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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열 가지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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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열 가지 스펙트럼     만일 삶을 바라보는 안경이 있다면, 내겐 어떤 스펙트럼이 있는 걸까.    전두엽 브레이커는 내게 이와 같은 질문을 제시해 주는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최근에 좋아하던 작가가 저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면 그 작가의 책을 몰아 읽는 편이다. 그 작가의 세계관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알던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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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한 열 가지 스펙트럼

 

 

만일 삶을 바라보는 안경이 있다면, 내겐 어떤 스펙트럼이 있는 걸까. 

 

전두엽 브레이커는 내게 이와 같은 질문을 제시해 주는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최근에 좋아하던 작가가 저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면 그 작가의 책을 몰아 읽는 편이다. 그 작가의 세계관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알던 세상이 낯설게 보이기도 하고, 또 내가 모르던 세상을 새롭게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한 작가 위주로 읽다보면, 간혹 ‘편식’에 치우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전두엽 브레이커는 독서에 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열 명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두엽 브레이커에 실린 열편의 작품들은 각각 다른 장르와 개성을 지닌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었다. 일단 가독성이 좋았다. 각 작품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독자 입장에서는 각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자를 위한 한상 차림’이라는 기획의도에서처럼, 문학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덕분에 ‘편식’하지 않고 한 편 한 편 골고루 읽을 수 있었다. 

 

 

「전두엽 브레이커」 : 무경계의 SF 판타지

 

작가의 거침없는 입담에 사로잡혀 단숨에 읽었다. 황당한 설정과 이야기로 인해 읽는 내내 허탄한 웃음이 났다. 그런데 다 읽고 나자 왠지 씁쓸한 기분에 휩싸였다. 현실에 대한 작가의 뼈아픈 고뇌가 느껴졌달까. 삶에 대한 고군분투는 비단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일하게 느낄 법한 공감대이다. 희망과 좌절, 실패와 성공, 노력과 공허, 그 경계 어딘가 쯤에서 아마 이 소설이 탄생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작가적 센스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이 소설은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나의 일상이 일거수일투족 국가 기관의 감시를 받는다. 만일, 실제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한 판 소동이 이는 가운데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아프고 웃픈 이야기이다. 

 

코로나 발생 이후 근 3년이 지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은 예전을 회복했다. 그런데 그것은 진정한 차원에서의 회복을 의미할까. 작금의 상황을 보노라면 ‘회복’의 의미보다는 ‘팬데믹=일상’이 당연한 공식처럼 자리 잡게 된 ‘기점’으로서의 의미에 보다 가까운 것 같다.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현실은 총체적으로 팬데믹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현실이 설정 없는 실전의 연속이라면, 어떤 설정이 고스란히 ‘현실’을 떠안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까? 웬만한 자극적인 영상물에조차 독자는 요동하지 않는다. 가장 지속적이며 손쉬운 방법은 전두엽을 자극시켜 말초적인 중독성을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요한 작가는 소설이 지녀야 할 본연의 의미에 대해 되묻는 듯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을 각인시키며,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조차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과 몸짓일 것이다. 

 

 

「운명을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 현실과 평행 우주를 넘나드는 롤러코스터

 

한 여름 폭우가 쏟아지던 날, 두 남녀는 터널 속의 차에 갇힌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의 도입부를 보자면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가 싶다. 하지만 점차 소설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좌회전과 우회전, 직진과 뉴턴을 반복하더니 종횡무진으로 내달린다. 따당따당따땅, 빗소리가 날 때마다 두 남녀의 운명은 서로 뒤바뀐다. 마치 현실과 평행 우주를 넘나드는 롤러코스터에 오른 느낌이랄까.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운명적인 코드를 쫓는 재미가 솔솔하다! 다 읽고 나니 어느덧 내 귓전에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공명처럼 울린다. 

 

 

「걷는 여자, 걷는 남자」 : 독특하고 독보적인 세계관

 

김솔 작가는 매 작품마다 낯설고 독특한 세계를 보여준다. 「말하지 않는 책」이 언어에 관한 세계관이라면,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세계관을 다룬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할 때 조금 관념적으로 와 닿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깊은 여운 속에 이내 그것이 내 현실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 현실이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구나! 본류와 지류처럼, 관념성과 현재성은 절묘한 지점에서 교집합을 갖는다. 독특한 매력과 함께 보편성을 지닌다. 

 

이 소설은 김솔 식대로 사랑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사랑이 아주 낯설다. 낯설다는 것은 해석의 차이를 의미할 것이다. 흔히 사랑은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의 산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의미는 인간의 의식에 내재하는 선험적인 경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이족보행을 하게 된 인류는, 현 세대까지 ‘걸음=기록’을 통해 오늘의 나에게까지 도달한다. 그 걸음이 서로 만나는 순간, 두 존재의 사랑은 시작된다.

 

 

「당신의 선택이 간섭을 일으킬 때」 : 삶이 도박임을 제대로 보여주는 SF

 

“인류의 역사는 도박의 연속이었어. 도박이나 모험은 정말 한 끗 차이야. 알 수 없는 미래에 가능성을 던지는 거잖아.” (-소설 중 일부 발췌) 이 소설에는 주인공과 형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도박을 하러 집을 나간 형을 찾으러 가는 내용인데 전개과정이 기가 막히다. 정말 잘 만들어진 SF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도박이라는 전제 또한 기가 막힌데, 진짜 도박장이 나오고, 형이 도박을 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그들의 인생과 그들의 관계성을 민코프스키 4차원 공간 이론에 근거하여, 보편적 가치로 해석해낸다. 도박장이라는 배경 설정도 좋았다. 선택이 지닌 도박과 모험의 속성을 다루는데 최적의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 속에서, 파동,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 등을 통해 삶의 적나라한 실체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매력적인 SF 소설이었다. 

 

 

「R300」 :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SF

 

이 소설은 근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미래 세상에서 거주지는 구획별로 나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들에게 기후, 전쟁, 그리고 바이러스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질까. 무엇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감탄한 것은, 정교하게 세팅된 미래의 가상공간이다. 이처럼 탄탄한 배경설정을 통해 소설은 보다 리얼리즘을 확보하게 된다. R0부터 R100의 구획으로 나뉜 세상, 감염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도시는 포화 상태에 이른다. 박테리아의 출현과 외부로의 전출입이 제한되는 상황, 누군가 나우를 찾아오는데..... 점점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으로 치닫는 요즘, 이 소설의 상황들은 조만간 리얼한 현실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리얼리티가 살아 있으려면, 무엇보다 기초 공사가 제대로 되어야 함을 재차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방독면을 쓴 바나나」 : 독자를 사로잡는 마술적 사실주의

 

이 소설은 우크라이나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작가의 말 또한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좋았다. 특유의 직관과 통찰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점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동시에 따스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혹 나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지, 스스로 자문하게 되었다. 한정된 시각에 갇혀 좁은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해 버린 건 아닌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작품이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마술적 감성은 독자를 사로잡는 마력을 지닌다. 

 

 

「여분의 사랑」 : 사랑의 다면성에 관한 서늘한 소동극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보여준다. 사랑뿐만 아니라 그것에 내재된 폭력성을 서늘하게 그려낸다. 지극히 일상적인 두 커플의 이야기. 전혀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언제든 가장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관계. 둘의 관계는 그들이 기르던 개를 통해 드러난다. 이 소설에서 개가 갖는 의미는 소재인 동시에 주제적 의미를 내포한다. 까메오로 등장하는 펜션 주인의 역할도 한 몫. 마치 한 편의 소동극처럼 펼쳐지는데, 적절한 거리두기를 통해 ‘사랑’에 관한 다면성이 서늘하게 잘 그려졌다.  

 

 

「스탠다드맨」 : AI 시대에 인간의 실존에 대해 묻는 SF

 

이 소설은 한 편의 블록버스트 급 SF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스탠다드맨을 통해 인간의 실존에 대해 묻는다. “사랑이라는 기억에 대한 집합적 표상은 완벽한 대상, 완벽한 관계, 완벽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미란의 말에 의하자면, 그 첫 기억은 ‘공백’으로부터 시작된다.”(-스탠다드맨 중 부분 발췌) 

 

시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가치를 다룬 작품이다. SF소설이지만, 주제에 대해 작가는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뿐만 아니라, 기발한 상상력과 경계없는 발상으로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일종의 지적인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앞서 블록버스트 급이라고 한 이유 또한 이 소설에서 다루는 영역이 그만큼 광범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학, 과학, 심리학, 인류학, 철학 등등.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주는 다층적 요소들은 적절한 배합으로 배경 처리되어 작품 속에 용해된다. 그로 인해 독자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인류는 이미 표준화된 집단의식 속에서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또한 서로를 길들여간다. AI의 등장으로 ‘우리’의 범주에 ‘새로운 의식 공동체’가 등장했다. 인간성 상실마저 우려되는 시대에 작가는 진지하게 인간의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도대체 뭡니까? 

 

 

「그래도 되는 사이」 : 단편의 묘미를 잘 살린 소설

 

정무늬 작가의 소설은 언제 읽어도 생동감 있다. 이 소설 또한 그러하다. 트렌디한 소재, 활달한 문제, 군더더기 없는 전개, 익숙하지만 낯설게 그려진 일상. 가독성 면에서는 단연 압권이었다. 란주, 외솔, 하현. 작중 세 인물은 세상을 바라보고 대응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다. 사뭇 도발적인 소재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단편이 주는 매력이 통통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열 가지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는 일상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작품들은 각각 다른 스펙트럼이 되어 우리의 일상을 비춘다. 그만큼 독자들에게 와 닿는 의미도 제각각 다양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다양성의 또다른 표출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리즘이 대세인 시대, 다양성의 의미란 무엇일까. 부족하지만 전두엽 책을 통해 리뷰를 적으며, 나름 내가 가진 삶의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YES마니아 : 로얄 a******i 2023.08.07. 신고 공감 19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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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요 골라.
"골라요 골라." 내용보기
어린 시절, 엄마와 남대문 시장에 갈 때면, 골라 잡어 묵직한 목소리에 고개를 쳐들곤 했다 얼마나 연습해야 저런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상인의 목소리가 떠오른 것은 새로운 것이 가득한 가판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골라먹을 수 있는 건 비단 배달 앱이나 아이스크림 가게만이 아니었다기발한 상상력은 물론 시덥잖은 일을 시덥지 않게 만드는 입심과 골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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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엄마와 남대문 시장에 갈 때면, 골라 잡어 묵직한 목소리에 고개를 쳐들곤 했다 얼마나 연습해야 저런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상인의 목소리가 떠오른 것은 새로운 것이 가득한 가판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골라먹을 수 있는 건 비단 배달 앱이나 아이스크림 가게만이 아니었다
기발한 상상력은 물론 시덥잖은 일을 시덥지 않게 만드는 입심과 골때리는 반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소설까지. 각양각색의 소설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순문학부터 sf까지 각각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 결국 우리가 마주했거나 마주해야 할 문제를 다양하게 깔아놨다고 해야할까.
얼마나 읽고 써야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나서 골똘해진다. 괜히 미간에 힘을 주며 눈알을 굴린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 아, 소리를 내지만 어림도 없다. 그러나 추천은 할 수 있으므로, 나는 확신에 차서 말 할 수 있다
자, 이리 모여보시라
발로 박자를 타고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이제 취향껏 맛보시길.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니.
전두엽이 활성화 되는 건 시간 문제. 재미는 덤.
골라, 골라. 언니야, 오빠야, 후회 안한다니까?
YES마니아 : 로얄 h*****0 2023.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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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학의 탄생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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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문학의 죽음이라는 유령이.” 생각해보면 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지 않은 시대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대중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고 엘리트는 고색창연하고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옛것’만을 예술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깨어있는 자라고 생각하는 자는 대중에게 가르침을 줘야 가치 있는 문학이라고 외친다. 그 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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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문학의 죽음이라는 유령이.” 생각해보면 문학의 위기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지 않은 시대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대중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고 엘리트는 고색창연하고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옛것만을 예술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깨어있는 자라고 생각하는 자는 대중에게 가르침을 줘야 가치 있는 문학이라고 외친다그 주관에서 벗어난 문학은 늘 죽은 문학일 뿐이다문학이 살아 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그러나 실제 상황은 어떤 것일까뒤떨어진 문학은 죽고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문학이 태어나는 것 아닐까그러니 문학의 죽음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말은 현재 어떤 문학 형식 하나가 도태되는 중이라는 말에 가깝다.

대중과 유리되어 자신들끼리 칭찬하고 감동하고 문화적 다양성이라고 외치는 일단의 유행이 광풍처럼 불었다대중은 이런 문단과 유리되어 자신이 원하는 글을 찾아 읽는 것뿐이다이런 현상을 가장 잘 풍자하는 단편이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전두엽 브레이커.

이 작품의 첫 문장을 보자. “아주 오래전에 소설은 죽었다.” 이렇게 시작한다신춘문예 낭인인 주인공은 웹소설로 한 달에 억 단위를 버는 작가를 사부로 모신다그 사부의 웹 판타지 연재 글은 대충 나는 존나 쎄다는 내용이다허성환이 풍자한 판타지는 현재의 히트 작품이 아니다오래전 양판소 판타지를 풍자한 투명드래곤이라는 소설을 소환해서 스토리에 맞게 구성한 것이다. <투명 드래곤의 1화는 아래와 같다.

 

<"크아아아아"

 

드래곤중에서도 최강의 투명드래곤이 울부짓었다

투명드래곤은 졸라짱쎄서 드래곤중에서 최강이엇다

신이나 마족도 이겼따 다덤벼도 이겼따 투명드래곤은

새상에서 하나였다 어쨌든 걔가 울부짓었다

 

"으악 제기랄 도망가자"

 

발록들이 도망갔다 투명드래곤이 짱이었따

그래서 발록들은 도망간 것이다

 

꼐속

투명드래곤 제1화 전문(全文).>

 

허성환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자기 필력의 37%밖에 쓰지 않았다고 한다. 56% 이상 실력을 발휘하면 너무 쎄서 기성 작가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란다작품과 작가의 말까지 모두 기성 문학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출판사가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삼은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식상한 문단에 식상한 소설이 판치는 것은 어쩌면 세상이 미쳤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미친 소설가가 새로운 소설을 써서 문학을 부활시키겠다는 의지로 자신의 실력을 37% 발휘하여 대춘 쓴 소설이 이 작품이다참고로 양판소 판타지를 풍자한 투명 드래곤> 이후 괜찮은 웹소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 중 몇몇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OTT로 해외로 뻗어나갔다이 풍자 소설이 한국 문학 자체를 그렇게 만들기를 고대해 본다.

 

고요한 작가의 사람과 사람 사이는 코로나와 국가 권력을 풍자한 희극이다말하자면 카푸카의 심판과 조지 오웰의 <1984>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분위기와 섞은 후에 코로나 시기의 우리나라에 대입하여 희극으로 그린다면 딱 이런 작품이 나올 것이다부부관계를 코로나라는 이유로 막는 국가그런데 그 국가가 한 명의 개인으로 주인공 앞에 등장한다. “시민님제가 바로 국가입니다.”라는 대화로.

국가라는 시스템은 결국 인간이고 코로나라는 자연재해 앞에서는 시민을 구속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하지만 재해보다 인간인 시스템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멀게 만든다웃픈 블랙코미디다.

 

권재훈의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이 단편집 중 가장 순문학 단편에 가깝다갑자기 내린 폭우그리고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하는 여자와 그러자 차와 여자를 버리고 떠나 버리는 남자그러나 말한 것과 말하여진 바는 사실 전혀 다른 것이었다소쉬르식으로 말하자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다르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소통은 우회되고 운명은 갈라진다하지만 둘 사이를 단절시킨 요인 중 하나인 폭우가 다시 그들을 재회시키고 빗소리는 조금 전과 같은 소리로 울리지만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같은 시공간 속에 펼쳐진 두 대의 차와 두 커플, 그들은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들의 운명이 일 순 중첩되었다가 이내 멀어져간다따당따당 차를 두드리는 여운만을 남기고. 잘 짜인 구조를 가진 단편의 샘플을 보여 달라고 한다면 이 작품을 내밀고 싶다.

 

한때 문학이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고 믿거나-예컨대 에밀 졸라-혹은 적어도 세상을 기록하는 기록자로서의 위상은 가져야 한다고-예컨대 발자크-주장하는 시대가 있었다그러나 현재 문학에 그런 위상을 부여하겠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시대착오적 캐릭터가 될 터이다그런데 김솔의 걷는 여자걷는 남자를 보면 적어도 작가는 기록자의 기록자는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기세다이 책의 모든 단편 중 가장 관념적인 동시에 가장 사실적인-수많은 역사적 사상적 편린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관점에서-작품이다얼마나 관념적인가 하면 여기 등장하는 캐릭터 그 누구도 개인으로서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다한 민족이나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이데아로 존재할 뿐이다동시에 문장 대부분이 다른 작가혹은 다른 사상가의 사상을 빌려 표현된다예컨대 멕시코 남자가 국경을 떠나는 이유로 카프카가 변신의 문장을 소환한다심지어 이 작품의 제목마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이족보행을 참고했다고 한다덕분에 어떤 독자에게는 난해할 듯하다그러나 조금만 찾아보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기존의 이야기를 이렇게 엮을 수도 있구나하는 찬탄이 터져 나온다그도 그럴 것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인용을 활용하거나 전개 역시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장르도 아니고 순문학도 아니고 기사도 아니며 설명문은 더욱 아니다김솔은 잘 벼린 칼로 기존 문학을 분해해서 다시 자기 작품으로 조립하는 패치 디자이너 같다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중독성 가득한 브랜드를 창시한 디자이너다.

 

스토리 코스모스가 추구하는 문학이 장르의 통섭이라면 김은우의 당신의 선택이 간섭을 일으킬 때가 어쩌면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닐까중반까지 여느 단편처럼 무리 없이 전개되다가 중반 이후 롤러코스터처럼 판타지와 SF의 세계로 미끄러지는 작품이니까게다가 작가는 상대성이론과 에셔의 그림을 참고했다고 한다어쩌면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에셔바흐> 역시 김은우 작가의 애장서가 아니었을까이 작품은 에셔의 그림처럼 앞뒤로 이어지지만 모순된 결론을 향한다작가는 우리 인식의 불완전성과 동시에 우리 각자가 매일 내리는 판단이 우주에 일으키는 파문을 그리고 싶었음이 틀림없다그렇다면 매우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수영의 <R300>은 장르로서 SF 단편이다나우는 끊임없이 시스템의 보고서를 올린다그러나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고 답변하지 않는다메신저 KT27에 따르면 시스템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환상일지도 모른다하지만 나우는 자신의 일상을 멈추지 않고 어쩌다 만난 KT27과의 만남이 자기 삶의 역사에 기록될 모든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모두가 고립되고 기계와 생명공학이 탄생까지 좌우하는 시대가 된다면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접촉이 될 수밖에 없다이 단편은 디스토피아를 그린다하지만 라스트 신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마지막 장면처럼 감성적이다.

 

박유경의 여분의 사랑을 읽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이 병들고 불편한 세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분과 사랑이니까이야기의 구조는 간단하다다희가 오랜 기간 연애한 우주와 헤어지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구조다스토리의 가장 기본이 무엇일까? “there and back”이다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이다물론 돌아올 때 주인공은 변화한다다희도 마찬가지다이미 상처만 주는 사랑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는 깨달음그리고 그럼에도 사랑할 대상을 찾아서 돌아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그러니까 사랑이다그런데 왜 여분의 사랑일까갑작스럽게 둘 사이에 끼어든 펜션의 이상하고 불길한 주인이 말해준다. “요즘 같은 때엔 사람보다 (개가낫지병들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까.” 가장 병든 사람은 그 펜션 주인이다그러나 다희는 불길하고 악의에 찬 주인과 맞서지 못한다다만 다친 강아지를 구해서 돌아올 뿐이다어쩌면 그것이 다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박유경이 하고자 하는 말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할 수 있는 유일한 것그것이라도 하자그래서 피폐하고 병든 세상일지라도 조금의 여분을 남겨 두자사랑할 여분을.

 

이상욱의 스탠다드 맨은 SF 중에서도 일종의 사이버펑크 물이다그런데 이상욱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이버펑크 스토리를 고안했다사람의 정신계를 육체적 기관처럼 분리 통합한다면 그 정신계를 타인과 그대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박지우가 스탠다드 맨이라 불리는 것은 그의 정신을 불특정 다수의 후예와 공유했고 그의 정신적 능력이 그대로 이식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정이다아마도 이상욱이 이토록 대담한 설정을 도입한 것은 이 작품을 사이버펑크라 생각하지 않고 인문학적 SF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박지우가 연구한 집합적 기억은 칼 융의 집단 무의식과 유사하다기억이나 정신 활동을 물질적 단계까지 환원시킨 것이 차이랄까작가의 말을 봐도 세대별 가치관의 기원과 차이가 발상의 시작이었다고 한다발상을 장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가는 것을 작법의 중심으로 삼았을 것이다그래서 일견 대담하고 일견 장르의 규칙과 지식을 벗어난 이 작품이 탄생했음이 틀림없다누구나 이러한 자유를 꿈꾸지만그것을 작품으로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그런 의미에서 이 단편이 소설집에 자리 잡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정무늬의 그래도 되는 사이는 트렌디하다캐릭터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점그리고 소재가 성소수자라는 면심지어 작가가 웹소설과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겸임하고 있다는 요소까지 감안하면 이 작품은 작품 내외적으로 모두 트렌디하다서사도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잡고 갈등도 유머러스하면서 감성적이다그래서 모든 세대가 각자의 관점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언젠가 정무늬작가의 떡볶이 론을 읽은 적이 있다잘 쓸 수 있고 수준 높게 쓸 수도 있지만 독자가 원하는 것을 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었다이 작품은 그 지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기존 문단과의 거리감도 없다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격이다전업 작가를 꿈꾼다면 이 단편을 꼭 읽어 봤으면 좋겠다.

 팔색조라는 말이 있다이 소설집이 그렇다한 권의 소설에 담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가 다 담겨 있다그러면서 한편 한편이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담론을 담고 있다어쩌면 우리는 문학과 소설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리고 이 소설집은 그 변화를 촉진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독자로서 그 변화를 환영한다그리고 더 많은 매개체가 쏟아져 나오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