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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출판사에서 나온 '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을 읽기 전에 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화엄경을 접하고 뒤로 넘어질 뻔 했다. 이 책을 받아보고 나서는 과연 그 많은 분량을 어떻게 담아냈을까?가 책을 받기 전에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이었다. 실제 받아서 본 책은 손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소책자 정도 분량이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서 난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세번 더 읽었다. 아직 조금밖에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약속이니 서평을 쓰고 있으나 아마 금강경이 그랬듯이 화엄경 또한 내 곁에 두고 계속 보면서 마음으로 읽지 않으면 솔직히 알 수 없을 것 같다. 천주교 신자인 내가 금강경,화엄경을 읽다니... 근데 어쩌랴 이것을 알려면 저것도 접해보고 맛을 봐야 한다는 것을... 책의 순서는
이런 순서로 되어 있다. 이 중 나는 3. 화엄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몇회독했다. 조금씩 무슨말인지는 알겠다. 화엄경에서의 핵심은 '연기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연기법은 불교에서 가장 근본되는 교의이다. 존재의 상의성을 깨닫고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리에 대한 무지, 욕망의 불꽃... 바로 이것이 괴로움의 이유라고 한다. 법 보는자는 여래보고 여래 보는자는 법을 본다. 연기보는자는 법 보고 법 보는자는 연기를 본다. 부처님이 연기의 진리를 깨닫아 비로소 붓다가 되었다고 한다. 깨달음의 핵심이 연기법인 것이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니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없으니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니 저것이 소멸한다는 가르침. 연기의 기본 공식이다. 상호의존성, 상의상관성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난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회 더 회독하고 난 후 조금이라도 이해가 된다면 화엄경 본서도 읽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다. 소책자 크기의 '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 꼭 한번 일독 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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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은 온갖 꽃으로 장엄된 붓다의 세계를 설하는 경전이다.(p.5) 이때 꽃은 일반적인 꽃이 아니라 십바라밀이나 보현행원 십대서원과 같은 구도자의 실천적 삶을 말한다. 이 책은 화엄경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한, 에세이 형식이다. 저자는 이 방대한 경전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 그냥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화엄경이 말하는 ‘나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현상이 바로 부처’임을 알도록...
진리(부처)에 대해 설하는 화엄경은, 바로 나의 참모습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 원만 구족한 존재라는 것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이 그대로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나의 참모습이 부처라는 가르침을 온 세계의 모든 현상이 설하고 있다. 화엄 사상은 ‘나’가 곧 온전한 부처라는 핵심을 가리킨다. 이 말은 해방이고 치유이며 대긍정으로 다가온다.
‘대방광불화엄경’은 7처 9회, 총 80권, 39품(주제)으로 이루어져 있다. 빛과 기쁨의 해탈문이 가득하다. 보살들이 부처를 찬탄하고, 불(佛)장엄 삼매의 끝없는 법문을 펼친다. 실차난타(695~699년)에 의해 한역된 신역화엄경이다. 1부(1품~38품)에서 전체 내용이 전개된 후, 2부(입법계품)에서 1부의 증득한 과정을 선재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가는 구법여행으로 재현한 2중구조로 되어 있다. 지상과 천상을 오가며 설법하는데, 지금 존재하며 살아가는 이 땅이 바로 부처의 세계임을 나타낸다.
여시아문 시성정각! 화엄경의 첫 품, 세주묘엄품은 이 말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금강소성... ‘처음 정각을 이루고 나니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다.’(의보) 그 몸이 일체 세간에 충만하여 그 음성이 시방 국토에 널리 두루 해있다.(정보) 이것은 고타마 싯다르타의 깨달음이 한 개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 우주적인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설해졌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완성된 존재임을 알리는 행복의 경전이다.
삶이란, 전체에 대한 자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과 한 알이 익어가는 과정이나, 어제 주문한 택배가 오늘 내 손에 와있는 일, 또 연꽃 한 송이에도 시간과 공간의 모든 인연과 우주가 다 동원되어 온 법계가 자비의 물결로 여래가 출현함을 의미한다. ‘티끌 속의 국토, 한 찰나 속의 억겁’ 모래알 하나에 드넓은 지구의 역사가 담겨있듯이, 내 안에 세상 전부가 다 들어있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화엄세상이다.
저자는 제38여래출현품을 중요하게 거론한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여래로부터 출현한 연기법이다. 무수한 현상 중의 하나인 나 자신이, 바로 온전한 여래라는 말이다. 저자가 반복하여 말한 “‘나’가 온전한 부처님”이라는 관점에서 여래출현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 출현한 현상인 나 그대로가 온전한 부처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은 화엄경을 활짝 펼쳐 드러내 보여준다. ‘화엄경의 문장과 구절이 그대로 화엄경 부처님이다.’(의상) 이 말은 한 글자 한 글자 그 자체를 부처로 본다는 말이며, 작은 먼지에서 저 우주까지 모두 화엄경이다.
자신이 온전한 부처임을 믿는 의지, 서원을 일으키는 것이 초발심 하는 일승보살의 길이다. 십주품의 초발심주는 앞으로 펼쳐질 40개의 보살 지위의 첫 단계다. 그러나 첫 단계는 마지막 단계와 똑같다. 발심할 때의 마음이 성불의 마음이다.(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할 때에 문득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이 초발심은 항상 지금 이 순간이다. 이 순간에 완성이 있다.
‘화엄경을 한걸음, 한걸음 오릅니다.’(p.164) 저자의 이 말은 화엄경 한 글자 한 글자에 높고 낮음이 없어 오늘 오른 한 걸음, 오늘 읽은 한 글자가 바로 온전한 화엄경이며, 세주묘엄이며 여래출현이다. 티끌 속의 큰 경전은 이미 꺼내어졌고, 중생들은 자신이 갖춘 여래의 지혜를 이미 깨달아 마쳤다. 이것을 확신하여 이고득락, 고통을 여의고 누구나 행복의 길에 다다를 수 있도록, 삶의 길을 축복해주는 화엄경을 오래도록 사유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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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독자를 위한 불교 경전 시리즈는 두껍지 않은 문고판으로 제작되었으며, 불교에 대해 지식이 없어도 쉽게 핵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는 화엄경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함이고, 그 결과 자기 자신이 부처님임을 알고 부처님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은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누구든 의지해야 할 수행의 지침이자 삶의 근거로 삼는 경전이기도 합니다. 대승 경전 중에서도 규모가 매우 큰 축에 속하는 만큼 원전을 접하기가 부담스러운 『화엄경』이지만, 공학을 전공하다 불교학으로 관심사를 옮겨 화엄 사상을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불교 철학을 가르치게 된 저자가 쉽게 풀어내는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화엄경의 속뜻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보통 대승 경전에 ‘불설(佛說)’, 즉 ‘부처님이 설하는’이란 표현이 붙는 것과 달리 『화엄경』은 ‘설불(說佛)’을 붙여 설불 경전이라 불립니다. 부처님이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제자들에게 설하는 『금강경』이나 『법화경』과는 달리 이 경전은 여러 보살들이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그 주변의 세계, 즉 불세계(佛世界)가 어떠한지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른 깨달음’, 즉 자신의 참모습을 알게 된 존재에게는 ‘나’와 ‘너’, ‘부처님’, ‘중생’과 같은 구별이 없어지고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사태라는 지각이 생깁니다. 따라서 나의 본모습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부처님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불교에서 행복을 추구하지만 부족한 ‘나’가 수행을 통해 완전한 부처님이 되기를 목표로 하는 것과 다른데, 화엄경은 ‘나’ 그대로 온전한 부처님임을 깨달음으로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저자는 이런 점에서 다른 경전들과 구분되는 화엄경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행복’을 나의 이익으로 삼아 인생의 목표로 추구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2,500여 년 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사람이 걷고자 했으며, 스스로 개척해 간 끝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된 길의 들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타마 싯다르타가 하고자 했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어 이룬 것은 오직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시선에서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은 여러 종류의 고통이 폭류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의 ‘나’가 목표로 해야 할 궁극의 행복은 어떤 감각적 쾌락으로 고통을 무마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를 여의는 것이라고 합니다.
행복을 추구하고 있으나 부족한 ‘나’가 수행을 통해서 완전한 부처님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른 불교와 달리 화엄경은 ‘나’가 그대로 온전한 부처님임을 깨달음으로써 중생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과거에 매달리고 현재에 집착하며 미래를 걱정합니다. 나와 이 세계, 여러분의 참모습을 관찰한다면 나는 곧 여러분이고 여러분은 곧 나입니다. ‘나’에게 여러분이 존재하고 여러분에게 '나'가 깃들어 있지요. 따라서 ‘나’라고 하는 그 순간에, 그곳에, 그 생각에 여러분이 존재하며 그 순간이, 그 곳이, 그 생각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나아가 이 세상 전부입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결코 여러분과 다른 ‘나’일 수 없으며 이 세상의 총합이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온전한 부처님임을 믿으려는 서원을 일으켜서 부처님이 할 일을 하라는 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화엄경의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