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고 하면, 나는 참 좋은, 존경스러운, 멋진, 아름다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특별한 순간과 사건에만 만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많이 만났다. 그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살아있다.
내 생명이 나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은 그 순간들을 상기할 때마다 든다. 내가 아는 것을 빼고, 모르고도 수많은 이들의 노동과 배려와 선의와 우정과 연대와 돌봄 덕분에 살아 있다. 이것은 늦게 배웠지만 가장 확실한 진실이다.
참 좋은, 존경스러운, 멋진, 아름다운 분들 중에서도 한채윤님은 큰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석유회사가 오염시킨 토양에서조차 거대한 가지를 펼치고 자신의 생명력으로 다른 생명들을 지켜낼 듯한 나무. 내 종교는 늘 그곳에 있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를, 다른 이의 사랑을 존중할 용기를,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비난하지 않고 바라볼 용기를”
아끼는 무지개색 색연필을 곁에 두고 글을 읽었다. 거의 모든 책을 만날 때마다 그렇지만, 놀라고 울컥하고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무엇보다 몰랐던 게 참 많다. 이러니 우리는 계속 대화하고 쓰고 읽고 삶의 경계를 겹쳐 봐야 한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꾸준히 사랑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야기고 삶이다. 사랑이 힘이 세다고 믿고 싶지만, 혹시 그렇지 못할까봐 불안하던 기분이 스르르 녹듯 사라진다. 전쟁 속에서도 낙관하며 사랑을 잃지 않는 이가 있다.
밀쳐내고 숨기라는 질서를 의심하고 스스로 사유하며 만들어낸 정체성이 무지갯빛이다. 얼마나 많은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 없이 말 같지 않은 지시를 그저 따르기만 하는지, 나치도 홀로코스트도 언제든 가능할 듯하다.
모자는 불편하고 우양산은 거추장스럽고 그냥 나가면 정수리가 타오를 듯해, 자꾸 나이를 들먹이며 광장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한채윤님이 만드는 커다란 그늘이 있는 곳으로 홀린 듯 나가고 싶단 기분이 들었다.
뭘 좀 좋아하면 ‘성애’를 붙이는 이상한 유행이 있다(있었다). ‘면성애주의자’는 면발에 성애를 느낀다는 뜻인가. 더 이상 괴이할 수 없는 표현이다. 한국사회에서 사랑이 품을 수 있는 범위는 고작 ‘성’뿐인가. 정말 그렇다면 초라하고 빈약하지 그지없다.
“내가 살아갈 이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정말 동성애 혐오가 강력해서 동성애자라면 돌을 던지는 사회가 살고 싶은 사회인지.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따돌리고 괴롭혀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도록 만드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신지. 그들의, 성소수자만의 인권 문제가 아니라 나의, 우리 모두의 인권 문제로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말 같지도 않은 말 - 동성애, 수간, 근친상간의 억지 연관 같은 - 을 함께 비웃어주고, 혐오를 제 이익을 위해 부추기는 자들을 함께 욕하고, 폭력이 곰팡이 피듯 번성하는 공간을 허용하여, 온라인 댓글에서 현실로 칼을 들고 나오게 한 이들을 밝히고 마주하며, 소리도 지르고 춤도 추고 싶다.
동료와 친구들 중에 퀴어가 있는 것만으로 뭘 좀 안다고 생각한 오만을 겸허히 버린다. 한국의 퀴어사를 이렇게 더 배워본다(퀴어 역사서 아님 주의). 많이 읽으심 좋겠다. 놀랍고 재밌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공동체에 유익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세상으로 가자는 이야기다. 사랑이야기다. “나는 행복하니까 당신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겠다는 원칙, 이거 하나!”
|
|
한채윤 에세이/ 은행나무(펴냄)
○○시에서 퀴어축제 반대!! 하지 마세요!! 라는 해시태그로 게시물을 올린 인친을 봤다. 인플루언서로 유능한 분인데 보수 기독교의 호모포비아 게시물을 보는 순간 뭔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동안 포용력 있던 그 모습들, 교회 및 다양한 장소에서 봉사하던 아름다운 모습이 싹 사라지는 기분? 나역시 교회를 다니지만,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최전선에 있는 입장으로 최근 다문화 뿐 아니라,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생겼다. 아니 훨씬 오래전부터 내 가까운 지인, 물론 그때는 그분이 퀴어인 줄 몰랐지만 실제로 성소수자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에 우선 그들이 퀴어이든 무엇이든 간에 '사람' 이라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나!!!! 너무 식상한 말 같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
작년에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에세이 모지민의 「털 난 물고기 모어」를 읽은 적이 있다. 사실 처음 봤을 때 그의 퍼포먼스는 꽤 충격이었다. 산문과 시, 희곡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 내려간 글이 그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쓴 리뷰를 읽고 "정말 감격이야! 나 너무 행복해"라고 디엠을 보내준 모어 님의 삶을 어느새 응원하고 있었다.
이번 신간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한채윤의 에세이를 만났을 때 역시 은행나무 출판사라는 느낌.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 다만 두려울 뿐이다!!
'성별 교란자' 혹은 '성별 비순응'라며 자신을 표현한 한채윤 작가. 또래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뛰기, 종이 인형 놀이를 할 때 구슬 치기, 권총 놀이가 하고 싶었다는... 아들을 간절히 바라는 집안의 네 번째 딸로 태어난 그가 아들인 줄 알았다는 탄생신화부터 활기차다 ㅋㅋㅋㅋ
지금까지 퀴어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퀴어 책에도 '차별'이 있다!! 매번 '남자'로 태어나 '여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들뿐!!! 그 반대를 만나니 읽는 독자로써도 또 한채윤의 문장력으로써도 넘 흥미로웠다. "남자인 줄 알고 접근했는데, 알고보니 여자였다" 라는 일화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간접 체험하는 기분?ㅎㅎㅎ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유머 반 스푼, 눈물 반 스푼 황금비로 섞어 놓다니!!! 웃다가, 울다가 짠하다가, 찡하다가 감정이 교차되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쯤 책의 결말에 와 와있었다.
여성을 위한 섹스인데 왜 '냄져'가 강의하나요?
그가 여성들을 위한 섹스 강의에 초대되자 주최측에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남자랑 섹스도 한번 못해봤을 것 같이 생긴 여자가 웬 강의냐며? 이 뿐 아니라, 그간 다른 성별로 오해받아 겪은 불편함에 대한 언급을 통해 퀴어의 삶을 유추해봤다. 장애 vs 비장애, 남성 vs 여성, 동성애 vs 이성애, 정상 vs 비정상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더 다채로워진 우리 사회를 인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최초의 동성애 잡지 〈버디〉를 창간하고,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위한 인권활동, 퀴어 문화 축제의 기획자로 다양한 활동을 웃으며 이어가고 있다. 반대하는 그들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웃고 떠들고 춤추면서... 작가, 인권 운동가, 강연자로 또 여성 vs 여성 커플을 위한 섹스 가이드북 〈여자들의 섹스북〉까지 출간한 저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듯 싶은데...
덧: 소책자 〈부치에 대한 어떤 장광설〉 내용, 여기다 다 옮겨올 순 없지만 무척 재밌었다 ㅋㅋㅋㅋㅋ 읽어본 사람만 알 듯!! 이 분은 정말 진지한 얘길 유머스럽게 혹은 편안하게 한다.
혐오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우리 한국사회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그중 노년의 성소수자가 요양시설로 가기 위해 다시 자신의 성의지를 포기한 다는 문장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성소수자의 노년에 관심 1도 없었던 나를 반성하면서.... 여전히 독서는 내 '부족함'을 깨닫게 하고, 가끔은 나를 내가 쳐놓은 '울타리' 밖으로 내던졌다가 다시 일으켜 세운다.
올림픽에서 트랜스젠더의 참가가 허용된 것은 2004년이지만,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무려!! 2021년이다. 젠더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보지 않고, 원래 남자여서 잘한다고 할 뿐이다. p292
흔히 트랜스젠더를 두고 성을 '전환'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의 입장에선 자신의 그 무엇도 전환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나도 지독하리만큼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성별대로 살고자 한 사람이다. p244
성별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들 말한다. 그렇다. 태어날 때 의사가 신생아의 외음부를 보고 선언한 성별, 출생신고서와 주민등록번호의 성별은 제 3자가 생각한 성별, 이사가 생각한 성별이고 국가가 지정한 성별일 뿐이다.
같은 사람끼리 접대가 왜 필요하냐고? 같은 사람을 성적 도구로 대하고도 왜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지!!! 자기들의 사랑만 거룩하게 여기고 타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며 잘한 줄 아는지도 모르겠다. 동성애자들은 서로 눈만 마주치면 사귀고 섹스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호모사피엔스들이 호모섹슈얼인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우린춤추면서싸우지, #한채윤, #성소수자, #은행나무, #성소수자에세이, #인권활동가, #김비작가추천, #비온뒤무지개, #서울퀴어문화축제, #퀴어퍼레이드, #차별금지법제정운동, #레즈비언, #게이, #부치, #성소수자, #인권, #퀴어, #연대
|
|
고등학교 때 짝사랑한 동성친구한테 6년 뒤 고백한 썰 푼다.txt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내 옆에 앉게 된 - 같이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점점 귀엽게만 보이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친구의 볼살을 만지고, 팔짱을 끼고 싶었고, 그 친구의 문자 메시지를 자꾸만 기다리는 나를 발견했다. 다음 달에도 그 친구와 짝꿍이 되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우리 학교는 여남 분반이었다. 나는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 때가 나의 첫 성 정체성/지향성 고민의 시작이었다. 나도 혼란스러웠던 터라 그 친구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는커녕 나에게도 그 어떤 확신 없이 그 시절은 흘러갔다. 그 때의 감정과 생각은 여전히 마음 속에 물음표로 남아있었기에,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난 본격적인 성 정체성/지향성 탐구에 몰두했다.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도 가입해보고 여러 사회 활동을 하면서 성소수자 친구들을 사귀고 모임에 참석했다. 그들과 어울리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성소수자임을 알아차리고 정체화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퀴어라고 호명하고 당당하게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이성애/성별이분법 사회에서 내가 더럽다고 욕 먹고 편견의 대상인 성소수자가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사실 어렵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미 수많은 성소수자 활동, 그것의 역사, 책, 영화의 존재 덕분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마다의 빛깔과 개성을 뽐내며 활짝 웃는 퀴어문화축제의 참여자들을 보며. 한채윤 성소수자인권 활동가도 그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디 분명하다. 그가 낸 에세이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는 그가 살아온 '퀴어한' 궤적을 생생히 담은 책이다. 성별 이분법적 사회에서 어릴 적부터 그는 다른 성별로 오인받으며 불쾌한 경험을 무수히 당했다. 그렇다고 그는 그 사회에 자신을 끼워맞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틀을 깨뜨리기 위해 사방팔방 홍길동처럼 날라다녔다.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이 갇혀 있던 틀도 깨부셔주는 궁극의 망치가 되기도 했다. 그의 행동력에 나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개안은 인터넷이 보급되지마자 동성애 사이트를 접할 때 시작되었다. 그러다 그는 국내 최초 동성애자 잡지 '버디'의 편집장이 되고, 동성애자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와 같이 수많은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활동가, 퀴어문화축제의 기획자까지 되었다. 그외에도 그의 활동은 참으로 왕성한데, 현재까지 학자와 활동가, 작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니 경계를 허물면서 여러 저술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정보가 없어 섹스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커플을 위한 책 <여자들의 섹스북>까지 냈다. 성별이분법에 맞서고,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고, 크고 작은 행사와 사회 운동을 지속하면서... 여성 동성애자들이 겪는 섹스 조언을 담은 책까지 쓰다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의 몸이 과연 몇 개인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운동을 향한 그의 꼿꼿한 태도에 나의 용기 또한 불쑥 솟아오른다. "그들이 싫어하는 건 우리가 그들의 뜻대로 살지 않고 우리의 뜻대로 우리답게 사는 것이리라. 그러니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더 뻔뻔하게, 그리고 더 아름답게, 또 우아하게 해치워 버리자." 그의 에세이 한 장 한 장은 선언과도 같았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폭넓은 주제를 다루며 정보와 논리-혐오세력에 저항하는-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치유와 사랑, 너가 어떤 사람이든 괜찮다는 진심을 건네주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풀어내면서, 보수 기독교/호모포비아의 혐오 발언에 반박하면서, 성별이분법과 동성애혐오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면서, 퀴어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면서 마지막에는 언제나 선언과도 같은 강렬한 말을 탁! 내려놓는다. 그 말은 속에 얹힌 혐오사회의 찌꺼기들이 쑤욱 내려가게 만든다!. 속 시원- 가히 이 책은 퀴어용 게비스콘(소화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우아하고 경쾌하게 웃으면서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시다니.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면서! 힘을 가지고 그들이 싫어하는 방식, 즉 우리 뜻대로 살아가며 계속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행동한다면, '싸우자는 말은 언제나 이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다시 글의 서두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히 5년이 넘은 지금, 난 스스로의 정체성도 몰라 혼란스러운 벽장에서 '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이라는 별명을 가진 퀴어가 되었다.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이다. 그 변화 속에는 눈물도 있었고(혐오와 차별, 실연과 모부를 향한 커밍아웃) 기쁨(자유, 자기긍정, 해방, 연대, 사랑)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나를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수많은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엄청난 역대급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좋아하던 친구에게 내가 사실 당시 너를 좋아했다고 말해 버린 것이다. 내가 처음 양성애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너였다고 고백해버렸다. 충동적으로 말한 것 같았지만, 사실 오랫동안 고민해온 말이었다. 친구에게 한 때 사랑스러웠던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달까. 말하고 나서 아차 싶어 잠시 친구의 반응이 두려웠다. 그런데 친구는 웃음을 팡 터뜨렸다! "진짜? 나를 좋아했었다고? 나 너무 기분 좋은데?" 친구는 내가 한 말을 듣고 '더러운 동성애자'라는 편견과 혐오로 나를 판단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절연까지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산뜻하고 호탕한 반응이라니! 친구는 동성애든 양성애든, 성별에 상관없이 나의 마음을 그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고이 받아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얼마나 감사한 순간인지. 친구의 반응은 나에게 또 커다란 용기와 희망으로 다가왔고 그 자체로 연대의 손짓으로 다가왔다. 여기까지가 고등학교 때 짝사랑한 동성친구에게 6년 뒤 고백한 썰이었다. 해피엔딩... ^^ (어그로성 제목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참 고맙다. 지금 이 반응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한채윤 작가와 같은 수많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와 많은 이들의 용기와 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친구의 목소리에서 나는 넘실거리는 무지개빛을 보았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함성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마치 퀴어문화축제에서 울려 퍼지는 시끌벅쩍,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리고, 케이팝에 신명나게 몸을 흔들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이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길거리 모든 사람들에게 글자 그대로 '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모두가 '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이 가능한 날을 위해 나 또한 내가 가진 모든 용기와 사랑, 연대의 마음을 내보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럴 것이다. 혐오와 차별, 편견에 대항해 '이쁘게' 싸울 것이다. 이를 위한 기반을 탄탄히 쌓아온 한채윤 활동가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멋진 부치용 무지개용 수트를 맞춤 제작해드리고 싶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우선 무지개 찬란한 색감과 자유로운 존재들의 몸짓들! 북 디자인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또 한 챕터 하나하나가 짧고 강렬해서 어디서든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해서 유익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성소수자 당사자, 성소수자 앨라이,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에게 큰 도움과 웃음이 되리라 믿는다. |
|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독서에 임했다. 소수자 인권에 관한 책이니 실수를 범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저자가 절망스러운 상황을 유쾌하게 끌어내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인 나의 태도도 한층 유연해졌다. 어쩌면 이런 내 태도가 편견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의 얘기를 진중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대할 필요도 있다. 무거우면 불편해지고 불편하면 말을 아끼게 되니까. 우리 모두가 ‘내가 나여도 안전한 공간’에서 살 수 있길 바라게 되는 책이다. 저자는 LGBT 잡지인 <버디> 창간부터 한국성소수자인권센터, 비온뒤무지개재단을 설립했으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도맡았다. 그 안에서 많은 사건이 일련적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현재 ‘성소수자의 나이 듦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큐라이프센터를 띄웠’다. 성소수자 인권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저자 한채윤의 무지갯빛 생을 소개한다. 또, 사랑과 연대의 귀중함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자주 등장한다. 한 마디로 사랑이 가득한 성소수자 에세이다. 저자는 성소수자 인권을 포함해 다양항 편견과 혐오에 대해 말한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자주 울컥했고 반성했다. (물론 유머러스한 저자 덕분에 웃을 때가 많았다) 또한 페미니즘이 언급된 부분에서는 깊은 연대를 느꼈다. 나는 여성인권에 대해 얘기할 때 감정만 앞서는 사람이다. 파이터와 울보 기질이 함께 발휘되곤 한다. ‘분노를 뒤로하고 대화로 풀어나가는 건 어렵죠. 그래도 괜찮아요. 이렇게 함께 하잖아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성소수자로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저자 한채윤의 세상은 힘든만틈 아름답다. 흘린 땀과 눈물이 무지개가 되어 나타나는 것 같았다. 저자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에게도 다정함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의 꽉 닫힌 마음에 정중하게 노크를 하고 들어간다. 활활 타오르는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혼자서 불을 진압하는 건 무리일 테니 힘을 합쳐 보는 건 어떨까. 적어도 부채질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수자는 '문화나 신체적 차이 때문에 사회의 주류문화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소수자가 되는 순간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전적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소수자였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성소수자들이 매일 이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소장 욕구가 생겨난다. 직설적이지만 부드러운 문장들은 저자 한채윤을 닮아 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아서 열 손가락이 부족했다. 그중에서도 무지개색으로 표시한 목차들이 마음에서 오랫동안 진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