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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최현/범우사 보통 세계사 책을 읽어보면 동서양 나누거나 대륙별로 왕조나 국가 위주의 통사를 주로 공부하다가 이슬람 약간, 스페인의 아메리카 약탈 조금, 그러다가 서서히 세계사적인 개념이 도입되더니 19세기에 와서는 식민지 위주로 동서양의 역사가 하나로 통합되어 이른바 글로벌 세계사로 넘어가게 됩니다. 사실 그 이전에 몽골의 대제국과 이슬람 문명이 끼친 영향력 역시 엄청나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지경이지만, 서양사 위주의 세계사에서 이들의 활약을 상당히 축소되었죠.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영향력이 줄고, 냉전시대에 돌입하면서 두 나라 위주로 세계가 돌아가는 것 같더니 요즘은 미국일변도 이면서 또 미묘하게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 같은 분위기 입니다. 강력한 상대가 있을 때는 그토록 강성했던 로마가 유일한 제국이라고 생각되었던 바로 그때 알 수 없는 이유로 문화적으로는 영향력이 줄어들어갔던 것 처럼, 그토록 화려했고 융성했던 건륭제의 청나라에 이미 쇠퇴의 기미가 보였던 것 처럼 말이죠. 물론, 미국은 여전히 강대국이고 아무리 달러를 많이 찍어내도 그것을 세상 모든 나라들이 조건없이 족족 흡수하는 한은 그럴 테지만. 글쎄요, 자막 걸린 외화는 귀찮아서 안 보는 국민들 때문에 되도록이면 판권을 사서 다시 제작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동양의 머나먼 나라의 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 의아한 기분이 들어서 이런 비약까지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는 에너지 열역학에 입각해서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에너지를 중심으로 본 문명사관입니다. 고등학교 때 이과반을 선택하신 분들이라면 다 알겁니다. 열역학 제 1법칙은 우주에 있어서 물질과 에너지의 총화는 일정하여 더 만들어지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변화하는 것은 형태 뿐이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즉, 그 유명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입니다. 이 책에서 주요한 제 2법칙은 물질과 에너지는 하나의 방향으로만 즉 사용이 가능한 것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혹은 이용이 가능한 것에서 이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또는 질서 있는 것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이지요. 즉 우주전체적 차원에서 본다면 잘 갖추어진 시스템에서 더 큰 혼동과 황례로 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적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석유를 채굴해서 휘발류로 만들어서 자동차에 주입하고 이를 태워서 쓰고 나면 다시 거두어서 쓸 수 없는 기체로 휘발해서 사라져 버리는 즉 다시 쓸 수 없는 상태로 가버린다는 것이지요. 엔트로피 이야기가 다시 나오게 된 이유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내용이 그 책에도 중요하게 언급되었거든요. 인구가 늘어나고 나무를 다 써버리고 나자 예전에는 거들떠 보지 않았던 석탄을 캐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석유에 손을 대었죠. 나무에서 석탄으로 석유로 갈 수록 에너지화 하기 위해서는 돈이 더 많이 들고, 따라서 더 비쌉니다. 저도 나이가 좀 있는지라 어릴 때 시골에서 강가에 나가 빨래를 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엄청나게 많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수많은 편리한 가전 기기들과 산업 기기들이 생겼고 엄청난 양의 노동력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순간순간 편리함을 만끽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살아왔죠.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건 속임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생각만큼 일을 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쫓기면서 생활하고 있죠.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걸어다닐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빠른 탈 것들을 타고서도 한참을 가서 일을 해야 하고 직업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감수하여 비행기를 타면서 일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엔트리피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니 물가가 점점 더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주거는 국가 정책이 사회주의적이지 않는다면 너무 값비싸서 구매하게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옷은 가격이 천차만별로 다양화되면서 값싸게 구입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옷이 귀할 때 보다 과잉생산되어 그만큼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고 있죠. 분해가 잘 되지 않는 합성섬유는 이미 골치아픈 쓰레기 더미가 된 지 오래입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음식의 경우는 가공하지 않은 상태가 가장 영양가가 높고 몸에도 좋지만, 가공해서 나빠지면 나빠질 수록 더더욱 비싼 값에 팔리고 있죠. 더군다가 지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금방 캐낸 땅에서 조차도 예전만큼 영양가가 좋은 농산물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질소 비료는 위대한 발견이지만 이걸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저자는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본다면 인류는 진보하고 있다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거나 하는 그런 낙관적인 뉴턴적, 데카르트적 사고로 21세기를 꾸려나가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양이 동양을 앞설 수 있게 된 이유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후 인간중심의 이성의 바탕이 된 계몽사상과 이를 이은 과학혁명으로 지적인 고양이 이루어져서 결국 사업혁명이 이루어졌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저도 살아보니 인간의 역사는 절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궁하면 통한다 쪽이 더 가깝지요. 그럼, 위대한 문명은 어떻게 이우러졌나? 그것 역시 궁하면 통해서입니다. 가장 번성할 때에는 이미 부패의 싹이 트고 있기 마련이지요. 하루 3-4시간만 일했던 수렵시대도 다른 유인원들이나 다른 동물들과 함께 나누어 먹기에는 부족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농경사회로 옮겨왔을 것입니다. 스페인이 자기 나라안에서는 부족했기 때문에 아메리카까지가서 거국적으로 노략질을 한 것이고, 영국 역시 차를 수입하다가 파산할 거 같으니까 불명예스럽게도 아편전쟁 따위나 일으킨 겁니다. 나무가 부족해져서 석탄을 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과정에서 증기기관이 나온 겁니다. 궁하면 통합니다. 군더 프랑크의 말처럼 궁함을 느끼지 못했다가 중국은 당했던 거죠. 물론, 다른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겠지만. 몇가지 시대 착오적인 부분이 없지 않으나, 최대한 이 에너지 과소비의 사이클을 안정시키고, 서서히 발전하는 연착륙 상태를 만들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친환경이면서 자원파괴가 적은 쪽으로 빨리 선회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소비로 사회의 부를 진작시켜왔던 미국적 경제발전에 회의적인 생각도 갖게 만들고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미국의 위상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게 합니다. 어쨌거나 에너지로부터의 진정 해방될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그런 상사도 하게 됩니다. 책 중에는 다이아몬드나 하라리 처럼 여러 예시를 들어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저자의 글은 훨씬 더 간명하고 명료하면서도 독자의 생각이 더 넓게 퍼지도록 하는 함축된 맛이 있습니다. 환원주의적 세계관에서 진즉에 탈피하여 이토록 21세기의 문명관을 제시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편안하게 읽게 해준 역자에게도 감사를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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