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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앞에 선 인간 박승찬 지음 / 21세기북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1세기, 이전의 다신교적 종교관을 가진 그리스-로마 문화가 그리스도교의 등장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점차 웅성한 제국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싹트고 있었고 사람들은 정신적 불안 속에서 변치 않는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진리를 찾아 상심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이 행복해지는 길을 철학적으로 연구한 위대한 사상가 5명이 있다.
그리스도교를 세계종교로 성장시키다_사도 바울로 (5~64/65년)
처음에 사울이란 이름으로 예수의 제자를 박해했던 그가 극적인 체험으로 바울로라 불리며 그리스도교의 선포자가 되었다. 그가 그리스도교가 되어 알리고자 한 내용은 신앙의 모범과 지혜를 되어 주었다.
바울로는 당대 널리 퍼져 있던 세계주의를 표방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설파했고, 그들의 문화에 부합하게 새로운 종교를 선교하는 토착화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설교에서는 자기 입장만의 강요하는 독백이 아닌 진정한 대화의 기술을 보여주었다.
과거 유대인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만 구원이 올 것이라고 믿었던 스스로가 성령체험으로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유대교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송두리째 저버리지 않고서도 자유롭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전 세계인을 위한 보편적인 종교가 되었다.
바울로는 예수가 실제로 행했고 말했던 것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실천한 최초의 그리스도교의 신학자였다. 자유와 사랑을 강조한 바울로에 의하여 그리스도교의 이방인 선교는 전 로마제국으로 퍼져나갔고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참된 토착화를 이루었다.
사상과 학문의 원천, 신플라톤주의_플로티노스(204/205~270년) 서양 고대 후기의 대표적 철학사조인 ‘신플라톤주의’주창자이다. 중세철학 및 신비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적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영원한 세계에 대한 철학적 명상에 주력하여 정신집중을 위해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다.
플로티노스는 “어찌 ‘하나’에서 다수가 흘러나왔는가?” 하는 당시 새롭게 재기된 물음에 대해 존재의 거대한 연쇄 안에서 더 높은 단계는 바로 밑의 단계를 위한 원인이 된다는 ‘유출설’을 말했다. 또한 존재의 등급 그 최정상에는 일자와 정신과 세계영혼이라는 세 가지 신적 존재가 있다고 보았다. ‘하나’, 즉 일자는 그가 내세운 만물의 최종 원리이다.
플로티노스는 일자와의 합일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임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아름다움 자체 또는 그것의 원천인 최고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아름다워지는 것은 자신을 정화함으로써 영혼 자체가 아름답고 신과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개별 영혼이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즉, 참된 인식을 방해하는 감정적 혼란이나 무절제한 욕망에서 벗어나야 하고, 주인 노릇을 하려는 육체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다.
더불어 육체가 없다면 영혼 역시 존재를 위하여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는 육체를 인간이 자아실현하는 도구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요소로 간주했다. 육체는 본래 영혼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존재로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육체를 돌보는 것이 영혼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한다. 영혼의 중요한 만큼 우리의 육체를 지켜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한다.
철학의 힘으로 뻗어나간 그리스도교_오리게네스 (185~254년) 오리게네스는 어려서 깊은 신앙적 환경에서 자라 열여덟에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됐다. 오리게네스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복음을 실천해 보고자 극단적인 금욕 생활을 했으며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정으로 전 생애를 살았다. 알렉산드리아 주교 데메트리우스의 질투에 추방당하는 고난에 빠진 오리게네스는 250년에는 데키우스 황제의 대박해로 고문 받고 사망했다.
그는 그리스 철학 안에서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고백이 존재함을 발견했고, 플라톤 철학은 그리스도교를 철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형식으로 이용하였다. 오르게네스의 플라톤주의는 신을 다른 모든 것, 즉 감각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과 구분되는 ‘참된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지녔다.
당시 이교도 사상가들은 성경에 나타난 모순들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를 신랄하게 공격했는데, 오리게네스는 성격에 드러나는 모순을 ‘영적 해석’을 통하여 설명하였다. 이는 성경 해석의 완벽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영적 해석은 문자적 해석과 연관해서 검토되어야 하며 성경의 다른 구절을 통하여 입중 되어야 한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오리게네스는 예언서나 복음서를 읽을 때 자신이 생각한 의미를 그리스도의 의미로 전가하지 말 것을 늘 경고했으며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권고했다.
오리게네스는 이론적 훈련과 실천적 훈련을 강조하고 그가 강의에서 말한 내용이나 이상을 스스로 실천하거나 일치시키려고 애썼다.
인간의 이성으로 꽃피운 사랑의 신학_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 그리스도교의 최고 사상가이자 교부철학을 집대성한 선구자라 불린다. 아우쿠스티누스는 카르타고 유학시절, 어머니가 원하는 그리스도교의 길이 아닌 성경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상을 선신과 악신의 영원한 싸움으로 설명하는 마니교에 빠졌다. 그는 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거부하고 자기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만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아우쿠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기억이야말로 모든 것을 보관해 놓은 일목요연한 저장고라고 밝히며, ‘우리가 누구인가’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기억 속에서 자기 영혼을 돌아보는 일을 보여준 것이다.
<자유의지론>에서는 인간이 자기 이외의 동물들보다 월등하고 그것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인 인간에게 이성이 있기 때문이며, 자기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되는 것도 인간의 이성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신을 자기 삶의 좌표에서 중심으로 삼음으로써 우주에서의 자기 위치를 바로 인식하는 것과 더불어 세계를 ‘코스모스인 세계’로서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이유는 그 이성 또는 정신에 있고, 이는 자신의 인식 능력을 갖출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통하여 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만 동시에 도덕적인 의무, 즉 영원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최후의 로마인, 죽음 앞에서 철학의 신에게 묻다_보에티우스(475/480~524/525년) 로마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박학한 지식과 훌륭한 인품으로 높은 관직에 올랐다. 그의 빠른 성공은 많은 적을 만들어내 모함으로 하루아침에 사형수가 되었다.
죽음 앞에서 나눈 철학과의 대화인 <철학의 위안>은 보에티우스는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과 여신으로 등장한 철학 간의 대화 형식으로 다양한 의문에 대한 답을 한다.
<철학의 위안>에서는 인간의 행복과 운명, 신의 섭리와 우연, 신의 예지와 필연성과 자유 등 인생의 궁극적문제가 제기되는데, 보에티우스는 이를 철학적으로 논증하며 자신과 인간의 파국을 극복한다.
행복은 겉으로 나타나는 재물이나 지위, 권세, 명예, 괘락에 있지 않고 영원한 선에 있다. 참된 행복이 최고선인 신에게 있다는 사실로 연결된다. 따라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신을 찾는 노력이며, 신만이 참된 행복을 결정할 수 있다.
악을 행한다는 것은 선을 추구하게 되어 있는 본성을 부정함으로써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여신은 선한 이들이 당하는 고통에 단순히 벌의 의미만이 아니라, 악을 막아주는 기능과 교육 및 훈련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교적 섭리 이해는 불운에 대해서조차 의미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한 의미를 인정하는 한 이 또한 감사와 기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5명의 사상가들을 정리해 보면서 중세 시대의 철학 사상이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어떻게 변화되는지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그들의 사상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궁금해하거나 인생의 문제를 고민할 때 도움 될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악이 존재하는지? 왜 행복하지 않는지? 나는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등 오늘을 사는 개인의 한 번쯤 던져볼 고민이 중세의 사상가들도 던졌던 질문이기에 그들의 철학 사상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사상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아직 수긍이 안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문제를 고민해 본다는 자체에 스스로 문제의 답에 조금은 가까워지는 것 같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소명을 다하며 살아왔던 인생 자체가 배움이 되기도 했다. 혼돈 속에서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그 고난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삶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를 돌아보는 큰 울림을 주었다. 보에티우스가 감옥 안에서 <철학의 위안>을 집필할 당시를 생각해 보면 억울한 자신의 상황을 철학적 생각으로 대변하고 그 해결책을 내부에서 찾아낸 것 같다. 비록 현실은 감옥에 갇혀 억울한 사형을 당하지만 스스로 남긴 저서를 통해 진정한 승자를 후대에 알려주고 있다. 인생의 고난을 겪을 때 현실을 탓하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둘러보는 자성의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오래전 사상가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철학적 사상을 통해 어떻게 나를 돌아보아야 할지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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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서에서만 접한 중세철학에 대한 이미지는 기승전'신'이었다. 무신론인 내겐 와닿지 않고 이성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신 앞에 선 인간』에는 종교의 탄생과 발전, 철학과 종교의 결합, 신학의 탄생이 담겨있다. 이 과정을 몸소 겪는 비교적 생소한 인물들을 접하면서 중세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중세 철학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경의 모순을 논리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설득이 되냐 안되냐를 떠나서 다양한 관점을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 시대는 다양한 신들을 모시며 철학이 태동하고 빛난 시기다. 많은 신과 지혜를 숭배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정신을 계승한 로마에서 초기 그리스도가 제창되었을 땐 박해받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새 역사는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흐리기 시작했다. 역사를 글로 배우는 우리들에겐 그 엄청난 변화가 '그리스도교의 유행'이라는 짤막한 문장으로 퉁쳐진다. 그 후로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종교는 서양을 받치고 있어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영향이 지대하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깊게 찾아보지 않으면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그리스도교 문화로 넘어가는 과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을 수 없는 두 문화의 간극을 붙여준 건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종교에 그대로 차용했다. 이미 플라톤을 시대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로마 시민들에겐 최적의 접근방식이었다. 이걸 알게 되자 초기 그리스도교의 유행도, 서양 문화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는 수식어도 한방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와 오리게네스 파트에 그 과정이 담겨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모든 면은 양면이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이성의 암흑기로만 표현되던 중세가 종교철학 입장에선 빛과 같은 전성기였음을 깨달았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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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철학과 박승찬 교수의 <신 앞에 선 인간>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만남과 갈등을 1-8세기에 살았던 5명의 사상가를 중심으로 살펴본 책입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철학과 원칙을 정립한 중세 사상가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고 재창조되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은 분께 <신 앞에 선 인간>을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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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이런 경건한 책도 읽어줘야지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
21세기북스에서 나온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 3탄인 < 신 앞에 선 인간 >을 만났다.
그리스도교를 세계종교로 성장시키다 - 사도 바울로 사상과 학문의 원천, 신 플라톤주의 - 플로티노스 철학의 힘으로 뻗어나간 그리스도교 - 오리게네스 인간의 이성으로 꽃피운 사랑의 신학 - 아우구스티누스 최후의 로마인, 죽음 앞에서 철학의 신에게 묻다 - 보에티우스
이렇게 총 5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흔히 '암흑기'라고 알려진 중세를 다루는 책이다.
사도 바울로 :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성경의 신약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저술한 저자
성경을 사람이 썼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종교적 이야기를 하던 때도 아니었는데 자꾸 믿음의 논리로 대화하려고 하길래 그냥 웃었다. 말이 안 통해서. 학문적인 이야기를 할 땐 학문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걸 선호한다. 그렇지만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사석, 공석 가리지 않고 종교적 이야기는 삼가는 편이다. 하지만 중세 역사, 철학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종교 이야기다. 오랜만에 바울로에 관해 읽으며 신의 음성을 경험한 그처럼 왜 현시대에는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없는지 생각도 해보고, 그가 중세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가도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엄청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종종 새로운 부분을 깊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기에 선택하게 된 도서였다. 낯선 학자들도 있었고 잘 몰랐던 내용도 많았다. 다행히도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재미가 있었다.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알게 된다. 역사는 하나의 거울이다.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에도 사람들은 꾸준히 사유하고 기록했다. 그 흔적을 밟아가는 <신 앞에 선 인간>을 읽는 기회가 있어 색다른 흥미를 일깨울 수 있었다.
[책속문장] p58 바울로에 의하여 그리스도교의 이방인 선교는 전 로마 제국에서 결정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참된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통찰과 선교적 실천은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그리스도교가 전체 세계의 역사를 변혁시킬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p124 우리가 인간들로서 정의를 위한 투쟁을 견딜 때, 우리들은 신과의 평화 속에 거하게 됩니다.
p167 내 삶의 행위, 계획, 진행이 사실은 이 기억들의 절대적인 도움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았을 때 그것이 자기의 것인지를 아는 것도 그것이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도, 지나가 버린 과거도 기억 속에 남아 있어서 판단의 기준이 된다.
p190 무엇이 선한지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올바르게 선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p219 왜 이 질서가 거꾸로 되었습니까? 실제로는 악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은 착한 사람이 받고, 덕을 지닌 사람들이 받아야 할 보상은 악인들이 가로채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가 나에게는 정말로 놀랍게만 여겨집니다.
p234 철학의 여신에 따르면, 전지전능한 신은 자신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어떤 것도 우연히 이루어지도록 놓아두는 일이 없다.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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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하면 암흑기라는 말이 먼저 떠올라요. 기독교 중심 시대여서 신을 우선시했고, 그 결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교회는 점차 타락해서 다시 인간중심으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 시대가 탄생했다고 알고 있어요. 인간이 아닌 종교가 중심이 된 시대였기에 답답하고 자유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는 종교에 관심이 없어서 기독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성경조차 읽은 적이 없는데, 가끔은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믿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이 책은 '중세의 위대한 유산, 철학과 종교의 첫 만남'이라는 부제처럼 중세 시대 철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예요. 철저하게 인간 이성에 바탕을 둔 그리스 철학과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는 그리스도교의 만남. 진리 추구와 인간성 함양이라는 목표는 일치했지만, 그 수단과 방법에 차이가 존재했기에 처음에는 긴장 관계에 있었고, 이후 다양한 단계를 거쳐 점차 융화되어 갔어요. 이 책에서는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위대한 사상가 5인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로마 문화를 통합하여 시도했던 사도 바울로의 사상, 그리스도교의 등장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 머물고자 한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 플라톤주의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새로운 신학 체계로 완성한 오리게네스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서양 문화의 중요한 유산을 만들어 낸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마지막으로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이를 정치에 적용하려 노력했지만, 모함으로 비운의 운명을 맞았던 보에티우스까지 총 5인의 사상가를 만날 수 있어요.
[ 아우구스투스 : 인간의 이성으로 꽃피운 사랑의 신학 (354~430) ] "그리스도교의 최고 사상가이자 교부철학을 집대성한 선구자. 현대사회와 비견될 만큼 급변하던 로마제국 말기,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그리스도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를 비롯한 중세의 거의 모든 학자들에게 무려 800여 년 동안 최고의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프랑크왕국을 크게 확장한 카를 대제 또한 그의 신국론을 통하여 '신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고자 하는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후대에 이처럼 많은 영향력을 남긴 그도 태생부터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그 또한 명예욕과 성욕과 출세욕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으며, 그러한 점에서 보통의 우리와 너무도 닮은 '가슴 따뜻한 보통 사람'이었다. 오늘날 온갖 자극에 노출된 채 중심을 잡지 못하는 현대인들처럼 똑같이 세속적인 현실에 부딪혀 고통스러워했다. 삶 속에서 체험한 바를 진솔하게 충고해 줄 수 있는 그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스승이라 할 만하다." (P. 162)
선 자체인 전능한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왜 악과 불완전성이 존재하는가? 라는 난제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의 '악은 선의 결핍'이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해결하려 했어요. 창조주는 세계와 그 안에 있는 사물을 선하게 창조했지만, 이 자연적 본성에 결핍이 생기면서 악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결국 악의 원인은 인간의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 근원이 탐욕 또는 자유로운 의지의 잘못된 사용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시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시오."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리학을 일반적으로 '사랑의 윤리학'으로 부른다고 해요. 그는 사랑을 두 종류로 구분해요. 사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사랑하는 것을 '향유'라고 하고, 그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물을 사랑하는 것을 '사용'이라고 해요. 그에게는 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향유되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해요
각 사상가에 대해 대략 한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 후, 뒤에 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저는 아우구스티누스 이야기 중 세속적인 현실에 부딪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했다는 면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찾고자 하는 진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이니 대단하게도 느껴졌어요. '사랑하고 원하는 것을 하라'는 그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와닿았는데,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신에 대한 사랑이겠지만, 저는 신 이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시대가 가고 또 하나의 다른 시대가 오는 전환기에 큰 혼돈이 찾아와요. 그 혼돈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이리저리 휩쓸리다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맞이하지 못해요. 이 책에서 제시한 다섯 명의 사상가는 혼돈의 시기에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았어요. 그 변화를 제대로 응시하고 파악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어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변화하던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하게 변했어요. 지구를 생각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개발한 대가를 치르고 있고, 기술 발전은 점점 빨라져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 인플레이션으로 각국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인 점 등 혼란스러운 일이 꽤 많아요. 이런 시대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저는 다양한 책을 통해 방향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고 앞으로도 노력할 예정입니다.
중세 철학과 종교에 관심있는 분, 특히 변화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은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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