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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진암 이병헌은 경남 함양 출신의 한말 유학자다. 영남의 유림 곽종석의 문인으로 유학을 공부했으나, 시류의 변화를 보면서 청의 강유의의 변법의 영향을 받아 개화사상으로 전환, 유학의 본고장인 중국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1914년부터 25년까지 5회에 걸쳐 중국을 여행했다. 이 책<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이라는 제목은 명나라와 청나라에 걸쳐 적어도 1,500회 이상 중국을 찾은 사신단은 정해진 경로를 통해, 공무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여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여행이란 키워드를 강조하기 위해 첫 중국 여행기라 이름 붙인 듯….
이 책을 포함한 이병헌의 일부 저작은 중국과 국내에서 간행됐지만, 대부분은 유고본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원전이 한문이라서 역사학, 지질학 등을 배경으로 한학에 밝은 김태희, 박천홍, 조운찬 등의 연구자들이 번역을 했다.
아무튼, 이병헌은 10년에 걸쳐 다섯 번의 중국 방문을 통해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그의 중국 여행기<중화유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병헌은 중국 여행 기간 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이른바 여행기다.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이자 개혁 유학자로서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요동과 심양, 이른바 만주족의 성지요 청나라의 발상지를 둘러보면서 존왕양이를 내세워 명을 숭상하고 청을 배척했던 조선의 소중화, 소아병적이고 자가당착적인 태도 이른바 중화사상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편으로 임진왜란 때 도움을 준 명나라의 은의 못지않게 병자호란 때 청이 베푼 관용 덕분에 조선이 보존될 수 있었다, 조선은 한족, 만주족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한족의 기자 조선설을 인용, 묘하게 동북공정과 닮은 구석이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 유학자들의 생각은 정녕 이러했던가 싶다. 그것도 개혁의 사상을 품은. 위정척사에 터 잡은 충절인가,
이런 관점을 또 달리 볼 수도 있겠다. 공자를 내세워 동아시아 국가를 통합시키고자 하는 공교의 가르침에 터 잡은 듯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병헌은 강유위의 지도를 받고, 유교의 종교개혁운동을 전개, 공교사상을 체계화하기도 했다.
근대 유학자 이병헌에 눈에 비친 중국, 글 속에 드러나는 많은 쟁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유학 공부나 역사 인식, 개혁 사상 등을 들여다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행기를 통해 그의 가치관을 조금 엿볼 수 있을 정도이니,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특히 서양과 동양의 종교와 철학, 공자는 종교인가, 철학자인가, 아니면 사상가인가, 이병헌은 종교와 철학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그는 서양은 종교와 철학, 둘로 나뉘지만, 동양은 합일, 즉 하나라이며, 그 차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진지와 미신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서양의 종교는 진지를 추구하는 철학과 미신을 신봉하는 종교가 구별될 수밖에 없지만, 동양의 종교인 유교는 미신을 벗어난 것이라서 철학과 종교가 하나다. 공자가 여러 철학을 통합한 종교인이기 때문에 공교야말로 전 세계적인 대동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튼, 구한말, 일제 강점기라는 환경 속에서 유학자들의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해갔는가, 그들에게 한계는 무엇이었나 하는 점 등을 찾아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작업일 것이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태그#중화유기#근대한국인의첫중국여행기#이병헌#김태희외4인옮김#빈빈책방#개혁유학자#유교의종교개혁운동#공교사상#책콩카페#책콩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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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비행기를 타면 지구 반대편이라도 하루 안에 갈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는데 문화나 자연 환경이 서로 달라 여행을 하면 그동안 늘 보던 시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되네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생활하나봐요. 해외 여행이 자유로운 요즘과는 달리 조선은 기본적으로 나라의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기 때문에 사신으로 중국이나 일본에 가는 경우 외에는 거의 다른 나라에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조선과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상황이 바뀌면서 해외로 유학을 나가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은 조선을 떠나 중국 북부에서 남부까지 여행한 유학자가 쓴 책입니다. 말로만 듣던 중국을 직접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텐데 그의 여행기는 어떨지 궁금하였네요.
저자는 경상도 함양 출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쪽에 있기 때문에 중국의 국경까지 가는 것만 해도 쉽지 않네요. 서울을 지나 압록강을 건너 드디어 중국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후 요동 지방을 지나 중국 북부를 돌아 베이징까지 내려갑니다. 중국어와 조선말은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 다행히 중국어는 한자를 쓰고 저자도 유학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한자를 잘 알아 서로 글씨를 써서 필담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당시 베이징은 청나라의 수도로 수백년 동안 제국의 중심지였던 만큼 무척 발전하였는데 베이징 거리를 거닐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공자입니다. 공자는 약 2,500여년 전에 살았었는데 그의 사상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베트남 등 이웃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학자라면 누구나 공자가 살았던 곳에서 공자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을 것입니다. 저자는 산둥성 곡부에 있는 공자의 사당에 갔는데 멀리서 힘들게 왔기 때문인지 시로 그때의 감동을 표현하였습니다. 시를 잘 모르지만 보면서 저자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었네요.
조선에서 온 사신들은 베이징 외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지만 저자는 상하이와 홍콩 등 중국 남부 끝까지 여행합니다. 중국은 무척 넓은 만큼 지역마다 자연 환경이나 문화,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마치 다른 나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저자는 단순히 유유자적 유람만 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새로운 사상을 배우고 강유위의 영향을 받아 개화 사상을 받아들입니다. 양반이고 유학자인 만큼 이러한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중국에서의 경험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책에는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이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자세히 읽어볼 수 있어서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은것 같아요. 수천년의 역사를 품은 중국인만큼 역사적인 도시도 많은데 이 책을 읽어보니 하나하나 여행해보고 싶어집니다. 유학자의 중국 여행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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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유기>란 책이 있는 것도, 이병헌이란 분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한국인으로 중국을 여러 차례 여행했으며, 그 여행기를 기록한 책이 <중화유기>이며, 그 책을 현대어로 번역한 결과물이 이 책 『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라는 소개를 읽으며 책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책은 먼저 이병헌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를 살 소개해줍니다. 구한말의 개혁유학자인 이병헌, 그는 일제강점기를 보내며, “집에 있으면 근심만 깊어지니 어떻게 하면 마음을 가눌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이렇게 중국으로 유람을 떠나게 됩니다. 그 첫 여행이 1914년으로 그 여행의 시작은 먼저 함양에서 이리역을 거쳐 경성으로, 한반도의 여행부터 시작됩니다. 마치 함양이란 울타리를 깨뜨리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부터 가슴 설레게 합니다. 이미 달라진 세상 속에서 중국으로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은 그 뒤로도 4차례 더 행해집니다. 도합 5차례나 많게는 6개월, 적게는 2개월의 여행을 한 그 여행기가 바로 이 책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여행은 1차, 2차 여행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답답한 정국, 근심만 깊어지는 시대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몸부림 친 유학자의 고민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일제 강점기 근대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국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 흥미로웠답니다. 이병헌이란 이분은 참 꼼꼼하게 기록하여 그 기록을 통해 마치 그 시대의 중국 산과 들을 거니는 것과 같은 느낌, 중국의 다양한 건축물들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풍습, 지리, 동물들까지 참 다양한 내용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망라하고 있답니다.
또한 유학에서 길을 찾는 유학자답게 공자의 고향 곡부 여행은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해줬답니다. 마치 공자에 대한 답사여행을 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 분이 오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지구 곳곳을 다니며 그곳 풍경, 문화, 그리고 다양한 꺼리들을 블로그에 올려 수많은 팔로워들을 기쁘게 해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단순한 흥미 위주의 여행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여행 블로그로 각광받았을 것 같아요. 『중화유기』를 통해 100여 년 전의 여행 그 발자취를 함께 더듬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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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괜찮은 기행문입니다. 1914년의 여행기라니. 이렇게 소중한 자료가 번역이 되었습니다. 진암 이병헌 선생은 1870년 태어나서 1914년에 중국을 가보기로 결심합니다. 그것도 한번 가는 것이 아니라 네 차례나 방문합니다. 해설에도 이 정도면 그랜드투어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한국주역대전에 가끔 이병헌 선생의 효사설명이 나오길래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연예인의 이름과 같아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리도 최근(?)의 분인줄은 몰랐습니다. ? 선생 이전의 중국여행기라면 유명한 열하일기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말과 도보로 하는 여행이었고, 중화유기에서는 기차도 이용합니다. 중간중간 오늘 60리를 지나왔다, 지나온 길이 대략 700여리이다 하는 것이 문명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지금은 비행기도 이용하겠지요) ? 하루의 일을 적어나간 일기같으면서도 여행의 볼거리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어디 가든 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요. 꼭 누군가를 만납니다. 시장판의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기도합니다. 결국 마지막에 강유위 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데 그다지 그것만을 위해 중국에 간 것은 아닌 것같습니다. 게다가 공자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적에는 뭔가 전생의 깊은 인연이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 북쪽으로 수십 리를 나아가서 기차가 멈추니 봉황성이었다. 골짜기와 산이 들러 있고, 시가지가 가지런하니 하나의 큰 도시를 이루었다. 어떤 사람은 이곳이 안시성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왕검성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평양이었다고 한다. (34p) 심양은 본래 조선 땅이었는데, 한나라가 4군을 설치해 낙랑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43p) 이런 내용은 재미있습니다. 일제 초기에는 중국 동쪽의 땅을 우리 옛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조선의 풍수설이 비록 중국에서 왔다고 하지만, 한번 연, 조, 제, 노의 땅을 지나다 보면 광막하고 산이 없어 밭 가운데 있는 무덤이 잇달아 나타나니 풍수에서 말하는 용혈이나 향배와 같은 설명을 기다릴 것이 없다. 오직 공씨 집안의 세장지는 곧 깨끗하고 청결하게 하나의 임야에 모여 있으니, 밭 가운데 있는 무던들이 잇따른 것과는 같지 않다. 그래서 살아서는 쉽게 묘를 살필 수 있고, 죽어서는 돌아갈 곳을 알 수 있으니, 음양풍수의 설에 미혹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선에서는 죽은 자를 위해 묘지를 고르는 것이 번거롭고 살펴보는 땅이 넓어 온갖 수단을 다 쓴다. ... 사물은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되돌아오기 마련이니, 공동묘제가 머지않아 실시될 것이다. 89-90p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이제는 공동묘에서 화장, 수목장으로 바뀌고 있지요. ? 우리나라 인삼의 재배사정과 수출되는 것을 걱정하는 부분이나, 강유위 선생을 만날 때 청심환 열 개를 선물로 드리는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의학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독자적인 연구로 다시 수출이 되고 알려지는 아름다운 순환의 그림이 보입니다. ? 그런데 1914년 한해의 여행 기록이 이 책의 1, 2권입니다. 그후 네 차례나 방문했을 때도 기록을 남겼을텐데,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병헌 전집으로 문집과 기록들을 영인한 것같은데, 다른 책들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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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괜찮은 기행문입니다. 1914년의 여행기라니. 이렇게 소중한 자료가 번역이 되었습니다. 진암 이병헌 선생은 1870년 태어나서 1914년에 중국을 가보기로 결심합니다. 그것도 한번 가는 것이 아니라 네 차례나 방문합니다. 해설에도 이 정도면 그랜드투어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한국주역대전에 가끔 이병헌 선생의 효사설명이 나오길래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연예인의 이름과 같아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리도 최근(?)의 분인줄은 몰랐습니다. ? 선생 이전의 중국여행기라면 유명한 열하일기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말과 도보로 하는 여행이었고, 중화유기에서는 기차도 이용합니다. 중간중간 오늘 60리를 지나왔다, 지나온 길이 대략 700여리이다 하는 것이 문명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지금은 비행기도 이용하겠지요) ? 하루의 일을 적어나간 일기같으면서도 여행의 볼거리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어디 가든 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요. 꼭 누군가를 만납니다. 시장판의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기도합니다. 결국 마지막에 강유위 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데 그다지 그것만을 위해 중국에 간 것은 아닌 것같습니다. 게다가 공자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적에는 뭔가 전생의 깊은 인연이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 북쪽으로 수십 리를 나아가서 기차가 멈추니 봉황성이었다. 골짜기와 산이 들러 있고, 시가지가 가지런하니 하나의 큰 도시를 이루었다. 어떤 사람은 이곳이 안시성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왕검성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평양이었다고 한다. (34p) 심양은 본래 조선 땅이었는데, 한나라가 4군을 설치해 낙랑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43p) 이런 내용은 재미있습니다. 일제 초기에는 중국 동쪽의 땅을 우리 옛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조선의 풍수설이 비록 중국에서 왔다고 하지만, 한번 연, 조, 제, 노의 땅을 지나다 보면 광막하고 산이 없어 밭 가운데 있는 무덤이 잇달아 나타나니 풍수에서 말하는 용혈이나 향배와 같은 설명을 기다릴 것이 없다. 오직 공씨 집안의 세장지는 곧 깨끗하고 청결하게 하나의 임야에 모여 있으니, 밭 가운데 있는 무던들이 잇따른 것과는 같지 않다. 그래서 살아서는 쉽게 묘를 살필 수 있고, 죽어서는 돌아갈 곳을 알 수 있으니, 음양풍수의 설에 미혹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선에서는 죽은 자를 위해 묘지를 고르는 것이 번거롭고 살펴보는 땅이 넓어 온갖 수단을 다 쓴다. ... 사물은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되돌아오기 마련이니, 공동묘제가 머지않아 실시될 것이다. 89-90p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이제는 공동묘에서 화장, 수목장으로 바뀌고 있지요. ? 우리나라 인삼의 재배사정과 수출되는 것을 걱정하는 부분이나, 강유위 선생을 만날 때 청심환 열 개를 선물로 드리는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의학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독자적인 연구로 다시 수출이 되고 알려지는 아름다운 순환의 그림이 보입니다. ? 그런데 1914년 한해의 여행 기록이 이 책의 1, 2권입니다. 그후 네 차례나 방문했을 때도 기록을 남겼을텐데,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병헌 전집으로 문집과 기록들을 영인한 것같은데, 다른 책들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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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세기 초반 나라 잃은 성리학 유학자가 중국의 공자사당으로 가는 길에서 느낀것, 본 것들을 기술한 오늘날의 여행에세이이다. 20세기 초반 유학자는 이런 지식과 문화, 생활상 , 사회적,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 있었구나. 상상하면서 읽으니 왠지 그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한 것같은 느껨도든다. 이 책 표지의 지도 처럼 여행자는 영국 지배하에 있는 홍콩까지 도달한다. 유교 문화에 있던 한 사람이 서양이 실용적 과학, 산업혁명의 광풍에 어떤 생각을 가진 것인지 이 책을 통해 확인 할수 있다. 이 시대에 기차를 타고 만리장성을 통과 한다던가... 글로 소문으로 익히알고 았던 만리장성을 직접 눈으로 보다니 어떤 감정이었을까? 여러 4천년 잔단군 , 발해, 고구려등 요동지역의 역사를 알수 있어 좋았다. 4천년 전부터 북해, 요서, 요동지역은 한민족의 땅이었으며 지금은 역사들이 앚혀진지 오래다. 새롭다. 몇년전만 해도 서울역에서 파리까지 기차를 타고 갈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20세기의 유학자는 지금의 우리보다 더 자유롭다. 생각이 거칩이 업고 정신의 강건함도 글에서 전해져 온다. 1914년 이병헌의 중국행은 식민지 조국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점에 서는 망명, 유학, 독립운동을 위해 떠났던 동시대 지식인들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는 '여행'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 다. 이병헌은 중화유기 서문에서 "집에 있으면 근심만 깊어지니 어떻게 하면 마음을 가눌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식민지 조국에서의 답답함을 떨쳐내기 위해서 떠난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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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56 : 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현 저, 202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이 대사는 그 유명한 영화 "영웅본색"의 한 대사이다. 이 단호한 선언과도 같은 문구는 다음의 극중 흐름에서 나온다. 등장인물이 몸담던 범죄조직에서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상황이 조성되고, 기존의 권력구조가 또다른 권력에 의해 해체되는 가운데 극중 인물들은 다음의 세 가지 유형을 보인다.
이와 같은 서사 구조는 역사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침탈로 인해 결국 한일합방에 이르렀을 때,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한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저자린 진암 이병현 선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이병형 선생은 호는 진암이고, 경남 함양 출신의 유생이다. 당시 영남유림의 곽종석에게 사사받는 재야 유림으로써, 그 입지를 굳힐 뻔하나 당대 청나라의 강유위(캉 유웨이)의 개화사상을 접하고 개화사상가로 전향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외견적 목적인 중국 방문 또한 그 강유위의 사상을 보다 더 근거리에서 접하고, 궁극적으로 "공교"(유교의 종교 개혁 운동에 해당) 사상을 조선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야망을 실현시키고자 함이었다. 비록 후에 그 뜻이 보수 유림들의 반대에 부딪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으나, 망해버린 한 나라의 지식인으로써 유학을 근본 사상으로 하여 난세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 활동은 평생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옴이 다수의 저서를 통해 남겨져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사상적 근본에 해당하는 "공교"와 그 이론적 종주국인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자신의 이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함으로 보인다. 3. 인상적인 부분... 앞서 밝혔듯이 필자는 "유교의 종교화" 즉 "공교"를 꿈꾸는 원대한 이상향을 근간으로, 중국 본토, 공가의 고장에서 공자나 기타 유교의 성인들에 대한 제례와 의식들에 대해 매우 세밀한 서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종교적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 세부적인 절차와 의미 부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 유관 학문 분야에서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또한, 조선이 일본에 의해 합병이 되어버리고, 중국마져 서양 각국의 침탈에 신음하던 그 때에, 혼란함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조선에서 만연하고 있던 배청사상의 비판과 당대의 만연한 구악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조선 풍수설"로 인한 묘지 남용으로 말미암은 토지 사용의 왜곡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다던지,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한민족의 북방에 대한 힙일설에 공감하는 대목이 그런 예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합병된 조선이 슬픈 현실에 대해 나름의 한계를 인지하고, 근대 서구 문물과 문화에 대한 관심 (단, 적극적인 도입은 아닌것으로 보인다.)에 대한 지적도 의미가 있다. 만주지방의 경제적 침탈과 붕괴는 "금본위제"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근대적 화폐론을 거론하는 대목도 엿보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는다던지, 또는 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짐작케하는 내용을 거론하는 장면은 이례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아마도 청나라로부터 전래된 서구 과학 문물에 대한 정보를 접해봤다는 확실한 증거로 보인다. 4. 아쉬운 부분... 서문의 소개글에서는 언급되지만 본 저서에는 많이 서술되지 않는 사실은, 이병현 선생이 서구의 "근대국가론"과 칸트, 루소 등 "계몽철학"도 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책에서 명백히 서술되는 "유교우위론"과 "공교"에 대한 언급에서 불가피한 구시대적 유학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근대 서구 철학의 근본 명제와 이제껏 자신이 받아들이던 유학의 그것들이 상충하는 부분에서 기인한 것으로 사료되며, 결국 본인의 선택은 후자의 우위론을 설파하는데 주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서구에서 종교과 철학이 분리되고, 정치에 있어 국가의 기본이념이 "종교"가 아닌 "시민의식"에 입각한 "법"에 근거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이는 곧 루소나 칸트의 계몽철학의 근간은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그동안 믿어왔던 철학이자 이념으로서의 유교 사상에 입각한 지식 체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종교와 철학이 합일될 것이라는 학문적 예측 오류도 범한다.) 또한 지주가 둥글다는 것까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지동설과 공전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도 자기 고백적으로 나온다. 이는 서구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합리적 명제들이 어떻게 철학과 분리되었고, 객관화(또는 실체화)되어 감에 따라 하나의 학문 체계로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즉, 서구 근대 문물의 우월성과 특이함에 관심은 보이되, 그 근간을 보지 못했다는 면에서 유학을 맹신하는 구시대적 지식인의 면모를 드러내며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필생의 꿈인 "공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머지, 대부분의 근대적 국가에서 당연시되던 "재정분리"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한 점도 눈에 띈다. 세속의 종교가 한 국가의 사회적 배경이 되는 것과 그 종교가 특정 국가의 시스템에 완전히 구조화되는 것은 다른 문제로 봐야한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서구권에서는 근대 국가 이전의 국가론에서나 볼 법한 주장에 지나지 않고, 이미 때는 계몽사회를 넘어 "발전국가"의 모토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임에도, 본인이 인지하는 그 시대적 감각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 당대 이 정도 유림의 지식인들의 표본이라고 이 저자를 설정한다면 그 시대적 수준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와 대비되어 "메이지 유신" 이후로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의 그것돠는 크게 보아 백년, 작게 보아도 최소 수십년 이상의 차이를 보이니, 그 시대의 흐름을 조선이 따라잡지 못한 것은 현재 우리들에게 뼈아픈 대목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5. 나오며... 이 여행기를 다 읽고 나서 나에게는 이 책의 제목은 "공교로의 애가" (내지는 회귀)라는 제목이 적절하지 않은가라는 인상을 주었다. 앞서 이야기한 세 부류의 유형 중, 이병현 선생은 자신의 세계로 침착해 들어가 끝내 퇴보하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퇴보는 자신이 원한 바도 아니었고,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유교 근본주의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타파하지 못하였기 때문아닐까. 또한 본인은 여행 중 넉넉치 못함을 가끔 호소하나, 그 당시 생계와 관련없이 이역만리를 몇 차례에 걸쳐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 대중에 비해 삶의 여유가 최소한 보장된 부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만일 이 짐작을 긍정한다면, "저항하지 않고" 이와 같은 애가에 가까운 기록만 남겼다는 소극적 회피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유학의 마지막 현세에 대해 세밀한 기록의 기여 부분은 인정할만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1차 사료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인다. 오늘날 시대는 완전히 근본적으로 변하였고, 세상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넘나드는 이 시기에 과거의 우리 모습을 소규모로나마 남겼다는 의의로 이 작품을 이해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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