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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시선이 향한 그녀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어느 날의 내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이주은의 그림 에세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에 관심이 간 건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11월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한 예쁜 산책길을 만나며 했던 생각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는 그녀의 모습이 담긴 표지그림 때문이었다. 표지그림은 에리크 베렌스키올의 『기억』이다. 표지그림은 전체 그림의 반이었다. 책 속에서 전체 그림을 보고 그녀의 맞은편엔 또 다른 그녀가 앉아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뒤표지엔 그림의 나머지 반, 자는 듯 눈을 감은 또 다른 그녀가 있었다. 이주은에 의하면 두 사람은 자매 사이로 눈을 감은 그녀는 화가의 아내로, 화가 수업을 받던 중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화가의 삶을 접었다고 한다.
정원을 내다보며 손으로 턱을 괸 오른쪽 여인은 그녀의 언니이다. 자매는 각각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은 눈을 감는 것으로 ‘지금’을 애써 유지하고자 하고, 또 한 사람은 먼 곳을 바라봄으로써 ‘여기’를 부정한다. 자신에게서 바깥 세계를 차단하려는 여인과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눈길을 돌리는 여인이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105쪽) 언니의 ‘지금-여기’의 삶은 기록되지 않았다. 아마도 동생의 삶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보통 여자들의 삶이 그러했으니 말이다.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한쪽은 익숙한 현실에, 한쪽은 불확실한 바깥 세계에 관심을 두었을 것이다. 아마도 기차는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오른쪽에 앉은 언니가 보는 세계는 앞의 세계지만 왼쪽의 동생이 보는 세계는 뒤의 세계이다. 아직 모르는 세계와 이미 알고 있는 세계. 두 사람이 자리를 바꿔 탔다면 어땠을까. 삶의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삶은 자신이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삶에서 중요한 것은 방향일지도 모르겠다. 화가가 두 자매의 모습을 그린 것은 그녀들에게서 자신의 양면성, 현실 안주와 일탈 두 모습을 봤기 때문은 아닐까. 명확하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시대가 세기말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의 부제는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이다. 이주은은 그림과 문학을 통해 유럽의 세기말로 들어가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봤다. 내 일이 아니라면 기꺼이 구경꾼이 되었고, 가지 못한 길 또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진실과 기억 사이에 혼란을 경험하기도 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운명은 현실이 되기도 했다. '그'보다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세기말엔 '그'보다 '그녀'들이 더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는 유럽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세기말을 가리키는 말로 ‘아름다운 시절, 좋은 시절’이란 뜻이다. 문명의 발달로 풍요롭고 평화로웠으나 존재했던 것들의 사라짐,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마음은 공허했던 시절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절대로’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절대’라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으며, 설사 정답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이에 수많은 변수가 개입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굳이 정답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정답을 찾지 못한 채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머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단 하나의 정답이란 결국 죽음밖에 없기 때문이다.(181쪽) 지금은 세기말은 아니지만 세기말이라는 시간을 지우고 보면 세기말 그들의 삶은 지금-여기 우리의 삶과 많이 다르지 않다. 현실의 버거운 삶 앞에 미래의 꿈은 싹조차 피우지 못한 채 사라지지 십상이고 삶의 가치는 돈 앞에 쉽게 무너진다. 옳고 그름은 헷갈린다. 헷갈린다면 애써 찾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거짓이 되는 현실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단 매 순간, 훗날 후회를 덜 하게 될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이주은은 세기말이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이유에 대해 ‘불확실성이 모호하고 불안한 상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과 잠재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양성과 잠재성은 새로운 시대 21세기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불안하지 않았던 시절은 없었다.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불안해도 내일은 온다. 우리는 '그들'의 내일을 살고 있지 않던가. 지금의 불안은 나만의 불안은 아니라는 것과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완성해 줄 거라는 확신은 짙은 불안을 조금은 가시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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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이주은님은 학부에서는 언어학을 전공하였지만, 지금은 유명한 그림 에세이 작가이며 미술사학자이다. 언어학은 과학이지만, 지금 그녀가 하는 일은 매우 감성적인 일이다. 어쩌면 두가지 탤런트를 다 갖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그림 에세이는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목가적이다.
나는 해외출장이 많은 직업으로 평생 살아온 편이라 해외의 유명한 주요도시는 거의 가 보았고, 해외여행 시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그림이나 조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처럼 나도 후기 인상파 그림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 이 책이 나의 관심을 낙점 받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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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부터 참 아름답다. 갖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에는 그림이 많아서 좋다. 책 가장 뒷 부분에는 이 책에 삽입 되어있는 그림목록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작가는 그림과 같이 시대에 대한 설명, 그림과 연관되는 문학에 대한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벨 에포크 시대에 대한 많은 이해와 감성을 전달해주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지 클라우슨의 <풀 베는 사람들, 1891 (왼쪽)>과 <돌 줍는 여인들, 1887>
19세기에도 사람들은 농촌(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노스탤지어를 느꼈다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도시생활이 각박하고 숨 쉬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나 보다.
조지 클라우슨은 밀레를 추종한 다른 화가들처럼 자연광 아래에서의 농촌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그림 속의 인간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의 남자나 여자 모두 고된 일을 하고 있지만 여자는 도라지꽃을 보며 잠시 넋을 잃은 모습이다.
사실 농촌 속의 모습은 도시인들이 밖에서 보는 모습보다는 훨씬 힘들고 척박하다. 그러나, 그림 속의 이들의 모습은 도시인들이 꿈꾸던 전원생활의 그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이 꼭 현실을 보여주는 건 아니니까.
- 로랑생 - 권태보다 더한 것은 슬픔 슬프기보다 아픈 것은 비참한 것 비참하기보다 더한 것은 괴로움 괴로움보다 심한 것은 버림받은 것 버림받기보다 심한 것은 외로움 외롭기보다는 떠도는 것이 떠돎보다는 죽는 것이 그리고 죽기보다 더 아픈 건 잊혀진다는 것. 로랑생은 몽마르트의 뮤즈였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로랑생을 만났는데 그녀를 죽을 정도로 사랑하여, 로랑생이 미라보다리 근처로 이사하자 자신도 그리로 이사하며 미라보다리 위를 오가며 세느강을 보면서 사랑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기욤의 사랑을 받았던 마리도 외로움과 잊혀진다는 것은 아픈 일이었다. 결국 5년후 마리는 아폴리네르에게 이별을 고했고, 아폴리네르는 잠시 감옥에 다녀온 후 마리를 기억하며 <미라보다리>시를 썼다고 한다. 그녀와의 이별을 가슴 아파하면서. 미라보 다리 (Le pont mirabeau) - 기욤 아폴리네르 -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 마음 속 깊이 새겨두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 마주하며 우리의 팔 밑 다리 아래로 지친 듯 흘러가는 영원의 물결... 미라보 다리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미라보 다리는 생각보다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라보 다리 위에는 오늘도 수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거닐고 있을 것이다. 그 연인들도 언젠가는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 옛 연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미라보 다리>를 외면서 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이 책 속에는 100년 전 벨 에포크 시대의 그림이 우리의 현존하는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주은 작가는 사랑을 자신의 글 중심에 두었다. 19세기도 역시 사람들은 살기 힘들고 특히 하층민들의 생활은 더욱 고달팠겠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자신의 굳건한 의지와 함께 한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때로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며, 무랑루즈가 있는 밤 거리를 헤메이며, 때로는 농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달래며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다 보면 어쩌면 그 시대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들에게도 행복이라는 느낌이 가득해지지 않을까. 읽고 나니 웬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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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만난 이주은 교수의 책은《당신도, 그림처럼》이었다. 뭐랄까, 읽는 내내 은은하면서 달콤했다. 그림 한 점 한 점, 아이 얼굴을 쓰다듬듯 저자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한 사람은 눈을 감는 것으로 '지금'을 애써 유지하고자 하고, 또 한 사람은 먼 곳을 바라봄으로써 '여기'를 부정한다. 자신에게서 바깥 세계를 차단하려는 여인과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눈길을 돌리는 여인이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105쪽)
이 교수는 참으로 따뜻하면서 섬세한 감성으로 우리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준다. 예나 지금이나 삶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그래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과 희망을 버릴 수는 없겠다. 우리의 삶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하기 때문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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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저자 - 이주은
벨 에포크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책을 대충 휘리릭 넘겨보니 외국 명화가 많이 들어있어서, ‘미술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벨 에포크란, ‘belle epoque, 좋은 시대’라는 뜻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대략 1차 세계 대전까지 파리의 평화로운 시대 그리고 그 문화를 회고하여 사용되는 단어라고 한다. 꼭 프랑스 파리만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문화를 가지면 다 해당하는 것 같다.
그럼 이 책은 그 시대의 그림을 통해 문화를 설명하는 책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 시대의 그림 얘기를 하긴 한다. 동시에 그 당시 유행하던 화풍이나 유명인 얘기라든지 커다란 사건 그리고 문학작품도 다룬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저자는 거기에 현대를 덧붙인다.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각과 현실, 이상을 백 년 전인 20세기 문화와 연결시킨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거의 열 번 넘게 바뀌었을 기간인데도, 두 시대의 연결은 자연스럽기만 하다.
도리어 어떤 부분에서는 그 때가 더 화려하고 낭만적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처럼 치열하게 오로지 한가지만을 위해 무작정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세기말이 다가오면서 느꼈던 기대와 불안과 초조, 하지만 세기 초가 되어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삶, 이런 상반된 현실이 준 뭔지 모를 상실감과 허무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욕망까지. 두 시대는 다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닮아 있었다.
저자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문장과 그 시대의 화려하면서 감각적인 그림을 나란히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을이 떠올랐다. 신기한 일이다. 그림의 색감만 보면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는 화사한 봄인데, 쓸쓸한 분위기의 글과 함께 읽으니 서서히 사라져가는 가을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시대를 추억하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 똑같지는 않지만,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사람의 본성은 세대가 지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럼 인류는 그동안 내적이건 외적이건 진화가 아닌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는 걸까? 약간의 변화만 덧붙이고?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추측과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처음에는 옛 시대를 회상하는, 단순한 그림이 곁들어진 사적인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간단한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꽤 마음에 들었다. 요즘 나이 들면서 감수성이 메말랐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도 권해줘야겠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는 순수함이란, 하나를 포기할 때 비로소 느껴지는 미덕이다. 아무 욕망에도 눈뜨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눈을 떴음에도 그것에 마음을 주지 않았기에 순수한 것이다. -p.51 소설 ‘순수의 시대’에 대한 얘기 중에서
결국 진실과 기억 사이의 간극은 허구로 꾸며지게 된다. 허구는 공백이 아니라 경이로움이다. 세상에 돌아다니는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들은 대부분이 진실이 아닌 허구의 영역 안에 있다. -p.62
살다보면 기쁜 때도 있고 슬픔에 빠지는 때도 있지만, 그 순간들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살처럼 결코 잡히지 않는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그러다가 언젠가 어떻게든 모이고 합쳐져 하나의 삶을 이룬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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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왜 이 책을 골라 읽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에 관심을 갖았던 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명탐정 콜롬보라는 책에 등장하는 드가의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림에 대한 첫 기억이다. 중 고등학생 때는 르누아르와 모네를 좋아했고, 재수하던 시절에는 쇠라에 푹 빠졌었다. 직장 다니면서부터 에드워드 호퍼에 미쳤었고, 최근에는 이왈종, 에바 알머슨, 이쾌대를 좋아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미술평론가 이주은 교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그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분을 참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분이 쓴 글을 굉장히 좋아한다. 차분하고 지적이면서 결코 있는 척 하지 않는, 겸손한 글. 문득문득 깊은 사색이 담겨 독자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주는 글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 좋은 시절)라 하는데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는 그 시절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내 기억에 남는 그림은 장 베네의 「살로메」, 타마라 드 렘피카의 「다플리토 후작」, 뤼시앵 두세의 「로베르 몽테스키외」, 표지 그림이었던 에리크 베렌스키올의 「기억」, 구스타프 클림트의 「관 위의 마리아 뭉크」, 마네의 그림 중 그나마 덜 알려진 에두아르 마네의 「제비꽃 다발」등이다. 요한의 목을 잘라 쟁반에 받치고 서 있는 살로메의 선명한 표정, 21세기에도 스타일리시하고 섹시하게 보이는 다플리토 후작, 지금 보아도 세련된 로베르 몽테스키외, 몽환적이었던 관 위의 마리아 뭉크, 수수한 제비꽃 다발 그림을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떤 시각으로 해석했을까?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나는 벨 에포크 시대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시점을 떠올렸다. 90년대 후반,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언론에서는 새 시대로의 순조로운 이행을 기원하면서도 Y2K를 대서특필하며 불안감을 조성했었다. 새천년을 기념한 각종 행사들이 기획되었고, 심지어 밀레니엄 베이비를 출산해 새로운 베이비붐이 조성되기도 하던 그 시절.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나 자신의 급격한 성장에 당혹스러워 하던 그 때를 떠올려보았다. 정체 모를 자신감과 불안함에 안절부절 했던 그 시절의 나. “비전을 상실한 군중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들은 불안한 가운데 그저 의미 없이 말만 퍼뜨리는 소란스러운 집단으로 남게 될 가능성도 짙다. 세기말은 이렇듯 갑작스럽게 사회의 주인이 되어 뚜렷한 꿈도 없이 우르르 이리 몰렸다가 저리로 몰려가는 변덕스런 군중과 더불어 조마조마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혹시 인파에 떠밀려 방향도 모르는 곳, 원치도 않는 곳을 향해 멈출 수도 없이 마냥 걸음을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본문 중에서) ‘인파에 떠밀려 방향도 모르는 곳, 원치도 않는 곳을 향해 마냥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읽고, 필사를 하고, 그림을 보고 꽃을 가꾼다. 평범함 대신 외롭지만 아웃사이더의 길을 선택한 것은 결코 인파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남들을 쫒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이 책을 왜 골랐는지를 깨달았다. 역설적이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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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음악 문학이 활짝 피어나고 시민들은 소비와 향락으로 빠져든 유럽의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지칭하는 말이 '벨 에포크' 즉 좋은 시절이라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놀라운 것은 그 기간이 대략 20년 정도라는 것.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 최근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하는 것도 저자의 말처럼 물질적 풍요를 대신할 수 없는 정신적 공허함에 대한 갈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21세기에 '응사'가 있다면,100여년 전에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그 자리를 채웠던 듯 하다.새로이 변하는 것들에 대한 편리함과 행복함도 있었을 테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불안.이것이 세기말 전환기의 정서였다. 화려함으로 감춰 보려 했던 영혼의 불안들...
"1907년 저서 『창조적 진화』에서 베르그송은 지속이란 단지 과거가 계속되는 삶이 아니라,미래를 잠식하고 나아가면서 부풀어지는 상태라고 풀이하였다.그는 인간은 미래를 현재 속에 말아넣는 바람에 자유를 잃게 되었다" /147~148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이 와해되고 심지 없이 초조해진 삶 속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전운이 감도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세기말의 사람들은 사랑과 가정만큼은 종교처럼 유일하고 성스럽고 영원하기를 기대했다.하지만 사랑은 다른 것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그것은 불확실하고 산만했으며 이기적이었다./163쪽
문학을 통해 때로는 그림 작품을 통해 벨 에포크 시대의 특징을 만난다.때로는 갑작스러이 찾아온 행복이 어느 순간 사라질까 불안해서,때로는 평온함이 주는 평화 역시 불안해서..매 순간 불안한 시대.왜 현재의 행복을 즐기지 못하고,그 순간에 이미 불안을 상상할까? 베르그송의 말처럼 미래가 잠식된 탓일게다.발전이 지금 이순간을 사라지게 했듯이,나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모든 것은 어느 순간 사라지겠지만 영원한 것도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었다면,더 불안한 시대를 살지 않았을까? 분명 예전 보다는 다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듯 한데,풍요롭지 않던 시절 보다 더 불안해 하는 것은 미래를 현재에 들여 놓았기 때문인 듯 하다. 화려해서 오히려 불안한..그래서 다양한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 과연 축복이였을까? 묻고 싶어진다.
저자의 글은 매우 맛있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그러나 벨 에포크 시대의 길잡이 역활을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깊다.아는 만큼 보이고,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 했으니,세기말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확장되지 않았을까? 특히 글 사이 사이 소개된 문학 작품들은 목록을 만들고 싶을 만큼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했다.
소개된 책들 가운데 읽고 싶어진 책 목록... 구경꾼의 탄생,바레사 R.슈와르츠 순수의 시대,이디스 워튼 라쇼몽,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이지은 거꾸로,조지르 카를 위스망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오스카 와일드 악마의 무늬,미셀 파스투로 니진스키,영혼의 절규, 바슬라프 니진스키 세기말 문학의 새로운 물결,요시다 조
특히,'거꾸로'란 작품이 제일 궁금한 것은,거꾸로 그림은 게오르크 바젤리츠 화가를 통해 처음 만났는데 문학 작품에 나타난 '거꾸로'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몹시도 강렬한 덕분이다.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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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비록 직접 다녀온 경험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있다보면 주인공이 되어 추억이 어린 장소에서 직접 생생한 사연들을 접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다. 문학도 난해한 부분이 많지만 특히 미술분야는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단지 아름답다 느낄뿐이지 작가가 생존했던 당시 생활상이나 문화까지는 꼼꼼하게 생각해볼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이다.
'벨 에포크'?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짧은 기간이면서 아름답고 좋은 시절이라고 한다니 이 책은 더욱 궁금할 수 밖에 없겠다.
미술사를 배우지 않고는 결코 만나보기 힘든 내용들을 목격하는 장면이다. 미술 서양사에 기록된 화가로 인상주의 화가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미술사 전문학자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들을 만나게 되는 책... 그저 단순히 그림을 접할 때보다 확실하게 친근감이 들고 뭔가 좀 이해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자고로 포스터란 눈에 선명하게 잘 띄어야 한다는 전달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언젠가 대중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어떤 방법으로 전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 표어를 떠올렸었는데, 가장 시각적인 표현방법이란 촌스럽지만 원색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잘 전달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책에서 속개하는 부분도 공감이 된다. 슬프기보다 더 아픈 것은 비참한 것 비참하기보다 더한 것은 괴로움 괴로움보다 더 심한것은 버림받는 것 버림받기보다 심한 것은 외로움 외롭기보다 떠도는 것이 떠돎보다는 죽는 것이 그리고 죽기보다 더 아픈 건 잊혀진다는 것. -로랑생이 쓴 진통제 라는 시~
가장 비참한 사람은 버려지는 것이 아닌 잊혀지는 사람이라는 말...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표현이다.
이 책 지금 이순간을 기억해에는 여러분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미 이름을 들어서알고 있는 화가들도 있지만 더러는 생소한 이름들이었는데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
문학작품이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명화등 더러 이미 소개받았던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이 생소한 미술분야에 대해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이렇게 고마울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어떤 특정 개인의 일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예술분야의 두루 살펴볼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예전 같으면 전라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이미 관심이 저멀리 달아났을 것 같은데.... 편견을 버리고 나니 그저 예술품으로 받아들일수 있게 되었다. 저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겠지만 해석하는 입장도 다 다르다것.. 이전과는 접근하는 입장이나 생각이 달라진 것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100년전의 일이라지만 현대와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는 것...
살로메가들고 있는 쟁반에 담겨있는 머리는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바에 따르면 요한이 맞다. "내가 가질수 없는 너라면 차라리 죽어. 죽으면 너의 목, 너의 몸뚱이는 말없이 내것이 되지." 뭐란 말인가? 사랑도 소유도 아닌 광기어린 집착일뿐... 자신의 마음이 받아드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 앙갚음이라니... 비단 옛이야기가 아닌 비슷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있다는 것에 사람의 심리는 정말 할 수 없는 것임에 씁슬하다.
전문 가이드가 아니라면 이해가 다서 힘들었을부분이 많은 책이다. 역시 전문가에 의해 다시한번 읽혀지는 책은 매력이 있다. 틈나는 대로 여러번 읽다보면 전람회에도 더 자주 참가할 수 있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다시 파리에 간다면 포토북트레일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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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그림에, 마음을 놓다" "당신도, 그림처럼" 그리고 "다, 그림이다" 의 저자 '이주은' 은 최고의 그림 에세이스트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2016년 1월 공개한 그녀의 저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의 벨에포크 산책" 은 약 100년 전의 문화와 예술, 그 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지금 현재의 우리 눈으로 살펴보면서 21세기의 거리를 초조한 마음으로 내딛고 있는 우리들의 원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매번 따뜻한 글과 그림으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저자 '이주은' 은 이번에도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위로를 전해줌과 동시에 무기력, 불확실성에 빠진 사람들을 환기시켜 주는 작품 설명을 통해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을 마음껏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의 특징을 몇가지로 요약해 소개해드리면 "벨 에포크" "그림 에세이" 그리고 "이주은" 으로 나누어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벨 에포크" 를 설명해드리면 인류의 긴 역사중 유럽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짧은 20년을 흔히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즉, "아름다운 시절 또는 좋은 시절" 이라 불리웁니다.시기적으론 189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 말하며, 미술사에선 "인상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 그리고 "야수파" 와 "입체파" 가 활동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콕 짚어 사람들이 "아름다운 시절" 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영화, 기차, 바캉스, 백화점 그리고 도시의 화려한 불빛같은 오늘날 거의 모든 라이프스타일이 그 시기에 폭발적으로 태어났으며, 짧지만 가장 찬란했고, 완벽해서 못 견디게 불안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림 에세이" 는 저자 '이주은' 특유의 이야기를 풀어 나아가는 스타일으로 일상속 에피소드에 이은 그림 소개를 함께 곁들여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가지 인상깊은 이야기들은 '에드가 드가' 의 "실내" 와 '장 베네' 의 "살로메" 를 통해 풀어낸 "구경거리 사냥꾼" 편, '알폰스 무하' 의 "지스몽다" 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공식 포스터" 를 통해 풀어낸 "행운"편, '타마라 드 렘피카' 의 "다폴리토 후작" 과 '뤼시엥 두세' 의 "로베르 몽테스키외" 그리고 '제임스 휘슬러' 의 "검정과 금색의 배열" 을 통해 풀어낸 "댄디" 편, '일리야 레핀' 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와 '조르조 데 키리코' 의 "철학자의 정복" 을 통해 풀어낸 "회귀욕구" 편, '마리 로랑생' 의 "주신의 여사제" 와 '케르자비에르 루셀' 의 "바커스의 승리" 를 통해 풀어낸 "옛사랑" 편, '윈슬로 호머' 의 "푸른 보트" 와 "폭포, 애디론 산맥" 을 통해 풀어낸 "야생의 삶" 편 등이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끝으로 "이주은" 은 우리들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웠던 미술의 세계를 친숙하고 편안한 템포의 글을 통해 마치 이야기 하듯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만들어 주는데, 고전부터 현대의 미술까지 실로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우리들에게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되돌아 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글과 그림의 힘을 느낄 수 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대로 기억하게 만든 화가나 소설가의 작품으로 "벨 에포크" 시대를 엿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희미하게나마 가늠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후 느낌을 담은 곡은 '구구단' 의 "이 순간을 믿을게" 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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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라고 해야할까. 미술은 내가 넘을수 없는 벽이다. 학창시절 존재감이 없어 어느 누구의 눈에 띄지 않던 내가 미술선생님의 한마디에 많은 아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미술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는데 내 그림을 보며 선생님이 웃으시며 정말 못그린다고 말씀하시는거다. 어느것하나 잘하는것 없는 나이지만 그림은 정말 못그린다. 물론 평소 친분이 있던 선생님이 장난으로 말씀하셨지만 나에게는 상처로 남았다.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실기시간에도 0점 맞는 것을 각오하고 그림을 끝까지 내지 않았다.
그때문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관을 찾는 일도 거의 없었다. 가끔 친구들과 함께 찾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 미술관을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그림을 못그린게 상처로 남아서일까. 아니면 대리만족이였을까. 아이들은 열심히(?) 미술학원을 보냈다. 불행히도 나를 닮아 그렇게 오랜시간 다녔지만 그림을 그리는 실력은 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그림에 관심이 많다. 못그린다고 나처럼 상처를 받고 좌절하지 않고 못그리는 그림이지만 집에서도 종종 그린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멀리했던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숙제같은 느낌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난후 어떠냐고 물었을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재미있다.'라는 말이다.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그 말 밖에 할줄 모르냐고 뭐라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후의 처음 느낌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미술에 관한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그 동안은 나에게 풀리는 않는 숙제마냥 어려운 그림이야기가 어찌 이리도 재미있단말인가.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유럽의 19세기 말, 20세기 초 그 짧은 20년을 사람들은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좋은 시절)'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림 에세이스트이자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그림 속에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책에서 만나는 그림과 이야기들을 만나며 삶의 위로를 받을수 있을까.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림과 함께 만나는 영화나 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하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직은 잘 알지 못하기에 그림을 책이나 영화와 함께 들려주니 이해하기도 쉽고 그리 어렵게 다가온다. 솔직히 상처받은 우리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음악이나 책,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잘 모르니 보는 것만으로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들에게 그림에 대해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림은 보는 것으로만 생각했지 느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보통 그림에 관한 책이라면 그림의 제목이나 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은 쇼핑, 구경거리 사냥꾼, 바캉스, 바보, 군중심리, 옛사랑 등의 주제를 통해 그림과 영화, 책의 이야기들을 함께 풀어가고 있다.
탐욕에 전혀 휘둘리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 천사이거나 백치일 것이다. 천사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찾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상이란 결국은 바보가 아니겠는가. - 본문 118쪽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면 '바보'이다. 어린시절 친구들에게 바보처럼 살고 싶다, 바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말을 종종했다. 그 때문인지 첫 이야기인 '쇼핑'이 아니라 '바보'를 먼저 읽었다. 바보라는 주제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와 미하일 브루벨의 그림 <라일락>을 만날수 있다. 저자는 라일락이라는 그림을 보며 소설 속의 나스따시야를 떠올렸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이처럼 책이나 영화 속 이야기들과 함께 들려주니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림을 만날때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수 없을때가 많다. 그것을 알기 위해 공부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아갈수 있다.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예술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녹아드는 예술을 만나는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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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경험했던 세기말.. 유럽의 19세기말 20세기초의 모습은 어땠을까? 증기기관차와 자전거 등등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더 자유롭고 편리한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서구사회를 지탱하던 그리스도적 가치관이 몰락하면서 몰락이라는 의미의 '데카당스'라는 문학사조가 등장하기도 했다.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 시절.. 프랑스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풍요와 평화를 누렸다고 한다. 미술 음악 문학이 번창했던 그 시절을 벨 에포크..우리말로는 좋은 시절을 뜻하는 말로 표현했다. 이 시절의 미술작품을 읽어주는 책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