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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Art Book 시리즈> 중 한 권으로 고대 삼국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적인 금동불, 철불, 목불, 소조불, 건칠불 등의 불상을 사진과 함께 설명한 책이다. 이 시리즈가 그렇듯 이 책 [금동불]도 문화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하는 일반대중들을 위해 비교적 쉽게 씌여져서 절집을 방문할 때 들고 가면 안성맞춤인 책이다.
좀 어렵고 생소하지만 시대에 따른 양식의 변화와 불상의 구조, 명칭 등에 대해 기본적인 해설이 있어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막연히 멋있다, 좋다라는 느낌을 넘어 문화재 자체를 더 즐기며 감상하게 하는 심미안을 기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상인 국보 83호와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지면에서 자세히 만날 수 있어 책 보는 즐거움이 한층 더했다.
6세기의 불상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북위 및 동·서위 양식의 영향이 짙지만, 중국 불상에 비해 단순화되며 연꽃의 영감이나 불꽃무늬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등 한국적인 조형미도 함께 반영되어 있다.
(중략)
이 시기의 조형 감각은 한마디로 엄격한 균제와 세부의 예리한 맛을 통하여 내면에서 발산하는 '기세'를 구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삼국의 초기 불상 양식은 7세기에 접어들면서 정신성을 강조하던 지금까지의 엄격한 정면 관조성(觀照性)에서 벗어나 늘씬한 신체와 율동적인 자새를 통한 외형적인 형태미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8쪽 중에서)
보관에 새겨진 화불을 그 표시로 삼는 관음보살의 도상은 중국에서는 수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립된다. (66쪽 중에서)
우리의 반가사유상은 가장 한국적인 보살상이다.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6세기부터 통일신라 초기까지 약 100년 동안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는데, 형식이 독특하고 독립된 예배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중국의 반가사유상과는 성격이 다르다. (중략)
반가사유상이 과연 어떤 보살을 표현한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미륵 신앙과 관련이 싶기 때문에 흔히 미륵보살로 불린다.
조각은 입체적인 덩어리의 예술이다. 반가사유상은 반가좌라는 특이한 자세 때문에 얼굴과 팔, 허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또 치마의 처리도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이런 점에서 반가사유상의 등장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조각사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51쪽 중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는 항마촉지인의 약사여래상은 좌상에 국한되는 반면 설법인의 약사여래상은 입상으로는 물론 좌상으로도 널리 조성되었으며 또 시대 범위도 훨씬 넓다. (162쪽 중에서)
오른손은 높이 들어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약단지를 받들었는데 이처럼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8세기 불상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중략) 신체 뒷면에 댓잎 모양의 길다란 주조 구멍이 하나만 있는 것은 8세기 후반부터 나타나는 특징이다. (164쪽 중에서)
원래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 자체를 상징하므로 조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밀교에서 그 표현 형식이 확립되어 보살 모습의 비로자나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에서는 밀교와 상관없이 화엄경의 주불로서 여래 모습에 智拳印의 수인을 맺은 독창적인 비로자나불을 창안하게 된다. (174쪽 중에서)
지장보살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모든 중생을 남김 없이 교화시키는 자비의 보살로, 정토 신앙이 크게 유행했던 고려후기에 관음보살과 함께 가장 널리 신앙되었던 보살상이다. 地藏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땅의 신, 곧 地神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이상화된 보살상이다. 지장보상은 다른 보상과 달리 머리에 보관을 쓰지 않고 민머리의 스님 모습으로 표현괴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 머리에 두건을 쓴 독특한 모습의 지장보살상이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두건 지장보살상은 중국과 일본에는 없고 오직 서역 일대와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형식이다. (222쪽 중에서)
고려시대 철불은 중앙집권 체제가 완성되고 정치·문물제도가 완비되는 고려 중기에 이르러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대신 대형의 금동불이 다시 무대에 등장하고 목불이나 건칠불이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한다. 이같은 현상은 당시 귀족적인 문화 분위기 속에서 제작 공정이 까다로운 철불보다 좀더 고급스럽고 정교한 조각이 가능한 소재가 불상의 재료로 선호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298쪽 중에서)
부처를 如來라고도 한다. 여래상의 모델은 석가모니이고 보살상의 모델은 출가 전의 싯달타 태자이므로, 여래상은 출가하여 고행할 때의 검소한 복장으로, 보살상은 호사스러운 왕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41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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