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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돌연한 출발>이 Yes24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을까? 부득이 아르테에서 출판한 <변신>에다 적는다. 다시 검색이 되면 옮기겠다.)
프란츠 카프카의 연대기적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어떻게 죽었는지. 어떤 공부를 하였으며, 어떻게 밥벌이를 했으며, 어떻게 글을 썼는지. 몇 번의 약혼을 했으며, 그 약혼이 어떻게 깨졌는지. 유언으로 친구에게 자신의 글을 모두 불살라버리라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한 친구에 의해 인류의 자산이 조금이라도 늘어났다는 것까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란츠 카프카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카프카적(的)이란 말이 있다. 많이 들었다. 말하자면, 카프카와 비슷하다, 카프카가 그린 세계를 재현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카프카에게는 쓸 수 없는 말일 텐데, 그 말과 그 말의 표적을 추적하다도면 결국은 카프카를 만난다. 어쩌면 아이러니다. 우리는 카프카로 카프카를 설명하고 있다. 카프카는 카프카로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카프카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존재로서 자신과 세상을 상상한다. 그 존재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세상을 인식하는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카프카는 벌레가 되어도, 두더지가 되어도 인간의 세상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게 그게 바로 인간의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보다 객관적인 인간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가장 주관적이면서, 가장 객관적인 인식이다. 그렇게 기괴하고, 왜곡된 세상 보기(또는 그런 세상을 보기)야말로 20세기 초 굉장한 희망의 노래를 부르다 한꺼번에 지옥을 맞본 인류에 대한 처참한 인식, 반성인지도 모른다. 너무 개인적이지만, 그 개인적인 인식에 세계에 대한 인식이 있다.
<변신>이나, <선고>, <굴>과 같은 진짜 단편소설 같은 소설도 있지만, 많은 소설이 한두 페이지짜리다. 소설들에 대한 아이디어 같은 이 글들은 마치 산문시처럼 읽힌다. 아니라면 그가 이 글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변신>은 다시 읽으니 예전보다 더 암울하다. 예전에는 그저 우화(寓話) 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보니, 너무 현실적이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말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굴>을 열심히 읽었다. 이 집요한 소설을 또 본 적인 있나 싶다. 카프카는 이 <굴>만 ‘빼고’ 불태우라는 유언을 했다. 그렇다면 <불>을 그의 유언으로 볼 수도 있을까? <선고>나 <가장의 근심>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글임에 분명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방법도 있다. 아니 이런 방법밖에 쓰지 못한다. 카프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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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로 변한다면?' 테스트가 인기리에 퍼지는 것을 보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지금이 기회다! 다시 한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드디어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아르테 클래식 라이브러리 005 『변신』이다. 이 책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당시로서는 착상이 기발했을 테니 널리 퍼지고 많은 인기를 얻었으리라.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이런 소설이 다 있구나!'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이 소설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굴」, 「변신」, 「학술원 보고」, 「단식예술가」 등 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어권 유대계 작가로,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제국령이었던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체코계 유대 상인 헤르만 카프카와 독일계 유대인 율리에 뢰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그 아래로 세 명의 여동생 엘리, 발리, 오틀라가 있었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일계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다. 보험공사에 다니며 직장 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했으며, 원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는 그의 유언을 따르지 않은 친구 막스 브로트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주요 작품으로는 세 편의 미완성 장편 『실종자』, 『소송』, 『성』, 그리고 『변신』, 『선고』, 『유형지에서』, 『학술원 보고』, 『단식예술가』, 『시골 의사』, 『굴』 등의 단편이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일기와 편지, 아포리즘 등이 전해진다. 그와 관련된 주요 여성들로는 두 번의 약혼과 파혼을 거듭한 펠리체 바우어, 세 번째로 파혼한 율리에 보흐리젝, 그의 작품을 체코어로 번역한 밀레나 예젠스카, 베를린에서 말년을 함께 보낸 도라 디아만트 등이 있다. 1924년 폐결핵과 후두결핵으로 사망했다. (책날개 중 작가 소개 전문)
처음 수록된 작품은 「굴」이다. 이 작품부터 읽어나가면서 프란츠 카프카는 의인법의 귀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는지, 그것도 그 당시에 말이다. 내가 바로 그 벌레의 입장이 된 듯이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카프카의 「변신」을 읽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유명하고 많이 읽혀온 작품이니까 이번에는 이 작품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예전의 나와는 또 다른 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 책을 집어 들어 새로운 맛을 보았다. 내가 벌레도 되어보고 생활고도 겪어보며 그레고르의 입장이 되어 안타까워서 혼이 다 빠진 듯했다. 「학술원 보고」의 경우 원숭이를 초점으로 의인화하여 써낸 소설인데 정말 독특했다.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이어서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이해 못 하던 것을 지금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으니, 관점에 따라 그리고 시기에 따라 소설이 다가오는 부분이 다른가 보다. 시기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니, 새로운 판형의 책이 나올 때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단식예술가」 또한 마찬가지로 고통을 엿보게 했다. 네 작품 모두 인간의 가장 고통스러운 곳을 후벼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읽어보니 현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기법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공연히 유명해진 것은 아니구나!' 깨닫게 되었다. 읽을 때마다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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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의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는 클래식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 이외에 저는 개인적으로 두께감이 얇은 편이라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너무 두꺼우면 고전을 접하기 전부터 지레 질려버리기 쉽상인데 그런 부분에서 덜 부담스러워 읽기 전에도 마음이 조금 편안한 것 같습니다.
카프카의 유명한 작품인 <변신>을 책 제목으로 하고 있고 변신이라는 작품 이외에도 세 작품이 더 소개되어 있습니다. 처음 변신이라는 작품을 접했을 때 너무나도 생각지 못한 소재와 내용으로 인해 다소 충격을 받았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읽어보니 또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그래서 고전은 두고 두고 읽어도 좋은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네 편의 작품들 중 저는 <굴>이라는 작품은 처음 접하기도 했고 책을 펼쳐들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작품인데 책을 읽으면서 저의 감정도 여러가지로 변해가는 것 같았습니다. 굴을 파면서 안전한 장소라고 느끼고 자부심을 느껴가던 화자의 감정 변화에 따라 나의 감정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만 같았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오히려 가장 불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불안하게 만드는 실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변신이라는 작품은 워낙 유명해서 잘 알려져 있지만 소재가 너무나도 특이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강렬한 인상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이 벌레가 된다는 설정 그리고 저자는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이 책에 존재하는 작품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철학적인 것 같아서 책을 보며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학술원 보고>는 우리나라에서 연극으로도 무대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다른 책을 읽다가 우연히 접한 기억이 있었는데 동물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어떤 존재가 우월한 것일까 그리고 인간이 과연 동물보다 우월한 것일까 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네요. 인간의 존재와 사유에 대한 이야기 등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우리에게 던저주는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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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변신_프란츠 카프카_아르테
명작 소설은 매력적인데 독자가 그걸 알지 못하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랬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지만 그 난해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건지 그 맥락 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개연성도 없고 뜬금없이 튀어나온 동물이 도대체 어떤 존재며 무얼 원하는지 안다면 제 정신이 아닐 것 같다. 아무튼 마지막 부분에 있던 역자 해설편을 봤다. 일단 작가 소개와 연보를 살폈다. 프란츠 카프카가 살아온 인생은 완전한 유대인도 독일인도 되지 못했고 체코에 속하지 못했다. 그런 불완전한 삶과 세계 전쟁을 겪은 것이 소설 속에 녹아있었으며 어둡고 우울하며 외로웠다. 그런데 그렇게만 바라봤지만 해설을 읽고나서야 더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 해석도 번역가님의 통찰이 담긴 주관적인 내용일 수있고 총체적인 판단 또한 여러 석학들의 연구를 통해 결론 지었겠지만 가장 개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권장 도서 100선.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 도서.'
개인적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은 해설을 곁들여 읽거나 사람들과 독서 토론을 한다면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작가도 언급했지만 이 소설은 정해진 것없이 독자가 자유롭게 이해하도록 했다고 한다. 특히 '변신'같은 경우 출판사에서 표지 삽화를 넣으려 했지만 카프카가 거절했다고 한다. 그만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쓸 당시 그가 겪던 상황을 보면 창작 배경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소설집이 놀라웠던 건 난해하다고 느꼈던 여러 요소가 사실은 감정의 한 부분이었고 사회적인 풍자나 시대상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를 생각하며 읽었던 부분을 떠올리면 프란츠 카프카가 왜 지금까지도 화자되며 위대한 작가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놀라운 건 생존해 있을 땐 수상 이력도 없었고 남아있는 작품은 대부분 미완성이며 완성작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단편 소설집은 최애 작품이 되었으며 '아르테' 출판사에서 목승숙 번역가님의 훌륭한 결과물로 세상에 선보였다. 나는 앞으로도 이 책을 아끼며 기억할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변신 #프란츠카프카 #아르테 #리앤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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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벌레는 어릴적 어린이 세계문학으로 읽은 뒤 성인이 되어서 다시 재독하게된 작품이었다. 카프카는 초판 표지에 들어갈 삽화와 관련하여 벌레 자체는 그려질 수 없으며, 멀리서 보여서도 안된다는 강력한 요청으로 벌레로 면한 그레고르의 모습은 독자의 상상에 맡겨져 있었다. 사실 카프카가 글쓰는 시기에 아버지의 재정상태가 나빠졌었고, 아끼는 막내 여동생과 불화를 겪고 있었다고 알려져있는데 왠지 벌레는 카프카 자신의 자전적 모습을 담지 않았나 싶었던 작품이었다. 자신을 쓸모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고, 가장 가까운 가족이 타인보다 더 먼 존재로 느껴지는 상태를 변신이라는 작품에 가장 잘 녹였던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때 자신이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침대에 누워있었고, 머리를 들어서 몸을 바라보니 마디로 나뉜 불룩한 갈색배와 체구에 비해 가벼워보이는 수많은 다리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자신에게 무슨일이 벌어진건지 가늠하기도전에 자신은 지금 출장을 가야하는 영업사원 신분임을 떠올린다. 너무 일찍일어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헛것을 보인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때 시계는 오전 6시30분을 가리키는것을 보게되고 출근에 대한 걱정을 시작한다. 여러 걱정거리로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되어갈쯤 시간을 흘러 6시45분이 됨을 확인하게 되고 문밖에 어머니가 출근하지 않냐는 부름에 처음으로 말을 내뱉어보게 된다. 자신의 말은 뭉개져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정도였고 간신히 대답정도만 마치고 났는데 시간은 더 흘러 있었고 아버지와 여동생까지 자신의 출근을 걱정하게 되었고 회사에서 지배인이 찾아오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자신이 벌레로 변한것을 가족들에게 들키게 되고,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실에 가족들은 차츰 적응해나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사실 성실한 그레고르는 처음으로 지각한것이었는데 이런 대우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실하고 집안 식구들에게도 매번 생활비를 가져다주던 그레고르였지만 벌레로 변하고 난 뒤에는 그의 쓸모가 없어짐을 차츰차츰 느껴지게 사람들의 행동이 변해간다. 가장 아끼던 여동생은 처음에는 자신의 방청소와 먹을것을 가져다주는데 적극적이었지만 그레고르가 벌어오던 돈벌이가 사라지자 가족들은 궁핍해져가고 삶이 팍팍해지며 신경이 예민해져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신경쓰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들이 보여졌다. 요즘 밈처럼 떠도는 부모님께 내가 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것 같냐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수많은 답변으로 우리의 즐거움을 주던 답변이 그레고르에겐 생존과 연결된 문제로 보여졌다. 동생의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도 감상할줄 아는 벌레였지만 벌레는 벌레일뿐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조차 버림받아 결국 그레고르는 자신의 의지로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는 결말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굴''학술원 보고''단식 예술가'라는 단편이 담겨있었는데, 동물이나 소외된 주체들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카프카만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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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집이에요. 아르테 세계문학 시리즈 '클래식 라이브러리' 다섯 번째 책이에요. 그동안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세계고전문학 시리즈가 나와서 반가웠어요. 산뜻하고 세련된 디자인 덕분에 새로운 기분으로 책을 펼쳤네요. 동일한 작품이라도 번역본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읽는 맛이 다른 것 같아요. 우선 프란츠 카프카는 누구인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제국령이었던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 프라하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그 아래로 세 명의 여동생 엘리, 발리, 오틀라가 있었어요. 권위적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일계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으며 보험공사에 다니며 직장 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했다고 해요. 체코에 거주하며 독일어로 작품을 썼던 카프카는 1924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이 쓴 원고를 모두 태워 없애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그의 친구이자 극작가인 막스 브로트가 유언을 지키지 않았어요. 브로트는 나치에 체포당하지 않으려고 카프카가 남긴 원고와 기록물 등을 가지고 1939년 이스라엘 건국 전의 텔아비브에 정착했다고 해요. 브로트가 카프카의 유작 일부를 출간하여 카프카는 사후에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었어요. 브로트는 사망 전 수천 장에 달하는 카프카의 원고와 기록물을 자신의 비서인 에스더 호파에게 넘겨주면서 공공기록보관소에 전달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호파도 유언을 지키지 않았어요. 호파는 카프카의 원고와 기록물을 70대의 두 딸에게 물려줬는데, 그 뒤로 40년 이상 카프카 유작과 서류의 권리에 대한 소송이 이어진 거예요.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 두 자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함으로써 국립도서관에 정착하게 되었대요. 여기서 의문이 생겨요. 카프카는 정말 자신의 작품들을 없애고 싶었을까요. 어쩐지 아닐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되네요. 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를 의미한대요. 이 책에 실린 <굴>, <변신>, <학술원 보고>, <단식예술가>는 기괴하고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 카프카라는 인물을 이해하면 작품 안에 담긴 의미를 짐작할 수 있어요. 땅속 깊이 굴을 파고 있는 나, 갑자기 벌레로 변한 나, 원숭이 상태인 나, 단식하는 행위를 공연처럼 보여주는 단식예술가까지 주류에 속하지 못한 채 고립된 인간상을 보여주지만 그 끝이 절망은 아니에요. "거의 터져버릴 정도로 모든 것을 갖춘 이 고귀한 몸뚱이는 자유도 함께 데리고 다니는 것 같았다." (152p) 라는 문장에서 주목할 단어는 '자유'예요. 소설 속에서 카프카는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네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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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실제 사정을 보면, 굴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법이지만, 안전한 시기에서조차도 현실을 보는 이러한 눈을 먼저 갖춰야 한다.- 물론 안전도 상당 부분 제공하지만 완전히 충분하지는 않은데, 굴 안에 있으면 언젠가는 근심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걸까?"
카프카는 역시 카프카. 변신은 역시 변신. 그런데 굴도 괜찮다..?
첫번째 작품 <굴>은 주인공이 자신의 보금자리인 굴안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동시에 현실을 마주하길 안주하며 자그마한 외부 자극에도 무척 불안해 하여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게 만듭니다. 기분탓인지, 혹은 작가가 설치한 장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굴>을 읽는 내내 글자가 유독 다닥다닥 붙어있어 답답하고 불안감이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결국 <굴> 주인공은 결말에 이르러 까지 불안을 유지하나, 사실 그 외부 자극-불안-은 아무런 결과도 초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점은 <굴> 마지막 부분에서 잘 알 수 있죠.
<굴> 외에도 <변신>, <학술원 보고>, <단식예술가> 이렇게 실려있습니다. 저는 네 작품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만, 그래도 <변신> 작품이 반가우면서도 마음에 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 다음은 <굴>이었고요. <변신>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에 리뷰는 <굴>로 적어봤습니다. 수록된 작품마다 저자의 무한한 상상력과 그걸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 그리고 문장의 한줄 한줄이 얼마나 짙고 깊은지 읽는 내내 역시, 역시 싶었어요. 소외와 고립 그리고 본질. 이를 바탕으로 피어난 여러 생각들이 이미지화 되어 제 머릿속을 온통 뒤집어놨어요. 번역도 부드러워서 읽는 데 아주 스무스했습니다. 게다가 책 표지도 상큼하고 가벼운 재질이라 읽기 편했습니다. 요즘처럼 선선한 날씨와 은은한 햇빛이 잘 어울리는 표지예요. 오랫동안 사랑 받는 작가는 다 이유가 있는 거겠죠. 오랜만에 카프카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을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해당 리뷰는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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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그레고르가 시달린 심각한 상처는 - 아무도 빼 줄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사과가 눈에 띄는 기념품처럼 살 속에 박혀있었다- 서글프고 역겨운 그레고르의 현재 몰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조차 그가 적대시하면 안 되는 가족의 일원이며 혐오감을 억누르고 참는 것, 오직 참는 것만이 가족의 의무라는 계명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듯했다. 드디어 변신을 마주했다. 제목은 익히 들어왔지만,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말이다. 클래식 라이브러리의 두 권(평온한 삶, 워더링 하이츠)를 만난 후 세 번째 만나는 시리즈다. 앞의 책 보다 훨씬 얇은 책이어서, 당연히 변신 한 작품만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총 4개의 단편(굴, 변신, 학술원 보고, 단식 예술가)이 담겨있다. 네 편 중 제일 길었던, 변신이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것 같다. "변신"에 대한 기대가 커서 그런지, 먼저 등장한 굴은 좀 지루한 맛이 있었고, 변신을 만나고 난 후 읽었던 학술원 보고와 단식 예술가는 감흥이 좀 적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성실하게 일하는 영업사원이었다. 전날부터 몸이 썩 좋지 않았는데, 아침 출장이 잡혀있던 날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몸을 돌리는 것도, 다리를 펴는 것도 평소와 많이 달랐으니 말이다. 겨우 몸을 일으키지만, 몸을 뒤척일 때마다 등의 통증이 느껴졌던 그레고르의 집으로 지배인이 찾아온다. 새벽의 출장을 가야 하는데, 출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레고르를 만나러 온 것이다. 부모가 나서서 그레고르가 아프다는 이유를 들며 변호를 하지만, 지배인은 직접 그레고르를 만나고 싶어 한다.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다가서는 그레고르는 평소 잠그던 문의 열쇠를 겨우 돌리고 문을 연다. 그런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가족들과 지배인. 급기야 어머니는 실신할 지경이 된다. 그레고르는 이제 사람이 아니라 갑충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름 논리적으로 자신이 출장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만, 사람들의 귀에는 짐승의 울부짖음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그레고르는 방에 갇힌다. 여동생 그레테가 그레고르를 위해 음식을 가져다주는데,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그레고르는 그레테의 소리가 들리면 깊숙한 어딘가로 몸을 숨긴다. 사실 그레고르는 그레테가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음악원에 보내주려고 했다. 갑충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실행을 했을 텐데,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녀가 자신을 돕기 위한 행동에 뭔가 보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미안한 마음을 전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그레고르는 그레테와 자신의 뭔가 통한다고 생각한다. 여동생과 달리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반면, 어머니는 아들의 변신에 큰 상실을 느껴서 몸이 아프다.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은 여동생일 뿐이다. 주 수입원인 그레고르가 변신한 후,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진다. 작은 집으로 옮기고 싶지만, 그레고르 때문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하숙생을 들이는데, 오랜만에 연주를 하는 동생의 바이올린 선율에 취한 그레고르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여동생과 무엇인가 통한다 생각했던 것이 모두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레고르의 모습이 참 애처로웠다. 자신의 가족이 벌레로 변한 것에 대해 어느 누가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그레고르를 대하는 가족들의 행동과 말에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그레고르는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으로 변신하였지만, 설령 같은 모습을 가졌다 해도 그리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피를 나눈 가족임에도, 서로의 행동이나 생각,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비난하고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그레고르의 변신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그레고르와 가족들이 가지는 생각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레고르는 여전히 가족을 향해 따뜻한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변신한 순간부터 자신의 아들, 오빠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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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오래전에 쓰여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현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소설이었습니다. 갑충으로 변신한 후 아버지가 보여주는 권위적인 모습은 흡사 현대 한국 사회에서 보여주는 권위적인 모습을 흡사 닮은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되었습니다만 그러나 유교사회의 바탕에서 권위주의는 쉽게 사라질 수는 없는 악습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란츠 카프카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이 적어지다보니 카프카의 집안 사정을 어느정도 반영한 글이 자주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버지의 영향으로 독일어를 쓰는 독일계 학교를 입학하여 수업한 것을 포함하여 본인이 스스로 헤쳐나간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보험업으로 일을 마친 후 잠깐씩 짬을 내어 쓰던 글이 그에겐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그레고르는 갑충으로 변한 다음 굴에서 틀어박힌 생활을 계속하게 됩니다. 밖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도 처음에는 그레고르를 돌봐주지만 점점 사회에서 매장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요즘 자발적 히키코모리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제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그레고르는 시대에 영합하지 못하고 사회에 복귀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인간에게도 있던 일이었습니다만 지금도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특히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고 1인가구가 늘어남에 따른 고독사의 비중이 점점 늘어감에 따른 사회문제가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1인가구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전제아래 정책이 나오는 경우를 봤었습니다. 분명 "변신"은 현대사회에서 비추어보았을 때는 고전소설의 축에 들어갑니다만 고전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의 삶을 재조명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그레고르를 통해서 인간이라는 것은 어떻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그 답을 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은 인간은 사회에 부속되지 않으면 점점 토대되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도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