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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잊고 있다가도, 책 속에서 혹은 주변에서 죽음을 만나면 나의 미래, 불투명한 미래의 모습, 혹은 죽음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보다 과학이 발달하여 목숨을 몇십 년쯤 연장할 수 있다고 해도, 나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언젠가는 올테니까. 내가 아무리 다가오지 말라고 해도 시시각각 다고오고 있으니까.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만, 언제가는 죽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다가, 나에게 죽음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존재. 수백 권의 책을 읽은들, 수백 편의 영화를 본들, 죽음에 초연할 수 있을까? 나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숙연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지만, 갈수록 인정하기 힘들어진다. 내가 놓고 갈 것들, 가족, 친구들. 그 모든 것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것도 같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때 정리하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정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 책 속의 주인공을 보며 너무 많은 것을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와 『나만 위로할 것』이 작품을 읽지는 않았지만 김동영의 책을 사랑하는 이웃분의 글에서 만난 책은 아주 다감한 여행 에세이였다. 그런 그가 장편소설을 냈다. 제목도 로맨틱한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라는 책이었다. 책 표지 또한 한지 느낌이 나는 질감으로 된 코랄핑크빛을 지닌 표지다. 로맨틱한 제목과 로맨틱한 표지는 당연히 로맨틱한 글을 상상하게 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 여든아홉 살된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첫 장을 읽고, 그 다음 장을 펼치면서, 당연히 그가 사랑했던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겠지 하는 나만의 상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든아홉 에서의 아주 최근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과학이 발전하여 줄기세포로 인해 백이십 세 까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대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오십대의 나이에 사랑니 때문에 수명을 연장하는 시술을 받게 된 남자는 오십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든여덟 살의 남자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연구소에서 수학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노웨어라는 카페에 앉아 있길 즐겼다. 여전히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카페 여주인과 카페에 드나드는 한 여고생과의 친분을 유지하면서, 자신에게 없었던 진정한 친구, 파릇파릇한 여고생 친구를 보면서 저절로 기분 좋아지는 저 머나먼 순수의 시대로 그를 이끌어간다. 새가 지저귀듯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는 젊은 날의 추억과 그를 스쳐간 아내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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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오십 대의 모습이지만, 속은 구십이 가까워진 그대로를 느끼고 있는 그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다. 외적인 젊음을 가졌지만, 외적은 젊음을 가진만큼 행복한것 같지는 않다. 젊은 날에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그는 카페 노웨어에서 담배와 커피로 자신을 혹사하면서 찬란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는 글을 쓴다. 그가 글을 쓰고 있을때 열여덟 살의 친구는 그의 곁에서 그에게 몇마디의 말을 건네면서 나이를 떠난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의 젊은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했던 젊은 날이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청춘이 영원할 줄 알았다. 더이상 늙지 않으면 시간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더 많은 일들을 하고 보다 밝은 미래가 내게 비춰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253페이지)
나이대로 시간이 지난다고 한다. 아마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십대 때는 시간이 너무 더디가는 것 같고, 나이가 어느 정도 든 4,50대의 중년들은 시속 4~50킬로미터의 속도대로 시간이 흐른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바도 그렇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십대의 나는 시간이 너무 가지 않아 애를 태웠다. 어서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의 나를 얼른 만나고 싶어 애를 태웠다. 지금의 나는 40대,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디 갔으면 좋으련만, 엊그제 1월인것 같았는데, 며칠 있으면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그만큼 시간이 빨리가는 것 같아, 어떨때는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애를 태운다.
이럴때 시간의 도둑이 나왔던 모모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때가 많다. 붙잡고 싶은 시간만큼 지금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찬란한 시절인가를 우리는 아주 먼 시간이 지난후에야 깨닫게 된다. 지금 현재가 우리에게 찬란한 시절임을 우린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깨달을지도 모른다. 시간의 소중함, 현재의 모든 순간이 찬란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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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영원할 줄 알았다. 더 이상 늙지 않으면 시간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더 많은 일들을 하고 보다 밝은 미래가 내게 비춰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얼굴에 자신의 지방을 넣거나 인위적으로 당기지 않아도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누구나 젊어 보이길 원하고, 더 오래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멋지게 늙어가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달려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하는 데만 급급한 이들에겐 굉장한 희소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불사와 같은 시간을 누리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나는 항상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온 편이라, 한 번도 더 어려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거나, 옷을 사거나 치장을 해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데 투자하기 마련인데, 나는 그다지 그런 쪽으로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나이를 조금씩 먹어감에 따라 실제 나이보다 대 여섯 살 정도 어리게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서너 살, 한두 살 이렇게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꽤 오랜 시간을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그들 때문에 나는 그냥 딱 내 나이만큼 보였으면 좋겠다고 바랐을 정도이다. 동안으로 보면 좋은 건데 웬 자랑 질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 인해 오해를 몇 번 겪고 나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예전에 영화 작업을 할 때 나랑 나이대가 비슷했던 주인공 여배우가 볼 때마다 나에게 반말을 했었다.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니었던 터라 그냥 개의치 않고 작업을 했었는데,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어떤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나이를 밝히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내 나이를 듣고는 그 여배우, 당황해서는 외모 때문에 당연히 자기보다 어린 줄 알았다며 계속 반말했는데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냐며 미안해하는 거였다. 결국 그 여배우가 처음부터 나에게 반말을 했던 건,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어서, 내지는 사람들을 죄다 깔보는 성격이라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없이 그냥 영화가 마무리되었다면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그 배우는 계속 그런 이미지로 남아있었을 테니, 사소한 오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끔 이상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 정도는 약과이고, 사실 더한 경우도 많이 겪었다. 물론 지금은 내가 바라던 대로 처음 만나게 되는 이들이 내 나이와 거의 비슷하게 나를 보게 되긴 했지만. 그런걸 보면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통과한다는 말이 괜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사실 동안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 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 이란다. 생각해보면 좀 끔찍한 얘기 아닌가 말이다. 나이 먹은 어른이 얼굴만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니. 이건 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같은 경우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왜 다들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보이고 발악을 하는 걸까. 보톡스니, 프로포폴이니 하는 얘기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거의 인조인간 같은 그녀들의 방부제 외모를 보면 끔찍한 기분이 든다. 시간을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두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젊음은 가짜니까. 나는 어쩐지 그런 건 좀 거부감이 들어서 말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김동영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여행 에세이를 두 편이나 냈던 작가이기도 했고, 표지 디자인이며, 제목에서 묻어나는 선입견 때문에 나는 의심 없이 이번 작품이 가볍고, 말랑말랑한 멜로일 거라고 추측해버렸다. 그런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그 배반된 기대가 매우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죽을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 대부분의 친구들은 죽었거나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가족들도 어딘가에 있긴 하지만 이젠 만나지 못하니까.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었지. 마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만 빼고 모두 숨어버린 것 같구나." 고양이 눈 소녀가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우리는 오래 살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아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건 그저 내 생각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사람마다 살아가는 의미는 다르니까 다른 누군간 오래 사는 게 즐거울 수도 있어. 다만 난 가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작품의 설정은 무려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것이다. 미래의 어느 날, 절대 풀 수 없을 것만 같던 DNA 구조가 판독되고, 줄기세포 배합에 성공하여 치명적인 질병을 정복하고 수명 연장을 넘어서, 노화를 멈추는 수술을 개발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술을 받아 자신들이 원하는 나이에서 외모를 멈추게 된다. 겉모습만 봐서는 누가 어른이고, 누가 젊은이인지 가늠할 수가 없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버스 노약자석에는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어도 그 사람이 노인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어 다투는 일이 빈번해졌고, 노인들이 좀비처럼 죽지 않는 존재가 되면서 점차 사회의 골칫덩어리가 되어 간다. 그러니까 의료보험과 연금 같은 문제도 점점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꿈에도 바라는 불사의 시간을 얻었지만,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어느 지점에 멈춰버린 외모를 가지고 백이십이 넘도록 사는 노인들 사이에서 자살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로 말이다. 올해 여든 일곱이 되었지만, 줄기세포 수술로 인해 오십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와 역시 외모로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중년의 카페 여주인, 그리고 고양이 눈을 닮은 여고생이 주요 인물이다. 살아오면서 전혀 접점이 없을 것만 세 사람이 우연이 카페에서 만나고 관계를 맺으면서 친구가 된다. 대학 내에 있는 연구실에서 연구교수로 일을 하는 주인공은, 특별한 학문적 성과를 내보진 못했지만 매일 연구소로 출근해서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지치지도 않고 삼십팔 년째 반복하고 있다. 그러던 중 그 일마저 은퇴할 나이가 되고 나자, 그도 역시 너무나 많이 가지게 된 시간을 견딜 수 없었던 노인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외모만 특정 나이에 멈춰있고 수명만 몇 십 년 늘어났을 뿐,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늙어가니까 말이다. 몸은 나이를 먹는데, 얼굴만 그대로라니 나는 좀 끔찍할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하더라도, 몸의 기능과 체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는데, 얼굴만 번지르르하면 뭐하냔 말이다. 이렇게 속만 시들어가는 것이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보다 더 슬픈 일 같다. 뭐든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유한한 삶이기에 오늘 하루, 이 순간이 더 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게 아닐까. 이야기는 매우 담백하고, 감성적이나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SF 인데, 플롯은 너무 심플해서 마치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소설보다 여행 에세이를 먼저 낸 작가답게 행간에서 느껴지는 여백들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읽어놓고 괜히 시비 거는 것 같지만 표지와 제목은 그다지 잘 된 선택 같지 않다. 나처럼 읽고 나서 오히려 좋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테니 말이다.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도, 그리고 이런 내용인줄 모르고 읽지 않고 그냥 지나갈 독자들에게도 이건 어쩐지 거짓말 같아서 말이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마치 공상과학 소설의 배경 같은 뜬 구름 잡는 설정해서 시작해서, 현실에 단단히 발을 내딛으며 끝이 난다. 실제로 줄기세포 이식수술이라는 게 있다면, 글쎄 나는 그걸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통과하면서, 내 얼굴에 남는 흔적만큼 정신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더 성숙해면서 늙는 게 나의 목표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그 유한함이 우리를 더 절실하게 만드는 것이니, 현재를 마음껏 누리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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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난 지나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정신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장수는 오히려 또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지금처럼 80살 넘게 사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된 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60이 되면 오래 사셨다는 축하와 함께 모두가 잔치를 했지만 이제 60은 젊은 축에 낀다. 오죽하면 노인정에 60살은 받지 않는다는 말을 할까? 나이를 먹는 게 창피한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앞 뒤 가리지 않고 대접 만 받으려는 것도 거슬린다. 나이를 먹는 만큼 지혜를, 배려를, 포용을 가져야 하는데, 실제 우리네 어른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하다. 얼마 전 신문에서 우리의 노년을, 우리의 나이 먹음을 조명했다. 약으로, 시술로 생명을 연장해, 아름다운 죽음을 막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그 기사를 보면서 죽음을, 나이 먹음을, 그리고 수많은 항생제에 대해 생각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장수를 누리게 된 지금의 우리에게 오래 사는 것은 과연 득일까 실일까?
2014년 줄기 세포 이식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늙지 않은 외모를 지니게 된다. 90이 다 된 노인이 줄기 세포 이식으로 50대의 외모로 살아간다. 연구소에서 수학을 풀고 연구하는 ‘나’는 누가 봐도 당당하고 멋진 50대의 외모를 가졌다. 하지만 그런 외모와 달리 마음은 공허하기만 하다. ‘나’는 줄기 세포 이식을 선택하여 50대의 외모를 지녔지만, 자신의 또래는 모두 죽고 없다. 그런 ‘나’는 연구소 근처 찻집에서 중년의 외모를 가진 찻집 여주인과 상큼한 여고생을 만나 이야기 하게 된다. 80대, 50대 그리고 10대.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그들은 그곳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되고 잊고 지낸 세월을 생각하게 되는데....
예전 어떤 책에서 사람 모양을 한 죽지도 늙지도 않는 요괴(?)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사람 모양을 했기에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그 요괴는 죽기 않기에 삶이 지겹다. 자신과 추억을 나눈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봐야 하고, 외톨이가 되지만 아무도 그 요괴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외로움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쓸쓸함의 둘레가 얼마나 넓은지 조차 분간할 수 없다. 너무 오래 살기에 모든 것이 귀찮다. 누군가와 추억을 만드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제 죽을지 모를 한계가 있어서 아닐까? 영원이 아닌 순간의 삶이기에 우리는 살아 숨 쉬는 동안 열심히 그리고 가능하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길게 늘어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인류는 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 그냥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시간만큼 사는 게 맞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106)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놓을 수 없는 채로, 그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고 지나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83) 나는 이미 많은 경험을 했고, 그 경험들이 반복되기 때문에 더 이상 그것들은 새롭지 않은 그저 그런 일상이 돼버렸단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 아무런 감흥 없이 스쳐 지나가 버리지. (247)
나는 사는 동안 이 세상을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뭔가 하고 싶은 게 많은 상태로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죽음이 내 앞에 왔을 때 담담하고 조용하게 맞이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죽을 시기마저 놓치고, 내 죽음마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면... 나와 함께 추억을 나눈 사람들은 모두 죽고 나만 50대의 얼굴을 하면서 산다고 과연 행복할까? 과학이 발달하여 어떤 선택을 하게 될 때, 나는 젊음을 유지하는 시술을 받고 100년 이상 살기를 바라게 될까? 물질에도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지만, 때론... 삶에도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다. 내 삶이 소중한 것은 언젠가 죽을 그 어떤 시점에 당당하고 기분 좋게 눈 감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인위적으로 늘려 놓은 삶, 그리고 사람의 생명. 그것이 재앙이 되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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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아주 발전한 세상은 어떨까. 지금도 사람은 오래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더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수술을 해야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수술을 받을까.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기도 한데 실제 어떨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래 사는 것도 가진 사람이나 하지 않을까. 있으니까 오래 살아도 걱정 없을 거다. 없는 사람은 오래 살면 더 비참해질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라니. 여기 나온 ‘나’도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교수를 하다가 연구소를 다녔다. 나이가 여든일곱이 되어 정년을 맞았다.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하지 않았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나도 다른 계획없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든일곱에 정년을 맞다니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소설속 세상은 의학이 발달해서 사랑니에 있는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그 수술을 한 나이에 겉모습이 멈춘다. 나이를 더 먹어도 늙지 않는다. 그것은 겉만 그렇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암에 걸려도 죽지 않았다. 가끔 의학에 도움을 받으면 젊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살 수 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노인 일자리가 가장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진데. 그런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쩐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거의 그것을 괜히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사람 이야기가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수술을 하기 전에 제대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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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시대.. 만약 진정으로 그런 시대가 와서 내게 '모 아니면 도'의 선택권을 내민다면, 나는 늙지 않는 외모를 택할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어쩐지 나는 슬프다. 내 마음은 여전히 십대 후반의 모습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인데.. 거울 속의 나에게서 더이상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조금도 자라지 않는 내 마음이 안되어 슬프고, 마음과는 다르게 빠른 시간이 지나가는 내 몸이 안타까워 또 슬펐다. 왜 똑같이 갈 수는 없는건지..ㅠ,ㅠ 오십 대의 외모를 가진 여든 일곱의 아저씨.. 또는 할아버지..가 갖게 된 시간의 멈춤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때로 그냥 그대로 모르고 살아도 좋을 것을.. 끝내는 알아버린.. 할아버지와 나 스스로에게 안타까웠다. 갇혔다..라는 말이 더 맞을 법한.. 멈춤이란 것에 닫혀버린..;; 이 책을 읽는데.. 괜히.. STARTERS라는 책이 떠올랐다. 노인과 어린 아이들만이 남은 세상.. 어린 아이들의 젊음을 꿈꾸기 시작하는 노인들.. 이 책 속의 불사의 시대는 어쩌면 스타터스에서의 캘리가 사는 세상으로 향하는 직전이 아닐까~ 뭐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쓸쓸함이 가득했던 내용이였음에도, '그래도..'라는 기대감이 남았다. 뭔가 다른 결말을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괜한 기대감에 살짝 설레기도 했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ㅋ 언제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내 삶에 대해 '유서'가 아닌 글을 쓰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스스로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아직은 알 수가 없는.. 모르기에 '미래'인 그때가.. 조금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p.45 구십 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여전히 이 고독함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외로움 역시 스스로 처리하지 못할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품이 그리웠고 사람의 온기가 간절했다. 하지만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삶에 대한 애착도 앞날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낼 뿐이었다. 나는 문득 내 인생을 이대로 끝장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의자로 창문을 깨고 내 몸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건물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엉망인 된 채로 죽는다는 것도 어떤 의미를 띨까 두려운 것이다.
p.251 은퇴자 마을로 가면 이들마저 잃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미국을 혼자 자동차로 여행했던 내 서른 살이 떠올랐다. 그때 길 위에서 나는 왼팔을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외로웠다. 그래도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의미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 여정을 완주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p.116 나는 문득 그것으로 나사를 풀거나 조여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몰래 진열대의 나사 하나를 풀었다. 나사가 홈에 딱 맞는 기분, 그리고 스르륵 풀리는 기분이 황홀할 정도로 좋았다. 그렇게 뺀 작은 나사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오랫동안 바라봤다. 마치 이 세계에 홀로 남겨진 내 초라한 인생 같았다. 나사 하나 정도 빠져도 당장은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진열창처럼 나 하나 사라져도 세상은 어제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세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어깨에 힘을 주고 세상을 상대로 분투학 있다. 하지만 구십 년 가까이 경험과 이치를 지켜본 나로서는 그것이 다 부질없다는 걸 알기에 그들의 귀에 대고 이렇게 비웃어주고 싶었다. '당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미안하게도 당신은 아무것도 아냐. 당신이 없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계속 돌아갈 거요. 그리고 저 태양도, 저 달도 어김없이 내일도 뜨고 또 질 거요.' 지구, 태양계, 은하, 그리고 성단들 그 안에서 지구가 얼마나 작고 그리고 그 안에서 오만하게 살고 있는 당신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력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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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마지막 책, 얼덜결에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떠나간 친구의 생각과 함께 버무려져 읽을때 아프기도 했었고 공감되기도 했었다. 예고없는 이별은 꽤나 아프고 쓰라린 일이다. 지독한 이별에도 우리는 의연할 수 있기를.... 이 책은 약간 공상과학 소설같은 인트로를 띄고 있지만 점점 들어갈 수록 삶에 스며들어있는 고령화사회라던가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져 가는 세상의 모습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들을 잔잔하고 평온하게 반영하여 꽤나 무섭다는 느낌도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따뜻한 온기도 있다는 것... 꽤나 추천할 만한 책이다. 사실, MBC 라디오중 k의 즐거운 사생활을 즐겨 듣다보니 사서 읽게 되었고 생선작가를 멋있고 깊이 있는 사람이라고 각인시켜버린 것 같다... 강추!! P.S. 그나저나...나도 90살이 되면 저런 모습인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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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워진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소설들, 그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소설을 골라 읽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때문이다. 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일 경우에는 이 분야의 소설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도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서 골라 읽기는 하지만, 읽은 후에 깔끔한 느낌이 안 들기에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설을 선택할 때는 장르에 따라서, 작가에 따라서 호불호가 선명하게 나누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소설 보다는 읽고 난 후에 산뜻한 느낌이 드는 여행 에세이나 감성 에세이를 주로 읽게 된다. 그런 책을 주로 쓰는 작가 중에는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의 '이병률',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의 '변종모', <그리움이 번지는 곳 프라하, 체코>의 '백승선', <보통의 존재>의 '이석원',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의 '김동영'이 있다. 이들 작가의 책들은 빼놓지 않고 읽는 편인데, 사실 이런 책들은 읽으면서 분위기 있는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다. 가슴이 뻐근해 질 정도의 외로움과 슬픔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여행의 기쁨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전에 <보통의 존재>의 '이석원'이 <실내인간>이라는 첫 소설집은 냈다. 소설가가 아닌 그가 4년에 걸쳐서 쓰고 다듬고, 쓴 소설이기에 관심이 가서 읽게 되었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좋았지만, 어딘지 어설픈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작중 인물인 용휘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주는, " 인간이, 자신이 믿는대로 자신만의 탑을 높이높이 쌓아가다. 마침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되면, 그는 그 위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 (실내인간 p. 266) 우린 어떤 것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을 수도 있기에.
내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을 꼭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 불변의 것은 아니며, 그건 어쩌면 그저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나만 위로할 것>의 작가인 '김동영'도 이번에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그의 첫 번째 여행 에세이인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거야>는 출간 후에 그리 잘 팔리지는 않았던 책인데, 어느날 연예인이 그 책을 들고 TV에 나오면서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게 된 책이다.
미국의 대중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서른 살을 맞아 훌쩍 미국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의 230일간의 여행의 에세이이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감성 에세이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참 좋다 !! 김동영은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고, 음악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기에 그의 책에는 항상 음악 이야기가 함께 한다. 물론, 그가 쓴 장편소설인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에도 소설 중간 중간에 음악이 흐른다.
그래서 그는 첫 장편소설을 썼다. 물론 그의 감성적인 여행 에세이를 생각하고 이 소설책을 읽기 시작한 나에게는 좀 혼란스러울 정도로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가 특별하다. 잔잔한 감성에 호소하는 청춘들을 위한 소설책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89살 노인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도 현 시점이 아닌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줄기세포 이식수술로 노인같지 않은 노인들이 존재하는 시대, 성형수술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 이제 100 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가 도래하였는데, '백 년 보다 긴 인생'을 살아야 할 노인들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도, 삶의 낙도 없으니 그것이 오히려 힘겨울 뿐이다. 나라에서는 좀비처럼 죽지 않고 살아가는 노인들이 골칫거리이고, 불사의 시대에 국가는 일정 나이가 된 노인들의 자살을 방조하기까지 하니... ![]()
87세 정년을 맞은 노인이 89세의 나이로 죽기까지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담아 놓았다.
" 인류는 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 그냥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시간만큼 사는 게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밀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힌 것이다. " (p. 106)
120 세까지도 살 수 있는 노인은 줄기세포 이식수술로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노인이 되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게 된다. 30대가 아니기에 20대 처럼 불안하지도 뭔가를 기대하거나 원하지도 않게 되었으니... 두 번의 이혼으로 부인을 떠났고, 아들과 딸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가족이면서도 남 보다 못한 자식이고... 자신의 죽음 앞에나 나타나겠지... 이 책을 읽으며서 가장 슬프게 다가오는 문장은, " 넘치던 젊음은 이게 어디로 간 걸까?" (p. 160) 하는 노인의 속마음이다. 은퇴자의 마을로 떠날 준비를 하는 노인에게 살포시 찾아 온 카페 주인 J와의 꿈이 아닌 '꿈과 같은 현실 속의 사랑' 2번의 이혼으로 사랑을 두려워 하면 살았던 노인이 진정한 사랑을 아는데는 90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각인된 좋은 추억... " 어쩌면 아는 것은 과거고, 의심하는 건 현재이며, 모르는 것은 미래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독하건 좋건 간에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남기 마련이고, 현재는 그저 늘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 놓을 수 없는 채로, 그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고 지나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 183) 불사의 시대, 자살의 시대가 될 12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아니 그리 소설 속의 이야기만을 아닌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가 될 이 시대가 된다면 과연 사람들은 지금 보다 더 오래 살 수 있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죽지 못하는 시대에 별 희망없이 살아가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 그들은 시간의 방대함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헛된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혐오하는 일이 벅차 자살을 통해 영겁에 가까운 삶이라는 무거운 코트를 벗어 던졌을 것이다. (...)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살아 남은 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죽은 자들에게는 미련도 남지 않는 긴 여행의 끝'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p. 234)
소설의 끝부분에 '안락사'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문제는 소설 중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시대가 자살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행복일지라도, 주어진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당사자가 그걸 원한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 않을까.... 많은 소설들이 과학의 발달이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족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 연장, 환경파괴, 첨단 무기 생산 등.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아마도 이 책은 '나이듦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연령층'이 읽는다면 훨씬 소설을 이해하기도 쉽고 공감을 갖게 될 것이다. 작가의 2권의 에세이를 통해서 작가는 깊이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상당히 음악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이라는 주제를.... "꽃은 언젠가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삶도 유한하기에 살아 있는 순간이 의미 있는 것. 저물어가는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것처럼 모든 것은 끝이 있기에 소중하다는 그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잠시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완벽하게 영원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책 소개글 중에서)
책을 읽은 후에 이 소설에 대한 생각을 다듬으면서 책소개글을 읽다가 이 부분이 좋아서 여기에 적어 본다. 이석원의 첫 장편소설인 <실내인간>이나 김동영의 첫 장편소설인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는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단한 소설가들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꼭 쓰고 싶었던 글들을 소설로 엮어낸 이 두 작가의 소설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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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열어 전화번호부를 봐도 지금 내가 연락 할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그들의 길을 가버렸다. ㅡ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p.22 과거의 나는 세상과 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분노에 차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끝이 알 수 없는 그 자리에 대해 분노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더이상 세상에 욕을 하고 다른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짧게 말하는 법을 배웠고 불만을 토로하기보단 입을 닫는 편이 낫다는 것도 배웠다. ㅡ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p.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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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흘러가고,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은 그 시간을 따라 작은 변화들이 일어난다.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심 내 모든 것들이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늘 조바심을 냈다. 언젠가는 부서질 것 같은 젊음을 찍어댔고, 가고 있는 젊음을 붙잡아 누려야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나는 견뎌내야 한다고 자위했고, 아직은 어리다며 그 어떤 실수도 용서했다. 그렇게 움켜지고 있던 시간들이 모래가 흘러 내리 듯 흩어지고 있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주워 담고 싶을 만큼, 후회는 없지만 아까운 마음에 앞으로의 시간들에 깃발을 꽂아댄다. 깃발을 잡으려 달려가다 문득 거울에 비춘 내 얼굴과 마주한다. ‘늙지 않는다면,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아도 될까?’ 이 젊음을 가진 채 앞으로의 시간들을 계획하면 되는 거다. 35살이 오기 전에 하겠다던, 짧고 긴 계획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150년쯤 살 수 있는데, 그깟 1,2년 아니 10년쯤 낭비한다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20대의 이 얼굴을 유지한 채 그렇다면 더더욱. 학생 때는 졸업이 있어, 학생이라는 시간의 가치는 무엇보다 높았다. 나는 생각보다 영악해 그 것을 일찍 알았고, 교복과 10년쯤 비껴난 사람들의 부러운 눈총을 즐기며 교복을 훈장처럼 입고 다녔다. 그런데 이제는 끝이 없는 거다. 내가 사표를 던지고 나오지 않는 이상 기약할 수 없다. 어찌됐던, 버텨야 하고 지켜내야 했다. 이 세상에 잉여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지옥철에 몸을 싣고 노동을 팔아야 하니까.
과거는 지독하건 좋건 간에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남기 마련이고, 현재는 그저 늘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짐을 정리하면서 잊으려고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마치 오래될수록 더 빛나는 대리석 조각처럼 말이다. (……)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놓을 수 없는 채로, 그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고 지나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_183)
/ 글을 쓰기 위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조금 더 글들에 무게가 실리길 바라면서 나도 그처럼 이 글을 두 번 읽지는 않아야겠다. 그래야 개운해질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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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작가에게 빠지면 그 작가의 책은 다 읽어보려는 습관이 있다. 마찬가지로 김동영작가는 미국여행기 에세이를 보고 푹 빠진뒤, 출판된 모든 도서를 읽었다. '잘지내라는 말도 없이'는 유일한 소설인데, 기발한 내용이었다. 시사하고자 하는바도 꽤 있다고 생각이 든다만.. 본인의 생각과 이야기를 더 오픈해서일까, 노래가사같은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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