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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달러 지폐 속 그 얼굴의 인물로 피뢰침을 발명하고,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외교관으로 프랑스를 설득해낸 사람인 벤저민 프랭클린을 우리는 이름은 알지만, 정작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프랭클린은 가난한 집안의 열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정규 교육은 고작 두 해. 형의 인쇄소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밤마다 빌린 책을 읽었다.
"어떤 때는 책을 저녁에 빌려서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돌려주어야 했기에 거의 날밤을 세우며 밤에 방에 앉아 책을 보기도 했다." (23쪽)
이 장면이 좋았다. 거창한 다짐이나 위인전의 클리셰가 아닌, 들키지 않으려 조심하며 밤새 책 읽는 소년의 모습.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식이다. 위대한 인물의 회고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삶의 이야기다. 그는 심지어 자서전의 첫 문장에서 고백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상당 부분 나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10쪽) 이 솔직함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프랭클린이 스스로 설정한 13가지 덕목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검소,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 그는 이것을 그냥 외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고, 한 번에 한 가지 덕목씩 집중하며, 실패를 점검하고 다시 시작했다. 현대로 치면 루틴 다이어리, 습관 트래커의 18세기 버전이다. 게다가 그는 ‘모든 미덕을 한꺼번에 얻으려 시도함으로써 주의력을 분산시키기보다는 한 번에 한 가지 미덕에만 집중하기로 했다’라고 썼다. 이 사람이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지독히 현실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프랭클린이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다 보니, 이 책이 성공 지침서처럼 읽힐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가 가장 자주, 가장 진지하게 말하는 것은 부나 명예가 아니라 인격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의 거래에서 진실, 성실, 정직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래야 인생의 축복이 온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85쪽) "오로지 인간의 본성만 고려할 때, 사악한 행동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해롭기 때문에 금지된 것이다." (134쪽) 도덕을 종교적 의무가 아닌 인간의 본성과 합리성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300년 전 사람이 쓴 문장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았다. 이 책은 프랭클린이 노년에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문체가 자유롭고, 여기저기 삼천포로 빠진다. 그 자신도 안다. "이처럼 이야기가 딴 길로 새는 것을 보니 내가 늙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땐 공적인 무도회에 나갈 때처럼 옷을 차려입지 않는 법이다." (21쪽) 이 문장 하나로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의 품이 느껴진다. 유머와 겸손,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는 눈. 그는 결코 완성된 위인이 아니라 끝까지 성장 중인 인간으로 자신을 그린다.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은 총4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1, 2부와 3, 4부의 문체는 사뭇 다르다. 이는 프랭클린이 독립전쟁과 다양한 직무로 인해 자서전을 쓴 시간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활기찬 문체의 1부와는 달리 마지막 4부의 내용은 조금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프랭클린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원고'이지만 그럼에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해설에서 찬찬히 짚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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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하나이며 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 또는 아메리칸드림의 표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자서전은 처음부터 4부로 기획했던 것은 아니고 쓰다가 중단하고 다시 쓰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중단한 시점에 맞춰 4부로 나눠졌다. 다만 사망 직전에 몇 줄 남기지 못한 4부를 제외하면 1부부터 3부까지는 각각 성장기와 미덕 그리고 전성기로 명명할 수 있는데 의도한 바인지 모르겠으나 각 부의 연결은 연쇄적으로도 읽힌다. 성장기에서 얻은 교훈이 미덕으로 정돈되었고 그 미덕으로 말미암아 전성기를 열었다는 식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삶에 필요한 미덕을 깨닫는다는 점에서만 본다면 벤저민 프랭클린은 우리와 그렇게 다른 사람은 아니다. 우리도 살면서 많은 과오를 저지르고 적은 상찬을 받으면서 무엇이 삶의 미덕인지를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저민 프랭클린과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미덕의 여부가 아니라 그 미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몸으로 얻은 13가지 미덕을 표로 만들고 그걸 일생 동안 지키려고 노력했다. 13가지의 미덕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일생 동안 그걸 지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지킨 13가지 미덕을 꾸준히 지켜나간다면 누구나 벤저민 프랭클린이 될 수 있을까. 아닐 거라고 본다. 같은 말을 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도 불러오는 결과는 제각각이다. 게다가 벤자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미덕은 구체적인 행동이 아니라 추상적인 태도에 가깝다. 각각 설명을 덧붙이긴 했지만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근면, 검소,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이라는 이 미덕들은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첫 번째 항목인 절제는 “배부를 때까지 먹지 말고 취할 때까지 마시지 말라”는 말인데 어느 정도가 배가 부른 것인지 또 어느 정도가 취한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 누군가에게 취한다는 건 얼굴이 붉어진 걸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필름이 끊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미덕인 겸손은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모방하라”는 말인데 대강 무슨 뜻인지 짐작은 가지만 역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벤저민 프랭클린은 마치 가훈이나 명언을 써서 붙여두듯이 13가지 미덕을 정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추상적으로 보이는 13가지 미덕은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구체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표를 만들어서 13가지 미덕의 준수 여부를 체크했는데 각각의 미덕의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지 자신만의 기준이 없다면 준수 여부를 체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벤저민 프랭클린에게는 무엇이 절제이고 무엇이 침묵이며 무엇이 질서를 지키고 무엇이 결단력이 있는 것인지 자기만의 기준이 있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이 기준은 연초 새해계획을 짜듯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몸으로 쌓아온 데이터의 집결이다. 이 데이터는 저절로 쌓이지 않는다. 첫 번째 항목인 절제를 다시 보자. “배부를 때까지 먹지 않고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매일 먹고 종종 마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먹었을 때 자기가 배부른지 또 어느 정도 마셨을 때 취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걸 실험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상황에 따라서 기준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평소보다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기분이 좋거나 컨디션이 좋은 날은 평소보다 많이 마셔도 잘 취하지 않는다. 같은 양을 먹어도 아침에는 많다고 느껴지고 저녁에는 적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먹어야 적당한지 얼마나 마셔야 취하지 않는지 알지 못한다.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르고 기분과 몸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배부르기 전에는 배부른지 알 수 없고 취하기 전에는 취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배부를 때까지 먹지 않고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다고 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얼마나 먹고 마셔야 하는지를 알았다는 뜻이 된다. 절제라고 쓰여 있지만 사실상 그는 자기의 몸에 대해 알았던 것이다. 이 말은 13가지 미덕 중 가장 첫 번째는 바로 자기 몸에 대해 아는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두 번째 미덕인 침묵은 어떤가. 벤저민 프랭클린의 설명에 의하면 침묵이란 “다른 사람이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만 하는 것. 그리고 잡담을 피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말을 아끼라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침묵의 뜻은 언어 공부를 멈추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내게 손해가 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내게 도움이 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되기 일쑤다. 그 와중에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말을 찾으려면 우선 많은 양의 단어와 문장을 기억하고 있는 언어의 해박함이 필요하고 그 다음으로 그렇게 많은 단어와 문장 중에서 가장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언어의 정확함이 필요하다. 이것은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님은 물론이고 단지 말을 아끼거나 침묵하는 것만으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언어를 공부하고 적합한 자리에 놓아보는 훈련 없이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서는 유일한 오락”이라고 할 만큼 책을 많이 읽었던 벤저민 프랭클린에게는 아마도 이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 벤저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미덕이란 단지 좋은 것을 모아둔 명언집 같은 게 아니다. 이 13가지 미덕은 훈련을 통해 각자의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나 다름없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기가 살아온 과정에서 더 좋은 삶을 위한 기준을 하나씩 발견하고 그것을 다듬었다. 그렇게 다듬어진 말들이 바로 13가지 미덕이다. 이 13가지 미덕은 특별한 말은 아니다. 뭔가 숨겨진 거창한 뜻도 없다. 찾으려고만 하면 비슷한 명언을 수도 없이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찾아야 하는 것은 말의 특별함이 아니라 그 말이 만들어진 과정의 보편성이다. 책은 물론이고 인터넷에는 온갖 특별한 말들이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외부에서 만들어진 말은 그게 아무리 좋은 말이든 인상적인 말이든 시간이 지나면 금세 흩어져 버린다. 우리가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는 말, 소위 신념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바깥에서 들어오는 글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몸을 통해 체화되는 언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저 13가지 미덕이 인상적인 이유도 그게 특별한 13개의 문장이라서가 아니라 벤저민 프랭클린이 자기가 살아오면서 몸으로 깨닫고 지켜온 말들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언어는 모래처럼 바스라지지만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언어는 쉽게 각인되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 각인되면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인간은 언어로 사고한다. 이 말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이 내면에 아직 언어로 각인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게 무엇이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걸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자기 자신을 밀어넣어서 몸에 그 일의 언어를 새기도록 하는 것뿐이다. 바깥에서 눈으로 귀로 아무리 인상적인 정보를 듣는다고 해도 또는 마치 내면에 각인된 것처럼 입만 열면 그 일에 대해 말한다고 해도 몸을 그 상황 속에 밀어넣어서 몸에 언어가 새겨질 때까지 견디지 못한다면 모두 헛일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기가 상황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히는 와중에 자기 내면에 글자를 새겼다. 13가지 덕목이란 그 글자를 바깥으로 꺼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13가지 덕목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해서 그 글자를 몸에 새길 수 있었는지를 잘 생각해보는 일이다. 좋은 말을 하는 건 쉽지만 좋은 말을 새기는 어렵다. 새긴다는 건 말 그대로 원래 있던 자리를 훼손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몸에 글자를 새기기 위해서는 그만큼 몸을 훼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신과는 다르다. 피부 위가 아니라 피부 아래 새기는 것이다. 그러니 몸에 새긴다는 말은 곧 마음에 새긴다는 말과도 같다. 마음은 복원력이 좋아서 우리는 무슨 다짐을 하든 금방 잊어버리고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런 마음에 변하지 않는 글자를 새기기 위해서는 무수히 상처를 내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복원할 수 없는 글자를 새긴다는 건 그런 뜻이다. 스스로 선택한 고통 속으로 반복해서 뛰어든다는 말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삶이 그랬다. 2025년 3월 9일부터 2025년 3월 15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