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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믿고 보는 저자가 쓴 책이라서 손에 넣게 되었다. "원자력발전, 코로나19, 기후위기"가 주제인 것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 가장 핫한 주제를 들고왔네. 역시 당장 필요한 주제야"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 개의 주제가 한 책으로 묶여야하는 이유는 살짝 의문이었다. 그런데 옴니버스처럼 따로일 것 같은 이 세 주제는 우리 삶을 보여주는 핵심 키워드이고, 이내 이들이 한 세트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셋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위기를 말해주는 단어이고,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 2014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을 때, 신문과 방송은 온통 관련 뉴스로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원전문제는 다루지 않았고 대응 방안 역시 비를 맞지 말라거나 일본산 해산물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정도만 되풀이했다. 관련 내용을 다룰 근거가 전혀 없는 과학교과서를 보면서 학교가 우리 아이들의 삶과 얼마나 유리되어 있는지 통감했었다. 산업혁명은 기계의 출현을 가져왔고, 지칠줄 모르는 기계는 에너지만 제공하면 무한의 동력을 생산해낸다. 이제 인간은 기계를 다룰 필요조차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해도 돌아가는 세상,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핵연료와 화석연료는 기계가 노동을 대체할 삶을 보장해줄 에너지 원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고, 기후위기를 탄소문제로만 보아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핵, 바이러스, 탄소 이야기를 선정한 저자의 혜안에 깊게 동감한다.
한편, 그 시각 도쿄전력 본사에서는 대도시에서 벌어질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다들 원자력 발전소는 한 차례 고비를 넘겼다고들 여기고 정전을 막는 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중앙통제실의 전등불이 꺼지더니 곧이어 계기판의 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모든 계기판의 불빛이 꺼지자 귓가를 때리던 날카로운 경보음도 사라졌다. 블랙아웃이 되어 버린 상황. 외부 전원이 차단되어도 자가 발전이 가능한 디젤 발전기가 작동하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중앙통제실의 모든 전원이 차단되었다면? 불길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소란스럽던 중앙통제실은 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중앙통제실은 원자로 1,2호기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사능이 유출된다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전원이 나가고, 냉각수 작동이 멈춘다면? 이후의 일은 불을 보듯 뻔했다. 원자로가 끓어 넘치고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하면 폭발해 버릴 것이다.
각 장의 이야기는 주요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구체적인 수치와 등장인물, 전문용어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세트장을 한 눈에 그려주고, 그 상황 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런 몰입감을 주기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지고 구체적인 정보를 찾아 헤맸을지! 책을 읽으며 묘사가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다. 설명은 지루해지기 쉽지만 묘사는 현장감을 준다. 설명은 가르치지만 묘사는 안내가 되어 저자를 주체의 자리에 있게 한다. 자칫 잘못하면 정보의 나열로 지루하거나 맥락을 놓쳐버릴 수 있는 주제를 소설과 같은 스토리로 기승전결을 살려주었다. 구체적인 기록은 몰입도를 높이고, 상황을 이해하게 해주고, 그 다음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원인이 드러나면 해결책이 보인다. 핵 이야기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듯 사건의 전후 관계를 보여준다. 어이없는 실수,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현장으로 들어가는 숭고한 희생, 그렇게 값을 치르고도 여전히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우리. 아마도 저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우리에게 함께 나서자고 호소하는 듯하다. 알고 보면 문제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고, 위험을 알면서도 방치하거나 무시하는 세력이나 상황을 우리가 외면하면 공멸의 길로 간다고! "핵, 바이러스, 탄소"는 여러 주체들이 겹쳐 있는 일이고 그래서 엇박자를 낸다. 하지만 모든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면? 어쩌면 해결책은 쉽게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주의 역사가 138억만년인 것도 알아내고 핵 발전소를 발명한 인간인데 우리가 만든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