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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월스트리트에 사무소가 있는 형평법법원 주사의 일을 겸한 부동산양도 전문 및 소유권 관련 변호사이다. 그는 터키와 니퍼스라는 필경사 둘과 심부름과 청소를 겸하며 틈틈이 법률 공부를 배우는 열두 살 가량의 소년 급사 진저넛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터키는 변호사와 비슷한 예순 살에 가까운 사람으로 매일 낮 12시를 기점으로 업무 능력에 심각한 장애를 보였고 토요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그래서 변호사는 12시가 지나면 근무를 하지 말 것을 권했으나 터키는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 노년을 존중해 달라며 동료 의식을 내세워 계속 근무할 것을 호소했다. 니퍼스는 필경사임에도 법률 문서 초안 작성 같은 전문적 일에 나서거나, 때로는 지역 정치꾼 행세를 하고, 이따금 법원에도 들락거리며 약간의 거래를 하는 등 야심 있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소화불량에 따른 흥분과 신경과민증을 겪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터키와 니퍼스의 발작은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교대로 일어나 업무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업무가 바빠지며 필경사를 더 고용할 필요가 생겼다. 그때 신문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바로 바틀비였다. 그는 예의가 바르고 외로워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수수한 용모의 젊은이였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마음에 들어 하여 고용했고, 그에게 자질구레한 일들을 쉽게 시키기 위해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정해주었다.
바틀비는 처음엔 밤낮으로 아무 말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아주 많이 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기 위해 변호사가 바틀비를 불렀을 때 바틀비는 변호사의 예상과는 달리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부드럽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놀란 변호사가 몇 번이나 다시 업무를 지시했으나 바틀비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바틀비가 필사한 진술을 직원들과 함께 대조하고자 했으나 직원들 중 바틀비는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다. 여러 번의 채근 후에 돌아온 대답은,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바틀비는 대체 왜 거부하는 것일까?
「필경사 바틀비」는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이 쓴 최초의 단편으로 두 차례에 걸쳐 잡지에 연재되었다. 소설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스트리트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화자로 등장하여 그가 알고 있는 필경사 바틀비의 생애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을 토대로 전개된다.
바틀비는 고용된 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어느 순간 변호사의 업무 지시를 단호히 전부 거절한다. 그리하여 기계적으로 아무 말 없이 일을 많이 했을 땐 그를 신뢰하고 좋아했던 고용주 변호사는 그를 철저히 배제하고 고립시킨다. 바틀비의 노동 거부는 그를 불능의 쓸모없는 사람으로 분류되게 하였고, 모든 것에서 소외된 바틀비는 결국은 무기력하게 죽음에 이른다.
바틀비는 왜 업무 지시를 거부했을까? 바틀비의 행위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거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읽는 내내 공감이 가지 않는 행위들이었다. 의미와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을 앞으로 돌아가 읽었지만 역시나…. 드는 생각은 현실에서 만약 채용한지 사흘 만에 업무를 계속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해고되고 심지어는 소송까지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거기다가 무단으로 사무실 기거라니. 자본가 계급의 하수인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 인물이라는 변호사가 아무리 봐도 보살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너무 저항감 없이 자본주의에 찌들고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나 보다.
이 책에는 「필경사 바틀비」 외에 단편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와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이 실려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세 작품들은 자본주의의 비극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단편이라 호기롭게 읽어 나갔으나 상징주의 문학의 대표인 『모비 딕』보다도 의미를 부여하기 더 난해한 작품들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이 작품에 대해 토론해 보고 의미를 찾아가고 싶은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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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정말 궁금했던 책이라 책을 받았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 책은 두껍지 않고, 얇으며 세가지의 단편선이 실려 있었다. 필경사 바틀비의 책을 볼 때마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바틀비의 말이 무슨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 항상 호기심이 일었다. 이 소설의 화자인 변호사가 바틀비를 채용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에 관한 내용이다. 변호사는 자신이 고용한 필경사나 직원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알면서도 투자 대비 이익이랄까,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그만두게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틀비는 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결국 이 변호사가 사무실을 옮기면서 무단 점거 죄랄까, 그런 것으로 인해 교도소로 들어가게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처음에 읽으면서는 뭐야 이사람, 왜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거야?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니퍼스와 터키가 오전과 오후에 발작을 일으키더라도 근무를 하게 하는 비정상적인 근무환경에 대한 바틀비의 저항이라고 본다. 아직 잘 모르겠다. 다시 읽어봐야할것 같다. 짧지만 난해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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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는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생겨나며 읽어보고 싶게 합니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필경사'가 글씨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바틀비'라는 이름에서 왠지 모를 재미를 느끼며 [필경사 바틀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게 됩니다.
[필경사 바틀비]의 작가 허먼 멜빌은 바다에서의 선원 생활 경험을 밑바탕으로 <모비딕>을 비롯한 해양소설을 쓰고, 여러 단편소설을 통해 19세기 미국 산업사회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필경사 바틀비_월가의 이야기]에는 허먼 멜빌의 색다른 단편 소설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필경사 바틀비]는 소설을 읽어갈수록 내용을 이해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 소설을 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책 속에서 바틀비가 끊임없이 말하는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며 소설을 읽어 보게 합니다. 월가의 변호사 사무실에 바틀비가 필경사로 들어옵니다. 바틀비는 처음에 자신의 일을 아무 말없이, 무기력하고 기계적으로 열심히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변호사의 베낀 문서를 대조해 보는 일에 대해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변호사가 요청하는 일들에 대해 거절을 하기 시작합니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도와주려고 하지만 모든 것들을 거절한 바틀비는 비극적인 말로로 향하게 됩니다. [필경사 바틀비]는 19세기 미국 자본주의 산업사회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게 하며 그들 간의 신분 차이 속 비극들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같은 배경 속에서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도 흥미롭게 이해해 볼 수 있었습니다.
새움[필경사 바틀비]는 허먼 멜빌이 들려주는 조금은 낯설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찾아보게 하는 단편 소설들을 만나보며 즐겨볼 수 있게 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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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허먼 멜빌은 19세기 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미국 문학의 대서사라 일컫는 <모비딕>을 비롯해 그의 대부분의 소설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해양소설가로서의 이미가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꿈과 이국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상선을 처음 탔고, 포경선을 타고 작은 보트를 타고 고래를 잡는 체험을 했지요. 그 체험은 <모비딕>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죠.
필경사 바틀비는 그의 첫 단편 소설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자본주의가 성숙하여 부와 명예가 최대의 삶의 조건이 되는 19세기이죠. 월가의 성공한 한 변호사가 화자로 등장해 자신이 만난 잊지 못할 젊은 필경사 바틀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젊은이는 단정하고 예의 바르고, 일에 열심이지만 자신을 고용한 변호사의 요구를(지시) 듣지 않습니다. 화자인 내가(변호사) 바틀비가 필사한 내용을 맞춰보자고 불렀지만,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꼼짝하지 않아요. 처음 그의 반응에 약간은 당황했지만, 이후로도 한결같이 같은 태도를 취하는 바틀비로 인해 바틀비의 행동이 자연스러워집니다. 누구도 바틀비에게 바틀비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점점 읽는 독자는 바틀비가 왜 하지 않겠다고 하는지를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읽는 속도가 더 빨라지죠. 하지만!!!
책을 끝까지 다 읽고, 혼자 생각을 합니다. 바틀비는 전직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다친 사람이구나 하고요. 하지만 작품 설명을 읽고 알게 됩니다. 이 작품이 멜빈의 작품 중 가장 모호해서 이해하기 쉽지 않고, 시대 배경을 좀 더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요. 변호사의 사무실은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며, 바틀비는 자본주의에 대해 노동의 저항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임무를 밤낮으로 열심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필경사의 임무도 하지 않은 채 창밖을 보고 있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요구나 지시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한 개인이 사회에 대해 저항할 때는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자본주의가 성숙해져 부와 명예가 삶의 최대 조건이 되는 시기에 작가는 한 개인을 보고 경고한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부와 명예를 좇으며 사회가 발전해 가면 가난하고 약한 개인이 설자리는 없게 된다는. 바틀비는 결국에는 뉴욕 감옥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작가의 의도가 그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면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읽는 사람이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바틀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어요?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를 혼자의 힘으로 저항하려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틀비는 자신의 모든 힘을 노동의 저항에 쏟아부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틀비 같은 사람들을 무수히 떠나보내며 우리의 지금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경제 논리와 효율성으로 무수한 바틀비들을 아무 말도 못 하게 하면서. 21세기가 되었지만, 바틀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바틀비들을 만들며 더 크고 화려하고, 빠르게 달려왔는지도 모릅니다. 바틀비가 묻습니다. “당신은 그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까? 안 하는 편이 더 좋습니까?
이어 실린 두 편의 단편들은 마치 연결된 작품 같습니다. 부유한 사람이 고귀한 상하이 닭의 울음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 반 타노의 노래>가 실려있어요. 또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이라는 이야기도 실려 있죠. 누군가의 천국(부유층)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 처녀들이 있음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가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는 단편들은 마치 바틀비의 변호사가 상하이 닭을 찾으러 다니고, 총각들의 천국에서 만찬을 즐기며, 처녀들이 일하는 제지 공장에 씨앗 담을 봉지를 사러 가는 것 같아요. 작가는 모두가 자본주의에 취해 있을 때 미국 산업 사회의 두 계급(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을 절묘하게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비극성을 간파하는 놀라운 혜안을 보여주죠. 바틀비의 쓸쓸한 죽음을 통해 자본주의의 비극성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단 멜빈이 살았던 19세기에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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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은 낯설어도 모비딕은 귀에 익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비딕을 쓴 이의 새로운(?) 단편을 접하는 것이라 모비딕과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뭇 다른 느낌이다.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는 세상 넋 놓고 사는 주인공의 서술이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은 사실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페미니즘적인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자본주의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 단편집의 대주제가 자본주의의 비극이라면, 그 대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굳이 허먼 멜빌의 이름을 기억하고 보진 않더라도,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술술 책장을 넘기다가도 뒤통수를 후드려치는 충격이 있는, 그런 책이다. 모비딕보다는 미시적이지만 그래서 더 공감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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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단편선 <움라우트 세계 문학선>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의 단편집 「필경사 바틀비」에는 <필경사 바틀비>이외에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까지 세 편의 작품을 만나 볼 수가 있었습니다.
「모비딕」으로 먼저 만나봤던 작가라 사실 「필경사 바틀비」는 꽤 궁금했고, 기대감도 컸었어요.
그런데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생각에 빠지게 되었고, 「필경사 바틀비」를 읽은 다른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해 다른 리뷰들을 찾아보았답니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바틀비가 자신을 고용한 사장에게 줄곧 하는 말이에요. 나중에 교도소에 가게 된 바틀비를 찾아간 사장에게 바틀비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얘기하고 자리를 떠요.
도대체 바틀비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작품을 설명해 주는 글을 보면
멜빌은 이 작품(필경사 바틀비 이야기: 월가의 이야기,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넨벤타노의 보래,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성숙해 가는 19세기 미국의 산업사회에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절묘하게 비교하고 대조한다. 자본주의의 비극성을 이미 놀랍게 간파하고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쓰여있어요.
자본주의의 비극성,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제가 읽은 느낌과는 사뭇 다른 평에 작품 「필경사 바틀비」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갔습니다.
말하는 이는 나이가 제법 들었고, 월스트리트 2층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형평법 법원의 주사를 겸하고 있는 변호사에요.
'나'는 나의 일을 도와줄 직원들이 몇 있는데 이들을 법률서기 혹은 필경사라고 부릅니다.
필경사는 문서나 책등에 글씨를 쓰거나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는 일종의 필기 노동자를 말해요.
바틀비를 필경사로 채용하기 전 이미 채용된 터키, 니퍼스 그리고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주는 급사 진저넛이 있어요.
이들 터키, 니퍼스 그리고 진저넛은 이름이 아니라 서로 부르는 별명이랍니다.
바틀비는 처음에는 많은 일을 했어요. 서류를 베껴 쓰는 일에 걸신이라도 들린 듯,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양초 빛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류를 베끼기 시작했는데... 그 모든 일을 아무 말 없이 무기력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했답니다.
그런데 그에게 '나'가 소소한 서류를 대조해 보자고 말하자 그는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해요.
그 이후에도 계속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고만 말을 합니다.
어느 날 교회를 가기 위해 나오다 너무 일찍 서둘러 나와서 산책 겸 사무실까지 걸어가 잠시 사무실에 들렀는데 아무도 없어야 할 사무실에 말라빠진 유령 같은 모습의 바틀비가 있는 거예요.
나직한 목소리로 한다는 말이 죄송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무척 바빠 지금 '나'를 들이지 않는 편이 더 좋겠다고 말하며 골목을 두세 바퀴 더 돌다 오면 자신의 일이 끝나 일을 거라고 말을 해요.
'나'는 바틀비의 말대로 골목을 돌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바틀비는 보이지 않고, 그간 사무실에서 먹고 잔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다음 날 바틀비와 얘기를 나누어보려고 하지만 바틀비는 '나'에게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에요.
그러고는 바틀비는 필경사의 일마저 하지 않겠다고 말을 해요. 그럼.. 그는 왜 '나'의 사무실에 있는 거지? 하는 일이라곤 없는데 말이에요.
돈을 더 쥐여주며 떠나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바틀비.
'나'의 사무실을 나가지도 않고 또 남아 있으면서 일을 하지 않겠다는 바틀비...
감옥에 가게 된 바틀비와 그곳에서 식사마저 거부하고야 말아요. 바틀비가 죽고 난 후 몇 달 뒤 바틀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바틀비는 워싱턴 우체국의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 부서에서 근무했던 말단 직원이었다고 해요. 행정상 구조 개편으로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고 해요.
배달할 수 없는 죽은 편지들을 쉴 새 없이 분류해서 불태워 버리는 작업을 해야 했던 바틀비. 그를 동정하는 '나'로 「필경사 바틀비」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바틀비...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전 여전히 그가 궁금합니다.
어쩌면 그를 '이해하지 않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가 맞을까요?
#필경사바틀비 #꼬끼오 #총각들의천국과처녀들의지옥 #미국문학 #모비딕 #허먼멜빌 #움라우트 #새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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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경사 바틀비 > ○ 저자 : 허먼 멜빌 ○ 출판사 : 새움출판사 ♧ < 필경사 바틀비 >는 허먼 멜빌이 쓴 최초의 단편 소설로, 1853년에 처음 발행되어 미국 문학의 고전적인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뉴욕 월스트리트에 사는 변호사가 자신의 사무실에 새로운 필경사인 바틀비를 고용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바틀비가 열성적이고 성실한 일꾼으로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라는 반응으로 모든 요청에 저항하게 된다. 바틀비는 사무실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거부하며 점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데, 변호사와 동료들은 이러한 바틀비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 어려워하며 바틀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나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다시 한번 말했다. 하지만 아까와 똑같은 뚜렷한 대답이 다시 들려 왔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다음날 바틀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창가에 서서 정면의 창문 없는 벽만을 응시하며 몽상에 젖어 있었다. 왜 글을 베끼지 않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하지 않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 작품은 바틀비의 업무 거부와 독특한 행동을 중심으로 인간의 복잡한 측면과 사회적 관계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또한 바틀비의 행동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삶과 업무의 균형, 노동 조건, 사회적 단절 등과 연결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주제들과 허먼 멜빌의 비유적이고 의미 깊은 문체는 < 필경사 바틀비>를 미국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 필경사 바틀비 >의 주인공 바틀비의 행동과 말의 이유는 작품 내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는데 이러한 모호성이 작품의 해석과 의미를 더욱 깊게 탐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멜빌의 다른 단편인 <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 >와 <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 > 이 수록되어 있다. 단편들은 < 필경사 바틀비 >처럼 화자가 삶을 관찰한다. 그들의 행동은 시대적인 사회의 상황과 맞물려 비극을 초래하지만 멜빌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비극일까...질문을 던진다.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깊은 모호함은 심층성을 부여해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며 문학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 멜빌의 < 필경사 바틀비 >는 유명한 것만큼이나 국내에서도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처음 바틀비를 접하고 깊이 읽기를 시도한 책은 문학동네의 책이었다. 같은 이야기라도 번역에 따라 독자가 받는 감흥이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편이기에 고전문학일수록 다양한 번역본을 읽어보려 노력한다. 모호성이 짙고 해석과 의미를 다양하고 깊게 탐구할 수 있는 장치들이 깔린 작품일수록 번역이 중요함을 더욱 느끼기에, "쉼표 하나 가벼이 넘기지 않는, 바른번역을 추구한다." 는 새움의 움라우트 세계문학선, 바틀비가 참 반갑다. 삶을 살아가는 의미와 개인과 사회의 가치 충돌 등에 대한 사유를 유발하고, 한 뼘 더 나은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 행동하는 것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라는 감상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적은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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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단편선 <필경사 바틀비>는 총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본주의를 꼬집는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낸 단편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세 개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일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9세기. 막 증기기관차가 생겨나고 자본주의가 착실하게 자리 잡을 무렵에 쓰여진 소설들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 대입해봐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비판적인 시선들이 순간 순간 소름돋게 만든다.
첫 번째 이야기 <필경사 바틀비>
이 변호사에게 고용된 필경사 바틀비는 기이한 청년이다. 그는 시키는 일을 묵묵하게 잘 해내지만 글을 베껴쓰는 것 이외의 일에는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정중하고 단호한 말만을 반복한다.
바틀비의 이러한 태도는 화자인 변호사와 같이 사무실 생활을 하는 필경사들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지켜보는 독자들에게도 불편함을 준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바틀비의 반항적인 태도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보여진다.
만연한 돈 위주의 세상을 거부하는 태도는 두번째 이야기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에서도 이어진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바틀비'에 나오는 변호사와는 달리 자본주의에 신물을 느끼는 남자다. 갑자기 들려오는 우렁차고 신비한 힘이 느껴지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매료되어 수탉을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이토록 멋진 울음을 가진 수탉이라면 당연히 부잣집 혈통있는 닭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자기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기르는 닭이었다. 화자는 사실 빚이 많고 늘 빚쟁이에게 쫓기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 고결하고 멋진 수탉의 주인은 '바틀비'와 비슷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본에 대항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더 진보적이고 한단계 높은 차원의 가치를 보여준다.
마지막 이야기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은 가장 신랄한 비판 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총각들은 술과 먹을거리로 가득한 향락적인 파티를 벌이는데, 그 장면은 부족함이 전혀 없고 그저 풍족하기만 하다.
그 처녀들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치에 푹 절어있는 총각들은 그 옛날 템플 기사들처럼 언젠간 몰락하고 말거라는 강력한 암시를 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19세기에도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니 더욱 강력하게 자본으로 묶여있다.
우리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거의 모든 가치를 돈에 두고 있다.
자본주의의 진짜 무서운 점은 그게 아닐까.
허먼 멜빌은 시종일관 유쾌한 비유와 문체를 사용하지만 그 모든 건 엄중한 경고를 위한 발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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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는 허먼 멜빌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현대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아마 허먼 멜빌이 이때 쯤에 생명력을 앗아가는 것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한 시기였나보다. 이 책에 함께 실린 그의 또다른 단편작 <꼬끼오!>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 도 무언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생기를 갖게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흐름이 이어진다고 느꼈다. 인간이 사회를 살아갈 때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적인 마인드보다는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아직 이 작가의 모비딕도 안 읽어 봤는데 모비딕도 읽어 봐야겠다. 번외로 필경사라는 직업이 참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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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으로 유명한 작가 '허먼 멜빌'의 단편선이다.
이 책에는 허먼 멜빌의 3개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는데, 표제작이기도 한 「필경사 바틀비」 부터 시작해서,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까지 총 3개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개인적으로는 3개의 단편 중 가장 인상적인 단편은 표제작이기도 한 「필경사 바틀비」였는데, 큰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필경사'라는 지금 듣기엔 생소한 직업을 가진 바틀비라는 인물은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을 했는데, 화자이기도한 변호사의 업무요청을 모두 거절하는 황당한 행태를 보인다. 그런데 소설 내의 묘사를 보면 단순히 바틀비가 게으름을 부리려고 업무를 거절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소설을 계속해서 읽다보면 바틀비는 도대체 왜 업무를 모두 거절하는지 신경이 쓰여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그 이유가 밝혀지고, 바틀비 또한 (당연하지만) 필경사로서의 업무를 모두 거절한 댓가를 치루게 되는데 업무를 거절한 이유와 이야기 전개 또한 매우 인상깊었다.
나머지 두개의 단편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 또한 읽기 시작하면 뒤의 내용이 신경쓰여 책을 놓기 힘들 정도로 읽는 재미가 있었고, 그만큼 다 읽고 나서도 인상에 크게 남았다.
허먼 멜빌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모비딕」은 물론 예전부터 보고싶다곤 생각했으나, 꽤 두꺼운 분량 때문인지 선뜻 읽기가 망설여 진 점도 있어 아직 읽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허먼 멜빌의 단편선 「필경사 바틀비」를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부담없이 읽기 좋은 분량의 단편이 3편 들어있기 때문에, 책을 읽을 시간을 내서 1편씩 한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할 수 있어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전부터 언젠가는 읽고싶다고는 생각했던 「모비딕」 또한 더욱 읽고싶은 의욕이 커졌다. 그래서 「모비딕」을 읽기에 분량이 부담스럽다면, 이 책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 분량에 대한 부담없이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 3편을 1편씩 먼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모비딕을 이미 읽은 독자분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