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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렌 네미롭스키를 아시나요?
그녀는 유대인 태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희생자입니다. 오늘날 그녀의 글들은 살아남은 두 딸의 노력으로 인해 빛을 보게 됩니다. 『뜨거운 피』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그녀의 글은 이번 『6월의 폭풍』을 통해 미완성된 내용이 너무 아쉬울만큼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전쟁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에 책소개를 빌려오자면,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은 전세계가 다알고 있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과 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프랑스에서 다양한 계층의 피란 상황과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엿볼수 있어 흥미롭게 읽혔다.
독일군이 몰려오면서 남쪽으로 피란 길을 떠난 그들이 생활공간인 집을 떠나는 과정과 가는 방법들, 자가용과 기차, 말 등을 이용해 떠나는 길들. 그 길 위에서 쏟아지는 폭탄과 시체들. 헤어진 가족들의 상황. 위선적인 인물들.
실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린 혼란에 빠지겠지만. 그러한 모습들을 실제 책을 통해 접해보니 아, 말로는 설명이 안된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또한 전쟁에서 드러난다. 목숨만큼 지켜야할 것들. 그것은 몸만 떠나야 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내가 살아온 공간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돈이 있더라도 숙소를 구할 수가 없고 먹을 것을 제대로 구할 수도 없다는 것. 가는 길에 기차 철로는 폭탄에 엿가락처럼 휘어져 이용이 불가능하고, 자가용은 휘발유가 없어 오래 이용할 수 없다는 것. 가족 또한 생사를 알 수 있는 연락편이 없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전쟁의 현실이었다.
많이 울컥하면서도 현실에서 가진 자는 그래도 살아남고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에 화도 났다. 못가진자는 끈떨어진자는 파리 목숨처럼 왔다갔다 하면서도 살아남고.
피란 길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 우선이지만, 때론 싸움을 불사하고 도둑질을 해서라도 이기적으로 살아남는다. 그럼에도 같은 처지란 것을 인지하고 돕기도 한다.
1940년 6월 프랑스. 끝내 독일 나치군에 점령 당한 그 날의 시기에 이 책은 쓰여졌고, 이렌 네미롭스키는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된다.
그녀의 미완된 소설 그 뒷이야기가 궁금한 [프랑스풍 조곡]. 오늘날에도 전쟁이 일어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들은 무서워 벌벌 떨었고,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타성이 공포보다 강했다. 그들은 시골로 휴가를 떠날 때 하던 것처럼 모든 것을 챙기려고 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불안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투지도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슬픔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짐승, 그물에 갇혀 어부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걸 바라보는 물고기의 눈에 깃든 것과 같은.
&기독교의 자비심, 수 세기에 걸친 문명사회의 너그러움이 헛된 장식처럼 벗겨지고 그녀의 메마른 영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적대적인 세상에 오로지 아이들과 그녀뿐이었다.
&이 민초들은 전쟁이나 재난 같은 예외적인 시기가 찾아오면 연민과 자비, 적극적이고 호의에 넘치는 우애를 서로에게 베풀었다.
&우린 너보다 먼저 이 모든 걸 경험했어. 너라고 해서 우리보다 행복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지?
&'차가 있으면 뭐 하나. 걷는 것보다 더 느린 걸!'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했고, 남들 역시 자기만큼 불행하다는 데에서 작은 위안을 얻었다.
&인간은... 야비한 짐승 떼에 불과했다.
&다들 자기들만 생각하니 얼마나 무질서하던지! 그 이기주의... 아! 인간의 본성이 어떤 건지 여실히 드러나더군!
&도대체 왜 고통은 늘 우리 몫이죠? 우리 같은 사람, 평범한 사람, 서민들 말이에요. ...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지만 우린 늘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아요! 왜죠? 우리가 도대체 뭘 어쨌기에? 모든 잘못의 대가를 왜 늘 우리가 치르냐고요.
&폭풍우가 절정에 이르렀다가 잦아들면 또다시 평온한 시기가 오겠지요. 불행하게도 우린 폭풍우가 극성을 부리는 시기에 태어난 거예요. 그것뿐이에요. 그리고 그 폭풍우는 곧 잦아들 거예요.
&나의 마음속 자유에 대한 확신. 그걸 잃거나 간직하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만 달려 있어요. ...그러니까 우선 살아남아야 해요. 그날그날을. 견디고, 기다리고, 희망해야 해요.
*이 책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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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6월의 무덥던 프랑스에 독일군의 공습이 시작되면서 먼 피난길을 떠나는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보인 이 작품은 누구라고 할 것 없는 인간의 생생한 날 것 그대로를 표출한다.
귀족계급, 평민들, 노동자들, 수집가, 전장에 차출된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엄마의 심정...
공습이 시작되고 피난길에서 오고 가며 마주치는 그들의 사연들은 계급차이와 신분에서 오는 각기 다른 행보를 통해 전쟁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저마다 다른 시각을 보인다.
취침자리부터 박대를 당하는 일반인 가정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부와 낯이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장소를 선점하는 사람들, 젊의 피가 들끊는 아들이 엄마 몰래 자진해 전장에 뛰어들어 가 보고 겪는 참상들, 필리프 신부처럼 종교에 의지하며 고아들을 이끄는 모습에 반해 고삐풀린 망아지들처럼 폭력과 약탈의 힘을 휘두르는 아이들 행동의 상반된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으로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저자가 그리는 피난길의 현장은 시대는 달랐어도 마치 우리의 6.25 장면의 역사 속을 들어가 보는 듯 같은 모습의 현장을 그린 듯했다.
전쟁이 주는 참상은 이미 한번 겪었던 기성세대 중에는 이 전쟁이 주는 미지의 불안함마저도 받아들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위베르만처럼 전쟁의 현장에서 느낀 특권을 누리는 자, 면제를 받고 배려의 몫은 모두 부르주아에게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는 모습, 정치가들과 귀족들, 부자들의 상황에 구속되지 않은 안일함과 자신들의 위치에 연연하는 비정한 모습들에선 현재의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찌는듯한 더위의 6월, 그 폭풍 속에서 먹을 것, 취침 장소, 휘발유가 없어 서로 속이고 뺏아가 가는 그 본연의 생존모습들 포착은 시선이 어느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카메라가 옮겨가듯 이어지는 현장상황처럼 그려지고 있는 것이 다큐처럼 느껴지게 한다.
당시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지 못하기에 그들이 보고 듣고 살아가야 하는 일상이 불안과 희망의 교차로 속에 서로 희비일재하는 소식들로 인해 한순간의 희. 비극이 교차하는 상반된 모습의 포착시선들은 그래서 더욱 위태롭기만 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전장에 나간 남편의 자리가 그리운 여인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예전 어머니들의 힘겨운 인생살이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하면서 그녀가 겪는 외로움과 그리움, 고독의 감정은 힘겨운 하루살이에 대한 묘사들로 인해 사실적으로 다가왔고 어느 순간 일말의 희망의 빛을 느껴보듯 그린 장면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한 부분이며 끝까지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자각을 드리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유대인이란 이유로 아유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까지 핍박을 당하면서도 글 쓰기를 놓지 않았던 작가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미완으로 남았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이 작품들마저도 따님들이 공개하지 않았다면 독자 입장에서 좋은 작품을 놓칠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뜻깊게 읽은 작품이다.
- '전쟁은 끝날 것이고, 역사의 한 부분도 모두 희미해지리라는 것을 잊지 말 것. 가능한 한 1952년 혹은 2052년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무언가를, 논쟁을 만들어 보려 애쓸 것.' - 저자의 말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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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출신의 프랑스 작가. 유대인이었기에 겪었을 핍박과 결국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 생애는 작품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작가는 원고가 든 가방을 출판사에 맡겼고 그녀의 딸들은 그것을 지켜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나온 작품은 빛을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