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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생애사 쓰기, 집의 집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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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제작 <마이너 필링스>는 마티 출판사의 ’앳(at)’ 시리즈의 첫 권이다. ‘앳(at)’ 시리즈, ‘온(on)’ 시리즈에 이어 ‘케이 모던(k-modern)’이 새롭게 출범했다. 마티 출판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시리즈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한국이 만든 ‘현대성’을 묻다   마티가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와 함께 ‘케이 모던’ 시리즈를 시작한다. ‘케이 모던’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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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마이너 필링스>는 마티 출판사의 ’앳(at)’ 시리즈의 첫 권이다. ‘앳(at)’ 시리즈, ‘온(on)’ 시리즈에 이어 ‘케이 모던(k-modern)’이 새롭게 출범했다. 마티 출판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시리즈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한국이 만든 ‘현대성’을 묻다

 

마티가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와 함께 ‘케이 모던’ 시리즈를 시작한다. ‘케이 모던’ 시리즈는 한국이 만든 현대성(modernity)에 주목한다. 현대는 주어진 조건으로, 또는 서구나 일본이 한국에 미친 영향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왔으나 이런 시선으로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사태가 많다. 예를 들어 고층아파트의 기원은 분명 서구에 있지만, 한국의 아파트는 1960년대 이후 한국만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누적되어 빚어진 대단히 독특한 사태이다. 이제 우리가 서구와 일본에서 무엇을 참조했는지 묻는 데에서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것들이 어떤 한국인을 만들었는지 묻고자 한다.

‘케이 모던’ 첫 번째 책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는 시리즈 번호 2번이다. 1번은 박철수 선생의 『마포주공아파트: 단지 신화의 시작』을 위해 남겨두었다.

 

한마디로 건축을 통해 한국이 만든 현대성을 탐구하는 시리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고된 출간 목록을 보면 아파트를 중심으로 특수한 건축적 현대성을 구현한 한국사회를 논의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 ‘아파트 한국사회’의 현대성 탐구랄까. 아파트 책은 꽤 많이 축적되어 있는 편이다.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 시각디자인 연구자이자 아파트 담론을 정력적으로 이끌었던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3부작‘(<콘크리트 유토피아>,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아파트 게임>), 전상인의 <아파트에 미치다>, 건축학자 박인석의 <아파트 한국사회: 단지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얼마 전에 작고하신 고 박철수 교수님의 <아파트>와 <한국 주택 유전자>, 브랜드 아파트의 현장 연구를 진행한 문화인류학, 도시인류학 저술인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등 한국의 아파트는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해왔다.

 

그동안 발전국가 시기 근대화의 부정적인 산물로서,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투기의 대상(’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된)이 된 부동산 상품으로서, 획일화되고 집단주의적 심성을 주조하는 건축 양식으로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논의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케이 모던‘ 시리즈는 그동안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건축이 만든 한국의 현대성‘을 새롭게, 두텁게 이야기해보려는 도전이 아닐까 싶었다. ’디지털 네이티브‘처럼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네이티브’, ’아파트 키드‘가 특수가 아닌 보편적 주체가 된 시대 상황에서 오늘날 도시와 건축, 주거와 라이프스타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국의 건축적 현대성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 ’케이 모던‘ 시리즈는 1번 단지 신화의 시작을 알린 마포주공아파트이 아닌 2번 박철수 선생의 제자이자 ’아파트 키드‘로서 젊은 세대의 새로운 아파트 연구를 보여주는 이인규의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로 첫 선을 보였다.

 

2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로 이인규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어느 글에서 이 아카이빙 프로젝트의 존재를 접해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 소식을 모르고 있던 터라 그의 작업이 어린 시절 추억을 보관하기 위한 실천이겠거니 짐작했을 뿐이었다.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는 ’아파트의 생애사‘를 기록하는 독특한 형식의 글쓰기를 표방하고 있었다. ’건설, 거주, 재건축의 40년‘은 둔촌주공아파트가 살아낸 생로병사의 시간인 셈이다. 식민지 근대와 발전국가 시기 압축적 근대화를 겪으며 한국사회는 시간의 더깨가 쌓인 역사성의 흔적을 파괴적으로 지우고, 그 위에 근대국가를 전투적으로 건설해 왔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식민지의 시간을 살았던 한국사회에 역사적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수해줄 만한 ’기억의 장소‘, ’기억의 공간‘은 그리 많이 보존돼 있지 않다. 자본이 빠르게 움직이고, 재개발과 건설이 활발히 이뤄지는 서울에서 40년씩 오랜 수명을 살다 간 건축물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오랜만에 어느 동네를 방문했을 때 단골집이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헛헛함과 상실감을 느낀 적이 한 번씩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둔촌주공아파트는 호상을 치렀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마 그렇게 얘기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의 내력이 그리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생애를 통해 단순히 ‘어떻게 하면 재건축사업에서 둔촌주공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질문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거대한 문제가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가 일어난 과정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랐다.

서문

 

이인규는 대단지의 생애사를 기록함으로써 앞으로 반복될 재개발 잔혹사의 오답 노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역사 쓰기를 통해 현실에 개입하기.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기억/상상력의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다가올 미래를 현재에 기입하기. 이곳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냈는지, 이곳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탄생부터 죽음까지 한 편의 전기(autobiography)를 작성한다. 단독 주택이라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건물을 지은 건설사, 건물에서 산 주민 정도의 이야기를 담으면 될 텐데 둔촌주공아파트는 훨씬 복잡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놓여 있다. 그래서 저자는 “둔촌주공아파트의 생애를 살펴본다는 것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 건물과 그 주변에 조성된 단지 환경을 넘어, 아파트 단지의 생애에 관여하는 여러 주체에 관한 관심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일이었다. 둔촌주공을 기획한 정책 결정자들, 설계하고 시공한 건축업 종사자들, 그리고 당시 아파트에 들어와 살았던 입주민들, 그리고 재건축 과정에 관여한 조합, 시공사 등까지. 그들의 생각과 활동, 상호작용과 그 결과로 나타난 변화를 두루 살펴보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둔촌주공아파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려면 발전국가 시기의 개발연대와 정림건축의 두 행위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에 정권에 친화적인 중산층을 육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주공아파트 건설은 이면에 “늘어나는 중산층의 내 집 마련 수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체제 순응적이고 정권 친화적인 집단을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총과 칼의 무력을 통한 폭압적인 철권 통치의 한계가 명확했기에 시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체제순응적인 시민 집단을 형성하고자 아파트를 대대적으로 건설하여 공급한다. 강남 개발로 서울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사회 안정을 시행한다는 명목 아래 정상 시민과 비시민을 구분하고, 부랑아나 노숙자 등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힌 소외된 자들을 배제하고 몰아내는 데 앞장 섰다. 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 군인, 공무원, 서울대 교수 등 정권에 친화적인 기득권 세력이 특혜를 받았고(‘반공 국민’ 만들기의 일환), 입주권을 따내기 위해 현금을 많이 지불해야 했기에 고임금 전문직이나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계층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건축신문’을 발행하는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정림건축이 본문에 등장해서 놀라웠고 반가웠다. 저자는 김중업, 김수근 등 스타 건축가에 집중돼 있는 기존 건축계의 한계를 지적하며 건축사의 빈 자리에 건축 집단의 퍼즐을 끼워맞추고자 한다. 분량이 좀 길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이라 그대로 인용해보려고 한다.

 

 

김정철의 바람대로 둔촌주공은 ‘후세에 의해 평가’된다. 건축학자나 평론가 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고 자랐던 이들에 의해 아파트에 대한 다른 평가와 이해가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둔촌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동네에 대한 애정을 공유했다. 사람들은 둔촌주공아파트가 낮은 밀도로 지어져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누릴 수 있었고, 섬세하게 설계된 단지의 여러 요소 덕분에 장소에 대한 좋은 감각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계절마다, 구역마다 다른 모습이었던 수목들과 넓은 녹지, 놀이터와 휴게공간을 유연하게 연결하던 보행자 전용로 등 주민들이 사랑했던 공간들은 설계자들이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설계하고 실현한 것들이었다.

 

거주민들은 안락하고 살기 좋은 거주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이름 모를 설계자의 이상과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살기 좋은 집을 만들려는 마음이 정말로 살기 좋은 집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좋음을 사람들은 알아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더 좋은 거주 환경을 고민하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69-70)

 

 

책 말미에 “둔촌은 강동이 아닙니다!” 파트는 재개발과 부동산, 자본과 정치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녹아 있는 부분이었다. 대한주택공사의 과거 사훈대로, 김정철과 정림건축의 철학대로 살기 좋은 주택을 짓는 건축의 공공성 정신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아니 부동산을 중심으로 이익 집단이 헤쳐 모이고, 동일한 욕망을 공유하는 조직화된 집단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학 속에서 공공적인 도시 정책이 어떻게 시행될 수 있을까. 이런 커다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정작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이미지는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을 키워낸 집-동네를 향한 애정으로 기록활동가에서 건축연구자가 된 저자의 궤적이었다. 집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국가로, 그리고 사적인 추억에서 공공적 기억으로, 사실에서 역사로 이동하며 집에 집을 지어 주었다. 성냥갑 같이 네모 낳고 단단한 책의 집을, 존재가 거주하는 언어의 집을. 여기서 누군가의 유년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누군가는 아파트 공화국/한국사회의 역사적 단면을, 누군가는 재개발의 잔혹한 역사를 재현하지 않기 위한 지적 재료를 얻어갈 것이다. 한 생애는 이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y********7 2023.1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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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이은규 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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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의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를 읽었다. 이인규의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이하 '안녕')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재건축으로 철거된 아파트에 대한 기록/아카이브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긴 했다. 꼭 둔촌주공아파트 거주민이 아니더라도 성장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에 대한 '장소 애착'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안녕'을 보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이은규 저)를 읽고" 내용보기

이은규의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를 읽었다. 이인규의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이하 '안녕')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재건축으로 철거된 아파트에 대한 기록/아카이브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긴 했다. 꼭 둔촌주공아파트 거주민이 아니더라도 성장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에 대한 '장소 애착'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안녕'을 보며 장소적 기억, 어린 시절 이름 모를 동네 친구들과 뛰어 놀았던 놀이터, 경찰과 도둑 같은 게임을 하며 뛰어 다녔던 골목길 등 추억이 서린 장면들을 오랜만에 회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에 디지몬 어드벤처를 정주행했다. 7번째? 8번째 정도 되는 것 같고, 아마 마지막 정주행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시작은 중2 즈음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다음 블로그에 업로드된 디지몬 영상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1화를 클릭했고, 정신 차려 보니 54화까지 내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음악의 힘이 셌던 것 같다. 디지몬 어드벤처 오프닝 곡, 라벨의 볼레로, Power up, 엔딩 곡인 안녕 디지몬 등 음악이 흘러 나올 때면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고3 때까지 1년에 한 번씩 의례를 치르듯 디지몬을 정주행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 깊어질수록 안온하고 평화로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재확인하는 데서 오는 위로가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디지몬 어드벤처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도 적지 않았다. 용기, 우정, 사랑, 순수, 지식, 성실, 희망, 빛까지 각 '선택받은 아이들'이 지닌 마음의 정수를 상징화한 문장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문장이 빛나기 시작하면 문장의 힘으로 성숙기 디지몬은 완전체 디지몬으로 초진화를 한다)을 보며 내가 잃어버린 동심, 순수한 마음, 잊고 있었던 마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번에 디지몬을 보며 더 이상 마음 속에서 일련의 화학 작용이 일어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졸업이랄까. 이제 가상의 디지몬 세계에서 '선택받은 아이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안녕 디지몬. 친구들 모두 안녕.

이은규의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한 저자가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탐구를 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해 집필한 석사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기성 연구자들은 대체로 아파트를 획일화된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을 강제하는 주거 양식, 사는 곳living place이 아닌 사는 것[상품]이 된 부동산 투기의 도구 등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이은규는 '아파트 키드'로서 한국 사회에서 왜 아파트가 주거 양식의 지배종이 되었는지, 상품이 되었는지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꼼꼼히 밝히면서도 '사는 곳'으로서 아파트가 어떤 장소였는지를 설명한다. 1부 둔촌주공아파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부 둔촌주공아파트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 3부 둔촌주공아파트는 어떻게 사라져갔을까? 이렇게 대단지의 생애라는 제목에 걸맞게 아파트의 생로(병?)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건축물의 죽음 충동에 의해 이윤을 창출하는 '재개발'이다. 신문에서 문화/예술 부문만 챙겨 보고, 사회 면 정도만 드문드문 읽는 나로선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 사업이 얼마만큼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인지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이은규는 서문에서 이 책이 겨냥하는 표적이 이런 재개발 욕망이 야기하는 사회적 손실, (재)개발 연대의 힘 있는 자들만이 이윤을 획책하고 다른 이들에게 아픔을 안기는 재개발의 오답 노트를 둔촌주공아파트의 사례를 통해 작성한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둔촌주공아파트의 생애를 통해 단순히 ‘어떻게 하면 재건축사업에서 둔촌주공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질문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거대한 문제가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가 일어난 과정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랐다.('들어가며' 중)

둔촌주공아파트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단지로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건설된 곳인 것이다. 둔촌주공아파트의 대지면적은 약 62만 제곱미터로 단일 단지 기준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13) ‘왜 이렇게까지 거대한 세계를 만들었을까?’(19) 이는 표면적으로 폭발적으로 확장하는 서울시에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박정희 정권에 우호적인 중산층 계층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판별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근대화 시기 중산층은 아파트에 거주하며 차(그 유명한 포니 자동차)를 소유한 4인 가족을 지칭했다. 정부의 재원만으로 아파트를 충분히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민간 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여들였다. 이들은 아파트 입주 희망자들에게 계약금 형태로 자본을 충당하여 건설 비용에 보탰고, 입주권을 따낸 이들은 여기에 웃돈을 덧붙여 되팔기도 했다고. 이는 마민지의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에서 상세히 소개되기도 한다. '싸우면서 건설하자'고 구호를 외쳤던 발전국가 시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모두에게 '내집마련'의 행복을 약속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 입주권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현금 지불 능력이 있던 계층(전문직 등),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었던 공무원, 군인 등 특정 계층은 쉽게 부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었던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비극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사건이 1971년 광주대단지사건이었다(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1부를 읽으며 김정철이란 인물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김중업, 김수근 등 발전국가 시기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을 몇 알고 있었으나 김정철은 생소했다. 하지만 그가 건축신문을 발행하고, 젊은건축가상 제도를 제정, 운영하는 정림건축문화재단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건축계에서 김중업, 김수근 같은 건축가 위주의 담론이 형성된 반면 '대형 건축 조직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서술을 보며 기시감이 들었다. 국문학계 또한 작가, 작품 중심의 작가론, 작품론 연구 방법론이 지배적이었다가 제도, 매체 연구 등 새로운 방법론이 적용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철의 바람대로 둔촌주공은 ‘후세에 의해 평가’된다. 건축학자나 평론가 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고 자랐던 이들에 의해 아파트에 대한 다른 평가와 이해가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둔촌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동네에 대한 애정을 공유했다. 사람들은 둔촌주공아파트가 낮은 밀도로 지어져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누릴 수 있었고, 섬세하게 설계된 단지의 여러 요소 덕분에 장소에 대한 좋은 감각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계절마다, 구역마다 다른 모습이었던 수목들과 넓은 녹지, 놀이터와 휴게공간을 유연하게 연결하던 보행자 전용로 등 주민들이 사랑했던 공간들은 설계자들이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설계하고 실현한 것들이었다.

 

거주민들은 안락하고 살기 좋은 거주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이름 모를 설계자의 이상과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살기 좋은 집을 만들려는 마음이 정말로 살기 좋은 집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좋음을 사람들은 알아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더 좋은 거주 환경을 고민하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69-70)

건축가는 아니지만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던 부분이다. 그리고 건축의 공공성,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실현하려면 시민으로서 좋은 건축을 바라보는 혜안, 좋은 건축 정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판단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유현준 건축가가 한 말이 있다. 건축의 질이 향상되려면 시민들이 좋은 건축을 경험할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고. 그렇게 좋은 건축에 대한 감각과 의식을 키우면 좋은 건축이 많아질 수 있다고. '건축 문화'을 가꾸는 일. 이는 건축가, 건축평론가 등 건축계 사람들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열린송현녹지광장'은 정말 '잘 생긴' 장소라고 느꼈다. 항상 안국빌딩을 지나 국립현대미술관을 지나갈 때마다 시야를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던 철제 막이 사라지니까 5분 동안의 산책이 훨씬 즐거워졌다. 이렇게 시민들이 공공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걷기 좋은 장소가 도시에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한다.

추가적으로 '빌거', '휴거' 등 거주지의 성격을 기준으로 차별적으로 구별 짓는 혐오 발언, 계층화된 주거의 구별 짓기 현상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의 거대한 블록에 생활시설을 집중한 ’자체 완결적인 가구 단위 계획‘은 장단점이 확실했다. 단지 거주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 안심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네‘로 기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준다는 장점에 반해, 단지의 경계를 따라 내부와 외부가 명확히 구분되어 폐쇄적인 ’섬‘처럼 주변과 분리된다는 한계가 뚜렷했다. 이러한 ’반도시적 단지성‘은 근린주구론이 처음부터 비판받은 지점이었다. 근린주구론에서 물리적 범위를 한정하는 경계를 뚜렷이 한 이유는 근린에 고유한 성격을 부여하고 명확한 실체로서 인식되게 하기 위함이었으나, 이로 인해 계급 및 인종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꾸준히 지적되었다. (50)

-둔촌주공아파트에서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이 파트를 읽으며 인문적 지리학의 대표 사상가로 꼽히면 이-푸 투안의 저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토포필리아], [공간과 장소]를 인용해 이인규는 왜 사람들이 둔촌주공아파트을 그리워하며 기억하고 있는지, 그곳을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를 밝힌다.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말이 있다.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지리학자 이-푸 투안에 따르면, 토포필리아가 생겨나는 데에 특별한 랜드마크나 대단한 경험, 격정적인 감정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친근함과 편안함, 보살핌과 안전에 대한 확신, 소리와 맛에 대한 기억, 공동의 활동과 세월이 쌓아온 아늑하고 기쁜 추억으로도 깊은 잠재의식 같은“ 마음, 즉 ‘고요한 애착심’을 품을 수 있다. 둔촌주공아파트에서 거주한 이들이 보여준 장소에 대한 애착이 이와 비슷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친밀한 장소들과 우연히 마주하는 애틋한 경험들이 누적된 사랑의 감정이었다.

 

둔촌주공아파트 거주민들이 이토록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그곳이 그들의 ‘집’이자 ‘동네’였기 때문이다. 둔촌주공아파트는 거주민이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자, 그 안에 함께 살아가는 가족 또는 이웃과 맺는 관계, 그 공간 자체와 맺는 관계를 포함하는 동네였다. 그리고 ‘완성형’으로 태어나 수십 년 동안 크게 바뀌는 것 없이 ‘정지된 마을’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파트 단지의 숙명도 장소 애착 형성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는 이-푸 투안이 장소를 ”정지(pause)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말한 것과 닿아 있다. 사람과 공간의 관계는 정지해 머무를 때 발생하며, 사람이 아무리 정지해 있다고 해도 공간이 계속 변한다면 그곳은 ‘장소’가 되지 못한다. (134-135)

장소 애착 때문이었을까. 6~7년 전 즈음에 13년 정도 살았던 동네에서 이사 갈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고작 버스로 20분 거리의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거였는데도 그랬다. 초중고를 나온 동네를 떠난다는 사실을 급작스럽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 전, 신도시를 이사 간 친구는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듯 번듯하고 깔끔한 아파트 단지 주변에 황량하고 사막한 신도시 특유의 인위성, 기계성에 힘들다고 일기에 쓴 적이 있다. 인간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은, 시간의 켜가 쌓이지 않은 공간. 아직 장소가 되지 못한 공간. 그래서 그런지 나는 망원동, 불광동 같은 동네가 좋더라. 성북구도 좋고... 그런 동네에서 살 수 있을까...

-둔촌주공아파트는 어떻게 사라져갔을까

‘둔촌은 강동이 아닙니다!’라는 외침에는 자신의 집단을 인근 지역 사회와 구별 짓고, 결코 섞일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는 폐쇄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근린주구를 추구하며 만들어진 대단지의 태생적 한계에, 지역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집단권력의 부정적인 면이 겹쳐진 결과다. 게다가 재건축조합이라는 것은 지역에 발붙인 ‘거주’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소유’ 여부를 기준으로 구성되는 집단이다. 굳이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아도 조합원이 될 수 있기에 조합원들 사이에서 지역 사회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재건축 조합원들이 더 동질감을 느끼고 더 ‘쓸 만하다고’ 여기는 관계는 재건축·재개발을 추진 중인 다른 조합이다. 한국 사회에서 재건축은 처음부터 여러 조합이 연합한 거대 이익집단이 쟁취해낸 승리의 과정이자, 조합들이 결집할 때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학습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220)

y********7 2023.10.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