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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온 언어』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 윤정임 (옮김) | 1984북스 (펴냄)
두 언어로 생활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예전에 누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두 가지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마음 길도 두 개라고 말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마음이 두 개란 말인지... 그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건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느낀다. 전자는 맞았고, 후자는 달랐다.
저자인 아키라는 스스로 모국어의 굴레에서 탈출했다. 자신의 언어를 프랑스어로 규정하고 그 속에 자유를 느꼈다. 유년의 언어는 일본어였고, 그 언어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내면의 언어를 프랑스어로 규정했다. 왜 하필 프랑스어였을까? 아마 아버지로부터의 영향이었으니라.. 한국어라면? 영어라면? 이탈리아어라면? 어떤 사고를 가지게 되었을까? 하지만 작가에게는 탐험할 부계의 언어가 존재했다. 유년시절의 삶, 일본어로 된 세상에서 느껴진 언어의 인플레, 언어의 질병... 그 안에서 저자는 입을 닫아버린다. 자신의 사유의 언어는 더 이상 일본어가 아니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담는 언어로서 존재... 그것은 다른 곳에서 온 언어였다.
생각은 언어를 통해 오는가? 아니면 언어가 생각을 통해 오는가? 아키라는 여러모로 다와다 요코를 떠올리게 한다. 요코 역시 이중언어 작가이다. 그녀의 삶은 1979년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독일에 가는 경험을 한 후 바뀐다. 대학 졸업 후 요코는 독일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독일어로 글을 쓰면서 생활하고 있다. 생각을 담는 언어가 바뀌면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다. 사물이 다른 식으로 보이는 것이다. 아키라와 요코 모두는 그 경험을 했고, 스스로 생각을 담는 다른 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작가를 소개하는 글에서 아키라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를 고민하는 작가라고 한 대목을 읽었다. 정확하게 또 명확하게 말하기 위해 언어를 고르는 것이다. 낯선 프랑스어를 자신의 내면의 언어로 선택한 작가이니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르는 것이리라... 어떻게 담아야 할지.. 생각을 고르는 것... 언어에서 오는 생각일까? 아니면 생각에서 오는 언어일까?
말을 할 때는 세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는 이 말이 옳은 말인가? 둘째는 꼭 해야 할 말인가? 셋째는 친절한 말인가? 쏟아지는 말들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생각의 가치를 알 수 없다. 말을 하기 위한 생각인지, 생각을 위한 말인지 도대체 감응이 안된다. 아마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은 다 느낄 것이다. 말의 홍수, 말의 인플레, 말의 말 등등
자아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자아로 근접하는 언어를 갖자. 주눅 들고 보수적인 주입식 말이 아니라 경탄의 훈련을 하는 언어를 갖자. 그리고 생각하자.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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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힘을 갖는다. 물리적 힘이 아닌, 글자가 갖는 힘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펜을 든 작가들의 '붓의 힘'은 역사 이래 계속 강조되어 왔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말의 힘'을 깨달으며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가지 않던가. 하지만 그 근간에는 모국어가 있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고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모국어. 누구나 다 모국어가 친근하지만, 모국어와 다른 말의 경계선 속에서 살아가는 이가 있다.
<다른 곳에서 온 언어> 이 책은, 그 경계선에 발딛은 자의 타국어 헌사이다.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일본인이지만 프랑스어가 더 친근한, 일본인이자 프랑스인이다. 아이러니 하게 일본은 우리나라의 말을 없애고 정신을 일본화 시키려했지만, 이 일본인은 프랑스어의 자기잠식을 받아들인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프랑스어 프로그램을 녹음해서 테이프가 늘어날때까지 듣고, 몇 년간 계속되는 그 행위에도 그는 질리지 않는다. 이미 자신안에 자리잡은 프랑스어를 사랑했기에.
그 시작은 아버지였다. 교육을 향한 무제한적인 지원과, 그 당시 값비쌌던 소니 녹음기. 그리고 울리는 피가로의 결혼. 수잔나의 노래는 아키라의 귀를 울렸고, 계속되는 울림은 아키라를 프랑스로 유학가게 만들었다. 한 노래와 한 언어가 이렇게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당시 어지러웠던 일본의 시대. 우리나라의 근현대 처럼 일본 역시 어지러웠다. 전후 계속된 경기침체와 지식인들의 항변은 젊은이들이 정착하지 못하게 했고, 아키라는 그런 사회적 풍조에서 일본어의 건조함을 느끼게된다. 언어의 건조함이라니. 우리가 매일 쓰는 그 모국어에서 생동감을 잃은 것을 느낀 그에게 들려온 봉쥬르, 프랑스어는 얼마나 매력적이란 말인가.
서로의 역할때문에 연기를 하더라도, 그 연기가 명 연기가 아닌 값싼 촌극일지라도 프랑스인의 연극은 메말라가던 아키라의 영혼에 불을 지폈고,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갖는 매력으로 삶의 동기가 생겼다라. 그 얼마나 이질적이지만 매력적인가.
그래서일까. 이질적이서 오히려 정체성의 혼란이 올법도 한데 아키라의 여정은 혼란의 연속이 아니다. 흥미의 연속이다. 계속된 녹음, 늘어난 테이프, 프랑스로의 여행. '원어민 보다 더 원어민 같다'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는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어넘기는 여유를 갖는다. 그리고 그의 여정기, 찬사는 일방적이지 않다. 프랑스어를 향한 그의 열망과 애정이 녹아있는 그 글 자체로도 생동감을 갖는다. 아마, 프랑스어라는 '다른 곳에서 온 언어'가 그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했기 때문일까.
첫 이국어를 배울때를 기억한다. 영어야 워낙 모두가 강조하니 국어와 동급이었던 우리세대에게 고등학교 '제2외국어'시간은 인기있는 시간이었다. 배워보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는 설렘, 고등학교 그 팍팍한 시절에 느꼈던 두근거림과 열정. 동기들은 그런 열망으로 그 시간을 느꼈고, 관련된 매체들을 찾아봤다. 아키라의 청년시절이 우리와 같았을까.
언어, 인간의 정체성을 정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그 매체를 두고 아키라가 일본인이자 프랑스인으로써 살아가는 그 과정, 그리고 언어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되짚어 보고 싶은 자라면 정말 추천하는 책이다. #다른곳에서온언어 #미즈바야시아키라 #1984Books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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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차분하고 섬세한 필체의 에세이집 <다른 곳에서 온 언어> 19세 때 만난 새로운 언어로 존재를 이전하고 확고하게 구축해가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이 책은 읽을수록 읽기에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온 언어>는 저자 미즈바야시 아키라(1951년~) - 작가이자 번역가, 교수님 -의 도쿄에서 프랑스어를 만나게 된 과정, 그리고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언어를 공부하는 과정, 그리고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는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흐름은 간단하고, 주제도 온통 언어에 대한 이야기지만, 분량은 결코 적지 않다. 언어와 관련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간중간 저자가 깊이 감명받은 작가, 철학가의 책의 발췌와 당시의 메모를 포함하기도 하며, 그는 열정적으로 자신이 언어를 탐구하게 된 배경을 밝힌다.
더구나, <다른 곳에서 온 언어>는 프랑스어로 쓰여서 작가연합상 및 아시아 문학상 등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한데, 한국어 번역으로도 그의 문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한 지,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언어에 관한 이렇게나 많고 깊은 이야기가 가능하게 된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는 대입을 한 해 앞둔 고등학생 때 이 '다른 곳에서 온 언어'인 프랑스어에 매료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로운 언어에 온전히 자신을 내던지기에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 언어를 쉽게 숙달할 수 있는 이른 시점도 아니며, 무언가를 선택해서 매진하려면 학생 신분이었던 본인의 의지 외에도 주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선택에 확신하며, 스스로 철저히 내던질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의 그런 노력을 지지해 주는 그의 아버지는 어떤 성정의 사람이었을까? 그의 형의 음악에서의 열정을 지지해 주고, 나아가 둘째인 그의 언어 공부를 지지해 주는 아버지의 태도는 나에게 무엇보다도 신비롭고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그 신비롭고 불가능한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딱 맞는 대상을 찾아 무궁 무진한 열정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운명의 벽을 뛰어넘는 여러 번의 도약을 하게 된다. 그가 프랑스어를 처음 만난 것은 분명히 '운명적인 만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운명적인 만남 이후의 모든 과정이 더욱 불가해하고 경이로웠다.
그는 음악과 프랑스어를 종종 교차시킨다. 프랑스어가 음성학적으로 아름다운 언어인 것도 그렇지만, 그 발음에 매료되는 것을 넘어서, 피가로의 결혼 같은 클래식 범주의 음악은 종종 그를 돕는다. 문득 음악과 언어는 끊임없는 숙달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음악을 듣고 또 들으며 감탄하듯이, 프랑스어를 계속해서 발견하고 갈고닦는다. 음악을 직접 연주하지 않아도 음악가의 정확한 연주와 기량에 감동하듯이, 언어의 깊고 정확한 사용에 감탄할 수 있다. 그의 마르지 않는 프랑스어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그래서 음악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의외로 힘들게 읽었지만, 힘들게 읽은 만큼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었던 책이다. 좋은 책의 한 문단에서 수많은 것을 깨닫는 철저함과 깊이를 알게 된 만큼, 더 적게 읽고 더 깊이 생각하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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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곳에서 온 언어』 미즈바야시 아키라(저자) 1984북스(출판)
2011년 프랑스어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 다른 곳에서 온 언어는 8세기 프랑스 문학 전문가인 미즈바야시 아키라 작품입니다. 일본 사카다에서 태어나 18세에 프랑스어에 매혹되어 어머니의 말 일본어는 모국어 아버지의 말 프랑스어는 부국으로 삼으며 40년 넘게 외국어 속에 살고 있는 작가가 써낸 작품이니만큼 그가 왜 그토록 프랑스어라는 세계에 빠지게 된 건지 무엇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인지 언어라는 또 다른 세계가 궁금해졌습니다. 생기잃은 단어들, 속 빈 문장들, 실체 없는 말들이 메두사처럼 번식하며 안착하지 못한 채 내 주변을 부유하고 있었다는 말처럼 누군가로부터 듣게 된 수많은 언어들 내가 내뱉는 또 다른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그 어떤 언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것들은 모두 나에게 희망이 아닌 무기력감을 가져다주었고 또 다른 희망적 언어들을 찾았던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언어는 작가에게 커다란 세계였습니다. 주변의 말들이 경박해져 아키라로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언어 인플레가 있던 학창시설 아라마사의 깊이 있고 진중한 말은 아키라를 프랑스어로 향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온 언어 즉 프랑스어는 그야말로 삶 자체였고 모든 대화를 벗어나 작가 안에서 말해지고 있는 언어였습니다. 모국어인 일본어와 부국 어인 프랑스어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이 이어지고 결국 그는 일본인도 아닌 프랑스인도 아닌 서로 다른 언어 속에 그 자리를 빗나간 어긋나져버린 인간으로 또 다른 공간에서 그는 자신만의 언어로 살아감에 있어 그것이 언어 속 이방인이라는 것에 도달하게 됩니다. 프랑스어가 사멸하게 된다면 그 역시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여길 만큼 프랑스어는 절대적 언어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적어도 작가 그에게만큼은 프랑스어가 자신의 삶 모든 것일 만큼...
문학이라는 까다로운 영역에서조차 그의 프랑스언어 구사력과 쓰기는 프랑스 문단에서 호의적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왜 그가 그토록 프랑스어를 배워나갔던 것인지에 대한 그 궁금증을 다소 해소할 수 있는 다른 곳에서 온 언어라는 책을 통해 밝히고 있는듯합니다. 학창 시절 아버지의 아들 아키라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헌신 또한 그가 프랑스어를 이토록 위대하게 구사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죠. 자식이 원하는 그 길에 뒤에서 묵묵히 믿음과 사랑으로 지지해 주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중학교에 막 들어서려고 했던 아키라에게 아버지는 딱 한마디를 합니다. 이제는 네가 뭔가 시작해야 할 거다. 단 한 번도 자식에게 이것저것 강요하지 않고 힘겨운 학업에도 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아키라의 아버지.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아키라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외국어라는 낯선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기까지 수많은 노력에 대한 값진 그 성과를 이뤄냈을 때 그 쾌감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외국어에 대한 배움은 끝이 없어 다양한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온 언어를 통해 또 다른 희망을 또 다른 삶의 가치를 형성해나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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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부터 저자는 왜 그토록 프랑스어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어 했던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본인이 자문자답한다. 1970년대 일본 대학가는 여전히 정치가 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고, 68사태의 후유증은 대학에 잔혹한 모습들로 남아 있었다. 대학생인 저자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말들의 공허함이었다. 생기 잃은 단어들, 속 빈 문장들, 실체 없는 말들이 번식하며 안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었다. 온갖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말들, 대형 광고판에 쓰인 어휘들, 전단지에 인쇄된 담론들, 이러한 것들이 일상의 언어를 구성했고, 저자는 그 모든 것에서 불쾌감을 느꼈다. 이 부분이 책의 초반부에 서술되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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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랑스어가 사멸할 때 나는 스스로를 죽음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상, 프랑스어 작가연합상, 레이온느망상, 아시아 문학상 수상작을 수상한 미즈바야시 아키라의 산문인 다른 곳에서 온 언어는 일본의 작가이자 번역가인 저자가 도쿄의 소피아대학에서 프랑스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교수인 고전문학자 미스바야시 아키라의 에세이입니다. 그는 프랑스어 학습 과정에서 그에 따른 개인적인 여정을 깊이 탐구한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은 프랑스어에 대한 미즈바야시의 깊은 애정과 그에 따른 변화 속에서 자아의 발견과 성장에 대한 아름다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언어의 아름다움에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깊은 울림이 있는 책입니다.
다른 곳에서 온 언어인 프랑스어는 모든 대하의 상황을 벗어나 내 안에서 말해지는 언어이다. ---p.262
우리나라나 일본은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자부심이며 자랑입니다. 그리고 다른 언어를 배운다면 프랑스어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비즈바야의 일본어는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이 선택한 언어가 아니지만 프랑스어는 자의에 의해 선택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여러 언어를 택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즈바야의 어머니는 1951년 일본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한 남자아이를 세상에 내 놓았고 그게 저자였습니다. 그 후 19년이 지나서야 프랑스어를 말하기 시작한 70년대 일본에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국의 관용어가 가한 언어의 질병에 짓눌려 숨이 막혔고 외로워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자기 나라의 언어는 보수주의로 마비되고 소비자 운동의 지령에 의해 타락했으며 68의 교조적 강령들을 광적으로 모방함으로써 경직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의 내면의 무언가가 어떤 실존을 열망하지만 그 수단이 결여 되어 있고 사유의 도구,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막연한 생각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 거기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자기만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갈망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프랑스어를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예술 작품과 같은 아름다움과 감동을 지닌 존재로 묘사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경험의 깊이로 침투하는 일이며 그 외에 어떤 해결책도 출구도 없었으며 진정하고 심오한 경험에서 우러 나오는 진정한 말들을 그는 원했습니다.
책은 언어의 세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경험인지를 이야기하며 잊고 있던 언어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그의 문학적인 표현력과 섬세한 묘사는 독자을 매료시키며, 자아의 성장과 언어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찰을 이끌어냅니다. 그는 일본인도 프랑스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두 언어 안에서 스스로를 낯설게 만들어가고 있으며 프랑스어에 대한 사랑과 일본어에 대한 애착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면서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저자는 프랑스어 소설을 쓰고 프랑스 문단의 호의적인 평가와 몇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열아홉에 접한 프랑스어가 저자에게 미친 영향은 커 보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동기는 각자 다르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호기심과 감정은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닌 자기 존재의 근거로 여기는 저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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