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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쇼츠를 접한후에 이책을 구매해 읽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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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저자는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어도, 단언컨대 인생에서 중요한 건 돈이라고 명시하며 글을 시작한다. 이어서 그는 우리가 돈에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며 지적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 욕망인데, 이 돈에 대한 욕망을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태도에 대해서는 ‘역겨울 정도로 이중적이다’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있는 놈’들에게는 가차없이 저급한 표현을 동원하며 비판하고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은 ‘돈만 밝히는 속물’취급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있는 놈’처럼 보이려고 ‘발광하는’ 행태라고 표독스럽게 꼬집는다. 아이러니컬(Ironical)한 우리의 모습에 대한 대안으로 비난의 태도가 아닌 솔직한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 전환시키라고 제안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방법이 자본주의라며, ‘무엇이든 그것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상을 움켜쥘 기회를 제공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울러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세상만사 사납고 독살스럽게 판단하는 이를 혐오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돈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라고 ‘초연한 태도, 선의인척하는 위선이 역겹다’고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 끝으로 그는 “만약 내가 돈만 밝히는 속물이면서 그만한 실력을 지니지 않았다면, 그것이 바로 사기꾼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소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한 값 이상의 가치를 줄 것이다.”라고 기술하였고,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늘 욕망과 가치 사이에서 비범한 조화를 이뤄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내 편으로 만들어라’. 그가 독자들에게 당부한 메시지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오해로 ‘황금 만능주의’ 등으로 인해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며, 실제로는 오히려 ‘인간이 존중되면서 생겨나 발전해왔다’고 자신의 주장을 피력한다. 물질보다 인간의 가치를 상위에 두었기에, 욕망을 좇아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는 이렇듯 ‘돈을 위해 일하는 인간들이 일류다’라고 표현하고, ‘나는 돈을 위해 ‘진심’을 담는다’며, 이러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진짜 세상은 우리가 알고 경험하는 세상의 밖에 있고,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에게 엄청난 가능성과 기회를 제시한다며, ‘당연한 이익 추구를 적폐로 만드는 수법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길 바란다’고 권면하며 프롤로그를 마무리 짓는다. 이상의 프롤로그를 비추어보아, 저자는 확고하고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줏대있게 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처음으로 지적한 ‘돈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이 서평을 쓰고 있는 본인에게도 송곳처럼 찌르고 있었다. 본인은 책에서 표현한대로 ‘있는 놈’들을 사사건건 힐난하지는 않지만,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견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부당하게 취한 이익이 아닌 이상, 솔직한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처럼 될 수 있게 기회를 잡고 그 이상을 움켜쥘 수 있는 준비와 태도를 갖추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편 금전적 이득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라고 외쳐대는 인간을 극명하게 위선적이고 역겹다고 표출한 그의 입장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런 모순적인 행태는 본인도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저렇게 단정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판단이다. 실례로 압도적인 한국사 영역 강사 최태성이 그 반례를 잘 보여준다. 입시에 몸 담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ebsi에 내신/수능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한능검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3가지 버전으로 수준 높은 영상을 이 역시 무료로 제공한다. 그는 무료 한국사 강의 제공을 고수하는 이유를 묻는 한 언론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누구나 양질의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출처). 저자는 이러한 최태성의 고집에 무엇으로 답할 것인가? 사례는 또 있다. 20년 넘게 철저한 익명으로 기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는 매번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꼭 써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자신의 신원까지 숨기고 타인을 위해 누적 8억원을 베푼 그를 두고 저자는 어떤 논리로 설명할 것인가? 이들에게도 똑같이 위선적이고 역겹다고 답할 것인가? 아울러 저자는 자신이 활동하는 유튜브 영상에서 세상은 결코 따뜻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 세상은 차갑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서의 제목보다 냉혹하고 잔인하다. 그럼에도 부정적이라는 인식 하나로만 세상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만이 세상을 설명한다면 인간이 더 이상 살아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만능주의를 피력하는 그의 가치관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윤루카스와 같이 소비한 값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경우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실정이다. 욕망과 가치 사이에 비범한 조화?. 글쎄 그 표현은 확신하지 못하겠다. 청소년 키 성장과 집중력 향상을 강조하여 광고하고 상품을 판매한 바디프렌드의 안마의자 하이키(HIGHKEY)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행위금지명령 및 공표명령과 함께 과징금 2200만원을 부과받으며, 허위 과대 광고임이 밝혀졌다(출처). 190만원 이라는 고가의 금액에도 ‘소비한 값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 아니 제공할 생각이 없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오히려 성장기에 예민한 학생과 학부모 소비자를 기만한 행태였다. 이것이 조화로운 것인가? 이러한 어두운 이면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를 상기시켜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자본주의가 인간의 존중으로 발전해 왔다는 주장은 신선하였다. [본문]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고, 하나의 챕터에는 대략 8개~12개의 장이 펼쳐진다. 본인은 모든 챕터의 장을 다루기 어려워 선별적으로 채택하여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CHAPTER 1. 잔혹하지만 자본주의가 최선이다] 1장_세상은 잔혹하다 ‘도대체 누가 세상이 그리 아름답다고 하던가. 세상은 잔혹하다. 쓰잘머리 없는 감상과 위로에 젖어있을 수록 뒤처지고 죽어가는게 세상이다’라며 격정적인 표현으로 세상이 비관적임을 그려내고 있다. 작금의 세태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을 극단적으만, 비관적으로만 볼 것도 없다.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위에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굶어 죽더라도 포식자로 사는게 나아 보인다며, 한 마리의 사자로 살 것을 당부하며 하나의 장을 마무리 짓는다. 2장_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저서 <국부론>에서 "개인의 이기심을 따르는 게 도덕을 강요하는 것보다 공공의 이익에 바람직하다."는 표현을 인용하며, 그 사례로 대영제국 시기 죄수들의 배 수송을 제시하고 있다. 선장들은 정부에서 제공한 보급품을 차지하기 위해, 죄수들에게 그대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죽음에 이르도록 방기하였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인간의 속성이 그리 아름답지 않음을 믿는다.'라며 선장들의 잔혹함을 꼬집었다. 이러한 사례가 영국 내에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교회와 인권단체 등이 죄수들의 처우 개선을 봇물처럼 요구하였지만 선장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결국 한 경제학자는 "영국에서 출발할 때 죄수 숫자가 아니라 호주에 도착했을 때 생존한 죄수 숫자로 운반대금을 계산하자"는 방안을 제시했고 이는 생존율 98% 상승이라는 경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저자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이끈 원동력을 선장들의 도덕심 함양이 아닌 '돈'이라고 확신한다. 이들의 순수한 탐욕과 이기심 덕분에 죄수들의 처우가 개선되었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해당 장의 끝에서 '인간은 악하다. 하지만 악한 동시에 욕망으로 가득 찬 존재다'라고 다소 회의적인 어투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3가지 입장이 대표적이다.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그리고 고자의 성무성악설이다. 본인은 성무성악설에 공감하는 편인데, 인간을 원초적인 관점으로 보면 여타 생물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에 기반한다. 그렇기에 선악의 기준을 마련하고 판별하는 것이 유용하지 않았다.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라는 잣대로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악을 구분짓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언론과 매체를 통해 대단히 자극적이고 잔혹한 범죄 사건을 접하며 주관적인 인간의 본성을 지배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씁쓸한 생각도 해본다. 4장_최저 임금에 집착하지 말라 최저임금의 개념을 오인하고 있는 실정을 드러내며, '취약 계층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성격의 최저임금에 대해 '여유로운 수준의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나 본인도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지, 그것에만 의존하고 무리한 임금 상승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저자의 표현대로 "자신의 가치를 계속 높이면서 최저 임금을 '벗어나려는' 고민이 '정상'인 것"이다. 12장_시장은 당신의 노력을 신경 쓰지 않는다 시장의 혹독함을 언급하며, 노력하는 당신의 스펙이나 고생 및 투자의 정도를 보는 것이 아닌 "소비자가 '얼마나' 만족했느냐만 본다"고 주장한다. 시장에서의 가격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그의 유튜브 채널과 저서에서 자신이 시장자유주의자임을 표출한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경제학에서 기본으로 작용하는데, 여기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 내가 짚고 싶은 대목이다. 현재의 집권 정당 역시 윤루카스와 같이 '자유시장경제체제'를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의 상황을 목도하는 나는 물음표를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내세우며 대표 서민 식품으로 손꼽히는 라면 업계에 가격 인하를 거듭 압박했다. 이때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제 밀 가격이 내렸으니 라면 가격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인하 필요성을 언급할 정도였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제분업계 관계자들을 직접 대면해 가격 인하를 요청했다. 범정부 차원에서의 강한 압력 덕분에 농심, 삼양, 오뚜기가 반응했다. 이참에 과자 가격까지 내린 것이다. 농심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이번 가격 인하로 12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며, 1개 분기 정도의 영업이익은 포기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심정을 밝혔다(출처). 이뿐만 아니라 이른바 '공정 수능'을 내세우며 '이권 카르텔'에 대한 청산 의지를 강력히 밝힌 정부가 대형 학원과 소위 일컫는 '일타 강사'에 대해서 '대통령의 칼'이라는 압도적 권력을 가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을 동원해 세무조사에 나서며 사교육계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급기야 강남서초 일대 학원들은 경쟁적으로 교습비를 인하하겠다고 나섰다. 교육청에 신고한 액수보다 더 부풀려 받는 경우는 단속대상이라고 교육 당국은 설명했다(출처). 이를 미루어 보아 이러한 현상이 과연 수요 공급에 의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도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국방, 소방, 경찰, 도로 등 사회 기반 시설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여지를 남긴 윤루카스는 여기에 무엇이라 해명할 것인가? 제분업계와 사교육 업계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 가격까지 정부가 개입할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자유 시장은 당신의 몸값을 누구보다 정직하게 평가한다. (중략) 오로지 소비자가 얼마나 만족하는지만 봐라."라고 12장을 맺는 그의 표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CHAPTER 2. 본질을 읽는 눈을 가져라] 1장_격차는 아름답다.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격차'가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거대 기업들이 영세 기업들과의 격차를 벌리는데, 도대체 당신은 왜 계속해서 도움을 주는 것인가? 당신이 격차에 일조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라고 격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아이러니컬하게 그런 격차의 정도를 더 벌이는 인간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당신부터가 거대 기업과 자본주의를 너무 좋아하는 이상 격차는 절대 사라질 수 없다."고 단정지으며 그들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2장의 입장과는 일관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유 시장은 몸값을 정직하게 판단한다며, 소비자의 만족 여부만을 보라고 당부한 그의 마지막 표현을 기억하는가? 소비자는 거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계속 이용하는 것인데 이를 지적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소비자의 냉정한 평가를 받은 영세기업은 거대 기업과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격차에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이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억지가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번외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 또한 격차를 옹호함을 밝힌다. 4장_다주택자들이 무주택자의 집을 뺏는 걸까?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힐난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제시한다.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여러 채 사는 건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왜냐, 자기 돈이기 때문이다."라고 다주택자를 대변한다. 사실 저자의 표현처럼 정당하게 번 돈으로 여러 주택을 사들이는 행위를 비판하거나 규제할 이유나 명분 따위는 전혀 없다. 왜 그들의 자유로운 시장 참여를 제한하려고 하는가? 오히려 다주택자들의 이러한 구매 행위가 부동산 시장의 건강한 흐름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열변하고 있다.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여러 채를 사들인 것을 잘 관리하여 팔기 때문이다. 이 내용과 크게 관련은 없지만, 도시지리학 시간에 배운 내용이 떠올라 적어보고자 한다. 교수님은 호이트의 부채꼴 모형을 설명하셨을 때 어느 계층의 주택을 많이 지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셨다. 일반적으로는 저소득 계층의 주택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씀하셨다. 도시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방법은 고소득 계층의 집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주택 시장 전반이 안정화되고, 주택 가격이 저렴해져 무주택자나 저소득층의 기회가 이전보다는 증가한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이른바 '주택 필터링'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 이동이 중요하다고 피력하셨다. 다주택자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보다는 이런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해본다. 6장_기본소득의 함정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근로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으로 정의되는 기본소득. "기업의 돈을 뺏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에게 뿌려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입장에 의심의 여지 없이 100% 신뢰한다. 그 취지도, 명분도, 그것이 수반하는 영향도 부정적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복지 체계가 잘 마련되어 선별적 복지를 탈 없이 실행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보편적 복지라고들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조건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야 할 이유는 대체 무엇이고, 복지의 사전적 의미를 간과한 표현이라고 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른 복지의 의미는 '행복한 삶'이다. 책의 표현 그대로 '푼돈'이 5천만 국민에게 주어질텐데 그 화폐의 가치는 이전과 동일할 수 있을까? 필히 인플레이션을 불러 와 화폐의 가치가 폭락할텐데 무슨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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