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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흥암 극락전 마당에 한발을 디뎌보고 싶다.
저 虛靜에 든 시공간 속에 잠시라도 한발 담가 적멸을 경험해보고 싶다.
비구니 수도승들 틈에 끼어 한계절 안거하고 나면 세상 땟국과 허물을 벗어내고 내장이 좀 가벼워질 수 있을까? 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탈피(羽化) 경지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신문기자로 삼십 년을 봉직해 온 '경북일보' 곽성일 기자께서, 이번에 첫 시집 『지금이 적멸이다』(더봄)를 냈다. 시집의 표지 사진이 처음부터 나를 홀렸다, 짙은 녹색 속에 안긴 절간 마당이. 백흥암은 팔공산 은해사 암자로 비구니들 수도처다.
지리한 장맛비가 어제도 오늘도 계속 나린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읽고 있구나. 올여름엔 어쩐 일인지 철학이나 종교 책이 아닌 문학과 기행문을 들고 있는 것이 기특하다. 나의 오래된 習이 이제는 氣가 꺾여 헐거워졌다는 증거겠지? 여름마다 제게 버거운 철학이나 종교 책을 들고 끙끙 씨름해오던 오기를 내려놓았다는 거겠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던, 낙타보다 더 무거운 등짐을 지고 멍에까지 썼던, 내 젊은 날의 초상이 떠오른다. 나는 20대 중반 결혼 전까지도 수도승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왔었다. 어쩌면 지금도 내 몫의 세상 삶을 후딱 살아내고, 깊고 긴 적멸에 들어 虛靜의 시간을 누리고 싶은지도?
시집 날개에서 ‘백흥암 사진’ 설명을 읽고 목차부터 훑었다. 그리고 곧바로 제4부로 뛰어넘었다. 왜 ‘백흥암’이 몹시 궁금해서.
아! 그런데, 나는 아직도 '아! 백흥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백흥암
고요는 고요를 더하고
데께를 이룬 고요는 형상이 없다
없음이,
보이지 않음이
소박함이 숨어 있을 치열함이
감동을 주는 곳
백흥암 극락전
아미타불을 친견한다
일반인에게 산문을 열지 않는 비구니 참선 도량
어찌 인연이 있었던가
문득
극락전에서
아미타불이 바라보는 곳을 쳐다본다
아! 절집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마당
아무것도 없는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왜 일까
알 수 없는 아득함
뛰는 가슴
단아한 아름다움
그곳에 소우주가
정면을 보화루 너머
산 능선
초록이 절정이다
<아! 백흥암> 전문
어쩐지 머지않아, 나는 저 허정의 시간이 고여있는 백흥암 절간 마당에 영혼 한 조각을 부리러 기행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
어제도 오늘도 장맛비는 지루하게 나리고 나의 손엔 아직도 『지금이 적멸이다』란, 시집이 들려있고, 그 마당 한 귀퉁이를 거닐며, 가상 체험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詩에 대해 암껏도 모르는 무식쟁이가 한번 시에 빠져들면 이토록 무서운 법이다.
*이 시집엔 곽성일 기자께서 직접 찍은 고퀄의 사진들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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