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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사람은 꼭 가족이어야 할까? 소설을 읽고 난 후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 두 사람을 떠올렸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더 간절한 사이도 있다는 걸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자기 앞의 생』[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용경식 역, 문학동네, 2023년] 은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197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로맹 가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해 생활해 왔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프랑스 공군으로 복무했으며 이후 여러 지역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1956년 작품「하늘의 뿌리」로, 1975년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의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자기 앞의 생」은 열네 살 모모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창녀가 낳은 아이를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 하밀 할아버지, 여장 남자 롤라 아줌마, 카츠 선생님 등 모모의 주변 인물들과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때로는 아이다운 순수한 표현으로 때론 거친 언어를 통해 독자들은 모모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소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모와 로자 아줌마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들이 직면한 어려움이 삶을 어떻게 짓누르는지, 또 그런 상황을 어떻게 지탱해 나가는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 그녀는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그녀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건 그녀가 살아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모모...... 모모...... 모모......” 그녀의 말은 이게 전부였지만, 나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달려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샀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 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 (P.257)
로자 아줌마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모모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곁을 지킨다. 로자 아줌마가 모모에게 얼마나 간절한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고, 그건 로자 아줌마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프랑스 파리 벨빌 지역이다. 이때 프랑스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많았던 때로 이민자 문제, 인종 갈등, 빈곤 등 여러 사회적인 이슈가 대두되던 시기다. 「자기 앞의 생」은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여 파리의 하층민인 이민자, 창녀, 유대인, 흑인, 아랍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직면한 어려움과 그들 사이의 연대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에서 보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관련된 것이 아닌지 짐작해 본다. 작가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럽 내 반유대주의와 전쟁의 공포를 겪으며 성장했으며, 2차 세계대전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목격했다는 점이 그렇다.
소설 속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서 엄마의 따뜻한 사랑과 보호를 느꼈고,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자신의 아이처럼 여겨 보호 본능을 느꼈다.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단순한 돌봄의 관계를 넘어서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런 관계는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며, 스스로 선택한 관계 속에서도 깊은 사랑과 연대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지만 서로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된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반드시 혈연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 둘의 관계를 보면, 삶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지지해 주는 사람의 중요성과 우리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이 프랑스의 특정 지역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 문화적 배경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의 앞부분 서문을 통해 시대적 배경을 조금 더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랑과 연대를 통해 삶의 존엄성을 지켜 나가는 이 소설은 누구나 한 번쯤 읽으면 좋은 책이다. 특히 삶이 고단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그들의 주변에서 ‘모모’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며, 삶의 본질과 인간관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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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는 늘 뭔가 있는 책인데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지만 자꾸 읽게 되는 책. 그러다가 이번에 새로운 표지의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또 구입. 계속해서 손이 가는 걸 보면 역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명작은 명작인가보다. |
|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후기입니다. 보면서 모모의 삶이 참 안타깝기도 하고 어린시절부터 정말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데도 정신이 건강하기도 하고 이런 자기 앞에 생을 인정하고 성장해 나가려는 모모가 너무 기특하고 재밌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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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아자르 # 로맹 가리 # 자기 앞의 생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의 제목을 잊고 있었습니다. 열네 살 소년 모모.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아이가...'라는 생각이 들다가 오히려 아이이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보는 이야기에 삶을 보게 됩니다. 자기 앞의 생이 아니라 우리 앞의 생, 타인 앞에 놓인 어쩔 수 없는 생에 대해서. |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자기앞의생 #에밀아자르 #로맹가리 #문학동네 너무나무 유명한 이 문장.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싶게 한다. 이 책은 이미 유명한 책이고 여러번에 걸쳐 읽고 또 읽는 책이기도 하다. 로맹 가리는 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작가로도 유명하다. 이미 충분히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필명으로 새로운 작품을 쓰고 그 작품으로 다시 상을 수상하다니 역시 대단하다고밖에 할말이 없다. 로맹 가리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앞의 생을 읽었다. 어린 모모의 눈으로 바라는 세상은 밝고 희망찬 곳이 아니다. 지금도 인종차별이 심심치않게 일어나는 시대인데 그당시에는 어땠겠는가. 인종차별이 당연시되던 그때 아랍인이었던 모모의 삶이 각박하고 모진 것은 정해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모의 주변에는 오통 차별받는 사람들뿐이다. 모모는 창녀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랍인이었기 때문에 가장 밑바닥에서 삶이 시작되었다. 아랍인과 유태인,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 홀로 살아가는 노인까지. 가난하고 소외한 사라들의 이야기이자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모모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았고 아이같은 모습이 아닌 세상을 다 산 노인같은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삶의 무게를 이미 알아버린 어린 모모의 아이답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모모의 주변에는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모는 모진 환경 안에서 슬픔과 절망을 이겨내는 법을 배운다. 하밀 할아버지는 사람은 사랑없이도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모모는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가진 것도 없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삶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자기앞의 생이 충분히 아름다운 거라고 모모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P.279)이므로. p.72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p. 118 하밀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 을 보고 싶지 않았다. P. 236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p. 295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P. 345 어떤 좋은 책은 천년을 산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어떤 좋은 책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게 해주며 그 모든 좋은 책들은 아무리 늙었다 하더라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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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인물의 삶을 낱낱이 들여다 볼수 있어서.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인생을 대신 살아주어서. 정리 되지 않은 나의 마음속 이야기들을 정돈 된 언어로 풀어주어서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며 허구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비주류 인물인 로자와 모모의 이야기인 "자기앞의생"은 먹먹한 슬픔과 감동을 주는 소설로 적어도 나는 그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당위성을 주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분명 감동이 있고, 울림이 있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소설임에도,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선뜻 정리 되지 않는 마음으로 정리해본다. 다시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때 한번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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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밑바닥에서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모모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진다. 로자 아줌마는 돈을 받고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종의 탁아소를 운영하는 인물이다. 동네의 아이들은 몸을 파는 여자들의 자식인 경우가 많아 피임을 하지 못해 태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부모의 존재조차 모르며 부모가 주는 돈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로자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봤다. 그녀는 거구의 몸으로 7층의 집을 오르내리기 힘들었고,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이었기에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늘 어린아이들에게서 가장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이 바로 감수성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엄마가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여자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엄마를 만나기만 했더라면 무조건 사랑했을 것이다."모모는 엄마와 아빠 모두 몰랐다. 부모에 대해 묻는 모모에게 로자는 그저 모하메드라는 이름을 남기고 갔으며 어느정도의 돈만을 보내고 있다고만 말해준다. 모모의 삶은 결핍으로 가득 찼는데, 저자 로맹 가리는 정말로 '그 세계', 상처받고 결핍되어 자란 아이의 모습을 아이만의 시선으로 잘 표현했다. 결핍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본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말이다. 살아온 환경이 생애를 좌우한다. 모모는 엄마가 얼마나 보고싶었을까.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엄청난 덩치의 로자의 머리카락이 빠지며 정신 또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모모는 그녀의 삶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젊은 시절 로자의 사진 속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가 홀로코스트를 겪고 몸 파는 일을 하면서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모모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생이 그녀를 파괴했다’고 말한다. 모모는 생을 이끌어줄 긍정적 이상향을 찾기보다 생이 짓밟아 변화된 삶을 본다. 로자가 히틀러 사진을 보며 최악의 것으로 현실을 긍정하던 모습처럼, 모모 또한 최악의 것을 상상하며 생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로자를 찾아와 자신의 아이를 찾는다. 로자는 그 남자에게 아들이 '모세'라는 이름의 아이이며, 이름처럼 무슬림이 아닌 유대인으로 키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자는 무슬림이었고 아이 또한 무슬림이길 원했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며 기절까지 한다. 사실은 모세와 모모가 뒤바뀌어 키워진 것으로, 그 남자는 모모의 아빠였는데, 모모는 대화를 들으며 이 남자가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사실까지 알게 된다. 물론 이 남자가 부모인 것이 확실하진 않다. "아랍인이건 유태인이건 여기에서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당신이 정말로 아들을 원한다면 지금 그대로의 아이를 받아들이세요. 아이 엄마를 죽여놓고, 자기가 정신병자라고 자처하더니 이제 아들이 착실한 유태교도로 자랐다고 난리를 하는군요! 모세야, 네 아빠에게 가서 키스하렴. 그래서 네 아빠가 죽는다고 해도 아빠는 아빠니까!" 때때로 인간은 중요한 것을 두고 껍데기를 중요시하며, 마주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다. 다른 곳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대상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로자는 이런 멍청한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었다. 점점 건강이 악화되는 로자를 병원에 데려가기보다 안락사 시키고 싶어 하는 모모의 마음은 당시 안락사를 금지한 프랑스의 사회 문제를 부각한다. 지금은 존엄사나 연명치료 같은 논의가 비교적 활발해졌지만, 당시에는 안락사 논의가 미약하거나 불가능했다. 로자는 입원하면 누워있는 상태로 지내야 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없었다. 그렇기에 로자는 병원에 가길 거부했다. 안락사를 금지하는 현실을 꼬집는 모모의 대사는 안락사 금지가 부르주아 같은 소리임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제도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는 모모에게 매표소 여직원이 소리치자 모모는 고추를 보여준 후 도망간다. 이 장면을 마주치면 미성년과 성년의 구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나름대로 구획한 ‘성년’의 범위에 들어가면 정말로 어떤 기준을 넘어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삶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모모가 사는 세상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유한 부부의 모습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그 집안의 어린아이들과 모모의 세상이 대비되며 단순히 성년이 되었다고 세상을 이해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시대 배경과 법 제도의 제약, 국가의 무책임을 비판하면서 제도 혹은 각종 규율들이 유치할 정도로 현실을 모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모모는 절망적인 삶 속에서 수치심을 느끼거나 수동적이게 될 수 있는 상황을 마주했었지만, 되려 현실을 직시하며 세상에 한 방 먹인다. 모모는 자신이 열 살인지 열네 살인지 모를 정도로 자신에 대해 확실한 것이 없었으며, 주변인들도 '정상적'이라 불릴 수 있는 범주의 삶을 살지 못했다. 저 현실의 바닥에서부터 일어나, 다양한 경계를 걸어 다니며 이리저리 규정지어지고 또 의미 부여될 수 있는 모모와 그 이웃들의 삶의 모습을 본다면 이 소설은 너와 내가 구분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생'이라는 관점에서 한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로자의 몸을 잘못된 방식으로, 우스꽝 스러운 모습으로 운동시키는 사람들을 보며 모모는 웃는다. 우리의 삶이 절망적이다가도 그저 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토록 우스울 수 있다. 죽음에 다다른 로자는 진한 화장을 하고 제일 좋아하는 옷인 기모노를 입는다. 그리고 둘은 힘겹게 비밀 지하 아지트로 내려간다. 로자는 자신이 힘들 때 기도하던 그곳에서 생을 마치고, 모모는 로자의 얼굴에 화장을 칠하고, 향수를 뿌린다. 모모는 삼 주 동안 이런 방식으로 로자의 시체와 함께했다. 로자의 존엄을 위해서, 모모의 사랑이란 그 사람이 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을 그저 살리고 보듬고 하는 이상적 모습을 존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모모는 그것만이 존엄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모모는 생이 로자 아줌마를 뻥 차버렸다고 생각하지만 모모의 삶을 곱씹는다면, 다시 자세를 고쳐잡고 '생아 덤벼라'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은 줄 알고 보낸 근조화환을 받고 이쁜 꽃이라며 로자가 기뻐하던 장면이 있다. 이것은 부정의 의미 전달을 되려 주체적으로 의미를 변환하는 모습인데, 나는 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장면이 전체적인 소설의 느낌을 꿰뚫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하밀 할아버지와 대화하면서 처음엔 사랑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소설의 후반부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다르게 말했듯이, 모모와 로자는 서로를 때론 미워할 수 있어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랑이라 생각하지 못한 순간들도 뭉쳐서 사랑이 되고, 순간순간들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사랑이라 느낀다. 모모의 삶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랑했기에 살아갈 수 있었음을, 사랑이란 지켜야 하는 것들을 지키는 것임을, 그것이 사람이든, 인간의 존엄이든. |
| 로맹가리의 글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책이라 이북으로 소장하고 종종 다시 읽곤 했습니다. 이북은 닳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요. 우연히 본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표지가 독특하고 예뻐보여서 종이책으로 한번 더 구입해봤습니다. 양장이라 오래 소장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삶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흘릴 수 없는 인류 누구에게든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
| 사실 로맹가리를 좋아해서 로맹가리의 소설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읽게 된 책인데 지금은 인생에서 책 한권만 꼽으라면 바로 이 책인 자기앞의 생을 주저없이 고를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다 로맹가리가 가명을 써 제출한 이 소설이 로맹가리를 프랑스문단에 충격을 준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부분도 너무 멋있게 느껴져서 책이 더 좋아진 것도 있는 것 같다. 자기앞의 생이 특별판으로 나와서 두번째 구매해보았다 양장이라 오래보관하기 좋을 것 같다 다시 한번 더 자기앞의 생을 읽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