의 생각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하려한다. 이 책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실존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한다.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라고 불린다고 한다. 편역자의 글에서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집착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비관에 대한 비관'을 제시 했다고 한다. 뭔가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라는 느낌도 왠지 모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 소개하는 책은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등과 편지, 일기 등을 토대로 새롭게 구성했다고 편역자는 소개한다. 이러한 단락과 소제목으로 이루어진 책을 볼때, 보통 나는 마치 논문을 보듯 책의 첫 주제가 담겨있을 법한 서문과 목차를 보고 책의 첫 글과 마지막 글을 본다. 왜냐하면 책을 편집하는 편집자나 저자는 책을 구성 할 때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책의 가장 처음과 나중에 넣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처음에 나오는 글의 제목은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이다. 이 글에서 쇼펜하우어는 나 이상의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하며 나보다 더 뛰어난 개성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으로서 오롯이 존재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내가 인상 깊었던 몇 문장을 소개 해보려 한다. 이 문장들이 책의 전부를 보여 준다고 보면 안된다. 단순히 내가 인상 깊었던 문장을 추려 내었을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의 편견이 담겨 있을 수 있으므로 감안 해서 봐주면 좋겠다.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깨닫고 그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다. 견뎌내지 못할 때까지 버티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동반 자살이나 다름없다. 몸과 마음이 불쾌해지지 않는 기준을 정리해 오래도록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평범한 생활이 나만의 고유한 재능으로 인정받는 날이 온다." "인간의 육체를 위해 기술이 발달 할수록 인간의 정신이 우울해지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인생이 고달파지는 까닭은 경쟁적 성공이 행복의 근본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내를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신념을 그대의 양식을 삼아라... 시간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위대한 인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을 통해 만들어진다." 등등 의 마음에 와닿는 문구들이 있었다. 한번 보고 끝낼 책이 아니라, 다시 곱씹으면서 볼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주체적인 인생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는게 저자인 쇼펜하우어가 원하는게 아닐까 싶다. SNS에 넘쳐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하이라이트를 보며 비교하기 보다 하루 하루 자신의 삶을 살으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하신게 아닐까 싶다. 요즘 하루가 힘든 우리들에게 권할 책이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을 읽고 소개하고,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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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참 쇼펜하우어답다는 생각에 이끌리듯이 주문했다. 원래도 그의 철학에 나름 관심도 많고 매력도 느껴서기도 했지만 책은 역시 제목이 최소 절반은 차지한다는 무언의 법칙을 새삼 느꼈다. 제목 뿐 아니라 내용들 역시 좋다. 잘 알려져 있듯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이자 거의 극도에 가까운 비관론자였지만 막상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누구보다 삶을 사랑한 열혈남아였음 또한 알 수 있다. "산책의 동료는 '고뇌'로 족하다"는 첫 글에서부터 "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글도 좋았고 소위 말해 어느 꼭지글 하나 거를 타선이 없다. 모든 이상주의자는 다 염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상주의를 품는다는 건 그 품의 크기만큼은 현실이 이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일 테고 그건 곧 그만큼은 염세주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가 그러한 이상주의적 염세주의자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의 철학에 관심이 있지만 선뜻 다가서기 주저하는 이들에게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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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랑한 철학자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문장은 염세주의자 처럼 느껴지는 표현이 곳곳에 보이지만, 문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철학이 근대 철학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이해된다. "삶이 괴롭다면 그냥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자라."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속는 셈 치고 실천해 보면 도움이 된다. 마음과 신체는 둘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의 근본과도 일치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건드려서 오래 마음을 붙잡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였다는 사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된다.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을 담은 책 답게 어디를 펴도 삶에 도움이 되는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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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로 대표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책은 처음이다. 두세 문장씩으로 이루어진 명언은 가끔 보았지만, 부끄럽지만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이 무엇인가 하면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잘 알지 못했다.
가정, 그리고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처음 사랑에 빠졌던 감정이 지나고 나면 차츰 결혼 전의 자아를 찾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면, 부모는 아이를 통해 잃어버린 자아를 실현시키고자 한다. 아이에게서 자신의 예전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개성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직 나를 위해 일생을 내 노예처럼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해주는 하나의 물건으로" 부모를 취급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가정을 이루게 되는 '사랑'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추락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의 힘든 시기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 인생이 힘들게 느껴지는 날에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생이란 "원래 불행해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지혜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것"이다. 삶이 기쁘지는 않아도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비법일 수도 있겠다. "인생이라는 게, 사실 크게 휘둘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니까.
사교 및 인간관계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 사회에서, 직장에서 성공하려면 피해갈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이다. 서점 베스트셀러 중에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 꼭 들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사교성은 지성과 반비례하는 것"이다. 매우 비사교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위대한 특성을 가진 뛰어난 사람이며, 그는 자신과 함께할 시간, 그리고 타인과 함께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것"인데 사교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자신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굳이 타인과 교제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려면 동질성을 위해 정신 수준을 끌어내려야 하므로, 집단의 정신 수준은 가장 어리석은 자에 맞춰줄 수밖에 없어 "사회성은 고상한 인격이 저급한 인격을 흉내내게 만드는 것"이다.
친구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 기쁨은 나누면 시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말이 있다. 쇼펜하우어의 생각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오래 사귄 친구이더라도 그의 마음은 나의 눈동자보다 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의 마음은 한없이 연약하기 그지없다. "그는 작은 불행도 참지 못하고, 나의 성공에도 감정이 상한다". 친구와 교제할 때에는 항상 그의 연약한 마음을 신경써야 한다.
종교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 '염세주의'라는 분류와 같이, 그의 철학과 사상이 따뜻하지도 않으며, 인생에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위로를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믿는 신을 찾아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얻고자 한다. 쇼펜하우어는 "교회에 나가는 것을 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귀찮게 하지는 말라고 말한다. 구원, 사랑으로 가득한 말을 듣고 싶다면 교회에 나가도 되고, 대학 강단에 서는 '장사꾼'과 같은 강사들에게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철학에서 그런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청춘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 아픈만큼 청춘이라는 희대의 흰소리가 열광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청춘들이 흘린 피땀은 어디로 갔을까. "선한 자는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방직기계 앞에서 하루를 수탈당하고, 기계에서 기술을 난도질 당하고, 바다에서는 선원들이 몇천 명씩 빠져 죽고, 벽돌을 등에 진 채 강물로 덜어져 익사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 많이 착취당하기 위해" 아둥바둥하며 대학에 들어가고, 밤을 새워 기술을 익힌 것일까. "대체 왜 우리는 노력하는가. 왜 청춘은 꿈을 꾸는가. 그들의 꿈은 어디를 배경으로 바래지고 있는가". 더욱 슬픈 것은, 그 아픔에서 탈출한 몇몇 가진 자들은 이제 '권태'라는 새로움 아픔 속에 파묻혀 몸부림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생각들은 듣기 좋은 말들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자리에 나가기 위해 한껏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 입은 친구의 모습이 정말 별로다 싶을 때, '오늘 정말 예쁘다'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나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입은 옷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솔직히 말을 해주는 것이 나을까. 그런 느낌인 것 같다.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시각. 내가 바라는 것처럼 마냥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또한 다들 그렇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그럼으로써 또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또다른 힘을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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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라는 철학자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다른 철학자와는 다르다.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만약 태어났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차선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염세주의 철학자이다.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집착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고통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비관에 대한 비관'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모든것은 우리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책 제목인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역설적으로 인생은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생에 있어 힘들지 않은 것은 반대로 기쁨도 없다는 것이다. 고통은 인간이 살아있다는 반증이며, 이러한 고통을 통해 성숙해진 인간이 되는 것이다. 철학책이라 내용이 좀 어렵다.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두번째 읽으면 좀더 이해가 되려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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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는 고통을 마주보아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이다.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 차선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한다. 수억 년 넘게 지구의 밤하늘을 떠도는 별들이 마지막에 내리는 결론도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지상에 부러운 인간은 한 명도 없다. 반대로 불쌍한 인간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p58) 밤하늘의 별에게 인간의 생애는 ‘등에 짊어지고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등허리가 휘어지는 노새의 짐’이다.
쇼펜하우어에게 인생은 비극이고 고통이다.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피로를 느낀다. 사사로운 움직임마저도 신체엔 부담이다.(p26) 동물, 그리고 동물로서의 인간이 저지르는 활동은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동반한다.(p49)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선별하고 시도하는 모든 활동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진다.(p49)
쇼펜하우어에게 불행과 고통은 인간의 타고난 숙명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운명을 타고난 데에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 때문이었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이기주의를 배운다. 우리는 어머니의 고통과 함께 세상에 태어난다. 우리의 생명은 한 여인에게는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된 후에도 어머니에게 감사하지 않는다.(p125)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도태를 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기심을 억제하고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 앞에서 자신을 강탈당하든지, 자기 앞에서 만물을 파괴하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존재다.(p72) 쇼펜하우어에게는 인간이 어떤 것을 선택하든 결과는 불행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고통과 맞닥뜨린다. 날마다 눈을 떴을 때 온갖 불행과 마주하게 된다. 크고 작은 불행, 일상적인 불행, 끝없는 불행, 단발적인 불행이 동시에, 때로는 순서대로 우리의 아침을 깨운다. 극도의 긴장이 우리를 짓누르고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불안을 안고 협력한다. 그러나 속내는 공공의 복리가 아닌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인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공공의 복리로 인해 하루에도 수만 명이 착취당하고, 희생당하고, 세계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 몇몇 인간들에 의해 당치도 않은 선입관이 공동의 목표로 제시되어 그 길만 따라가면 이 고단한 삶에서 회복되리라는 망상이 심어진다. 기득권을 위해 교활한 전략에 속아 넘어간 무고한 시민들이 싸움터로 달려간다.(p171)
이렇게 시작한 개인의 삶은 끝없는 투쟁으로 이어진다. 빈곤과 권태와의 투쟁, 질병과 살인과의 투쟁, 무기력과 교만과의 투쟁, 이웃과 국가와의 투쟁이다.(p133) 인간의 날이 지속되는 한, 도처에서 적이 출몰하고, 투쟁은 끝이 없다. 무기를 든 손에는 피가 마르지 않는다.(p146) 우리에게는 타고난 선이 부족하다. 신은 우리에게 충분한 선을 베풀지 않았다.(p159)
인간은 살면서 반드시 누군가와 교제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이 겪는 모든 고뇌는 교제에서 비롯된다. 건강 다음으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마음의 평정이 사교 때문에 위험해진다.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자신의 본성에 깃든 가장 저급하고 비열한 부분, 즉 일상적이고 비속하며 천박한 부분을 매개로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사회성은 타인의 높은 수준에 맞춰 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장 낮은 수준에 맞춰 나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p83)
우리가 상호 간의 관계 맺기에 서투른 까닭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거나, 심술을 부리거나, 교만하거나, 질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내 고집만 부리는 원인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시기하고 어떻게든 깍아 내리려고 고집을 피우는 원인은,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p107)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현대의 온갖 기술도 쇼펜하우어에게는 오히려 우리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었다.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을 우울하게 만든다. 기술은 인간의 정신을 나약하게 만들었다. 기술과 산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삶은 외형적으로 더욱 편리해졌지만, 안락한 삶에 도취된 인간은 눈앞에 어떤 문제가 나타났을 때 이성적 고뇌로 치열하게 싸워 극복하려는 의지가 약해졌다.(p30)
쇼펜하우어에게는 젊음도 불행의 원인이다. 젊음은 슬픔과 불행의 시기다. 배움과 현실의 차이에 좌절하는 첫 번째 실패의 날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행복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전제를 배워왔고, 행복애햐 한다는 강압 하에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환멸이 생기고 거기서 불만이 생겨난다. 세상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망상을 청년기에 뿌리 뽑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p228)
우리는 시간을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생명은 서른여섯 살까지는 시간의 이자로 살아가고, 서른여섯 이후부터는 시간 그 자체를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것이다.(p103) 그런데 이 시간도 생존이라는 고뇌를 더욱 무겁게,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은 시간에 쫓겨다니는 사냥감이다. 잠시의 숨 돌릴 틈도 없다. 우리의 삶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간수는 채찍과 몽둥이를 들고 창살 밖에서 우리를 감시한다. 간수의 정체는 권태다. 간수의 채찍질에 우리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지루함, 무기력, 사라진 의욕으로 죄수는 석방에 대한 꿈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죄의식, 고뇌, 가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본질이다.(p120)
우리 삶에 큰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쇼펜하우어도 자신을 기쁘게 하는 단 한 가지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사랑도 아픔이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고통이다. 사랑은 그 고통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 거리를 헤매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황무지 같은 들판을 찾아가 자학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스스로 양심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다. 고통을 치르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p87)
쇼펜하우어는 극도의 비관주의자다. 그렇다고 그가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행복은 불행에 비해 극히 적고, 소극적이고 그 가치도 떨어진다. 불행이 행복보다 더 많은 유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수단을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의 실천을 했을 때 길의 중간에서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다.(p63)
행복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행복을 활동 그 자체로 본다.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잘 하고 있다’는 지속이다. 행복은 성숙한 인간이 되는 모든 과정의 연속이다. 따라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상태와 과정도 행복이다.
인생은 불행해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인생의 지혜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중용의 미덕이다. 인생이라는 게, 사실 크게 휘둘릴 만한 가치가 없다.(p68)
인류의 소원이 이루어진 곳이 한 군데 있다. 바로 천국이다. 천국에서는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며, 잠들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고, 미움도 없고, 다툼도 없고, 시기 질투도 없고, 그래서 베풂도 없고, 구제도 없고, 봉사도 없고, 친절도 없고, 나눔도 없다. 돌보지 않아도 꽃이 피고, 물을 주지 않아도 나뭇잎이 푸르고, 모이를 주지 않아도 새들이 지저귄다. 눈길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내 눈에 띄는 사람마다 모두 사랑하게 된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권태다.(p121) 천국이 지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만약 천국이 있고, 구원받은 자들이 천국에 입성한다면 그들은 수년내에 새로운 천국의 조성을 위해 신께 기도드릴 것이다.(p44)
당신의 오늘이 행복했다면 내일은 오늘의 행복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어제의 행복으로 오늘을 만족하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재앙으로 당신의 내일은 행복해질 수 있다. 질병, 박해, 몰락, 폭행, 실명,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의 오늘은 내일의 행복에 필수적인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p132)
희망은 아주 오랜 시간 인간을 속여 왔다. 좀 더 기다리면, 좀 더 노력하면 내가 그대를 찾게 되리라, 그렇게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p43)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망의 속삭임에 빠져 인내하고 노력했던가. 그 결과 저들은 희망이 절망이 되는 참혹한 순간을 온몸으로 버텨내야 했다. 희망이 우리에게 꿈을 주었다면 언젠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러나 절망은 희망보다 솔직하다. 절망은 우리에게 한 번 준 것을 다시 찾아가지 않는다.
불행의 가장 큰 가치는 우리의 의식을 깨우치는 데 있다. 평온한 일상, 안락한 행복은 삶에서 그 비중이 극히 작다. 소극적인 삶의 형태이며 인생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매우 소규모다. 반면에 절망과 고뇌는 삶을 적극적으로 변모시킨다.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을 사유하고, 자신이 살아온 길을 더듬게 된다. 눈길조차 보내지 않던 길가의 돌멩이가 나의 엄지발가락을 저리게 만들고, 발을 절뚝거리게 만들고,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결국 약속에 늦게 만드는 특별한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아픔을 모르는 기쁨은 존재하지 않는다. 패배와 좌절 없이 행복은 우리를 방문하지 않는다. 시련의 눈물 없이 웃음에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아픔을 통해 배우지 않은 모든 것이 거짓이다. 아름다움은 상처 입은 가슴만이 발견할 수 있다.(p181) 항구를 출발한 배는 필연적으로 파도를 거슬러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태어남은 동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의심이 가지 않는다면 신앙이 아니다.(p182)
우리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을 마주보게 된다. 온전한 나로써 고통에 맞선다. 온전한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의지를 갖은 '나'이다. 인간은 고통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이다.(p49)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마주침이다. 어둠 속에서 나를 노려보는 공포들과의 마주침, 나를 경악하게 만드는 나 자신의 숨겨진 의지와의 마주침, 내 삶에 아직도 행복이 남아있다고 확신하는 어리석음과 마주침, 그리고 이 세계의 숨겨진 진실과의 마주침이다.(p74)
한 번의 좌절이 하나의 정답으로 귀납되고, 방황의 끝에서 남들에겐 없는 나만의 소양이 도출된다. 그렇게 능력과 소양을 채워나가다 보면 나의 천부적 성품과 경험된 지식과 한데 어우러져 세상이 바라보는 ‘나’의 진짜 모습이 구현되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구분되고, 의욕과 가능성이 판단된다. 구분과 판단은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성격이다.(p143)
쇼펜하우어는 “행복하다는 것은 잘산다는 것이다. 잘산다는 것은 인간성이 원활히 발휘되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성이란 인간다운 기능이다, 인간의 기능은 생식, 감각, 사유로 나뉘는데, 사유는 오직 인간에게만 내재된 기능이다.”고 말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 사유하게 되고, 사유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 행복의 끝은 권태이지만 불행의 끝은 자기 자신의 발견이다. 고통의 진정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를 되찾아 인내와 신념을 가지고 하루하루 고통을 견뎌내다 보면 인생도 그다지 불가사의한 현상은 아니다, 그다지 불행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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