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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육지와 육지를 때론 작은 섬과 섬을 연결한다. 인류가 발전하면서 건축 역시 다양하게 변하게 되었고, 그 중엔 역사에 남겨진 건축물도 상당히 많다. 현대 기술이 없던 시대에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돌을 나르고 했을 텐데 기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다리'에 대해 딱히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에 오늘 만난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는 '다리'의 현실적인 모습과 추상적인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어떤 의미로 남겨지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서양은 기독교 중심이었기에 문화든 무엇이든 늘 종교가 밑바탕이 되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다. 신이 인간에게 부드럽고 축축한 상태를 유지한 대지를 주었으나 이를 악마가 조용히 다가와 손톱으로 땅의 표면에 상처를 내어 강과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천사로 인해 갈라진 틈새를 인간이 다닐 수 있게 다리 놓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를 보면 '다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님을 감지 할 수가 있다.
책은 '다리'에 관한 설명을 9가지 주제로 나뉘어 종교, 인생, 음악, 정치, 언어, 죽음, 철학, 자아, 다리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풀어놓았다. 나에게 있어 다리는 그저 통로로만 인식했는 데 단테의 신곡을 시작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이 되는 다리를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개념의 다리를 소개한다. 그 중 종교와 관련된 부분을 읽을 때면 인간의 힘으로 다리를 짓는 것은 고된 노동으로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완공이 늦어진다. 그렇기에 그만큼 미신적 요소가 쉽게 스며들기도 하는 데 악마의 다리로 불리는 몇 개의 다리는 희생자를 찾기도 했음을 알려준다.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저주로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이 들면서 '다리' 그 자체가 어떤 의미로 인간 삶에 스며들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사랑을 표현할 때 '다리'가 등장한다. 국내에서도 우정이나 사랑의 영원성을 담아 자물쇠를 특정한 곳에 걸어두곤 하는 데 이 기원의 시작의 로바의 밀비오 다리에서 시작되었다.
사랑의 맹세로 인간은 다리에 사징을 매달았는데 저자에 의하면 이 다리에 자물쇠를 걸었던 연인은 6개월이내 헤어진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변치 않는 사랑의 검증 수단으로 사용된다. 더 나아가 분리를 극복하는 의미로도 쓰이는 데 저자는 영화 <더 키드>를 소개하면서 단절과 만남을 다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을 소개한다. 생명을 버리려고 했던 곳에서 다시 희망을 찾아간 내용은 진부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곳인 '다리' 는 부랑자든 부유한자든 동등하게 이들을 받아들이고 때론 고립된 한 사람의 정체성을 끌어내기 위한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를 보면, 다리가 그저 다른 곳을 이어주는 공간이 아닌 상징적 의미로 더 크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음악과는 이어지는 '브리지' 는 '줄받침'으로 부르며 하나의 멜로디, 주제와 다른 멜로, 주제 음조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추상적으로 우리는 연결을 다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음악에 이어 언어, 니체까지 '다리'의 포괄적인 의미는 더 깊이 철학적으로 고찰하기를 권한다. 또한, 전쟁 속에 마을을 지키기 위해 다리를 지키려는 10대 소년들을 등장시킨 <1959년, 더 브리지>는 저자가 겪은 내용이다. 혼란스러운 참사에서 홀로 살아남은 죄책감을 소설로 풀어놓았다고 하면서 다리에 생긴 상처를 돌보는 건 역사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것이라 전달한다. 독일이 통일 되기 전 동독과 서쪽을 잇는 다리 중 하나는 특별한 교류를 위해 남겨두었다는 것을 보면 '연결'의 중요성을, 더 넓게는 추상적인 차원과 연결시키면서 인간의 삶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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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
다리는 이 쪽과 저쪽을 연결시키는 길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다리를 통해 사람과 예술, 문화의 연결고리에 관하여 살펴보고 있다.
왜 다리인가
저자의 <들어가는 말>에서 다리가 화두가 되는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다리, 길, 문, 창, 벽의 공통점. (게오르크 지멜의 『다리와 문』에서)
모든 공간을 연결하는 동시에 분리한다. (12쪽) 문은 역동적이며 극적인 장벽을 제시한다. 안쪽으로, 그리고 바깥쪽으로의 움직임을 허용한다. 벽은 그렇지 않다. 여닫을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문은 ‘단순하고 획일적인 벽보다 더 강한 폐쇄감’을 만들어낸다. 창은 안쪽 공간에서 바깥쪽 공간으로만 열린다. 다시 말해 한 방향으로만 열린다. 창은 내다보기 위해서이지 들여다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길은 창이나 문보다 넓은 공간을 더 뚜렷하게 연결한다.
그런 문, 창, 길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다리가 있다. 다리의 기능은 무엇일까? 연결하는 것이다.
인간은 두 장소를 분리해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상상을 통해 결합한다. 다리는 길과 다르게 공간 분리를 극복할 뿐 아니라, 물이나 협곡처럼 역동적이고 극적인 자연의 갈라진 틈마저 극복한다. 또한 다리는 실용성을 넘어 개념적, 미적 효과도 연출한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다리, 다리와 관련된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장 신의 위대한 다리 짓기 2장 다리 위에서 살아가기 3장 음악의 다리 4장 다리의 형제와 적들 5장 언어의 다리 6장 교수대로서의 다리 7장 니체의 다리 8장 바다의 다리와 자아 9장 다리-단절
다리 하나를 두고 이렇게 다양하게 논의가 이루어질 줄 몰랐다. 그래서 저자의 안내를 따라 이 다리, 저 다리를 고루 건너볼 수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다리다
<더 키드> (88쪽 <퐁뇌프의 연인들> (89) <걸 온더 브릿지> (89) <애수> (92)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12
<백야>에 등장하는 다리를 살펴보자.
이 부분은 다시 후반부에 다시 언급이 되는데, 379쪽이다.
무지개와 현악기
이 책에서 무지개를 새롭게 만난다.
무지개에 이어 저자는 헤르메스를 등장시킨다. 신의 메신저인 헤르메스에서 해석학이란 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32쪽) 그러니 무지개도 헤르메스도 신과 인간 사이의 다리가 되는 셈이다.
무지개를 통해 신의 영역으로 갈 수 있다는 상상은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통해 널리 펴졌다. (31쪽)
이 책에서 현악기의 다리를 만난다.
그렇게 현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비롯하여 소리를 살펴보게 되는데, 소리의 기능 또한 무엇인가 건네주는 것이다.
이런 것도 적어둘만 하다.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
이 말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다리 위에 있는 니체. 일단 뭉크의 그림으로 살펴본다. (이 책에서는 그림이 제시되지 않아, 인터넷에서 찾아 올려본다. 니체는 다리 위의 니체를 두 점 그렸는데, 하나는 1905년도, 다른 하나는 1906년에 그린 작품이다. 책에서는 1906년도 작품을 두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니체와 다리를 엮어낸 묵상은 계속된다,
이 책에서 다른 부분도 물론이지만, 특히 니체에 관련된 부분은 읽고 새길 필요가 있다. 저자는 니체의 책에서 시작하여 다른 많은 철학자, 화가 등과의 접점을 찾아내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새롭게 읽어보게 된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동안 그 책을 읽으면서도 다리에 연관지어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특히 더 그렇다.
다시, 이 책은? (다리 - 사유)
저자는 다리와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사유를 ‘다리 - 사유’라 이름짓는다. 다리와 연결되어 다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각종 사물과 사건들, 그런 사유가 계속하여 등장한다. 철학의 사유가 다리를 둘러싸고 이어지는 것이다.
종횡무진으로 이어지는 다리 - 사유가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는 책, 고급 철학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다리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정말이지 수많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역사, 문학, 예술, 철학 등 관련된 분야의 폭도 넓다.
소리는 우리를 보이지 않는 것과 연결한다. 소리는 다른 네 감각과 다르게 거리를 주목하게 만든다. 소리는 부재하는 것을 가깝게 끌어당긴다. (126-127쪽)
위에서 이미 인용한 글이다. 그 문장에서 소리라는 말 대신에 다리라는 말로 바꿔보면 다리가 어떤 존재인지 보다 확실하게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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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연결고리다.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예술 문화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다. 심지어 삶과 죽음, 존재와 무를 연결하는 고리이기도 한다. 물리적 다리든 관념적 다리든, 인간은 언제나 다리에 관한 꿈과 소망을 간직하며 산다. 다리에 사랑이 개입하면 만남과 이별, 재회의 아이콘이 되고, 숭배와 정제된 의식이 첨가되면 바로 종교적 다리로 승격한다. 다리는 공간을 연결하는 동시에 분리한다. 연결고리인 다리가 끊기면 곧바로 단절과 불화가 시작된다.
철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다리와 문」이란 에세이에서 "다리의 물질적 구조라는 형식적 특성을 넘어 역사적 결정 요소, 문화적 연관성, 상징적 함의까지 쉽게 확장될 수 있는 건축적 이해 모델을 정교한 개념적ㆍ상징적ㆍ은유적 구도속에서 제시한" 바 있다. 문화연구 학자 토머스 해리슨의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예문아카이브, 2023)는 지멜의 작업을 계승 확장한 버전이다. 다리와 문학, 음악, 영화, 역사, 철학 등을 아우르는 저자의 지적인 매력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독자들은 책 제목에 왜 니체가 등장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건 니체 사상의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리'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종착지가 아니라 다리라는 점에 있다"는 근사한 아포리즘을 남겼다. 인간을 동물에서 초인으로 가는 다리에 비유한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랄까. 실제로 니체는 자신의 역사적 소명을 인류의 정신문명사를 '니체 이전과 이후'로 양분할 수 있는 일종의 다리라는 사건에 비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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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초인’과 ‘차라투슽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다. 그리고 어렵다. 그렇기에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라는 제목이 생경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두 단어에는 어떤 교집합이 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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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많이 볼수 있는 다리 ! 오래된 다리 를 보면서 저 다리 엔 어떤 역사와 이야기가 잇을까 궁금하다. 저런 다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 현대 기술이 없던 시대에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돌을 나르고 했을 텐데 기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할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리'의 현실적인 모습과 추상적인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어떤 의미로 남겨지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다리' 그 자체가 어떤 의미로 인간 삶에 스며들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다리의 다양한 의미들 !! 난해하고 어렵다라고만 생각했던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일상에서, 여행에서 만났던 다리들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더니 조금 더 이해하기가 좋다. . . 다리는 눈 깜빠할 사이에 벽이 되고 벽은 다리가 된다. 이말이 참 와닿았는데 먼거리는 가깝게 느껴지고 가까운 거리는 멀게 느껴지는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잇다는 내용으로 다리라는 매개체가 있는데도 그걸 벽으로 만들어 버렷다는 안타까움을 표현 하는거 같다. . . 니체 산책의 철학자, 훗날 화가들이 니체를 그릴 때 다리 위에서 사색에 잠긴 모습을 종종 그리곤 한다. 책의 좋았던 점은 다리를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 소통과 단절의 상징으로 표현한 점, 문학과 역사, 철학과 영화, 예술 등을 언급한 다리에 관한 총체적인 문화사!! 책을 종아하고 색다른 문화사를 만나아닌 소통과 단절의 상징으로 표현한점, 문학과 역사, 철학과고 싶은 독자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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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강, 하천을 잇는 다리의 역할은 사람과 물자를 오가게 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 건축물이다. 다리가 없다면 고립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제약이 많아진다. 책 제목에서 눈치챘겠지만 일반적인 다리의 기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여 역사, 문화, 예술, 종교에 걸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풍부하게 쏟아낸다.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고대 사람들은 다리가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클리프턴 현수교, 금문교, 난징 장강대교, 혼지 레인 다리, 선샤인 스카이웨이, 한강대교처럼 투신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다리는 생사가 오가는 엇갈림이 공존하는 장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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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프랑스 파리를 갔을 때 제일 거닐고 싶었던 곳은 몽마르뜨 언덕과 세느강이었다. 생각보다 청결하지는 않았지만 꽤 낭만이 있는 곳이었다. 세느강변을 거닐다가 함께 출장을 갔던 동료들과 함께 강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의 규모는 작았고 세느강 위 다리를 하나 하나 감상하는 느낌은 정말 신선했다. 그 당시 어떤 국가적인 이벤트가 있어서 에펠탑에 불빛이 들어왔던 것을 기억한다. 반짝 반짝 빛나는 에펠탑과 밤의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세느강은 세상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다.
이번에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을 가서 건넌 다리는 용다리 (dragon bridge) 였다. 길이가 아주 길고 노란색으로 칠한 용의 형상을 그대로 얹어 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던 그 다리는 다낭 도심과 재래시장을 이어주었다. 나는 다낭에 머물며 그 다리를 하루에도 수도 없이 건넜다.
유년시절 내가 뛰어놀던 도랑 위를 연결해주던 다리의 이름은 '목성교'였다. 사실 내가 어느 정도 자라서 그 도랑이 없어졌을 때가 기억 속에 훨씬 생생하지만 어른들이 그 장소를 매번 '목성교'라고 불렀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나도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목성교'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친구들은 기가 막히게 그 장소로 나왔던 것이다. 그만큼 '목성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었다. 지금도 '목성교'가 없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목성교'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다리는 청계천에 있는 다리들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진행되던 전날 나는 그곳을 찾아갔다. 조금은 어둡고 뭔가 쓸쓸해 보이던 그곳이 예전 모습을 다시 되찾았을 때 나는 그 예전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뭔가 기분이 좋았다. 다리들마다의 이름과 벽에 붙어있는 그들만의 사연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리는 이렇게 영원히 닿을 것 같지 않던 두 지점을 연결해 주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가족들과의 여행으로 몇해 전 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을 여러 개의 다리 아래로 움직여 나갔는데 왼쪽과 오른쪽의 풍경이 전혀 달랐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쪽에는 큰 빌딩들로 들어서 있었다면 그 반대쪽에는 손으로 한 번만 툭 쳐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집들이 물 위에 떠있었다. 양쪽을 이어주는 다리는 그저 형식에 그칠 뿐이며 서로간 왕래는 결코 있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듯이. 저 다리는 왜 만들어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사람들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표현한다. 무지개 너머 어느 아름다운 곳으로 갔다고 생각해 보면 죽음이라는 고통의 순간에서 아름다운 그곳을 이어주는 것 역시 무지개 '다리'이다.
6.25가 일어났을 때 북에서 내려오는 괴뢰군이 한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강대교를 폭파시켰다는 (결과적으로) 뼈 아픈 역사적 비화도 역시 '다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러고 보니 나의 막내 삼촌은 불의의 차 사고로 다리 위에서 강(댐)으로 떨어져 돌아가셨다. 여기서의 '다리'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아빠께 슬픔과 아픔의 다리이다. 한강을 지나는 여러 개의 다리를 차로 지나다 보면 많은 경고 메시지와 따뜻한 문구들이 적혀 있다. 불의의 사고라기 보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그들의 집으로 돌려주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사람들은 왜 힘들 때 한강 위 어느 다리로 갈까. 얼마 전 읽은 책 중 너무나 힘든 생활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한강의 어느 다리를 찾았다는 저자는 다리 위에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발길을 돌린다. 그 날을 떠올리며 더 악착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다리'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많은 나에게 이 책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는 제목부터 너무나 멋진 책이다. "사람과 예술. 문화의 연결고리 다리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총 9장에 걸쳐 다리와 사람, 예술, 그리고 문화를 논한다. '다리'라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이렇게나 심오있게 고찰하고 성찰한 책이 있었을까. 다리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신들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이야기, 음악으로 때론 언어로, 또 어떤 때는 교수대로서 인생을 마감시켜버리는 괴력이 있는 다리. 이 책을 읽다보면 생각의 깊이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짐을 느낀다. 어느 샌가 나를 어느 다리 위로 데려가 인생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신이 인간에게 처음 건네줄 때 대지는 굽지 않은 점토처럼 부드럽고 축축한 상태를 유지했고, 악마는 살금살금 다가가 손톱으로 땅의 표면에 아주 깊은 상처를 냈다. 악마의 파괴 행위가 신의 땅에 협곡과 강, 균열을 남겼다.
다리는 악마의 파괴를 바로잡는 신의 선물이었다. 책 속 인용문 (노벨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
※ 이 멋진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쫑쫑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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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공학을 전공한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자신이 설계하고 참여한 다리들을 보여주고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을 좋아하였다.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였지만 옛날이야기처럼 재밌고 신기했다.
이야기 속에는 정직하고 성실한 이들과 방해꾼들, 거짓말쟁이, 협잡꾼, 도둑들도 등장했다. 학과는 다르지만 안식년에 연구자금을 받아 놀기만 한 교수가 선박에 녹이 슬지 않게 시멘트를 바르자고 했다는 뻔뻔한 얘기도 들었다.
성수대교 붕괴참사가 있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기억을 황급히 꺼내보고 할아버지가 설계하신 다리가 아니란 이기적인 안도를 잠시 느끼기도 했다. 그런 분이 작은 다리에서 실족한 후 시신경을 잃어간 것이 잔혹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서 다리는 내겐 좀 특별한 건축물이다. 내 전공이 아니라 그동안 건너다닌, 방문한 다리 사진과 기록이 없는 것이 지금에서야 많아 아쉽다. 공기도 나쁜 양화대교를 함께 여러 번 걸어준 지금은 아주 멀리 사는 친구도 그립다.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잘 써지지 않는 학기말 논문을 고민하다가, 겨울눈이 쌓인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아주 작은 다리 난간에 소복한 눈을 치웠다가, 한글로 누구누구 왔다감, 이라고 적혀서 너무 당황해서 다시 눈으로 덮었다.
꼬맹이가 다섯 살 때 여행간 어느 장소에 흔들다리가 있었는데, 건너도 좋고 건너지 않아도 좋고, 손을 잡고 건너도 좋다고 했더니, 입구에서 고민하다가 “제가 겁은 많은데 막상 해보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요”라고 해서 감동했다.
다리란 무엇일까. 다리의 목적은 건너는 것일까, 잇는 것일까, 만나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물론 경험하지 못하는 죽음과 이후의 세계에 대한 묘사에도 다리는 왜 거듭 등장하는 것일까. 인간은 다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의미를 두는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무지개는 흔히 인간과 신의 영역을 잇는 연결고리로 여겨졌다. (...) 다양한 문화권에서 무지개는 땅과 하늘 사이를 잇는 기적의 연결점을 만든다.”
이런 질문들을 이 책을 통해 이리저리 배우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새로운 다리를 건너보는 경험 같아서 즐거웠다. 다리는 물질이고 관념이고, 존재했거나 존재한 적이 없고, 그럼에도 인간의 예술과 철학에 등장한다.
“다리라는 인공의 길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적 방어는 취약해졌다. 그래서 다리 입구에 요새 같은 작은 성과 탑을 세웠다. (...) 자연이 분리하기로 선택한 것을 악마의 힘으로 연결해서 이 구조물 위로 왕래를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았다.”
어릴 적 힘겨웠던 육교, 배를 타고 들어가선 섬에 생긴 다리, 장소는 여전하지만, 형태는 완전히 달라진 다리들, 위로는 다닌 적 없지만 아래로는 지나간 다리들. 차로 지나간 다리들, 걸어 지나간 다리들. 모든 계절의 다리들.
다리 앞에서, 다리 위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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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해리슨(지음)/ 예문아카이브(펴냄)
다리를 통해 본 인간의 문화사, 다리를 다룬 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공학이나 건축, 인문학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시사하는 다리의 의미는 단순히 물리적인 다리, 건축물로써의 다리가 아니다. 다리를 밖과 내부 세계의 연결로 본 점, 혹은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가교, 연결고리 혹은 그 상징으로서의 다리를 말한다.
무지개 연인의 가교를 떠올리면 우리의 칠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견우와 직녀가 오직 1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다리. 일시적으로 존재했던 하늘의 다리, 지극한 사랑 불멸의 사랑을 갈라놓고 다시 만나는 방식의 서사는 견우 직녀 외에 서양의 전설, 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무지개를 신의 다리로 본 북유럽의 신화.
기독교가 지배했던 중세 다리의 의미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 예를 들면 단테의 신곡에서 다리를 건너는 무수히 많은 죄인들, 되돌아올 수 없는 스틱스 강이 떠오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영화 〈신과 함께〉에서 지옥으로 건너가기 위해 배를 타던 모습도 생각나는데 이 책에서도 다양한 영화의 장면을 소개한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내 최애 소설가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야〉를 각색한 영화 언급 장면이다.
다리 위에서 살아가기 챕터를 읽다가 문득 한강에서 투신하는 사람들, 다리 위에서 생의 마지막을 마치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최근 한국 사회의 사건 사고 뉴스를 보면 참....... 참담하다는 말 밖에 .... 얼마 전에 고인이 되신 존경하는 소설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두 주인공이 다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나는 장면도 떠오른다. 책을 읽기 전에 과연 "다리"를 소재로 무엇을 얼마나 얘기할 수 있겠어? 의심을 품었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연상되는 장면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ㅎㅎㅎ 가수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가 떠오르는데...
그러고 보니 다리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이나 음악을 다 언급하자면 수도 없이 많을듯 싶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니체의 다리와 단절의 다리 챕터다. 니체 산책의 철학자, 훗날 화가들이 니체를 그릴 때 다리 위에서 사색에 잠긴 모습을 종종 그리곤 한다. 책의 좋았던 점은 다리를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 소통과 단절의 상징으로 표현한 점, 문학과 역사, 철학과 영화, 예술 등을 언급한 다리에 관한 총체적인 문화사!!!! 책을 좋아하고 색다른 문화사를 만나고 싶은 독자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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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른가요? 누군가에게 다리늘 놓아주다라는 말처럼 다리는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수 있죠.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 그리고 비개인 날에 뜨는 무지개 역시 다리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의 경우 그 다리의 역할은 확장의 의미이기도 하며 전쟁에서 다리는 누군가를 침략하거나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죠. 다리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지금의 다리야 인도의 역할을 하거나 차도의 역할을 하지만 예전에 다리에는 주거시설이 함께 하기도 했더라구요.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종류의 다리를 보면서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리의 역할이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답니다. 아울러 물리적인 다리 이외에도 다리라는 의미가 가지는 뭔가를 잇다는 상징적인 수단으로써의 다리에 대해서도 이 책은 니체의 신곡이나 다리가 나오는 시나 음악까지 다양하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를 잇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개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죠. 그것이 서로 떨어진 산과 산이 될수도 있고 육지와 마주한 섬이 될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마음과 마음일수도 있구요.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다리를 나무로 또는 돌로 또는 강철로 만들었고 그 다리를 통해 지역과 지역이 이어지거나 문화와 문화가 서로 왕래할수 있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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