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박준의 시를 읽고나면 잔잔하게 슬퍼지곤 한다. 시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때면 박준을 떠올리곤 한다. 그해 시리즈는 산문집에 자주 등장하지만 시집에도 등장한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을 떠올리게 하고, 그 순간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 해 우리는 어땠을까. 아름다웠을까. 아름답지만 슬펐을까. 슬프지만 아름답고, 아름답지만 슬픈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로 오고(p.14) 있겠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널려 있는(p.19) 봄이 그리워지겠다.
그냥 가지 말고 잘 가(p.21)라고 말하는 날이 있겠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84p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그해봄에
그럼 가. 멀리 안 나간다. 가. 그냥 가지 말고 잘 가.
#사월의잠
잠에서 깨어났지만 한동안 눈을 감고 있는 일로 당신으로부터 조금 이르게 멀어져보기도 했던, 더해야 할 말도 덜어낼 기억도 없는 그해 여름의 일입니다
#여름의일_묵호
어렵게 새벽이 오면
내어주지 않던 서로의 곁을 비집고 들어가
쪽잠에 들기도 했다
#손과밤의끝에서는
곁을 떠난 적이 있다 당신은 나와 헤어진 자리에서
곧 사라졌고 나는 너무를 생각했으므로 서로 다른 시
간을 헤매고 낯익은 곳에서 다시 만났다 그 시간과 공
간 사이, 우리는 서로가 없어도 잔상들을 웃자라게 했
으므로 근처 어디쯤에는 그날 흘리고 온 다짐 같은 것
도 있었다
#우리들의천국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장마_태백에서보내는편지
무엇을 기다리는 일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호수민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